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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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 사람들은 기형도를 잘 모른다. 어쩌다 저 사람, 기형도를 한 줄이라도 가슴에 받아들일 것 같아 그의 시를 선물하면, 너무 어렵다, 혹은, 어두워, 라고 말하고 부담스러워 한다. 그런데 기형도는 벌써 상징이 되었다고?

그의 시에는 그런 분위기가 있다. 서구, 중세적 분위기, 혹은 어두운 석조건물의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를 걷는 것 같은 묵중하고 암울한, 내가 유령이 되고도 유령이 될락말락한 인간존재들을 조금 시니컬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한 오후 4시의 밝은 햇살 아래서의 무지근한 공포의 분위기...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는 누구를 흉내낸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가 그 젊은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에 그의 시를 가슴에 품는 이들이 그토록 많았을 리 없다. 나의 낡디낡은 기형도 시집 속표지에는 '지금 나는 기형도와 연애중이다' 어쩌구 하는 귀절이 있다. 물론 바람끼 많은 나는 수도 없이 랭보와도 연애중이고 윤도현과도 그러하고 .... 그렇게 자주 앓지만 어쩐지 남은 사진이 빅토르 최와 닮은 듯한, 추운 한겨울 빈방과 바람에 우는 문풍지의 추억을 가진, 그러면서도 저 푸른 숲으로 사라지는 환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는 도대체 어떤 영혼을 가진 사내였기에 단 한 권의 시집을 남기고 서러운 연인처럼 그렇게 떠났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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