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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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는 몇 살일까? 그의 글에는 어딘가 예스러운 문투가 있다. 처음에는 중학생들을 위한 <위저드 베이커리>에 열광해 그의 소설을 찾아 읽곤 했지만 점점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 그냥 소설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도 청소년들이 읽기에 무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인공지능을 지닌 로봇의 이야기인데 참으로 구수하게 인간적이다. 그래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가진 학생이 있다면 권할 만할 것 같다.

나는 바로 얼마 전에 <호모 데우스>를 막 다 읽었다. 유발 하라리가 예측한 미래 사회를 상상하며 독후감을 쓰고 있는 중에 <한 스푼의 시간>을 읽게 되었다. 이 소설 속 로봇은 작가의 문과적 상상과 감성을 두르고 있는 매우 인간적인 로봇이다. 그를 대하는 이웃들도 그렇고 은결(17세 소년의 모습을 한, 로봇의 이름)의 행동도 매우 인간적이다. 물론 스스로 진화하는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은 입력된 프로그램 이상으로 (그것을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조합하여 사람의 감정을 읽고 상황에 대처하는데 그게 마치 사람이 수 천 수 만 예측하지 못할 상황적 변수들마다에 인간적으로대처하는 것과 매우 닮았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여자사람에게 연심을 품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기를 아들처럼 여겨준 주인아저씨의 불행에 공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공지능이라면 과학적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많은 공상과학 영화에서 제기하는 의문처럼, ‘정신이란 무엇인가, 인간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내가 인간이라서 갖고 있다고 생각한 영혼이란 것은 과연 실체가 있는가라는, 실존적인 질문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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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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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중고등학생들이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이라고 해서 읽게 된 것 같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쓴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라니. 하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굳이 나의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아니다. 추리물을 좋아하지도 않고 소설 속에 그려지는 교사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90년대 이전의 학교문제를 담고 있어서 지금 청소년들의 정서에는 과거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만약 독서는 정말 싫어하는데 책 읽기에 흥미를 붙여줄 요량으로 아이들에게 권한다면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목적을 이룰 좋은 책이 세상엔 참 많다. 굳이 이 책이어야 할까?

추리물을 좋아한다면 즐길 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복잡한 많은 이야기들이 맞물리게끔 써나가는 작가의 역량은 놀랍다. 물론 그 모든 사건들이 일어날 개연성에는 의문이 든다. 만약 내가 거의 읽지 않은 세상 모든 추리물들이 대체로 그러하다면 추리물의 공식으로 인정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한때 무라카미에 열광하는 독자들이 많았던 현상과 더불어 요즘 중고생 중에도 일본문학에 매니악하게 열광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게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어느(나라) 문화이든 경도되는 것에는 허상이 있게 마련이지만 특히 일본 문화에 대해서는 더욱 그런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딘가 정서적으로 친숙하면서도 우리에게 없는 부분들이 있다 보니 동경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다양성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라면 일본문화에 대해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맹목적으로 열광하고 빠져드는 현상은 불쾌하다. 특히 일본문학 작품에 빠져 한국어로 글을 쓸 때도 그 문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학생, 일본의 애니메이션 등등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학생을 많이 보아서 그런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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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말들 -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
은유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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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는 놀랍다. 한겨레 신문에서 그냥 내 눈에 띈 필자여서 보게 되었다. 글을 참 잘 쓰는구나, 라고. 이것이 처음 그 사람에게 놀란 일이다. 그냥 글솜씨만으로 눈에 띈다는 게 쉽지 않다. 각종 매체에 글을 쓰게 된 계기도 그럴 것이다. 화려한 수상 경력이나 이력이나 배경이 있지 않으나 글솜씨만으로 사람들 눈에 띄었을 것이란 것.

두 번째로 놀랐던 것은 그의 삶의 이력이다. 물론 그가 나왔다는 그 여상’, 우리 때 공부깨나 하는 아이들도 쉽게 갈 수 없던 학교였다. 그러나 하여간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고 작가로 활동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데 은유가 그것을 깼다.

