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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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교사가 되었지만 만약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공부해 보고 싶었던 학문이 건축학, 천문학, 그리고 미술이었다. 모두 재능이 부족했다. 가지 않은 길은 늘 아쉽고 그립고 신비로운 법이다. 책에서 위안을 얻지만 특히 미술 에세이, 과학 에세이, 건축 에세이를 좋아한다. 그 모두는 과학과 공학의 영역임과 동시에 문학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러니 심채경의 글이 나를 부를 수밖에. 한겨레 신문에 연재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어머, 이 사람, 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맛있게, 황홀하게 읽고 난 후, 아쉬움과 그리움을 품고 있을 때, 그때 그의 책이 나왔다 하니 당연히 반길 수밖에.

 

우주를 향하는 그리움이 과학자의 것이든 문학을 하는 이의 것이든 같을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 어떤 이는 그걸 시로 썼을 것이고 어떤 이는 공식으로 풀려 애썼을지라도, 방식은 다를지언정 그런 일을 마음에 품고 시도를 한 시작은 같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심채경은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아주 짧아도 좋으니 직접 쓴 문장만으로 보고서를 완성하라고 요구한단다. 그러면서 남의 업적을 내것인 양하는 태도는 국가나 가족에 대한 긍지를 느낄 때나 쓰는 것이요, 남의 글 베끼기는 타자 연습할 때나 하는 일이다. ’라 말한다.

최근에 나도 중2 학생들에게 설명문 쓰기를 두 달 정도에 걸쳐 천천히 가르치는 프로젝트 수업을 했다. 가장 기본적이고 객관적인 형식의 완성도 높은 설명문 한 편을 길게 써 보면서 글의 형식적 틀거리만이라도 제대로 공부했기를 기대한다. 열다섯 살 소년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다양한 형식의 글들을 써야 할 것인가. 그 고통의 문턱을 넘기 위한 수련의 시간을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그러나 제대로 경험하게 하고 싶다. 설명문의 기본, 설명문다움, 문장의 기본 형식을 가르치는 일도 쉽지가 않다. 그러나 심채경의 말 대로 학문할 때의 글은 형식도 갖추어야 한다. 다양한 공간과 시간을 넘어 그야말로 누구나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문적 글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해주는 글을 쓰는 일도 이렇게 힘겨웠다. 그 형식 하나를 숙지하는 데 두 달이 걸렸다. 하필 그 수행평가를 진행하는 동안 심채경의 글을 읽으면서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린 이런 걸 가르쳐야 해.... 물론 나는 궁극적으로 좋은 문학적 글을 쓸 수 있는 학생들을 기르고 싶다만, 민주시민교육으로서의 기본 국어교육이려면 실용적 글쓰기를 바탕으로 해야 하니까, 문학적 글쓰기는 아련한 영역으로 잠시 미뤄둘지라도 말이다.

 

수성 이야기를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와 연결할 수 있는 그의 지성을 축복한다. 그는 이렇게 썼다.

 

걷거나 의자를 옮기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해 지는 광경을 오래도록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수성이다. 그곳의 하루는 아주 길어서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88일이나 걸린다. 해가 지고 나면 다시 88일간의 긴 밤이 시작된다.

해 지는 걸 보러 가는 어린 왕자를 만난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장미 옆에서 가로등을 켜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왜 슬픈지 캐묻지 않고, 의자를 당겨 앉는 게 마흔세 번째인지 마흔네 번째인지 추궁하지도 않고, 1943년 프랑스 프랑의 환율도 물어보지 않는 어른이고 싶다. 그가 슬플 때 당장 해가 지도록 명령해줄 수는 없지만, 해 지는 것을 보려면 어느 쪽으로 걸어야 하는지 넌지시 알려주겠다.

