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호모 사피엔스를 먼저 읽었는데 아무리 번역이라고 해도 원문장이 재미있지 않다면 이토록 재미있을 리 없다는 생각에 <사피엔스>를 집어들게 되었다. 역시 재미있다! 잠자리에 누워서 한 손으로 책을 움켜쥐고 읽는 책은 부담스럽지만 재미있어서 자세를 고쳐가며 읽다 보면 꼭 잠들기 전에는 그런 자세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이 책을 어떻게 수업에 활용할까, 아이들에게 읽힐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중학생들이 읽기야 어렵지만 언젠가 읽어보라고 권할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책에서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 , >를 더러 인용한다. 어쩌다 보니 두 책을 번갈아 읽고 있던 내게는 재미난 경험이다. 그리고 이 두 책은 또한 사회과학과 역사서적 들 가운데에서 권위적 위치에 놓여 또 다른 책들에 자주 인용되고 있다는 것도 발견하였다.

 

입장이 없는 역사 기록이라는 게 가능할까? 역사 공부를 할 때마다 생각하는 명제다. 유발 하라리가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라고 불렀던 서구 자본주의를 세상의 주류 사고방식 혹은 시스템으로 보는 것에 대해(그는 그게 옳다고 말하지 않고 대세인 것처럼 언급하고 있다) 고개가 갸웃거려지긴 한다. 대안적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것에도 어째서 그런 건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사피엔스>가 그런 논란에서 빗겨있는 이유는 이것이 그의 입장이라서라기보다 많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일 것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이미 언급했고 유발 하라리가 강조하는 내용 중에 인류가 수렵채취를 버리고 농경사회로 접어든 것이 가장 큰 패착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기도 하다. 근질거리는 노마드의 유전자를 저 깊은 곳에서 느끼는 많은 사람들은 이 책들을 읽으며 왜 내가 이토록 지금 여기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지 궁금증을 해소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안정적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인류가 농경문화에 갖게 된 것에 더 크게 감사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미 누천 년 고착화되어 버린 농경, 정착의 문화(대부분의 역사학자, 인류학자가 그것을 문명의 발전으로 해석해 왔던)에 대해 의문을 품어보았던 두 역사학자의 드넓은 상상력과 통찰력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인간에게 교육이 중요한 이유

유발 하라리는 다른 포유류에 비해 인간의 아기는 무력하여 여러 해 동안 어른들이 부양하고 지키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면서 인간을 용광로에서 막 꺼낸 유리 덩어리에 비유했다. 교육의 힘이 중요한 이유이고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다른 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던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 저자는 사피엔스가 가진 뒷담화의 능력에 주목한다. 인류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협동하여 협의하는 능력,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를 구축하는 능력을 꼽은 것이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 사피엔스가 약 7만 년 전 획득한 능력은 이들로 하여금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게 해주었다.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성경의 창세기, 호주 원주민의 드림 타임(시공간을 초월해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로 존재하는 장소) 신화, 현대 국가의 민족주의 신화와 같은 공통의 신화들을 짜낼 수 있다. 그런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는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개미나 벌도 많은 숫자가 모여 함께 일하는 능력이 있지만, 이들의 일하는 방식은 경직되어 있으며 그것도 가까운 친척들하고만 함께한다. 늑대와 침팬지의 협력은 개미보다는 훨씬 더 유연하지만, 협동 상대는 친밀하게 지내는 소수의 개체들뿐이다. 사피엔스는 수없이 많은 이방인들과 매우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다. ......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이 책은 읽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힘이 있다. 저자는 진지한데 발상이 유쾌하다고 해야 할까. 위대한 인류 역사가 사실은 잔인한 멸종의 역사였을지 모른다는 시선, 농경? 그거 사실은 우리가 불행해진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발상, 도덕적으로 부정해야 할 음모와 뒷담화의 능력이 사실은 소통의 근원일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믿는 모든 것(신용카드를 포함해서)은 일종의 신화(허상)인데 그 허상이 우리 인류를 발전시켰을 거라는 것, 이 모두 참 그럴듯하면서도 참신한 안목 아닌가. 그중 재미있었던 것은 여성주의에 대한 부분이다. 유발 하라리는 모든 당연시되는 것에 대한 아닐 수도 있을 걸?’ 하고 말을 건다. 가령 이런 것. 생물학적으로 여자는 약하기 때문에 남성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여성이 억압받는 이유

근력을 강조하는 문제 남자가 여자보다 강하다는 진술은 평균적으로만, 특정한 종류의 힘에 대해서만 옳다. 일반적으로 여자는 굶주림, 질병 피로에 대한 저항력이 남자보다 크다.

인간의 경우 육체적 힘과 사회적 권력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20대 청년들은 가장 힘이 세지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60대의 리더들이다. 목화농장의 흑인 노예들은 농장주보다 힘이 셌고 병사들은 힘으로 장교를 제압할 수 있지만 근육 조직이 아니라 사회성 뛰어난 사람이 정치적 지배력을 지녔다.

 

그러니까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최상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적, 사회적 기량 덕분이다. 우리 내 권력 사다리도 폭력이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흔한 고정관념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보다 남을 조종하고 유화책을 쓰는 능력이 우월하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사물을 보는 능력도 뛰어나다고 한다. 이게 진실이라면 여자들은 뛰어난 정치가나 제국 건설자가 되었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여자들은 아기를 품고 출산 후(몸도 회복해야 하고 오랫동안 양육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식량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남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신과 자녀의 생존을 보장하려면 남자가 내세운 조건은 뭐든 받아들일 수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순종적이고 집안을 잘 돌보는 여자의 여성적 유전자가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데 시간을 너무 들인 여자는 자신의 강력한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남기지 못했다.

 

전쟁이 줄어든 이유

유발 하라리의 글이 좋은 이유가 무얼까 생각해 보았다. 유쾌한 문체, 잘 읽히는 문장, 참신한 발상, 쉽지만 지적 만족도가 높은 내용 등등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전망이 있다. 특히, 우리는 아직도 살벌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적으로 20세기 이후는 전쟁의 위험이 덜해진 시대라고 그는 말한다. 물론 이유는 좀 우습다. 자본주의 정신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는 자본주의자(혹은 호모사피엔스에서 쓴 자유주의’)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대로 문제투성이 현대 자본주의, 암울한 미래 전망보다는 그래도 전보다 살기 좋아진 거다? 전쟁도 줄어든 거라고!’ 이런 발언은 그나마 사람을 안도하게 만든다.

 

진정한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것만이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전쟁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왜 현대에는 전쟁이 줄었을까? 1. 전쟁의 대가가 극적으로 커졌다. 2. 비용이 커진 반면 이익은 작아졌다. 오히려 평화가 수익성이 좋아졌다. 현대자본주의에서 대외 교역과 투자는 매우 중요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평화는 훌륭한 배당이익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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