여기까지는 뛰어난 한 작가가 걸을 수 있는 과정으로서 찬탄할 만했다. 나 역시 그의 글솜씨가 부럽지만 부러우면서도 기꺼이 칭찬해줄만 하다. 하지만 은유에게는 내가 감히 칭찬할 수 없는 놀라운 영역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 당신 꽤 괜찮은 사람인데? 친구하고 싶어~.’ 이랬던 마음에서 아니다, 이 사람은 나와 다른 영역의 사람이로구나.’ 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그가 진짜 아픈 사람들과 함께 어깨를 겯는 이고, 그의 글이 바로 거기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냥 아픈 척 하거나 힘을 모으자고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은유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이지만 삶에 허덕인다고 핑계를 대면서 정말 아픈 일에 함께 하는 일을 망설여왔다. 사실은 두려워했다고 말해야 옳다. 바쁘고 아프니까 할 수 있는 일만 하겠다고 선을 그었던 것이다. 은유 역시 나만큼 바빴을 터이고 나보다 더 힘겨웠을 터이다. 아이들을 키우고 먹이고 일도 하는 게 아픈 이들과 함께 하기 힘든 핑계였다면, 그렇다면 은유는 어떻게 죽어간 아이들의 부모와 끌어안고 울 수 있었으며 그들의 마음을 대신한 글들을 쓸 수 있었을까. 그런 면에서 나는 감히 은유를 칭찬하는 일도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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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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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책을 한 권 냈다. 공식 출판은 아니지만. 작년에 사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왜 남자중학생을 위한, 상황에 맞는 추천도서 책은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독서상담, 독서지도에 관한 연수도 많이 들었지만 남중딩을 위한 책에 관한 길잡이 책은 못 본 것 같다. 그래서 우리 학교 선생님 열 분이 모여 전교사에게 추천도서와 경험담을 모아 책을 썼다. 140여 권의 남자중학생에게 권할 만한 책 이야기 책이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그 중 하나다. 다른 선생님이 권한 책이라 나도 읽어보게 됐다. 솔직히 중학생이 읽기 적절한 책일까 의문이 들긴 한다. 독서력이 좀 있어야 읽을 것 같긴 하다. 다양한 해시태그를 달 수 있는 책 인 것 같다. #독서와 진정한 교양, #외모와 신분, 그리고 #일본(동양?) 문화에 대한 동경...

 

외모와 교양의 상관관계가 어떠할까, 자주 생각해 본다. 비례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많으니 없다가 정답일 것 같다. 멋진 외모를 갖고 태어난 것은 축복이겠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자신감이나 자신을 갈고 닦는 디딤돌이 될지 말지는 외모 그 자체만의 영향으로 결정되지는 않는 것 같다.

주인공 르네는 사람들이 자신을 냄새나는 50대의 못생긴 수위 아줌마라고 함부로 취급하면 세상에는 저런 사람이 많다라고 쿨하게 생각하고 말지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원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화를 내지 않는 법이다. 남에게 화가 나거나 자신에게 화가 나거나, 그러면 이미 진 거다.

르네는 오히려 자신이 많은 책을 읽었음을 세상에 알까봐 두려워한다. 자기가 누리는 문학의 세계와 그 평온한 자존의 세계가 침범당하기 원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근무하는 아파트에 새로 이사 온 일본인 가쿠로 오즈(동명의 실존 감독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은 작가의 팬심인가?)와 우정과 애정을 교양 있게 나누면서 삶은 달라지지만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명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어른들의 위선에 환멸을 느껴 열여섯이 되면 자살하겠노라는 열두 살 천재소녀 팔로마이다. 물론 이 역시 가쿠로를 만남으로써, 그를 통해 르네를 알게 됨으로써 삶의 다른 측면을 발견한다.

책을 읽으면서 세 명의 모습으로 현현했으나 사실은 한 명인 자아를 본다. 작가, 르네, 그리고 팔로마. 열두 살짜리 아이가 읊조리는 자아의 소리는 르네가 중얼거리는 혼잣말과 다르지 않다. 그 정서와 취향, 하고 싶은 말은 곧 작가의 것일 터이다. 캐릭터로 완전 변신에 성공하지 않았다고 해서 작가를 탓할 생각은 없다. 작가 탓을 하라면 왜 하필 일본인가정도를 물을 수는 있겠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정말 제대로 안다면 그렇게 매혹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니까. 오히려 일본인 개개인의 품성이나 취향에 매료된다면 모를까. 그러니까 한없이 똑똑한 체하는, 셋이자 하나인 이 자아는 문화적으로 극히 일부분의 모습만을 품고 있는 것이다. 하긴 나도 프랑스문학이나 러시아문학을 통해 접한 그들 문화를 완벽히 안다고 할 수는 없다(그래서 나는 열광하진 않는다만). 그러니 한계는 그냥 한계로 인정할까? 현학적인 문체나 개인의 취향에 불과한 일본 동경(프랑스 문화에 대한 환멸의 대안으로 그것을 제시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바이다), 프랑스 문학다운 난삽함(난해함이 아니다)은 중학생들에겐 좀 안 맞지 싶다. 다만 외양으로 사람의 교양과 정신을 알 수는 없다는 꽤 의미 있는 교훈에는 동감을 표한다. 책깨나 읽은, ‘프랑스스러운 분위기 좋아하는 중딩에게라면 권할 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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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퍼 - 제14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탁경은 지음 / 사계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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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책을 한 권 냈다. 공식 출판은 아니지만.