 

얼마 전에 누리 호가 발사되었다. 책 속에는 달 연구가로서 우리나라 정부가 달 탐사를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왔는지가 기록돼 있다. 2007년에 노무현 정부에서는 2020년 달 궤도선을 발사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는데 2011년 이명박 정부가 그것을 2023년으로 미뤘단다. 그리고 그 다음 대선 토론에서 박근혜가 2017년으로 당긴다는 공약을 발표했다가 어찌어찌하여 현재로는 2022년 여름 발사가 목표란다. 하지만 누리호 발사할 때 뉴스에 나온 전문가 말로는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의 협의(허락?)라는 높은 산을 넘어야 한단다. 운전 중 마침 정차한 지점에서 누리 호 발사의 카운트 다운을 함께 목청 높여 외쳤던 나는,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는 뉴스에 옆 차에서 쳐다볼 정도로 격렬하게 박수를 쳤던 나는 잠시 달을 사랑하는 것과 달을 연구하는 것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잊고 그 모든 관계자들과 동지가 된 기분을 맛보았다. 달님은 참 가까이 떠 계신 듯하다. 남편 손을 잡고 뛰쳐나가 본 월식의 동쪽 하늘도 가까웠다. 미국의 허락이 더 먼 시대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우리들의 별 목록에서 사라진, 그러나 마음에는 남아 있는 명왕성에 대한 저자의 글을 소개한다. 사뭇 자존감, 당당함, 의연함, 이런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명왕성, 그리고 그에 대한 심채경의 사유가 담긴 부분을.

 

고대의 인류도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것이다. 해가 이끄는 시간을 따라 생활하고, 별 사이를 천천히 가로지르는 달을 눈으로 좇고 혜성이 나타나면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때도 명왕성은 제 궤도를 묵묵히 돌고 있었다. 우리가 행성이라 부르든, 왜소행성이라 부르든, BTS가 명왕성의 번호 134340을 노래하든 말든 개의치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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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법 수업 -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천 년의 학교
한동일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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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를 읽으며 우리나라 헌법 제정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미국의 건국 역사도 짧다 하지만 우리나라 근대화의 역사는 그야말로 초스피드의 역사였다. 고유한 문화를 거의 접다시피하고 서양의 근대문물을 받아들여야 했던 역사. 그러니까 19세기 말을 기준으로 본다면 헌법이 제정된 1948년까지 5, 60년 정도의 시간에 남의 나라 수백 년 역사를 거의 흡입하다시피 한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제헌 헌법은 제법 좋은 정신들을 다 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물밑으로 우리는 너무나 많은 역사를 이루었는지도 모르겠다.

 

로마법을 읽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한동일 교수의 전작 <라틴어 수업>을 재미나게 읽은 기억에 의존했을 뿐 솔직히 로마에도, 로마의 법에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영역에서도 그렇지만 서구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로마의 힘을 새삼 느낀다. 그러니까 작품성을 떠나 그 영향력 때문에 로마사를 읽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로마법을 읽는 것은 의미가 있더란 말이다. 저자도 책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거의 대부분의 법이 로마법의 법률 개념을 바탕으로 정립되었기에 로마법을 알아야 한다.

서구의 법률들이 로마법을 근간으로 해서 세워졌고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문화와 문명이 대부분 그렇듯 우리의 법률도 그 뿌리에서 자유롭기 어려우니까.

 

로마의 법은 어떤 부분은 근대의 기준에서 미개하거나 과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로마 사회가 그랬듯 매우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부분이 많다. 오히려 세상을 자본이 지배하면서 법정신의 근간이 자본과 권력에 흔들리는 것에 비하면 로마법이 더 옳다고 말하고 싶은 부분도 많다. 저자 역시 한국의 사법농단, 연예인의 약물 범죄를 언급하며 로마에서는 판관의 판결 조작이나 약을 먹여 성폭행하는 것 등은 극악무도한 범죄로 치부해 외딴섬에 고립시켰다는 판결을 언급한다.

