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아이 독깨비 (책콩 어린이) 22
R. J. 팔라시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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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외모의 자신감 때문에 마음이 비뚤어진다거나 상처를 입는다는 말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그 대신, 장애나 기형이 있어도 따뜻한 사랑과 좋은 교육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오거스트처럼 유머와 좋은 머리가 있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한다.

 

장애아에 대한 편견을 버리려는 공적, 교육적 노력들은 지난하지만 쉽게 성과를 거두기도 어려웠다.(한국에서 그런 최선을 다한 노력이 있었는가 돌아보면 부끄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이 편견과 맞서 싸우는 일이리라. 어떠한 사람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며 누군가에게 편견으로 시달릴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다른 이를 배려하려는 태도. 이 책에서도 여기저기서 자주 강조한 친절이라는 단어는 우리 식으로 바꾸면 배려쯤 되겠다. 전혀 같은 단어가 아니지만 단어의 용도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보다는 친절이든 배려든 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은 미국에서도 여전히 장애아들의 삶은 쉽지 않다. 오기도 줄리안 같은 악동들(우리나라 아이들에 비교하면 악동도 아니지만)의 괴롭힘을 받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잭이나 서머처럼 먼저 다가와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고통을 덜 받았지 않았는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비교하고 읽을 수밖에 없었던 청소년 소설이다.

 

우선, 오기의 학교나 이웃 사이에서 겉으로나마 당연히 여겨졌던 일, 장애인이라고 오래 쳐다보거나 놀려서는(보고 놀라는 일조차) 부도덕하게 여겨지는 일,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대놓고 면전에서 혀를 끌끌 차거나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리는 사람이 있어도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지 스스로도 모르고 남들도 지적하지 않는다. 물론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그런 짓을 해도 뭐 어때?’ 할 수 있을 만큼 뻔뻔한 사회가 우리 사회다. 학교는 더하다. 내가 남중에 근무해서 그런지 몰라도 남자중학생들은 상대방의 치부나 약점을 대놓고 공격한다. 약점이 없어도 남다르다는 점만 가지고도 놀리고 물어뜯는다.

 

둘째, 지혜로운 교사들 특히 교장의 도움이 눈에 띈다. 이 학교 교장의 모습은 권위주의도 없고 친절하고 지혜롭다.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줄 아는 눈도 있다. 한국의 교장이 아이들 사이의 관계를 헤아릴 수 있으려나? 만약 오거스트같은 장애아가 학교에 들어오려 하면 온갖 핑계를 대며 입학을 거부할지도 모른다.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그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학생부 교사나 담임교사에게 신경써서 잘 돌보라고 지시는 할지 모르지만 교장 스스로가 아이 손을 잡고 격려하거나 직접 대화를 나누려 할까 싶다. 수련회 야외 영화관에서 교장이 아이들과 같이 앉아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를 보는 장면을 보고 조금 화가 나기까지 했다. 학생들은 수련회에 가서 학교가 텅 빈 23일 동안 단 하루도 학생들 수련회장에서 잠 한 번 자지 않은 교장, 그렇게 8년을 근무하다가 퇴임한 교장은 늘 교사들에게 임장지도를 지시했다. 1,2,3학년이 모두 다른 장소에서 수련활동을 벌이면 하루씩, 또 다음 해에는 또 다른 학년의 수련회장에 교장이 가서 임장지도하는 것이 맞다.