작년에 사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왜 남자중학생을 위한, 상황에 맞는 추천도서 책은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독서상담, 독서지도에 관한 연수도 많이 들었지만 남중딩을 위한 책에 관한 길잡이 책은 못 본 것 같다. 그래서 우리 학교 선생님 열 분이 모여 전교사에게 추천도서와 경험담을 모아 책을 썼다. 140여 권의 남중딩에게 권할 만한 책 이야기 책이다. <싸이퍼>는 그 중 하나다.

 

솔직히 나는 책의 제목조차 낯이 설었다. ‘싸이퍼는 래퍼들이 대화하듯 랩을 주고받는 배틀을 말한단다.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이 시합인 듯 화해인 듯 화합인 듯, 그렇게 싸이퍼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목이 눈에 들겠어? 했는데 웬걸, 아마도 나같은 사람이나 몰랐겠지, 아이들은 다 아는 듯. 나에게는 힙합에 대한 편견도 좀 있었던 것 같다. 딸애는 랩을 좋아하고 자주 듣는다. 그 덕분에 나도 가끔 듣긴 하지만 솔직히 좋아하진 않는다. ‘디스라는 이름으로 말 그대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방식이나 가사 속에 속속 등장하는 비속어가 거슬린다. 안 드래도 욕설로 하루 온 종일을 도배하는 우리 남중딩들에게 힙합이 결코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진 않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심리학적으로 그들의 억눌린 감성을 배출하게 하는 순기능이 있을 순 있다. 게임도 랩도 그런 무의식의 발현’, ‘그림자 작업이라고 본다면 이들에게 아름답고 고상한 세계를 경험하는 일은 도대체 언제 가능하다는 걸까 싶었던 거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또 다른 힙합의 세계가 가능함을, 아니, 내가 모르는 그런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도건정혁이라는 두 중딩, 고딩(?) 래퍼들 이야기다. 물론 현장에서 그들은 다른 닉네임들을 갖고 활동한다. 내가 가졌던 편견처럼 저속한 표현으로 일관하지만은 않는다(욕설은 세상에 저항하려는 수단일 뿐). 오히려 그들은 시와 철학과 문학, 그리고 삶에 대한 고민으로 진지하기 짝이 없는 힙합의 세계를 구현한다. 사회 시간에 세계사를 배우면서 그들에게 랩이 있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외치는 도건의 주장은 근거 없지 않다. 랩의 거친 모습은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순화된(?) 저항의 또 다른 양상이다. 솔직히 한국 랩에서 거시적인 저항을 많이 보진 못했다(내가 아는 거라고 MC스나이퍼 정도가 다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중고딩들은 자그마치 슬라예보 지젝을 들먹이면서 자본주의를 . 피츠 제럴드를 언급하면서 삶을 노래한다. 그러면서도 이 소설은 청소년들을 고무할 것 같다.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되 그들이 즐겨듣는 랩으로 들려주니까. 소설은 내내(특히 도건이 말할 때마다) 랩 하듯 흘러간다.

수업에 필요해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너네 요즘 즐겨듣는 노래 제목 하나만 말해봐.’ 하니 난리가 난 적이 있다. 갑자기 아이들과 친해졌다. 그들이 들려주는 노래며 가수를 공부하고 대화를 나누느라. 또 작년에는 소설 읽고 대중가요 가사로 재구성하기라는 수행평가를 하면서 또 그들의 정신세계를 살짝 엿본 적이 있다.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먼저 조사해 오게 했는데 그걸 걷고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가 그 노래를 왜, 얼마나 좋아하는지 들려주었고 그 가사 안에 다른 작품을 담아내면서 가사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경험을 했다. 개사이기는 하지만 작사도 해보았다. 사춘기에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로부터 멀어지지 말아야 좋은 어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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