 

로마는 계급사회였지만 오히려 공개적으로 계급을 인정하면서도 합리적으로 계급 간 공존을 가능하게 했고 법적으로는 시민 계급인 인제누우스나 노예 출신 시민이나 합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사회처럼 보이지 않는 계급의 담장 아래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법이 오히려 공정을 가장한 불공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로마에서 해방노예로서 자유민이 된 리베르투스의 경우 공적 임무에서 배제되는 대신 군 복무로부터 자유로웠다 한다. 해석하기 따라서는 나름의 공정함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미개하고 덜 발달한 법이 없지 않다. 혼외임신을 한 여성은 형벌 없이 남편이나 아버지에 의해 정부와 함께 살해되었다는 대목도 그렇고 로마 사회는 전반적으로 여성의 인권을 고려하고 않았다.

로마보다 먼저 이탈리아 반도에 자리잡고 있던 에트루리아인들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양친 모두의 이름을 반영하는 문화가 있었지만 로마에게 점령당하고 나서 사라졌다고 하니 로마 문화가 매우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듯 보여도 여성에 대해서만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다만 법문에 여성이 무고당하지 않도록 도우러 가야 한다는 조항은 있단다.

여성에 관한 법률을 언급하면서 한동일 교수는 특히 힘주어 남자든 여자든 어느 한쪽 성만의 특성과 특권으로 조화롭게 완성된 삶을 살기는 어렵다는 것을 강조한다. 페미니즘 운동이 여혐 논쟁으로 번져 역페미니즘으로, 성별 혐오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특히 영향력 있는 남성들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에서 정말 경치 좋은 곳을 찾으려면 장애인 시설이나 어린이 병원 같은 곳을 찾으면 된단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세웠지만 진정한 선진으로 가기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숙고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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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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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들에는 양면성이 있다.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감정도 양가적이다. ‘뭔가 뛰어난 점이 있으니 베스트셀러가 되었겠지’, 하는, ‘너 인정의 평가가 하나. 또 하나는 돈으로 마케팅하고 광고했나? 품질에 못 미치는 허명 덩어리’, 하는 흥칫뿡의 마음. 후자에 해당하는 책을 워낙 많이 봐온 게 사실이다. 그래도 나는 베스트셀러를 쓱 훑어보는 편이다. 역차별 받는 보석을 놓칠까봐서.

이 책도 대통령의 언급 덕인지 무척이나 많이 팔렸나 보다. 읽기 전에는 도대체 어떻게 한 세대를 함부로 분석한다는 것인가(소위 386세대로서, 세대론, 비판론에 상처를 많이 받아봤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읽어는 보고 싶었다. 일단 내 아들과 딸이 92년생, 97년생이다. 저자가 제대로 보긴 했는지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다(물론 가까이서 본 자녀의 모습과 사회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은 다를 것이며 특히 군집으로,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그들 모습은 또 다를 것이지만 말이다).

일단, 저자가 굉장히 많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한 공이 돋보인다. 책을 읽다가 다시 날개로 돌아가 저자 소개 글을 보았을 정도다. 이 사람 연구자인가? 하고 말이다. 의외로 학자도 아니고 이 분야 전문가도 아니었다. 게다가 비교적 객관적이면서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 시선도 나쁘지 않다. 이 세대 때문에 세상이 끝장날 것처럼(오히려 본인들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세대라고 자조하는 데 비해) 한심한 눈길로 보거나 미래세대라고 무작정 찬양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90년대 생들의 특성을 언급하는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정직성이다.

솔직히 조금 놀라웠다. 교단에서 90년대 생 남자아이들을 가르쳤고 아들딸을 키웠지만 이들이 이전 세대나 이후 세대보다 더 정직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나의 동의를 구하고자 한다면 나는, 요즘 젊은이들은 대체로 개인의 이익과 자본주의적 잣대에서 부정직하고 불공평한 것을 못 참는 것 같다, 고 인정은 하겠다. 그런 측면에서 이들 중 꽤 많은 젊은이들이 소위 조국 사태에 대해 분노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왜 거악은 그냥 두면서 그보다 작은 일에만 분노하느냐고 묻는다면, 이 책에서 예로 제시한 부도덕한 기업이나 상품에 대한 조용한 그들의 거부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것은 나쁜 현상인가?

