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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이 ㅣ 독깨비 (책콩 어린이) 22
R. J. 팔라시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으면 외모의 자신감 때문에 마음이 비뚤어진다거나 상처를 입는다는 말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그 대신, 장애나 기형이 있어도 따뜻한 사랑과 좋은 교육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오거스트처럼 유머와 좋은 머리가 있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한다.
장애아에 대한 편견을 버리려는 공적, 교육적 노력들은 지난하지만 쉽게 성과를 거두기도 어려웠다.(한국에서 그런 최선을 다한 노력이 있었는가 돌아보면 부끄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이 ‘편견’과 맞서 싸우는 일이리라. 어떠한 사람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며 누군가에게 편견으로 시달릴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다른 이를 배려하려는 태도. 이 책에서도 여기저기서 자주 강조한 ‘친절’이라는 단어는 우리 식으로 바꾸면 ‘배려’쯤 되겠다. 전혀 같은 단어가 아니지만 단어의 용도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보다는 친절이든 배려든 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은 미국에서도 여전히 장애아들의 삶은 쉽지 않다. 오기도 줄리안 같은 악동들(우리나라 아이들에 비교하면 악동도 아니지만)의 괴롭힘을 받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잭이나 서머처럼 먼저 다가와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고통을 덜 받았지 않았는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비교하고 읽을 수밖에 없었던 청소년 소설이다.
우선, 오기의 학교나 이웃 사이에서 겉으로나마 당연히 여겨졌던 일, 장애인이라고 오래 쳐다보거나 놀려서는(보고 놀라는 일조차) 부도덕하게 여겨지는 일,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대놓고 면전에서 혀를 끌끌 차거나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리는 사람이 있어도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지 스스로도 모르고 남들도 지적하지 않는다. 물론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그런 짓을 해도 ‘뭐 어때?’ 할 수 있을 만큼 뻔뻔한 사회가 우리 사회다. 학교는 더하다. 내가 남중에 근무해서 그런지 몰라도 남자중학생들은 상대방의 치부나 약점을 대놓고 공격한다. 약점이 없어도 남다르다는 점만 가지고도 놀리고 물어뜯는다.
둘째, 지혜로운 교사들 특히 교장의 도움이 눈에 띈다. 이 학교 교장의 모습은 권위주의도 없고 친절하고 지혜롭다.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줄 아는 눈도 있다. 한국의 교장이 아이들 사이의 관계를 헤아릴 수 있으려나? 만약 오거스트같은 장애아가 학교에 들어오려 하면 온갖 핑계를 대며 입학을 거부할지도 모른다.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그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학생부 교사나 담임교사에게 ‘신경써서 잘 돌보라’고 지시는 할지 모르지만 교장 스스로가 아이 손을 잡고 격려하거나 직접 대화를 나누려 할까 싶다. 수련회 야외 영화관에서 교장이 아이들과 같이 앉아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를 보는 장면을 보고 조금 화가 나기까지 했다. 학생들은 수련회에 가서 학교가 텅 빈 2박 3일 동안 단 하루도 학생들 수련회장에서 잠 한 번 자지 않은 교장, 그렇게 8년을 근무하다가 퇴임한 교장은 늘 교사들에게 ‘임장지도’를 지시했다. 1,2,3학년이 모두 다른 장소에서 수련활동을 벌이면 하루씩, 또 다음 해에는 또 다른 학년의 수련회장에 교장이 가서 ‘임장지도’하는 것이 맞다.
셋째, 다양한 학교 프로그램이다. 프로젝트 식 수업을 통해 직접 뭔가를 해봐야 하는 활동 말이다. 오기와 친구들은 늘 투덜거렸지만 ‘이집트’가 주제였을 때에도 과학발표 대회 때에도 할로윈 축제 때도 아이들은 뭔가를 준비하고 발표하고, 또 그 자리에는 부모나 가족도 함께한다. 하지만 발표 준비를 할 때 부모가 대신해주거나 학교에 입김을 불어넣지는 않는다. 오기의 친구인 잭과 ‘감자 전지’를 과학발표의 주제로 삼아 끙끙대는 모습이 낯설다. 우리도 수업 중 수행평가도 하고 성과물을 내지만 저렇게 주제를 가지고 일정한 기간 준비해서 페스티벌처럼 발표하는 형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물론 요즘은 자유학기제나 혁신학교 수업에서 그런 활동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리고 무엇이든 제도만 들여와서는 알맹이 없이 부담과 부작용만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넷째, 오기의 지혜로운 부모. 그토록 지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참을성 있는 부모를 쉽게 만날 수 있을까. 진심으로 자기 아이를 사랑하는, 그러면서도 우울하지 않다는 게 더욱 미덕이다. 오기의 누나나 심지어 누나의 남친, 초등학교 때 친구들조차 모두 오기 편이다. 물론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오기의 성정이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워서도이지만 아무리 좋은 성정을 지녔어도 외모가 주는 불편함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은 오기의 가족이나 이웃들이 모두 ‘마음의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적인 것일까, 그 가족의 특수함일까. 그런데 잭이나 서머, 심지어 처음에 오기를 놀렸다가 나중에 친구가 되는 아이들을 보면 다시, 이것은 어떤 사회 문화적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재미있게 읽혔다. 줄리안이나 에디처럼 오기를 괴롭히는 악동들이 악역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치명적이고 극적인 악인도 별로 없고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다. 오기네 개가 죽은 것이나 다른 학교 7학년짜리들과의 격투 장면 정도가 나오지만 내가 30년 가까이 남중에서 보아온 사건들보다 더 드라마틱하지도 않다. 그래도 재미있다. 뻔히 보이는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은 헐리웃 영화처럼 미국스럽기도 하다. 소설과 현실은 다르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런 소설을 읽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좋다. 사람들은 대체로 그악스럽고, 나쁜 문화가 더 영향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예의에, 좋은 사람들의 영향력이 덧붙여지면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걸 확인할 때가 있지 않은가.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철부지에 악동들이 많았지만 돌아보면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었던 아이, 손 하나가 아예 기형이라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아이, 얼굴 한 면에 반점을 달고 살아야 했던 아이를 대놓고 놀리는 아이는 없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 남자아이들은 ‘튀게 행동하는 아이’를 어떻게든 면박주고 골려먹고 싶어 하면서도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아이들의 특성을 잘 헤아리고 어른의 지혜를 덧붙이면 대한민국에서도 장애아들이 상처 없이 살아갈 수 있는(적어도 학교 다닐 때만이라도) 대안이 찾아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