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무' 아래서
오에 겐자부로 지음, 송현아 옮김, 오에 유카리 그림 / 까치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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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에 겐자부로가 쓴 소설을 읽은 것이 없어서 그가 얼마나 노벨상을 받을 만한 재능있는 사람인가를 잘 모른다. 그런데 하필 소설이 아닌 수필집을 처음으로 접한 게 잘한 일인지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을 계기로 언젠가는 그의 소설을 읽게 되겠지.

어린 시절, 오에가 고무공 당첨권을 들고 기뻐 집에 왔을 때 아버지가 그래, 좋겠구나, 이런 심상한 반응을 보였더라면, 단풍나무 위에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놓고 어려운 책을 읽는 아들이 위험하니 야단치라는 옆집 사람의 말을 한귀로 흘려버리고 그만의 세계를 인정해 주는 어머니가 없었더라면 오에 겐자부로의 모습은 지금과 달랐으리라. 그가 탱크 탱크로라는 만화이야기를 하기에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했었다. 그는 그 재미난 만화에서 적으로 그려진 중국인의 얼굴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즐겼던 어린 자신을 반성한다.

나는 그의 문학성을 차차 확인할 것이다. 그가 뛰어난 소설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몸담았던 세상에 대해 올곧은 사고방식을 지니지 못하고 아주 어렸을 때, 세상의 중심이 곧 일본이라는 교육에 젖은 그 시절 그대로 평생을 살았더라면, 그가 노벨상을 받았을 리도 없겠지만 그런 상을 받았다 해서 그의 작품을 읽고 싶어지지도 않았으리라. 아니 어쩌면, 그의 이름 앞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고 붙여주는 찬사는 찬사가 아닐지도 모른다. 빛나는 것은 그의 수상경력이 아니고 어린 날부터 자신을 갈고닦아 50대 후반부터도 다시 공부를 꼼꼼히 해나갔던 그 자세와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자신의 몸담은 세상에 대해 치우침 없이 사랑하기, 아닌 것, 잘못된 것, 편견에 대해 분명히 옳은 입장을 취한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인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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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이 블루 - 꿈꾸는 거인들의 나라
이해선 지음 / 그림같은세상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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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열대라서가 아니다. 그 섬이 아름다운 까닭은. 이런 책을 보고, 사진에 비해 글이 심심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정말 사진이 훌륭한 책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갖고 싶은 사진이 있으면 글의 내용에 상관 않고 책을 사는 버릇이 있는지라 표지만 보고도 이 책을 샀다. 그렇게 들인 돈을 아까워 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 바닷가에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책을 읽기도 전에.

그리고 역시 책을 읽기 전에 그 안의 석상을 그림으로 그려보았다. 그림으로 그리다 보니 처음엔 그저 하루방과 닮아 보였던 석상의 얼굴에서 남미와 열대의 냄새가 강하게 풍김을 알 수 있다. 글은... 둘 중에 하나이리라, 지은이의 정서가 나와는 좀 다른 것이거나, 가슴 속에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거나...

석상들이 바라보고 있는 저 먼곳의 신비에 대해 꿈꾸던 것들을 이야기해주기를, 아니면 이 섬의 신비를 과학적으로 이러저러하게 더듬어주기를 조금 바랐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그녀가 그 석상들과 나란히 앉아서 오래 바다를 보았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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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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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 사람들은 기형도를 잘 모른다. 어쩌다 저 사람, 기형도를 한 줄이라도 가슴에 받아들일 것 같아 그의 시를 선물하면, 너무 어렵다, 혹은, 어두워, 라고 말하고 부담스러워 한다. 그런데 기형도는 벌써 상징이 되었다고?

그의 시에는 그런 분위기가 있다. 서구, 중세적 분위기, 혹은 어두운 석조건물의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를 걷는 것 같은 묵중하고 암울한, 내가 유령이 되고도 유령이 될락말락한 인간존재들을 조금 시니컬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한 오후 4시의 밝은 햇살 아래서의 무지근한 공포의 분위기...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는 누구를 흉내낸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가 그 젊은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에 그의 시를 가슴에 품는 이들이 그토록 많았을 리 없다. 나의 낡디낡은 기형도 시집 속표지에는 '지금 나는 기형도와 연애중이다' 어쩌구 하는 귀절이 있다. 물론 바람끼 많은 나는 수도 없이 랭보와도 연애중이고 윤도현과도 그러하고 .... 그렇게 자주 앓지만 어쩐지 남은 사진이 빅토르 최와 닮은 듯한, 추운 한겨울 빈방과 바람에 우는 문풍지의 추억을 가진, 그러면서도 저 푸른 숲으로 사라지는 환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는 도대체 어떤 영혼을 가진 사내였기에 단 한 권의 시집을 남기고 서러운 연인처럼 그렇게 떠났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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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보고 크는 아이들 - 그림책으로 시작하는 아이교육
이상금 지음 / 사계절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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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조금 더 있으면 더이상 그림책을 볼 수 없게 되기 직전 무렵 어느 방학, 맘 먹고 그림책 공부를 했었다. 그림책에 관한 지도서나 평론집을 읽고 거기 등장하는 제목들을 모으고 그 목록을 들고 두 아이 손을 잡고 서점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한 두어 번에 걸쳐 그림책 몇 덩어리를 사서 아이들과 함게 읽었다.

