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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가 - 그때 그 시절... 노래와 함께 걷는 서울의 추억 서울의 풍경들
이영미 지음 / 예담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을 끼고 사나 보다. 그것을 우리는 '의식'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게 삶의 현장에서 뭐 그리 중요할까 할지 몰라도 신영복 선생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입장이 같은' 것이라고 역설할 만큼 그 사람이 어떤 의식을 갖고 사는지는 삶에서 참으로 중요하다. 하다못해 드라마 하나를 보아도 보는 이의 '의식'과 '입장'에 따라 그것은 다 달리 해석된다. 음식도 그렇다. 드라마 식객을 보면서 성찬과 봉주의 차이는 '의식'의 차이라는 생각을 했다.
노래는 아니 그러한가. 노래는 곡조를 갖기에, 가사에 담겨 있는 사상과 정서를 차치하고도 공유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기는 있다. 나는 군가나 찬송가 음률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단조도 좋고 탱고류도 좋다. 일본노래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도 아마 뜻도 모르는 그 가락에 자기도 모르게 끌리는 것이리라.
그러나, '돈 데 보이'라는 노래가 멕시코 이민자의 아픔을 다루고 있음을, 노래를 안 지 한참 후에 알고 더욱 그 노래가 사무치게 좋아지는 것은 분명 노래가 갖고 있는 무국적성, 무정부성을 뛰어넘는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래는 정서에 닿아 있지만 분명 의식과 경향과 바람과 지향의 논리에도 닿아 있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노래는 앞부분을 빼면 내가 거의 아는 것들이다. 글쓴이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위이지만 7,80년대에 청소년기와 청춘을 서울에서 보낸 공감대가 있다. 글쓴이 말마따나 전공과는 별 상관도 없이, 그리고 클래식도 아닌데 그걸 비평하고 분석하는 짓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소릴 사람들한테 들었을 법한데도 대중가요를 관심있게 들여다본 이영미는 이 분야에서 우뚝하다. 그가 만약 좀더 영향력이 있거나 이 책의 반향이 매우 크거나 하다면 여러 사람들이 대중가요의 사회학연구에 좀더 매달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 책에서 주로 다룬 7,80년대뿐 아니라 90년대나 지금의 노래들도 좀더 구조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진지함의 무게를 고귀하게 여기던 우리 세대가, 가사가 뭔지 생각도 안 해보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요즘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부르는 노래에 담겨있는 사회의 아픔이 뭔지, 상처가 뭔지 생각해 보기나 했냐고 자꾸 묻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분석과 비평이 나온다고 해서 아이들이 노래의 '가사'를 음미하며 부르고 듣고 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삶이 조금은 묵직해야 살만하다고 느끼는 한 40대에게 또 다른 노래 비평서가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 80년대 민중가요도 그것이 왜 그런 가사들로 쓰여야 했는지, 어째서 일본군가풍이 걸러지지도 않고 섞여들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시적이고 철학적이었는지, 그토록 정서의 육즙이 과도할 정도로 흘러내리던 그 노래들은 왜 이제는 술자리에서조차 불리지 않는지, 그런 비평서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냥 추억에 잠기기 위해서라도 좋다. 물론 그것이 밑거름, 원동력, 도화선, 그런 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다. 이영미 씨 혹은 다른 누구 없소? 목마른 노래 이야기 더 해 줄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