셋째, 다양한 학교 프로그램이다. 프로젝트 식 수업을 통해 직접 뭔가를 해봐야 하는 활동 말이다. 오기와 친구들은 늘 투덜거렸지만 이집트가 주제였을 때에도 과학발표 대회 때에도 할로윈 축제 때도 아이들은 뭔가를 준비하고 발표하고, 또 그 자리에는 부모나 가족도 함께한다. 하지만 발표 준비를 할 때 부모가 대신해주거나 학교에 입김을 불어넣지는 않는다. 오기의 친구인 잭과 감자 전지를 과학발표의 주제로 삼아 끙끙대는 모습이 낯설다. 우리도 수업 중 수행평가도 하고 성과물을 내지만 저렇게 주제를 가지고 일정한 기간 준비해서 페스티벌처럼 발표하는 형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물론 요즘은 자유학기제나 혁신학교 수업에서 그런 활동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리고 무엇이든 제도만 들여와서는 알맹이 없이 부담과 부작용만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넷째, 오기의 지혜로운 부모. 그토록 지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참을성 있는 부모를 쉽게 만날 수 있을까. 진심으로 자기 아이를 사랑하는, 그러면서도 우울하지 않다는 게 더욱 미덕이다. 오기의 누나나 심지어 누나의 남친, 초등학교 때 친구들조차 모두 오기 편이다. 물론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오기의 성정이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워서도이지만 아무리 좋은 성정을 지녔어도 외모가 주는 불편함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은 오기의 가족이나 이웃들이 모두 마음의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적인 것일까, 그 가족의 특수함일까. 그런데 잭이나 서머, 심지어 처음에 오기를 놀렸다가 나중에 친구가 되는 아이들을 보면 다시, 이것은 어떤 사회 문화적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재미있게 읽혔다. 줄리안이나 에디처럼 오기를 괴롭히는 악동들이 악역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치명적이고 극적인 악인도 별로 없고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다. 오기네 개가 죽은 것이나 다른 학교 7학년짜리들과의 격투 장면 정도가 나오지만 내가 30년 가까이 남중에서 보아온 사건들보다 더 드라마틱하지도 않다. 그래도 재미있다. 뻔히 보이는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은 헐리웃 영화처럼 미국스럽기도 하다. 소설과 현실은 다르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런 소설을 읽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좋다. 사람들은 대체로 그악스럽고, 나쁜 문화가 더 영향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예의에, 좋은 사람들의 영향력이 덧붙여지면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걸 확인할 때가 있지 않은가.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철부지에 악동들이 많았지만 돌아보면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었던 아이, 손 하나가 아예 기형이라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아이, 얼굴 한 면에 반점을 달고 살아야 했던 아이를 대놓고 놀리는 아이는 없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 남자아이들은 튀게 행동하는 아이를 어떻게든 면박주고 골려먹고 싶어 하면서도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아이들의 특성을 잘 헤아리고 어른의 지혜를 덧붙이면 대한민국에서도 장애아들이 상처 없이 살아갈 수 있는(적어도 학교 다닐 때만이라도) 대안이 찾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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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야간비행 - 정혜윤 여행산문집
정혜윤 지음 / 북노마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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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혜윤의 여행기(를 빙자한 수필)이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좋은 글을 만나면 이 글 쓴 이가 누구지? 하고 이름을 새겨보게 되는데, 그렇게 만나 좋아하게 된 작가 중 하나가 바로 정혜윤이었다. 그이의 문체는 어딘가 프랑스 풍이고 의식은 왼쪽에서 역동한다. 한 곳에 머무르기를 거부하는 자유영혼에 세련된 감성의 소유자이면서 한 편 발을 땅에 딛고 있고 현실의 아픔을 아파할 줄 안다. 세련된 좌파, 혹은 현실에 발 딛은 리얼리스트...

 

여행기라는 게 자기도 가보고 싶거나 가 보았던 곳의 여행기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나도 6,7년 전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다녀왔는데 감동받은 지점은 다르지만 반가운 느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특히,

 

포르투갈 리스본의 가게들 그 가게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다면 문을 열고 쑥 들어가 봐야만 했어. 가게 입구가 대부분 좁고 길어서... ‘렛 미 인

 

 

그랬다. 3일밖에 머물지 않아서 그런지 유난히 더 아름답고 아쉬웠던 리스본의 모든 길들은 언덕 위 혹은 아래로 펼쳐졌고 가는 곳마다 골목이 있었다. 들여다보고 싶고 들어가 보고 싶은 길목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다시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꼽으라면 과감히 포르투갈을 꼽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또다른 부분이 있다면 반딧불이를 본 여행지 이야기이다. 나 역시 가끔은 그런 대자연의 장관을 보러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다만,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하려면 감수해야 할 것들이 있겠지. 불편한 교통이라든지 숙소라든지... 몽골 사막의 별밤, 히말라야의 설산, 북극의 오로라... 아직은 사람들의 저잣거리가 더 궁금해서 시장통으로 학교로 거리로 도서관으로 다니는 편이지만 말이다.

