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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먹고 사는 아이
크리스 도네르 지음, 필립 뒤마 그림, 최윤정 옮김 / 비룡소 / 2003년 10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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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문에 걸린 마을 (양장)- 깜지의 동화마을 여행
황선미 글, 조미자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08년 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08년 06월 1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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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 앤트
베치 바이어스 글, 마르크 시몽 그림, 지혜연 옮김 / 보림 / 2002년 4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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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개구리 선생님의 비밀
파울 판 론 지음, 현미정 옮김 / 푸른나무 / 2000년 12월
7,500원 → 6,750원(10%할인) / 마일리지 3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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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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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됐다! 애들에게 읽힐 만한 '쉽고 재밌고 감동적인' 작품일 것 같은 녀석을 만났다!

물론 창비의 엄청난 광고 공세가 가끔 과대포장이라는 경계심을 30%쯤 갖고는 있었지만.

일단 재미있다. 치기와 어설픔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장애인과 이주노동자, 이혼 가정, 부적응아 등 다양한 문제를 모아 놓은 구성이 너무 '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나의 초점은 '아이들에게 읽힐 만한가'이기 때문에 그 점에서 합격점을 주기로 한다.

책을 읽으며, 완득이는 미화된 면이 없지 않지만, 내 주변에 있는 소년들 중에 완득이랑 닮은 아이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 들이 보기에 뭔가 잘 하고 있는 모범생은 아니다. 조직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세상에 대해 불만이 많다. 특히 공부는 못하고 싸움은 잘한다....

그중 첫번째로 완득이랑 많이 비슷한 내 아들에게 이 책을 먼저 건넸다. 책 속에 파묻혀 자라서 오히려 책 공포증을 갖고 있는, 오히려 책 읽는 부모로부터 부정적 영향을 받은 아이라고나 할까. 쉽고 재밌는 책 아니면 절대로 읽지 않는 녀석.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권해주는 건 다 재밌어, 그러면서 어버이날 편지에 완득이 재밌다고, 2편 없냐고 묻는다. 단순하기도 완득이랑 어딘가 닮았다.

학교에서 나는 작년에 많이 힘들어 했다는 녀석 하나한테 이 책을 건넸다. 어려운 가정과 쌈박질로 학생부를 들락거리던 녀석, 국어시간에 거의 자고 있었지만 서서히 저에게 관심을 두는 내게 따뜻한 눈빛을 건네던 아이다.'사회성이 잘 드러난 문학작품 읽고 독후감 쓰기' 수행평가를 해야 하는데 내 짐작대로 녀석은 책도 안 골라놓고 있었다.

"욱아, 이 책 네가 보고, 재미있으면 다 보고 독후감 쓰고, 재미없으면 나 대신 도서관에 반납해 주라."

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반납 심부름을 시키는 듯이 건넸다. 역시 예상대로 재밌다는 반응이다. 우린 복도에서 만나면 가끔 "샘~ 그,그, 담임샘 별명이 뭐였죠?" "똥~?""아, 똥주~!""근데 그 선생님 좀 또라이 같지 않냐?" "맞아요, 히히""근데 그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냐 임마, 아직 다 안 읽었지?"어? 그래요? 반쯤 읽었어요."

그리고 몇일 후 녀석은 다 읽었다고 자기가 반납했단다.

완득이파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친해지면 잘 웃어준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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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최병수.김진송 지음 / 현실문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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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감이란 타고 나는가, 길러지는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미술교육이 갖고 있는 틀거리, 그 한계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통해야만 길러지는 어떤 것이 분명 있다. 혹자는 정규미술 교육이 창의성을 죽인다고도 하고 혹자는 어떤 위대한 화가의 자유로워 보이는 그림도 탄탄한 데생력에 바탕하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최병수의 작품들이 눈물을 부르는 것은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젊은 날의 경험과 사고의 공감대 때문이리라.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충분히 최병수의 존재가 가치로웠을 것이다. 그림이 혹여 조악했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익히 알고 있던 그의 붓질 속에서 문득문득 발견하는 서늘한 아름다움, 그 미감에 난 더욱 놀랐다. 장산곶매의 그 구조적 아름다움을 보라. 그 규모를 보라. '초심불심'의 그 발상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보라.

집에는 우리가 결혼할 당시 민미협에서 일하던 친구가 선물한 '분단인'이 걸려 있다. 누군지도 모르고 쓰다듬어 보곤 했던 그의 연필 사인. 그가 하룻밤 새 그림값이 치솟는 스타 화가들의 허명을 눌러주는 날이 온다면, 세상은 더이상 지금 같진 않겠지. 그런 날이 오리라는 희망이 박할수록 그의 존재는 안타깝고, 그리고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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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책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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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은 최근 읽은 소설 중 거의 최고라고까지 생각했기에 은근히 기대를 하고 이 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빨강'이 최고였던 이유 중에는 그 복잡한 이야기나 구조 속에서도 흥미진진함이 강렬했던 것도 있다.

