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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말들 -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
은유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3월
평점 :
은유는 놀랍다. 한겨레 신문에서 그냥 내 눈에 띈 필자여서 보게 되었다. 글을 참 잘 쓰는구나, 라고. 이것이 처음 그 사람에게 놀란 일이다. 그냥 글솜씨만으로 눈에 띈다는 게 쉽지 않다. 각종 매체에 글을 쓰게 된 계기도 그럴 것이다. 화려한 수상 경력이나 이력이나 배경이 있지 않으나 글솜씨만으로 사람들 눈에 띄었을 것이란 것.
두 번째로 놀랐던 것은 그의 삶의 이력이다. 물론 그가 나왔다는 그 ‘여상’, 우리 때 공부깨나 하는 아이들도 쉽게 갈 수 없던 학교였다. 그러나 하여간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고 작가로 활동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데 은유가 그것을 깼다.
여기까지는 뛰어난 한 작가가 걸을 수 있는 과정으로서 찬탄할 만했다. 나 역시 그의 글솜씨가 부럽지만 부러우면서도 기꺼이 칭찬해줄만 하다. 하지만 은유에게는 내가 감히 칭찬할 수 없는 놀라운 영역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오~ 당신 꽤 괜찮은 사람인데? 친구하고 싶어~.’ 이랬던 마음에서 ‘아니다, 이 사람은 나와 다른 영역의 사람이로구나.’ 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그가 진짜 아픈 사람들과 함께 어깨를 겯는 이고, 그의 글이 바로 거기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냥 아픈 척 하거나 힘을 모으자고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은유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이지만 삶에 허덕인다고 핑계를 대면서 정말 아픈 일에 함께 하는 일을 망설여왔다. 사실은 두려워했다고 말해야 옳다. 바쁘고 아프니까 할 수 있는 일만 하겠다고 선을 그었던 것이다. 은유 역시 나만큼 바빴을 터이고 나보다 더 힘겨웠을 터이다. 아이들을 키우고 먹이고 일도 하는 게 아픈 이들과 함께 하기 힘든 핑계였다면, 그렇다면 은유는 어떻게 죽어간 아이들의 부모와 끌어안고 울 수 있었으며 그들의 마음을 대신한 글들을 쓸 수 있었을까. 그런 면에서 나는 감히 은유를 칭찬하는 일도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