 

정혜윤은 그의 또 다른 에세이에서 시인 송경동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나는 좋은 독서는 꼬리를 무는 독서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연장하고, 새로운 과제를 마음에 담게 하고 또 다른 책을 소개받는 독서.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송경동의 새 시집을 샀다. 아마도 남편이 이미 샀을 가능성이 높은 시집을 확인도 하지 않고 샀다. 그리고 그 밤, 한참 그의 시로 보냈다. 송경동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아픔의 현장에 늘 함께 했던 그 시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정혜윤의 책을 통해 알게 되었던 것이다. 정혜원은 <스페인 야간비행>에서 말한다.

 

사회가 너는 필요없어!’ 하고 쫓아내버린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전통적으로 문학이 해왔던 일 아니겠니?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문학은 무언가를 할 수있어야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무언가의 대부분은 감성적 위로, 때로는 이성의 놀잇감 역할일 때도 많지만 사회적 변화를 위한 무언가를 해내는 경우도 많다. 문학이라는 것의 존재 이유가 궁극적으로 상처 입은 영혼을 어루만지기 위함이라면 역시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이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초석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송경동은 그런 문학인이며 정혜윤은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또 다른 글쟁이이다. <스페인 야간비행>은 물론 자의식이 짙게 드리워진 자기 자신의 읊조림 같은 에세이지만 정혜윤 글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사랑하는 이라면 이런 에세이의 독특한 분위기도 좋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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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춤추는 악어
김수우 지음 / 신생(전망)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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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여행을 다녀오면서 쿠바에 대한 책을 참 많이 읽었다. 그 나라에 대해 잘 알게 된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럴 리가 있는가? 12일의 여행, 단 열 권의 책으로 한 나라를 다 안다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난 쿠바에 대한 이야기는 얼추 다 들어본 느낌이다, 라고 말해야 정확할 것이다. 말레콘, 올드 카, 헤밍웨이, 체 게바라.. 그게 쿠바의 전부는 아닐 테니 말이다.

 

<쿠바, 춤추는 악어>는 내가 읽은 쿠바 관련 책 중 가장 두껍다. 책의 두께가 일단 그러하지만(솔직히 읽기에 매우 불편했다. 한편으로는 팔리기 좋고 읽히기 좋게 적절히 분량을 조절하거나 두 권으로 분책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리 하지 않은 출판사의 뚝심이 좋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용도 두껍다(?). 쿠바에 대한 글을 쓰는 이들은 누구나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그래서 다른 관점의 책들을 만나기 어렵기도 하고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 블로그나 책들에서 반복되는지도 모른다) 김수우만큼 감성적으로 쿠바에 다가간 사람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여행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생활이야기라고 해도 될 만큼 쿠바에 머문 시간도 길고, 남들이 다 체 게바라만 이야기할 때 일관되게 호세 마르티로 쿠바를 바라보는 시각을 유지하는 점도 남다르다.

 

김수우는 쿠바에게서 공존에 관한 대안을 발견한다. 자본주의는 그 속성 때문에, 사회주의는 현실적 실패 때문에 이제는 이 지상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진 공존의 대안을 쿠바는 제시한다. 공산주의 국가라 할지라도 지도자에 대한 우상화나 부패가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대안, 나라가 가난해도 비참해지지 않을 수 있는 대안들을 제시한다. 그럴 수 있는 가장 큰 힘을 체 게바라나 혁명의 성공, 혹은 카스트로의 정치적 성공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김수우는 호세 마르티를 그 근원적 힘으로 여긴다. 현실의 권력자가 아니기 때문에 훼손되지 않을 수 있는 오래갈 수 있는 쿠바의 힘이 된 호세 마르티. 그래서 그런 역사적 영웅을 갖는 것은 민족이나 국가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국민적 영웅이 있었던가 돌아본다. 없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의도적으로 평가 절하된, 혹은 부풀려지는 바람에 훼손된 영웅들이 얼마나 많던가.

