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반양장) -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96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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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원 백온유 지음

 

 

이 소설의 주인공인 유원이라는 소녀는 어린 날 엄청난 아픔을 겪었다. 집에 불이 나서 자신을 구하려고 언니가 담요에 싸인 어린 유원을 아파트 창밖으로 던진 것이다. 아래서 아이를 받아준 아저씨 덕에 유원은 살아났지만 언니는 끝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고통을 겪었다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 사건 이후의 이야기, 살아남은 자의 부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가끔 뉴스에서 끔찍한 사건 사고를 접할 때마다 그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상상한다. 당사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상상해 본다. 아마 작가도 그런 생각을 해봤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아이는 자신을 살리고 죽어간 언니와 자신을 살려낸 아저씨와 두 아이의 고통을 지켜보며 살아온 자신의 부모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고 살아야 할까,를 말이다.

사고는 말 그대로 사고이기에 누구의 책임이 아니지만 짐은 그걸 겪은 이들 모두가 짊어져야 한다. 어찌 보면 그 사고에서 그나마 가장 혜택을 받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이가 이제 막 열일곱, 자기를 살리고 죽었을 때의 언니 나이가 된 소녀 유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원은 행복하고 감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언니의 목숨값과 그림자에 짓눌리고, 슬픔을 감추려 애쓰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며 살아야 했다. 그뿐인가, 자신을 살려준 아저씨에 대한 보은의 무게는 자칫 평생 갈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나 역시 소소한 인연의 끈이 나비의 폭풍처럼 인생에서 길게 닿아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소스라칠 때가 있는데 그 어린 소녀는 어마어마한 무게를 어떻게 이겨내고 살아왔을까 싶다. 그리고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죽을 때까지 계속 그리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것.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는 거라는 말이 어렸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연한 말을 하는 것도 같고 그걸 어떻게 하라는 건가 싶기도 했고. 살아보니 스스로 인생을 개척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누구도 완전히, 그리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다는 것, 벗어나야 할 것이 가족이든 생활이든 습관이든 자기 자신이든 나쁜 기억이든 그것을 대신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래서 혼자 그걸 해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 다만 좋은 조력자를 만날 수도 있고 누군가의 조력자가 되어줄 수는 있으니 그런 역할이라도 하려 애써야 이 세상에 기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 뭐 이런 것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유원은 그런 조력자를 만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최선의 노력으로 그 삶의 무게를 덜어보려 애쓴다.

아주 어렸을 때, 사촌형제들과 이불놀이를 하면서 짓궂은 오빠들이 겹겹이 덮어버린 이불 속에서 버둥거려본 기억이 있다. 무겁고 숨 막히고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이불 지옥을 누군가 나타나 치워주기도 하지만 분노든 절박함이든 스스로 힘을 응축해 들고 일어나 치워 버리지 않으면 똑같은 일을 또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스스로 무게를 들춰본 경험을 하면 그 다음에 또 다른 시련이 닥쳐도 어떻게든 해보려는 마음이 든다. 그걸 해내는 이야기다, <유원>이라는 소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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