노자풍으로 이야기한다면, 아이들을 이끈 어머니인 나는 그 그림책을 꼼꼼히 읽고 평가하고 더 좋아하게 되었지만 정작 아이들은 심상히 그저 재미나게 읽고 던져놓고, 또 몇 달 후 다시 읽고, 책장 정리하다 읽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도 읽고 그런다. 나는 그 책 삽화의 예술적 깊이를 평할 능력이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고 나는 지은이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의 깊이를 알지만 아이들은 단순유치찬란하게, 혹은 전혀 주제 따위를 의식하지 않고 읽는다. 어떠랴, 그림만 바라보아도 좋고, 인물과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만 하다면 된다.

이 책은 좋은 길잡이였다. 내 아이보다 좀 어린 아이를 둔 동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엄청난 감사의 말을 들었다. 우리나라 그림책에도 많은 비중을 둔, 어머니들이 심혈을 다해 골라읽힐 그림책의 길잡이로서의 성의가 보인다. 다만, 이 책이 나온 후 시간이 많이 흘러 너무가 곱고도 좋은, 혹은 그 반대의 숱한 그림책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 책만큼 친절하고도 관점이 좋은 안내서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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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아니다 - 프란츠 파농 평전
패트릭 엘렌 지음, 곽명단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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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뛰어난 능력과 품성을 가진 사람이 태어났다. 그것으로도 충분했지만 그것을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데에, 적당한 명망을 얻는 데에 사회적 적대세력을 만들지 않는 데에 써먹지 않았다. 세상과 맞설지라도 부릅뜬 눈으로 자신이 통렬하게 깨달았던 비참한 현실과, 그 현실에 함께 뿌리가 닿아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의 자의식은 너무나 강했고, 그것은 재능있는 자신에 대한 의식이 아니라 재능이고 품성이고 나발이고, 적당히 타협해 주지 않는 인간에게는 가혹하기 짝이 없는 백인의, 식민의자들의 우월의식에 대한 적개심이었다. 그것을 깨뜨리고 싶어하는 혁명적 의식이었다.

종종 체 게바라와 프란츠 파농을 비교한다. 엊그제 신문에서인가는 백인과 흑인으로서의 두 혁명가를 비교하는 글을 읽었다. 이제는 자본주의자들의 상품이 된 하얀 공산주의자와 아직도 악마라는 평을 벗지 못하는 흑인 지성이라고. 그러나 내게 두 사람은, 모두 의사 출신이었고 자신의 땅이나 동족들 가운데서도 충분히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며 건강하고 왕성한 지적 능력과 지도력 추진력을 가진 공통점을 가졌으되 사람을 융화하며 앞으로 나가가는 사람과 옳은 것이 아니면 용서하지 않던 돌파력을 가진 사람으로 비교된다.

나에게 파농은 대학 시절 읽은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의 저자였다. 그 책의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야학을 다니던 무렵 읽었던 그 책이 참으로 처절하고 뿌리깊은 것이었다는 느낌은 남아있다. 문맹인, 환자, 민중들이 단순히 계몽과 지도의 대상만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루어야 할 세상은 저 만큼 있고 함께 이길을 이끌어갈 동지는 적고 적들은 너무나 강고할 때 손잡아 이끌어 비참에서 구해내고 싶은 가난하고 무지한 자들의 손을 억지로라도 잡아당기고 싶었던 파농의 마음 말이다. 책 표지에서 파농은 그 부리부리한 눈을 부릅뜨고 있다. 어쩐지 산 속으로 들어서 소리없이 최후를 맞이한 게바라에게서 권력도 등진 仙人의 모습 같은 것이 있다면 파농에게는 죽어도 그 눈을 감지 못했을 것같은 처연함이 있다. 처연함은 분노로, 악으로 절규로, 그렇게 오래오래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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