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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책을 한 권 냈다. 공식 출판은 아니지만. 작년에 사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왜 남자중학생을 위한, 상황에 맞는 추천도서 책은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독서상담, 독서지도에 관한 연수도 많이 들었지만 ‘남중딩’을 위한 책에 관한 길잡이 책은 못 본 것 같다. 그래서 우리 학교 선생님 열 분이 모여 전교사에게 추천도서와 경험담을 모아 책을 썼다. 총 140여 권의 남자중학생에게 권할 만한 책 이야기 책이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그 중 하나다. 다른 선생님이 권한 책이라 나도 읽어보게 됐다. 솔직히 중학생이 읽기 적절한 책일까 의문이 들긴 한다. 독서력이 좀 있어야 읽을 것 같긴 하다. 다양한 해시태그를 달 수 있는 책 인 것 같다. #독서와 진정한 교양, #외모와 신분, 그리고 #일본(동양?) 문화에 대한 동경...
외모와 교양의 상관관계가 어떠할까, 자주 생각해 본다. 비례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많으니 ‘없다’가 정답일 것 같다. 멋진 외모를 갖고 태어난 것은 축복이겠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자신감이나 자신을 갈고 닦는 디딤돌이 될지 말지는 외모 그 자체만의 영향으로 결정되지는 않는 것 같다.
주인공 르네는 사람들이 자신을 냄새나는 50대의 못생긴 수위 아줌마라고 함부로 취급하면 ‘세상에는 저런 사람이 많다’라고 쿨하게 생각하고 말지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원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화를 내지 않는 법이다. 남에게 화가 나거나 자신에게 화가 나거나, 그러면 이미 진 거다.
르네는 오히려 자신이 많은 책을 읽었음을 세상에 알까봐 두려워한다. 자기가 누리는 문학의 세계와 그 평온한 자존의 세계가 침범당하기 원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근무하는 아파트에 새로 이사 온 일본인 가쿠로 오즈(동명의 실존 감독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은 작가의 팬심인가?)와 우정과 애정을 교양 있게 나누면서 삶은 달라지지만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명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어른들의 위선에 환멸을 느껴 열여섯이 되면 자살하겠노라는 열두 살 천재소녀 팔로마이다. 물론 이 역시 가쿠로를 만남으로써, 그를 통해 르네를 알게 됨으로써 삶의 다른 측면을 발견한다.
책을 읽으면서 세 명의 모습으로 현현했으나 사실은 한 명인 자아를 본다. 작가, 르네, 그리고 팔로마. 열두 살짜리 아이가 읊조리는 자아의 소리는 르네가 중얼거리는 혼잣말과 다르지 않다. 그 정서와 취향, 하고 싶은 말은 곧 작가의 것일 터이다. 캐릭터로 완전 변신에 성공하지 않았다고 해서 작가를 탓할 생각은 없다. 작가 탓을 하라면 ‘왜 하필 일본인가’ 정도를 물을 수는 있겠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정말 제대로 안다면 그렇게 매혹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니까. 오히려 일본인 개개인의 품성이나 취향에 매료된다면 모를까. 그러니까 한없이 똑똑한 체하는, 셋이자 하나인 이 자아는 문화적으로 극히 일부분의 모습만을 품고 있는 것이다. 하긴 나도 프랑스문학이나 러시아문학을 통해 접한 그들 문화를 완벽히 안다고 할 수는 없다(그래서 나는 열광하진 않는다만). 그러니 한계는 그냥 한계로 인정할까? 현학적인 문체나 개인의 취향에 불과한 일본 동경(프랑스 문화에 대한 환멸의 대안으로 그것을 제시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바이다), 프랑스 문학다운 난삽함(난해함이 아니다)은 중학생들에겐 좀 안 맞지 싶다. 다만 외양으로 사람의 교양과 정신을 알 수는 없다는 꽤 의미 있는 교훈에는 동감을 표한다. 책깨나 읽은, ‘프랑스’스러운 분위기 좋아하는 중딩에게라면 권할 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