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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 터키편, End of Pacific Series
오소희 지음 / 에이지21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이렇게 맡겨도 될 것 같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그리고 어떻게 가야 하나..."
".. 바람이 데려다 주겠지."
어쩐지 인도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해탈한 듯한 목소리로 말해야 할 것 같은 표현이지만 터키도, 어쩌면 우리들의 잃어버린 사람냄새 같은 것이 남아있던 따뜻하고 뜨겁던 그곳의 사람들도, 어쩌지 어쩌지 할 때, 괜찮아 괜찮아 바람이 데려다 줄 거야, 라고 말할 것만 같다.
작년, 터키를 다녀왔다. 오소희 씨처럼 '제대로' 다녀오진 못했어도 그만하면 나의 상황과 체력에 걸맞게 알차게 잘 다녀왔다. 나는 파묵칼레의 하늘과 물을 꼭 보고 싶었고 거기서 정말 아름다운 일몰을 가족과 함께 봤다. 비를 잔뜩 머금은 블루 모스크의 푸르스름한 지붕과 하늘도 보았다. 지나온 여행지는 다 좋은 것인지 몰라도, 좋았다. 그래서 일생에 다시 간다는 보장도 없는 (그러므로 정보와 실용성이란 면에서 별 쓸모가 없는) 터키 여행기를 덥썩 사들였는지도 모른다. 이 사람은 내가 갔던 그곳을 거쳐 갔을까? 어떤 기분으로 이스탄불의 뒷골목을 걸었을까, 다시 말하면 복습용이다.
저자는 생각이 많은 사람인 듯하다. 젊은 여자같지 않게 자연의 향기를 맡을 줄 알고 안달복달하지 않고 놓아줄 줄도 아는 정신연령을 가진. 게다가 용기까지..
그리고, 아마도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읽힐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일 터인데도 비교적 자기과시, 위선 혹은 위악도 그다지 심하지 않다. 앞으로 잘나가는 책의 저자가 되어도 그 모습이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아예 영원히 아마추어로 남는 게 이 사람 인생관에 걸맞을 것 같기도 하다. 일기장에 쓴 글 같은 겸손을 잃지 않고 쓴 것이 이 정도라면, 이 사람, 글도 제법 쓴다.
그런데, 사람의 오만은, 가령 좀 어른스러운이라면 내가 세속인들이 아파트를 취할 때 마당있는 집을 원하오, 하더라도 그걸 잘난 체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경지는 갈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식에 대해서만은 아닌 듯하다. 뭐 이 정도면 아이에 대해 뭘 그리 자랑을 했단 말이냐 할지 모르지만, 36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한다는(따라 다닐 수 있는 아이라는) 그 증명도 그렇고 이 아이의 이러저러한 행동을 있는 그대로 옮긴다고는 하나(또래 아이들보다 퍽 성숙하고 똘똘한 아이다) 아이 자체가 자랑거리인 아이다. 한국말도 놀라울 만큼 어른스럽게 잘하고 영어도 꽤 잘한다. 이 정도 언어를 구사할 아이라면 엄마가 꽤 공들여 수다를 떨어주었거나 아이가 타고 났거나이다. 아이는 좋은(?) 엄마를 만나서 세상을 살아가는 영어라는 무기 하나를 일찌감치 얻게 되었다. 부럽다.
어른들은 관광지와 유적지를 보고 다니지만 아이들은 어디 그런가. JB(왜 중빈이라 하지 않는지 못마땅하긴 하다. 이름은 세상 하나가 아닌가? 미국에 가면 영어 이름, 스페인에 가면 스페인어로 이름을 부르진 않을텐데)는 가는 곳마다 개나 고양이, 아이들, 모래 들과 친구가 된다. 우리 아이들도(물론 훨씬 큰 아이들이었지만) 히에나폴리스 언덕에서 고대 유적보다는 기둥 밑을 휘감아 도망가는 뱀꼬리를 쫓아다녔고 저녁 노을에 넋을 뺐다. 이스탄불이 얼마나 복잡한 역사를 가진 도시인가에는 중학생 아들조차 관심이 없다. 거리에서 만난 꼬마들과 국적불명의 짬뽕 3개 국어로 어른들만 못알아듣는 대화를 한참 나누곤 했다. 보는 나는, 왜 굳이 터키까지 와서 고양이랑 노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래서, 아이들은 그 여행이 좋았다 한다. 난 중빈이라는 이 꼬마가 가는 곳마다 터키의 개들과 놀 때 작년의 그 생각이 나서 좋았다.
여행은 가는 사람마다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그 추억의 무게를 달아 비교할 수 없다. 자기가 힘들고 싫었다 하면 모를까.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 무모해 보이고 돈 아까와 보이는(사실 서너 살 된 아이들이 여행의 기억을 얼마나 간직할 것이며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들로부터 얻은 사회성이나 삶의 지혜가 크면 얼마나 크겠는가, 라고) 이 모자의 여행이 여러가지 의미에서 무게를 갖는다. 또한 삶의 방식은 참으로 다양하구나 하는, 그런 깨달음도 준다. 아껴 읽었다. 터키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