 

작가는 공존이란 함께 자유로운 것. 그 자유가 배려가 시작되는 자리라고 말한다. 자유가 배려가 멋지게 만날 수 있음을 우리 사회는 겪어보지 못했다. 배려는 곧 손해라고 배워온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은 얼마나 황막한가.

 

 

쿠바의 품격, 호세 마르티

호세 마르티의 문학은 단순한 문학이 아니다. 그의 문학은 사상을 담고 있고 사람들을 고무시켰을 뿐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근원적 해결책을 탐구했다. 그것도 아주 쉬운 민중의 언어로.

호세 마르티는 게으르지도 않고 성격이 고약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이 있다면, 그곳은 불의가 있는 곳이다.”라고 말했단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나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러분의 아버지가 만약 열심히 살고 계시는데도 집이 가난하다면 아빠, 왜 우리 집은 이렇게 가난해?”라고 아버지를 원망하지 말라. 그건 사회구조의 문제이다. 열심히 일하는 아빠가 무능해서 불성실해서 집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면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겨라. 그리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자.” 그럴 때면 꼭 숙연해지던 아이들이 몇 있었다. 호세 마르티의 저 말은 이상하게 힘이 된다.

 

호세 마르티는 흑인을 볼 때마다 나는 늘 그들에게 빚진 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은 실상 가장 힘든 일을 한다. 세상은 대개 그런 그들의 희생 덕에 숨을 이어가기도 한다. 뭔가를 가진 자들이 누구 덕에 자신이 편안히 먹고 숨 쉴 수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저런 겸허를 얻기 힘들 것이다. 쿠바 거리를 걷다 보면 위축되지도 않고 거칠게 행동하지도 않은 흑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것을 가장 경멸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품격을 유지하는지 볼 수 있다. 물론, 우리가 묵었던 까사의 잘생긴 뮬라토 청년은 쿠바 여자들 참 멋지다(가무잡잡하고 멋진 몸매를 가진 여자들을 많이 보았기에).”고 칭찬하는 우리의 말을 듣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자기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긴 했다. 못생긴 사람도 많다고.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고 있다. 우리 눈에 그들이 멋져 보인 건 아마 얼굴이 검어도, 초라한 옷을 입었어도 위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상대적으로 위화감을 느끼게 비싼 옷을 입은 사람을 발견하기 어려웠고 자기가 피부가 희다는 이유로 우월감을 자랑하는 문화도 없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내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았던 장면은 다음 이야기이다.

 

몹시 붐비는 쿠바버스에 장애인이 탔을 때 놀랍게도 사람들이 길을 비켜 그가 자리를 잡게 도와주었단다. ‘몸도 불편한데 복잡한 버스를 꼭 타야 했나라고 생각한 건 한국 사람들이 하는 생각인 것이다. 그가 버스에서 내리려하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틈 없이 엉겨있던 사람들이 또 한 번 통로를 만들어 그를 내려주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버스에서 내려 장애인을 몇 걸음 안전한 데까지 인도해 주고 다시 버스를 탔다.(이야기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버스는 안 가고 기다렸다는 거다. 배차간격이 버스운전 노동자를 스트레스 만땅으로 만드는 한국에서는 인성의 문제뿐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쿠바인들의 일상화된 배려 문화를 김수우는 목격한 것이다.

 

물론 내가 여행 갔을 때 저런 장면을 보지는 못했지만 곳곳에서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들은 많이 만났다. 친절은 매너가 아니라 삶의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다. 사람에 대한 존중은 혁명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계급과 차별이 버젓이 살아있던 식민시대와 친미 독재정권 시대를 거쳐 왔고 그것을 이겨냈기 때문에 모든 차별에 반대하며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곧 혁명정신이기도 했던 것이다.

