어린시절의 독서성향은 손윗 형제가 있는 경우 그들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죠.
저도 처음 추리소설을 접하게 된건 아마도 형이나 누나가 읽던 추리소설을 따라 읽게 되면서 부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초등학교 시절, 그 시절엔 제법 성인용 이외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추리소설들이 문고판 책들이나 전집류 사이에 심심찮게 들어 있었던 듯 합니다.
아, 어쩌면 성인용 추리소설 보다는 아동물들이 더 많았던 시절일 수도 있겠군요.
뭐 동서나 하서가 출판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만.
가장 처음 접했던 추리소설은 계몽사에서 나온 소년 소녀 세계 문학 전집에 들어있던 세계 명작 추리소설 선집이었던 것 같군요. 주황색 하드커버로 된 책이었죠.
도둑맞은 편지, 네개의 서명, 얼룩 끈, 푸른 십자가, 알루미늄 단검, 황색 다이아몬드 등 하도 여러번 읽어서 잊을 수 없는 작품들 입니다.
특히 네개의 서명의 초입 부분에 등장하는 왓슨의 낡은 회중시계를 보고 추리를 하는 홈즈의 모습은 유년 시절의 영웅을 홈즈로 결정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이 선집의 작품선정은 놀라운데요, 탐정의 효시로 꼽히는 뒤팽, 그리고, 홈즈, 브라운 신부, 손 다이크 박사까지 초창기의 명탐정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황색 다이아몬드의 비밀>이라는 작품이 좀 미스테리하긴 합니다.)
아동문고에서 뤼팽이 제외된 것도 신선하구요. (계몽사 문고 자체가 대부분 일본 아동문고의 중역판일거라는 혐의를 걷어내긴 어렵습니다만.)
그 다음에 접하게 된 책들은 놀랍게도 "동서"입니다.
유명한 "동서 추리 문고"는 아닙니다. 동서 문화사에서 발행한 아동용 문고판 책으로 "딱다구리 그레이트 북스"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죠.
이건 저의 형이 형의 친구 집에서 빌려온 것들 이었습니다.
그 중에 추리소설들이 섞여 있었는데요, <황금벌레>, <바스커빌의 개> 등이 있었고, 에밀 가보리오의 <르콕 탐정>이 있었습니다!
내용이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얼마전 국일에서 나온 가보리오의 <르콕 탐정>과 같은 작품입니다. 며칠전 교보에 갔다가 국일의 <르콕 탐정> 앞부분을 읽어 봤더니 동일한 작품이더군요.
본격적으로 서점에서 추리소설을 사게 만든 계기를 제공한 책은 계림 출판사에서 나온 추리단편집 이었습니다.
전 50권 중에서 40여권이 홈즈의 단편이었고, 나머지가 뤼팽 및 기타 작가였었구요, 정말 열렬하게 모았던 책이었죠. 삽화도 아주 잘 그려진 외국 삽화들이었습니다.
아직도 전 이 문고의 번역제목들이 홈즈 완역본의 단편 제목들 보다 더 익숙합니다.
공포의 금고실(퇴직한 물감장수), 미이라묘의 수수께끼(쇼스콤 관), 아마존의 여왕(소어 다리), 소공작 유괴사건(프라이어리 학교), 죽음의 상자(빈사의 탐정) 등..
한참 이 단편집들을 사모으던 시절, 계림 출판사에서 새로운 기획 문고를 발행했습니다.
회색빛 장정을 한 "올빼미 문고"라는 이름으로, 추리와 괴기소설을 각각 5-6권씩 출판했는데, 얼마 못가서 기존의 계림문고(노란색 장정)로 통합되고 맙니다.
이 "올빼미 문고"의 작품 선정은 제가 접했던 홈즈와 뤼팽을 넘어선 거의 최초의 아동용 추리 소설들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괴기 소설들은 당시에도 별 관심이 없었기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추리 소설쪽에서 발행된 작품들의 목록은 <Y의 비극>, <고성의 연속살인>(딕슨카의 연속살인사건입니다.), <환상의 여인>, <노랑방의 비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해골성의 비밀>, <사형집행 6일전> 등이었습니다.
사실 어린 나이의 제가 읽기엔 홈즈의 소설들에 비해선 흡입력이 좀 떨어졌던 것 같습니다만, 신선한 기획으로 기억됩니다. 작품 선정도 화려하지 않습니까.
공백기가 2-3년 정도 지나고 나서,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쯤에 유명한 해문출판사의 "팬더 추리 걸작 시리즈"가 발간 되었습니다.
"팬더 추리 걸작 시리즈"야 아직까지도 워낙 유명하고 지금도 계속 판매되고 있으니 따로 설명은 필요없겠지요. 사실 번역 수준이나 삽화 등등을 감안하면, 계림출판사에서 발행했던 "올빼미 문고"보다는 약간 못 미쳤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발간해 주어서 현재의 수많은 "팬더"세대를 배출한 공은 높이 사야겠지요.
현재의 아동용 추리소설의 시장이나 출판, 판매 부수가 저의 유년시절만 못한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찌 보면 제법 풍성한 추리소설의 시절을 보낸것이 우리 세대의 복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