'검은 책'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을 하도 오래 들고 다녀서 책 모서리가 하얗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내 이름은 빨강'을 읽으면서 오히려 내가 보았던 오래된 이스탄불 뒷골목이 '느껴져서'(그건 아마도 내가 관광지 위주로 다녀서 그랬을 것이다) 좋았던 점과, 그림에 관심이 있다 보니 미술과 동서양의 정체성, 역사적 언급 들이 마음을 끌었던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현대의 이스탄불을 세세히 그리는 '검은 책'이 오히려 낯설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 책은 묘하게 마음을 잡아당긴다. 역사와 문화를 모르고 문학작품을 읽는 곤욕스러움을 겪는 것은 청소년기 '세계명작'을 읽는 것으로 이미 충분했다. 그래서 어느 만큼 영미, 혹은 유럽에 낯섦을 떨쳤다고 생각했지만 이 넓은 세상에서 그것들은 내가 알고 학습하고 친해져야 하는 세상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던 것임을, 오히려 주류임을 자처하는 그 문화에서 이제는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왔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정체성 찾기, 그리고 글쓰기. 혹은 글쓰기를 통한 정체성 찾기. 양상은 다르나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공감한다. 내가 살아 있음을 글쓰기를 통해 발견하게 함을 많은 전문적, 비전문적 '저자'들은 안다. 글쓰기는 때로 작아진 자아, 상처받은 자아의 치유에도 쓰인다. 물론 갈립의 글쓰기는 온전히 자기자신으로서가 아니라 '제랄'의 대역으로서이지만, 그래서 이제는 '제랄'로 살아가게 되는 갈립의 인생에 연민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글쓰기만이 생의 유일한 위안거리'라는 말에 어느 만큼 공감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갈립, 당신은 누구지?  

이제 당신은 누구지?

'나'를 형성하는 많은 것들. 오로지 나 자신만이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형성된 습관들, 나의 길러진 재능등, 나의 만들어진 명성들, 그런 것들도 결국은 나를 이루는 그 무엇일진대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난 후 갈립에게 남은 '나'는 과연 무엇일까. 오로지 자기자신으로만 살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일생은 보낸(어쩌면 허비한) 그 왕자처럼, 그가 결국 그 자신을 찾았는가 묻고 싶던 그 왕자에게처럼 갈립에게 묻고 싶다. 이제 당신은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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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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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적인 힘 - 엄밀히 말하면 바리의 능력은 주술이라기는 어렵다. 아픔을 읽는 것만으로 그렇게 부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바리는 령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동물이나 말없는 존재와의 대화도 가능한 아이였다. 발 마사지를 하면서 (발이란, 한 사람의 가장 낮은 곳 아닌가) 그 사람의 아픈 과거를 읽을 수 있는 이였다.

그가 세상의 아픈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은 없다. 남편 알리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지만 그를 구해내지는 못한다. 환상 속에 만나는 많은 불쌍한 령들, 그들을 구원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환상 속에서이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전설 속의 바리공주와 바리는 다르다. 그녀는 나약한 현실인이다. 그녀가 강한 부분은 꿋꿋이 살아간다는 것뿐. 그렇게 따지면 우리 모두는 바리이다. 사는 것은 고약하게 아픈 일이지만 생명의 본분을 다하여 열심히 사는 것.

그래서 어떤 이는 황석영의 바리는 치유도 해원도 하지 못하는 절망의 바리공주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사람들의 발을 주무를 때, 그 어루만짐이 해원이고 치유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미약한가. 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 남의 발의 굳은 살을 어루만지는 것..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 상담이라는 것을 하면서 나는 자주 괴롭다. 상담은 문제를 해결하는 행위는 아니다. 좀더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치료도 가능하겠지만 전문상담교사의 상담은 '들어주기'가 최선이다. 아이들이 쏟아놓는 상처들을 손도 대지 못한다. 남의 아픔을 들으면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담이 끝날 무렵, 아이는 "그래도 이야기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져요."라고 말한다.

상담은 내담자가 자기 스스로 자기 문제를 마주 보게 만들고 이야기하게 만들고 응어리를 풀고 스스로 대안을 찾아가게 하는 활동이어야 한다. 성과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참 느려터지고 비경제적인 활동이다. 그러나 나의 신념은 그런 느린 활동들이 세상을 덜 아프게 하고 덜 썩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바리가 자기에게 오기를 바라고 그녀에게 발을 맡기는 것은 그녀가 성실하고 뛰어난 발마사지사라서가 아니다. 그녀가 갖고 있는 주술성 때문만도 아니다. 그녀는 '나'에게 관심을 기울여줄 사람이며 내 생애의 아픔을 들여다 보아줄 수 있는 사람이다.

바리의 생명수가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녀는 분명 신화 속 바리공주보다 무기력하다. 그래도 나는 그녀의, 남의 아픔을 자기것으로 하고, 결국 자기도 아픔 속에 함께하는 그, 진정성에 감동한다. 그런 이야말로 우리의 무당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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