 

 

집 앞에 서서 한참 다정하게 수다를 떠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는데 이상하게도 그게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에게서는 사라져버린 광경 아닌가? 그런데 언제, 왜 사라졌던가? 더듬어 보니, 우리 삶에는 휴대폰이 개입했던 것이다. 쿠바에도 휴대폰이 있지만 흔한 물건은 아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아직 수다와 대화가 남아있는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 요르크 프리드리히는 사람들은 부드럽게 몰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다.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생활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란다. 왜 성장만이 삶의 모델이 되어야 하는가? 쿠바는 지속가능한 삶의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절대 빈곤이나 인간의 품위가 유지되지 않는 가난을 감수하자는 뜻이 아니다. 미국처럼 펑펑 소비하고 뒤처리를 남에게 넘기는 지구 위의 불평등에 눈 감은 채 가난해도 마음만 행복하면 돼.’라고 마음을 다스리자는 말도 아니다. 적정한 부, 적정한 경제 속에서 행복하기가 왜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긍정적 대안으로 쿠바를 눈여겨 보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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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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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류의 <피에트라 강가에서 울었다><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의미 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연금술사를 읽을 생각은 없었다. 한때의 열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이 책을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은 계기가 생겼다. 대통령이 이 책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높은 실업률과 학업스트레스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이 책 속의 담론을 인용하여 격려라는 것을 했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힘든 원인이 무엇인지 성찰하지 않았다는 점과 사회문화적 문제 해결의 노력이 없다는 점도 나쁘지만 작품의 오독도 심각하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은 하면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대통령의 언사를 접한 것은 책을 읽기 전이니 이와 같은 짐작은 내가 아는 코엘류가 그렇게 말했으리가 없으리라는 '짐작'이었을 뿐이라서 진실을 알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다 읽은 소감을 말하자면, 내게 재미난 책은 아니었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읽힐 만한 책이다. 이제는 너무 뻔한 환상적인 구조의 이야기가 재미있지만은 않았지만 말이다. 잠언 같은 좋은 말들은 많다. 젊은이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지혜로운 멘토의 입장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나 보다. 어른들보다 더 각박한 현실에 일찍 노출된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과연 그런 막연하고 환상적인 말들에 힘을 얻을 것인지는 자신이 없지만 말이다.

 

 

친구를 사귀는 일에 대하여, ‘그들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해 버린다. 그렇게 되고 나면, 그들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려 든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이 바라는 대로 바뀌지 않으면 불만스러워한다.’ 라고 하면서 친구 사귐보다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하도록 격려한다. ‘우리들 각자는 젊음의 초입에서 자신의 자아의 신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지,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여.’ 자아의 신화라는 말은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아마도 자기 자신을 찾으려 노력하라는 뜻인 것 같다. 이런 대목이 아마도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의 개인화의 문학적 구현이라는 평을 받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이 들어 봐라, 내가 생각한 자존만큼 다른 사람도 자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겸손해지고 자기를 객관화하게 되지.’ 사춘기 시절 자기 자신을 깊이 생각하는 단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단계를 잘 딛고 일어나야 한다. 그 시기에 그 과제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나이 들어서도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나이든 사람들이 오만한 것은 자기방어적인 것이다. 좋은 의미에서 자아를 중심을 놓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기라는 물화된 사람에 대한 욕심을 부리는 것뿐이다. 학교에서 사춘기 아이들에게 너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에메랄드 채굴꾼 이야기는 우주가 도와준다와 더불어 오독되기 쉬운 에피소드이다. 한 에메랄드 채굴꾼이 전부 999999개의 돌을 깨뜨렸다. 너무나 힘들어서 마침내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마지막 돌 하나를 깨려는 순간(자아의 신화를 찾는 중대한 기로) 너무 화가 나서 그 돌을 집어 멀리 던져버렸다. 그 돌은 날아가 다른 돌과 세게 부딪쳤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를 내보이며 깨어졌다.... 아마도 코엘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숱한 노력들이 모이고 쌓여야만 성과라는 것이 다다름을, 그 전까지의 기다림이 결코 무용한 것이 아님을, 그리고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함을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하지만 내게 깊은 성찰을 준 이야기도 있다. 주인공인 산티아고가 이집트에 도착해서 한 크리스털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게 되었을 때다.

