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프픽션, 메멘토, 주먹이 운다, 아이덴티티, 재키 브라운...
언뜻 머리에 떠오른 시간이나 공간, 시점 등을 비틀거나 이분화 하여 편집한 특이한 구성의 영화들이다. 영화에 풍부한 지식을 자랑하시는 분들은 더 많은 예와 함께 이러한 장르의 기원 등에 대한 설명이 가능할 듯 하지만, 과문한 나로서는 별 다른 이야기 거리는 없다. 단지 퀜틴 타란티노 감독이 이 분야의 대가라는 정도의 어줍잖은 생각만 있을 뿐이다.
대개 이러한 스타일의 영화들은 성격상 미스터리나 서스펜스의 성격을 흔히 띄게 된다. 그렇다면, 소설에서는 어떨까?
장르의 역사성을 보더라도 응당 소설에서 훨씬 먼저 이러한 플롯이 쓰였으리라. 그리고, 그 플롯은 역시 미스터리나 서스펜스물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지 않았겠는가? 가장 먼저 <관시리즈>가 떠오른다. 복합 구성, 이중 구성과 그에 따른 기발한 트릭으로 지금도 많은 독자들의 수집 대상 1호로 꼽히는 일본 신 본격물의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의 대표작들이다.
<이와 손톱>의 작가 밸린저는 이미 1950년대에 이러한 독특한 구성과 플롯에 천착했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다른 작품(국내에서는 <사라진 시간>이 <이와 손톱>이외에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이것도 역시 현재로서는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작품 이외의 대표작이라고 칭해지는 <사라진 시간>이나 미번역작인 <Portrait in Smoke> 등도 역시 특이한 구성을 가진 작품이라 한다. 그리고, 그의 이 세 작품은 1950년대 최고의 서스펜스 소설로 고전의 지위를 차지하는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라디오와 TV의 시리즈물 대본 작가로도 활약한 그의 이력이 그의 탁월한 플롯팅 능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명인들조차 시도하지 못했던 일대 마술을 해치운 어떤 한 사람의 마술사에 대한 소개로 시작하는 프롤로그는 시작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돋운다. 그리고 법정 장면으로 이루어진 홀수장, 어느 마술사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짝수장으로 철저히 분리된 이야기 전개. 두개의 이야기는 끝없는 평행을 달릴 듯이 진행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서 절묘하게 맞 물린다. 50년 대 소설인 만큼 영악한 미스터리 독자라면 결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작가의 스토리 텔링 능력은 놀랍다.(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근무시간에 몰래 읽느라 혼났다. -_-;) 출판 당시에 책의 결말 부분을 봉하고서 구입 후 봉인을 떼지 않고 책을 가져오는 독자들에게는 환불을 해주는 마케팅을 펼쳤다고 한다. 작가나 출판사 측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의 출간 예정에 올라있는 <이와 손톱>. 꼭 출판되어서 많은 독자들이 읽을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