거시적 담론에 약한 90년생들은 80년대에 민주화의 물결과 함께 청춘을 보내온 5,60대들이 볼 때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김수영의 시를 조금 비틀어 늬들은 왜 작은 일에만 분노하는가’, 라고 묻고 싶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거꾸로 기성세대들이여, 그대들은 세상을 바꾼 역사의식을 지닌 것처럼 잘난 척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안위, 자식의 행복을 위해 입으로는 민주화를 외치면서 사교육시장을 키우고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혈안이 되어 지내느라 대한민국의 교육의 공정성을 내팽개치고 경제적 격차를 키우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라, 우리는 거대한 역사의식은 없지만 생활 속의 부당함을 하나, 하나, 작은 목소리라도 내어 고쳐나가고 싶다, 적어도 불공정, 부정의에 대해 거부라고 하련다, 라고 그들이 말하면 우리는 무어라 답할 것인가?

 

나는 침대 머리맡에 7~8종의 책을 쌓아놓고 읽는다. 이 책처럼 지하철을 타면서 빨리 보는 책이 절반, 몇 달을 묵히면서 천천히 공부하듯 읽는 책이 절반이다. 빨리 읽을 수 있다고 책의 무게가 가벼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책은 논쟁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 생각할 것이 많은 책, 특히 어쨌거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그렇다면 이 책도 그 반열에 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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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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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를 먼저 읽었는데 아무리 번역이라고 해도 원문장이 재미있지 않다면 이토록 재미있을 리 없다는 생각에 <사피엔스>를 집어들게 되었다. 역시 재미있다! 잠자리에 누워서 한 손으로 책을 움켜쥐고 읽는 책은 부담스럽지만 재미있어서 자세를 고쳐가며 읽다 보면 꼭 잠들기 전에는 그런 자세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이 책을 어떻게 수업에 활용할까, 아이들에게 읽힐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중학생들이 읽기야 어렵지만 언젠가 읽어보라고 권할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책에서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 , >를 더러 인용한다. 어쩌다 보니 두 책을 번갈아 읽고 있던 내게는 재미난 경험이다. 그리고 이 두 책은 또한 사회과학과 역사서적 들 가운데에서 권위적 위치에 놓여 또 다른 책들에 자주 인용되고 있다는 것도 발견하였다.

 

입장이 없는 역사 기록이라는 게 가능할까? 역사 공부를 할 때마다 생각하는 명제다. 유발 하라리가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라고 불렀던 서구 자본주의를 세상의 주류 사고방식 혹은 시스템으로 보는 것에 대해(그는 그게 옳다고 말하지 않고 대세인 것처럼 언급하고 있다) 고개가 갸웃거려지긴 한다. 대안적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것에도 어째서 그런 건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사피엔스>가 그런 논란에서 빗겨있는 이유는 이것이 그의 입장이라서라기보다 많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일 것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이미 언급했고 유발 하라리가 강조하는 내용 중에 인류가 수렵채취를 버리고 농경사회로 접어든 것이 가장 큰 패착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기도 하다. 근질거리는 노마드의 유전자를 저 깊은 곳에서 느끼는 많은 사람들은 이 책들을 읽으며 왜 내가 이토록 지금 여기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지 궁금증을 해소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안정적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인류가 농경문화에 갖게 된 것에 더 크게 감사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미 누천 년 고착화되어 버린 농경, 정착의 문화(대부분의 역사학자, 인류학자가 그것을 문명의 발전으로 해석해 왔던)에 대해 의문을 품어보았던 두 역사학자의 드넓은 상상력과 통찰력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인간에게 교육이 중요한 이유