성지 순례가 일생의 목표라는 크리스털 가게 주인에게 산티아고가 왜 지금이라도 메카에 가지 않는 거냐고 묻자,

왜냐하면 내 삶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바로 메카이기 때문이지. 이 모든 똑같은 나날들... 초라한 식당에서 먹는 점심과 저녁을 견딜 수 잇는 힘이 바로 메카에서 나온다네. 난 내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 마음속으로는 벌써 수천 번 사막을 가로질러 성스러운 반석이 있는 광장에 도착하고... 그런 나 자신을 눈앞에 그려보았지. 나는 이미 내게 일어날 일이며 내 앞을 기다리고 있는 일, 그리고 함께 나눌 대화와 기도까지 상상해 보았어. 다만 내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커다란 절망이 두려워 그냥 꿈으로 간직하고 있기로 한 거지.”

그래, 사람들은 결코 이루지 못할지라도 을 갖는 게 중요한 것이다. 나에게 그런 꿈은 무엇일까? 메카만큼은 물론 아니겠지만 나에게도 언젠가 이루고 싶은 작은 꿈들이 있다. 차라리 죽을 때까지 해내지 못해도 그 꿈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점에서 나는 그 크리스털 가게 주인에게 공감한다. 하지만 또한 이 이야기는 나에게는 무엇이 그런 꿈이었을까를 생각하게 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책을 읽던 무렵, ‘언젠가는이라고 미루어왔던 쿠바여행을 결행했다. 더 늙기 전에 가자. 그리고 새로운 꿈을 또 만들면 되지 뭐. 쿠바가 나의 메카는 아니니까. 인생 곳곳에 메카를 남겨놓으리라.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과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다. ‘누군가 꿈을 이루기 앞서, 만물의 정기는 언제나 그 사람이 그 동안의 여정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시험해보고 싶어 하지. 만물의 정기가 그런 시험을 하는 것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네, 그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 말고도, 만물의 정기를 향해 가면서 배운 가르침 또한 정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고 마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지.’

 

최선과 더불어 진심을 다하는 영성을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코엘류는 그의 문학작품만을 보면 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다. 어떠한 노력과 지혜를 다해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것이 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우주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우주가 잘못된 것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자칫 운명론자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이 할 일은 멋진 우주를 만들려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기운을 내지 않는 젊은이가 있을 때, 그에게 다가가 우주가 도와줄 거야라고 격려를 해야 그게 진짜 어른이고 지도자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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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당한 천사에게
김선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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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선우는 책의 서두에서 단호하게 잡문은 없다.” 라고 선언하고 이 글들을 시작한다. 어떤 소설가는 평생 신문 등에 잡문을 쓰지 않은 것을 자랑했다고 하지만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당당히 자기 어깨를 내미는 문인들은 그런 순결주의를 오히려 경계한다. 문학은 세상을 바꾸려 노력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필요하다면 잡문도 써야 하고 희망버스도 타야 한다. 시를 쓰던 가슴으로 높은 곳에 올라간 노동자들의 손도 잡아야 한다. 그걸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잡문이라고? 잡문이라 하면 오히려 세상의 아픔에 눈 돌리고 등 돌린 자들이 쓰는 글, 아니 곡학아세하고 폭군에 아부하여 글로 감투를 벌어보려 애쓰는 자들이 쓰는 글이 잡문이겠지. 김선우가 인용하는 조지 오웰의 말은 참 당당하지 않은가.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인 태도이다.

