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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선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1
제임스 시겔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의 원제는 'Derailed'이다. 열차가 궤도를 벗어나는 사고 등을 일컫는 단어다. 그러나 번역된 제목인 '탈선(脫線)'은 보다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할 수도 있다.
평범한 가장이자 전형적인 중산층 백인인 찰스는 어느날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통근기차를 타게 되고 그야말로 "우연히" 한 명의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탈선"은 시작된다. "탈선 중년"이 된 찰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일탈의 욕망은 어느덧 현실이 되었다.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딸, 결혼 18년 째 권태로운 일상의 아내, 그 가운데 은밀한 만남이 주는 짜릿함과 가슴떨림을 선사하는 그녀. 그러나 이내 다소 순진하고도 엉거주춤한 자세로 시작했던 찰스의 '탈선'은 걷잡을 수 없는 삶의 '탈선'을 부른다.
스릴러 소설은 큰 범주에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것 같다.
액션 스릴러와 심리 스릴러.
큰 스케일과 복잡한 음모, 호쾌한 모험이 어우러지는 박력 만점 남성이 펼치는 액션 스릴러에 반해 심리 스릴러는 일상적인 소재, 평범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적인 서스펜스는 독자의 감정 이입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리라.
박진감 넘치는 총격전이나, 동서방을 넘나드는 스파이들의 활약상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는 독자는 소설 속에서 3인칭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그 소설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일지라도 말이다. 주인공의 삶과 운명이 나와는 먼 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저 독자는 한 편의 스펙터클한 구경거리를 감상하는 타자(他者)의 입장이 된다.
그러나, 일상속에서 평범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스릴러 소설에서 독자는 오히려 더 강렬한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다. 주인공이 겪는 사건이 바로 지금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독자와 주인공의 거리가 좁혀지는 이 순간이 바로 소설속에 독자가 빠져드는 순간이다.
제임스 시겔의 <탈선>은 화려한 액션이나 큰 스케일의 복잡한 구성 등을 배제하고 일상적이고 소소하기까지 보이는 단순한 일련의 사건들로 소설을 이끌어 나간다. 바로 이런 평범하게 보이는 사건이야 말로 독자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평온하고 무미 건조하기까지 한 궤도 열차가 철로 위에 놓여진 작은 돌멩이 하나에 탈선하여 어마어마한 사태가 벌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간결한 대화체 문장과 주인공의 독백은 독자의 감정이입에 힘입어 더욱 실감나게 느껴진다. 액션 영화의 주인공들 처럼 화끈하고 대범하지 못한, 어려움에 부닥칠때 마다 소심하게 에둘러가려 하는 찰스의 모습에 독자들은 답답해 하면서도 더욱 서스펜스를 느끼게 된다. 바로 그런 소심한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기에.
책을 다 읽고 나서 소설의 이야기를 반추해 보면, 이 소설의 소재가 얼마나 구태의연하고 흔하디 흔한 소재인지를 새삼 느끼고 허탈해 할 수 있다. 온갖 드라마나 사건 실화 등등의 프로그램에서 수없이 접했던 이야기 아닌가. 그러나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에는 미처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수 없었다. 나는 어느새 주인공 찰스가 되어 이 난감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지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탈선>은 '정신없이 읽히고 부담없이 읽는다'는 현대 엔터테인먼트 문학의 본령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속된 말로 '재밌으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