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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평점 :
코엘류의 <피에트라 강가에서 울었다>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의미 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연금술사를 읽을 생각은 없었다. 한때의 열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이 책을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은 계기가 생겼다. 대통령이 이 책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높은 실업률과 학업스트레스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이 책 속의 담론을 인용하여 격려라는 것을 했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힘든 원인이 무엇인지 성찰하지 않았다는 점과 사회문화적 문제 해결의 노력이 없다는 점도 나쁘지만 작품의 오독도 심각하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은 ‘하면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대통령의 언사를 접한 것은 책을 읽기 전이니 이와 같은 짐작은 내가 아는 코엘류가 그렇게 말했으리가 없으리라는 '짐작'이었을 뿐이라서 진실을 알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다 읽은 소감을 말하자면, 내게 재미난 책은 아니었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읽힐 만한 책이다. 이제는 너무 뻔한 환상적인 구조의 이야기가 재미있지만은 않았지만 말이다. 잠언 같은 좋은 말들은 많다. 젊은이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지혜로운 멘토의 입장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나 보다. 어른들보다 더 각박한 현실에 일찍 노출된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과연 그런 막연하고 환상적인 말들에 힘을 얻을 것인지는 자신이 없지만 말이다.
친구를 사귀는 일에 대하여, ‘그들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해 버린다. 그렇게 되고 나면, 그들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려 든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이 바라는 대로 바뀌지 않으면 불만스러워한다.’ 라고 하면서 친구 사귐보다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하도록 격려한다. ‘우리들 각자는 젊음의 초입에서 자신의 자아의 신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지,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여.’ 자아의 신화라는 말은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아마도 자기 자신을 찾으려 노력하라는 뜻인 것 같다. 이런 대목이 아마도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의 ’개인화‘의 문학적 구현이라는 평을 받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이 들어 봐라, 내가 생각한 자존만큼 다른 사람도 자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겸손해지고 자기를 객관화하게 되지.’ 사춘기 시절 자기 자신을 깊이 생각하는 단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단계를 잘 딛고 일어나야 한다. 그 시기에 그 과제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나이 들어서도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나이든 사람들이 오만한 것은 자기방어적인 것이다. 좋은 의미에서 자아를 중심을 놓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기’라는 물화된 사람에 대한 욕심을 부리는 것뿐이다. 학교에서 사춘기 아이들에게 너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에메랄드 채굴꾼 이야기는 ‘우주가 도와준다’와 더불어 오독되기 쉬운 에피소드이다. 한 에메랄드 채굴꾼이 전부 99만9천9백99개의 돌을 깨뜨렸다. 너무나 힘들어서 마침내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마지막 돌 하나를 깨려는 순간(자아의 신화를 찾는 중대한 기로) 너무 화가 나서 그 돌을 집어 멀리 던져버렸다. 그 돌은 날아가 다른 돌과 세게 부딪쳤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를 내보이며 깨어졌다.... 아마도 코엘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숱한 노력들이 모이고 쌓여야만 ‘성과’라는 것이 다다름을, 그 전까지의 기다림이 결코 무용한 것이 아님을, 그리고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함을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하지만 내게 깊은 성찰을 준 이야기도 있다. 주인공인 산티아고가 이집트에 도착해서 한 크리스털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게 되었을 때다.
성지 순례가 일생의 목표라는 크리스털 가게 주인에게 산티아고가 왜 지금이라도 메카에 가지 않는 거냐고 묻자,
“왜냐하면 내 삶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바로 메카이기 때문이지. 이 모든 똑같은 나날들... 초라한 식당에서 먹는 점심과 저녁을 견딜 수 잇는 힘이 바로 메카에서 나온다네. 난 내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 마음속으로는 벌써 수천 번 사막을 가로질러 성스러운 반석이 있는 광장에 도착하고... 그런 나 자신을 눈앞에 그려보았지. 나는 이미 내게 일어날 일이며 내 앞을 기다리고 있는 일, 그리고 함께 나눌 대화와 기도까지 상상해 보았어. 다만 내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커다란 절망이 두려워 그냥 꿈으로 간직하고 있기로 한 거지.”
그래, 사람들은 결코 이루지 못할지라도 ‘꿈’을 갖는 게 중요한 것이다. 나에게 그런 꿈은 무엇일까? 메카만큼은 물론 아니겠지만 나에게도 언젠가 이루고 싶은 작은 꿈들이 있다. 차라리 죽을 때까지 해내지 못해도 그 꿈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점에서 나는 그 크리스털 가게 주인에게 공감한다. 하지만 또한 이 이야기는 나에게는 무엇이 그런 꿈이었을까를 생각하게 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책을 읽던 무렵, ‘언젠가는’ 이라고 미루어왔던 쿠바여행을 결행했다. 더 늙기 전에 가자. 그리고 새로운 꿈을 또 만들면 되지 뭐. 쿠바가 나의 메카는 아니니까. 인생 곳곳에 메카를 남겨놓으리라.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과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다. ‘누군가 꿈을 이루기 앞서, 만물의 정기는 언제나 그 사람이 그 동안의 여정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시험해보고 싶어 하지. 만물의 정기가 그런 시험을 하는 것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네, 그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 말고도, 만물의 정기를 향해 가면서 배운 가르침 또한 정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고 마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지.’
최선과 더불어 진심을 다하는 영성을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코엘류는 그의 문학작품만을 보면 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다. 어떠한 노력과 지혜를 다해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것이 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우주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우주가 잘못된 것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자칫 운명론자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이 할 일은 멋진 우주를 만들려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기운을 내지 않는 젊은이가 있을 때, 그에게 다가가 ‘우주가 도와줄 거야’ 라고 격려를 해야 그게 진짜 어른이고 지도자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