 

무슨 작품을 읽으면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앞으로 김선우가 쓰는 책은 모두 사서 읽겠다고 결심했던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의 시가 아름다워서 좋아했을 터이고 아마도 그토록 아름다운 시와 소설을 쓰는 이가 용감한 글들을 망설이지 않고 쓰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고 여겨져서 그랬을 터이다. <부상당한 천사에게>에 실린 글들은 아마도 신문 등에 올린 글들은 모은 듯, 나로서는 익숙한 견해들이이었다. 그는 여전하고 건재하고, 더 당당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앞으로 나올 그의 시나 소설들도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다. 문학의 순수성 운운하며 마치 그 길이 아닌 길로 가면 돌아오지 못할 것처럼 으름장을 놓는 이들에게 김선우는 하나의 살아있는 증거가 될 것이다. 문학의 진정한 순수성이 무엇인지를 입증하는.

 

김선우는 내게 대신 독서의 기쁨을 맛보게 한다. 문인들은 아마도 글을 읽다가 필요한 문구를 만나면 따로 메모를 해두는 듯하다(나 역시 그런 메모를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에 숨겨놓았는지 잘 찾지 못하고, 남의 말을 인용해 글을 쓰거나 말하는 것을 즐겨하지는 않는다). 김선우의 글을 읽으면서 독서의 실마리를 찾기도 하고 복습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글은 내 머리 속의 정리되지 않은 책장을 잘 찾아가게 도와주기도 하고 때로는 새 책으로 책장을 채우게도 하는 좋은 책 친구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했단다.“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빵을 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자라 부르지만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왜 먹을 것이 없는지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

 

얼마 전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일상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연민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연민이 동정에 그쳐 버리면 자선을 베푸는 이상인 아니라는 것. 힘들게 사는 이들을 돕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와 내가 같은 인간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동전을 던져주는 구휼과 자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연대가 필요한 것이다.

만약 뛰어난 의지와 이상을 구조화할 지적인 능력이 있는 이라면 무슨 주의자가 되어서라도 사람들의 맨 앞에 서서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목소리가 크고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감성을 지닌 이라면 함께 하자고 호소하고 격동할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나처럼 어떤 능력을 지니지 못한 이들도 연대의 이름으로 자기가 힘을 보태 세상을 바꿀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동전을 모아 나누어 먹는 일도 꼭 병행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엽말단만 바꾸는 일로 자기 위안을 삼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층간 소음 꽃으로 해결하기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위층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심해 꽃 한 다발을 사들고 올라가 보니 노부부가 살고 있더란다. 그리고 그 후 소음은 줄어들었고, 김선우는 그것이 꽃의 힘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평범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다름의 인정’, 그리고 서로에게 다가가기라고.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나는 사립 남자중학교만 30년 가까운 세월 근무해오고 있다. 드세고 단순한 남중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이 작은 아이도 많고 표현이 부족한 아이도 많다. 거친 언사와 드센 눈빛, 말하자면 싸가지 없고 무례한 아이들도 많이 만난다. 여교사를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성적(性的)으로 모멸하려 드는 어린 아이들도 꽤 있다. 물론 어려운 가정에서 힘들게 자라 자기 안의 좋은 성품과 잠재력을 자기 스스로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 불쌍한 아이들도 많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만날 때 종종 책을 선물한다.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는 사진집을 건네기도 하고 지력이 높지만 세상을 거칠게 바라보는 아이들에게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책들도 건넨다. <어린왕자><연어>, 김용택이나 신현림이 선별한 시집도,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도 늘 내 책상에 꽂혀 있다.

 

조금 얇게 말하면,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잘해주려 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내가 저렇게 진지하게 만났던 학생 중에서 계속 함부로 행동했던 아이는 없었던 것 같다. , 물론 책 선물은 꼭 말썽꾸러기들에게만 했던 것은 아니다. 감성이 남달랐던 아이들, 고민의 깊이가 성숙했던 많은 제자들과도 함께 했다. 혹여 이 글을 읽는 나의 제자 중에 오해하는 이가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변명처럼 덧붙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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