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시간은 흐르고 벌써 12월이 되었다. 겨울이다.
기상 관측 사상 유래없이 따뜻한 12월이라고 한다. 12월 하고도 3일이 되었건만 기온은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올 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을 모양인가 보다.
15년전,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의 겨울은 무척 추웠었는데...
"따뜻한 남쪽 나라"는 아니지만 내가 성장기를 보냈던 도시 광주(光州)는 서울에 비하면 겨울에는 많이 따뜻한 편이었다. (여름에 더 덥지는 않다.) 초,중,고등학교를 광주에서 다니는 동안 영하 10도의 추위를 경험해 본 적이 한손으로 꼽을 정도 였으니.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당시 교실에 아예 난로도 없었으며, 초등학교에 있었던 땔감을 때는 난로는 그저 전시품일 뿐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겨울을 넘기는 해가 더 많았었다. 겨울 방학 기간을 제외하면 난로를 쓸만큼 추운 날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니 말이다. 겨울 방학이 끝난 2월 초에 한파가 닥쳐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졌던 80년대 초의 어느날, 광주 지역의 초등학교는 임시 휴교를 했을 정도였다. 서울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렇든 저렇든 그 시절의 겨울은 지금보다 더 추운 느낌이고, 더 겨울다운 느낌이었다. 단열이 철저하게 되는 아파트에 살면서 겨울에도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집에서 뒹구는 지금과는 20여년이 넘는 세월의 간극이 주는 문명의 차이 때문이리라.
단독 주택이었던 우리집은 80년대 초 대대적인 수리를 하기 전까지 난방이 되던 방은 안방과 할머니가 쓰시는 건넌방 뿐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전남의 여러 부임지에 나가 계셔야 했던 그 시절, 할머니는 아버지와 생활하셨기 때문에 어머니와 우리 삼남매 네 식구는 두툼한 이불이 덮힌 안방의 아랫목에 다닥 다닥 붙어서 겨울을 지내곤 했다.
아랫목 이불 밑에 묻혀 있던 밥 공기들, 긴긴 겨울 밤 군것질 거리로 먹던 생고구마와 동치미, 형과 함께 열광적으로 보았던 월요일 밤 차범근이 활약하던 시절의 서독 프로축구 중계, 한 번 대대적으로 들여 놓아야 겨울나기 준비가 끝나는 느낌이었던 연탄, 심심치 않게 10cm 이상 내려서 응달에는 봄까지 쌓여 있었던 눈.. 이러한 것들이 그 시절 나의 겨울에 대한 기억들이다.
온 식구가 한 방에 모여 옹기종기 밤을 보내던 그 시절. 겨울은 우리 가족들간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지는 계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