유발 하라리는 다른 포유류에 비해 인간의 아기는 무력하여 여러 해 동안 어른들이 부양하고 지키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면서 인간을 용광로에서 막 꺼낸 유리 덩어리에 비유했다. 교육의 힘이 중요한 이유이고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다른 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던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 저자는 사피엔스가 가진 뒷담화의 능력에 주목한다. 인류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협동하여 협의하는 능력,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를 구축하는 능력을 꼽은 것이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 사피엔스가 약 7만 년 전 획득한 능력은 이들로 하여금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게 해주었다.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성경의 창세기, 호주 원주민의 드림 타임(시공간을 초월해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로 존재하는 장소) 신화, 현대 국가의 민족주의 신화와 같은 공통의 신화들을 짜낼 수 있다. 그런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는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개미나 벌도 많은 숫자가 모여 함께 일하는 능력이 있지만, 이들의 일하는 방식은 경직되어 있으며 그것도 가까운 친척들하고만 함께한다. 늑대와 침팬지의 협력은 개미보다는 훨씬 더 유연하지만, 협동 상대는 친밀하게 지내는 소수의 개체들뿐이다. 사피엔스는 수없이 많은 이방인들과 매우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다. ......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이 책은 읽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힘이 있다. 저자는 진지한데 발상이 유쾌하다고 해야 할까. 위대한 인류 역사가 사실은 잔인한 멸종의 역사였을지 모른다는 시선, 농경? 그거 사실은 우리가 불행해진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발상, 도덕적으로 부정해야 할 음모와 뒷담화의 능력이 사실은 소통의 근원일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믿는 모든 것(신용카드를 포함해서)은 일종의 신화(허상)인데 그 허상이 우리 인류를 발전시켰을 거라는 것, 이 모두 참 그럴듯하면서도 참신한 안목 아닌가. 그중 재미있었던 것은 여성주의에 대한 부분이다. 유발 하라리는 모든 당연시되는 것에 대한 아닐 수도 있을 걸?’ 하고 말을 건다. 가령 이런 것. 생물학적으로 여자는 약하기 때문에 남성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여성이 억압받는 이유

근력을 강조하는 문제 남자가 여자보다 강하다는 진술은 평균적으로만, 특정한 종류의 힘에 대해서만 옳다. 일반적으로 여자는 굶주림, 질병 피로에 대한 저항력이 남자보다 크다.

인간의 경우 육체적 힘과 사회적 권력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20대 청년들은 가장 힘이 세지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60대의 리더들이다. 목화농장의 흑인 노예들은 농장주보다 힘이 셌고 병사들은 힘으로 장교를 제압할 수 있지만 근육 조직이 아니라 사회성 뛰어난 사람이 정치적 지배력을 지녔다.

 

그러니까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최상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적, 사회적 기량 덕분이다. 우리 내 권력 사다리도 폭력이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흔한 고정관념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보다 남을 조종하고 유화책을 쓰는 능력이 우월하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사물을 보는 능력도 뛰어나다고 한다. 이게 진실이라면 여자들은 뛰어난 정치가나 제국 건설자가 되었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여자들은 아기를 품고 출산 후(몸도 회복해야 하고 오랫동안 양육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식량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남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신과 자녀의 생존을 보장하려면 남자가 내세운 조건은 뭐든 받아들일 수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순종적이고 집안을 잘 돌보는 여자의 여성적 유전자가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데 시간을 너무 들인 여자는 자신의 강력한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남기지 못했다.

