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책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이름은 빨강'은 최근 읽은 소설 중 거의 최고라고까지 생각했기에 은근히 기대를 하고 이 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빨강'이 최고였던 이유 중에는 그 복잡한 이야기나 구조 속에서도 흥미진진함이 강렬했던 것도 있다.

'검은 책'은 재미있는 책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을 하도 오래 들고 다녀서 책 모서리가 하얗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내 이름은 빨강'을 읽으면서 오히려 내가 보았던 오래된 이스탄불 뒷골목이 '느껴져서'(그건 아마도 내가 관광지 위주로 다녀서 그랬을 것이다) 좋았던 점과, 그림에 관심이 있다 보니 미술과 동서양의 정체성, 역사적 언급 들이 마음을 끌었던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현대의 이스탄불을 세세히 그리는 '검은 책'이 오히려 낯설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 책은 묘하게 마음을 잡아당긴다. 역사와 문화를 모르고 문학작품을 읽는 곤욕스러움을 겪는 것은 청소년기 '세계명작'을 읽는 것으로 이미 충분했다. 그래서 어느 만큼 영미, 혹은 유럽에 낯섦을 떨쳤다고 생각했지만 이 넓은 세상에서 그것들은 내가 알고 학습하고 친해져야 하는 세상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던 것임을, 오히려 주류임을 자처하는 그 문화에서 이제는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왔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정체성 찾기, 그리고 글쓰기. 혹은 글쓰기를 통한 정체성 찾기. 양상은 다르나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공감한다. 내가 살아 있음을 글쓰기를 통해 발견하게 함을 많은 전문적, 비전문적 '저자'들은 안다. 글쓰기는 때로 작아진 자아, 상처받은 자아의 치유에도 쓰인다. 물론 갈립의 글쓰기는 온전히 자기자신으로서가 아니라 '제랄'의 대역으로서이지만, 그래서 이제는 '제랄'로 살아가게 되는 갈립의 인생에 연민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글쓰기만이 생의 유일한 위안거리'라는 말에 어느 만큼 공감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갈립, 당신은 누구지?  

이제 당신은 누구지?

'나'를 형성하는 많은 것들. 오로지 나 자신만이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형성된 습관들, 나의 길러진 재능등, 나의 만들어진 명성들, 그런 것들도 결국은 나를 이루는 그 무엇일진대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난 후 갈립에게 남은 '나'는 과연 무엇일까. 오로지 자기자신으로만 살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일생은 보낸(어쩌면 허비한) 그 왕자처럼, 그가 결국 그 자신을 찾았는가 묻고 싶던 그 왕자에게처럼 갈립에게 묻고 싶다. 이제 당신은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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