 

전쟁이 줄어든 이유

유발 하라리의 글이 좋은 이유가 무얼까 생각해 보았다. 유쾌한 문체, 잘 읽히는 문장, 참신한 발상, 쉽지만 지적 만족도가 높은 내용 등등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전망이 있다. 특히, 우리는 아직도 살벌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적으로 20세기 이후는 전쟁의 위험이 덜해진 시대라고 그는 말한다. 물론 이유는 좀 우습다. 자본주의 정신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는 자본주의자(혹은 호모사피엔스에서 쓴 자유주의’)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대로 문제투성이 현대 자본주의, 암울한 미래 전망보다는 그래도 전보다 살기 좋아진 거다? 전쟁도 줄어든 거라고!’ 이런 발언은 그나마 사람을 안도하게 만든다.

 

진정한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것만이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전쟁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왜 현대에는 전쟁이 줄었을까? 1. 전쟁의 대가가 극적으로 커졌다. 2. 비용이 커진 반면 이익은 작아졌다. 오히려 평화가 수익성이 좋아졌다. 현대자본주의에서 대외 교역과 투자는 매우 중요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평화는 훌륭한 배당이익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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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 (반양장) -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96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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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원 백온유 지음

 

 

이 소설의 주인공인 유원이라는 소녀는 어린 날 엄청난 아픔을 겪었다. 집에 불이 나서 자신을 구하려고 언니가 담요에 싸인 어린 유원을 아파트 창밖으로 던진 것이다. 아래서 아이를 받아준 아저씨 덕에 유원은 살아났지만 언니는 끝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고통을 겪었다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 사건 이후의 이야기, 살아남은 자의 부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가끔 뉴스에서 끔찍한 사건 사고를 접할 때마다 그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상상한다. 당사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상상해 본다. 아마 작가도 그런 생각을 해봤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아이는 자신을 살리고 죽어간 언니와 자신을 살려낸 아저씨와 두 아이의 고통을 지켜보며 살아온 자신의 부모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고 살아야 할까,를 말이다.

사고는 말 그대로 사고이기에 누구의 책임이 아니지만 짐은 그걸 겪은 이들 모두가 짊어져야 한다. 어찌 보면 그 사고에서 그나마 가장 혜택을 받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이가 이제 막 열일곱, 자기를 살리고 죽었을 때의 언니 나이가 된 소녀 유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원은 행복하고 감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언니의 목숨값과 그림자에 짓눌리고, 슬픔을 감추려 애쓰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며 살아야 했다. 그뿐인가, 자신을 살려준 아저씨에 대한 보은의 무게는 자칫 평생 갈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나 역시 소소한 인연의 끈이 나비의 폭풍처럼 인생에서 길게 닿아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소스라칠 때가 있는데 그 어린 소녀는 어마어마한 무게를 어떻게 이겨내고 살아왔을까 싶다. 그리고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죽을 때까지 계속 그리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것.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는 거라는 말이 어렸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연한 말을 하는 것도 같고 그걸 어떻게 하라는 건가 싶기도 했고. 살아보니 스스로 인생을 개척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누구도 완전히, 그리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다는 것, 벗어나야 할 것이 가족이든 생활이든 습관이든 자기 자신이든 나쁜 기억이든 그것을 대신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래서 혼자 그걸 해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 다만 좋은 조력자를 만날 수도 있고 누군가의 조력자가 되어줄 수는 있으니 그런 역할이라도 하려 애써야 이 세상에 기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 뭐 이런 것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유원은 그런 조력자를 만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최선의 노력으로 그 삶의 무게를 덜어보려 애쓴다.

아주 어렸을 때, 사촌형제들과 이불놀이를 하면서 짓궂은 오빠들이 겹겹이 덮어버린 이불 속에서 버둥거려본 기억이 있다. 무겁고 숨 막히고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이불 지옥을 누군가 나타나 치워주기도 하지만 분노든 절박함이든 스스로 힘을 응축해 들고 일어나 치워 버리지 않으면 똑같은 일을 또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스스로 무게를 들춰본 경험을 하면 그 다음에 또 다른 시련이 닥쳐도 어떻게든 해보려는 마음이 든다. 그걸 해내는 이야기다, <유원>이라는 소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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