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슬로베니아 - 사랑의 나라에서 보낸 한때
김이듬 지음 / 로고폴리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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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우의 <쿠바, 춤추는 악어>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김이듬으로 인해 새삼 확인하게 된 것, 시인과 여행기는 참 잘 어울린다. 여행이란 게 다 낭만적이지만은 않겠지만, 시라는 게 다 낭만적이지만은 않겠지만 여행이 가져야 할 많은 속성 중에 가장 정점에는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시심(詩心)이 있을 것이고 시가 가진 가장 진솔한 속성에는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 대한꿈이 있을 터이다. 물론 어떤 이는 정보가 가득한 여행기를 선호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의미를 찾아 나서는 여행기를 좋아하기도 할 테니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선호와 취향일 수도 있다.

 

돌아보니 최근 나는 연이어 유럽여행기를 읽고 있다. 한꺼번에 6,7권의 영역이 다른 책을 동시진행으로 읽는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 책 중에는 꼭 힐링용책들이 들어있다. 즐기려고 읽는 책들. 때로는 <모지스 할머니><따뜻하고 사랑스럽고 그래><개를 그리다> 같은 그림이나 사진책, <엄마에게> 같은 그림책, 때로는 <무민 손뜨개>같은 자수나 뜨개질 책, <2천만원으로 시골집 한 채 샀습니다> 같은 집 이야기책, 때로는 <나미야 잡화점> 같은 소설 혹은 여행기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최근 나는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당신에게 파리><사람 풍경> 같은 유럽 여행기들을 연이어 읽고 있다. 평소에는 움직임의 에너지가 많지 않아서 집에 혼자 있는 걸 제일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멀리 가는 여행을 좋아하고 꿈꾸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유럽만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만 먼먼 세상을 꿈꾸는 건 맞는 것 같다. 죽기 전에 한 번쯤, 김이듬처럼 한 달 이상 혼자 여행가는 일을 꿈꿔본다. 김이듬은 장 그르니에를 인용해서 혼자 여행의 매력을 말한다.

 

장 그르니에 <> 나는 혼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나는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오래 전에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을 본 적이 있다. 그 영화 속 폴란드는 공산주의 국가 시절의 동유럽이다. 지금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으리라. 덜 어둡고 더 자본주의화 되었겠지. ‘비까번쩍하지는 않지만 서유럽의 분위기도 남아있으리라. 그러면서도 덜 세속화된 아름다움과 동쪽 나라 특유의 조금은 음산한 분위기가 있겠지. 이게 내가 상상하는 동유럽이다. 내 리스트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들이다. 내 상상이 맞는지 곧 확인해 보고 싶다.

 

이 책에서 가장 부러웠던 장면은 슬로베니아의 대표 시인 프란체 프레셰렌(19세기 초)의 사망일 28일을 문화기념일로 삼아 아예 국경일로 정해놓고 전 국민이 일터를 벗어나 시를 읽을 수 있도록 온종일 나라 전역에서 시낭송회, 콘서트, 연극 공연 등이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천민자본주의와 상업주의가 고상하고 고결하고좋은 것인 줄 아는 대한민국에서는 언제쯤 돈 냄새가 나지 않는 진정으로 고상한 시와 문화의 가치를 누릴 수 있을까.

 

류블랴나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무대이기도 하단다. 그 책을 읽을 때야 그런 나라가 있는 줄도 잘 몰랐던 것 같다. 베로니카가 내려다보고 상념에 잠겼던 도시를 나도 내려다 보고 싶다.

그리고 트로모스토비에 다리로부터 15분 걸으면 국립도서관(류블랴나 대학 도서관)이 있단다. 쿠바 여행할 때 벤쿠버를 스쳐 지나가면서 원형극장을 흉내 낸 건물을 하나 본 적이 있다. 우리보다 한 달 뒤 3개월 어학연수로 벤쿠버에 가서 생활하게 된 아들 말에 따르면 그 원형극장은 공공도서관이란다. 아들은 랭귀지 스쿨 수업이 끝나면 그 도서관에 가서 저녁 무렵까지 공부를 하다가 어스름 어디쯤에서 햄버거 하나를 사 먹고 공원에 가서 산책을 좀 하다가 숙소로 돌아오곤 했단다.

아들이 보내준 사진 속의 도서관, 그리고 그런 녀석의 시간표는 나의 로망이었다. 도서관에서 실컷 공부하고 돌아오는 삶이 부럽다. 벤쿠버처럼 공기 좋고 아름다운 곳에서라면 더욱 좋겠지. 물론 잠시 머무는 삶이라서 부러운 것일 터. 그곳이 생계의 터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세상은 여행자에게나 아련하고 아름다운 법이다. 일상은 붙박이의 안정과 따스함을 줄지언정 아름답지는 않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부표처럼 들떠 있는 잠시의 경험이어도 좋으니 한 두세 달, 도서관과 서점, 포근한 저녁거리를 배회하는 고독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 지난 여름방학 딱 하루, 아니 딱 한나절, 동네 가까운 개포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도 온 적이 있다. 에어컨도 안 틀어주는 낡아빠진 도서관에서의 한나절이 어찌나 달콤하든지. 대학을 졸업한 이후 처음 가 본 도서관에서의 한나절이 이토록 사치스럽게 여겨질 정도로 나는 바쁘게 살고 있는가 싶다. 올 겨울방학에는 자주 갈 거다. 지겨울 때까지 도서관에서, 숨막힐 때까지 서점에서 놀다 올 거다.

 

여행기에서 남겨준 정보가 언제 유용할지 알지도 못하면서 기록은 남긴다. 류블랴냐 시에서 3번 버스 타고 티볼리 공원에 가보라는 정보, 27번 버스 타면 복합상가 건물로 갈 수 있다는 정보는 언제 써먹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김이듬이 소개한 스테파오누스키의 <루마니아 랩소디 1>과 스레치코 코소벨의 시로 만든 노래라는 <비브라토 티시네(침묵의 비브라토)>는 지금이라도 찾아 들어보련다.

 

김이듬은 류블랴냐 성에 갔을 때의 경험을 적막한 고성 벽에 기대어 태고의 새가 자신의 내면에서 푸드득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은 더없이 향기롭다.’라고 전한다. 누가 시인 아니랄까봐서... 나도 돌담의 습기와 거기 서린 남의 역사의 신비를 조금은 맡아볼 수 있을까? 내가 그곳을 여행한 날은 비가 온 다음 날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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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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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재미있기만 한 소설을 읽고 싶을 때가 가끔 있긴 하다. 가치 있는 좋은 소설은 대개가 불편하다. 현실은 불편한데, 어디 도망갈 아름다운 다른 세계가 있긴 한 걸까. 고통 없고 의미 없는 그런 아름다운 세계는... 그런 뜻에서 <눈 먼 자들의 도시>는 마음 편하게 볼 수 없는, ‘좋은소설이다.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될 때, 사람들은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나중에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별 것은 아니지만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 문을 열고 닫을 때 다음 사람을 위해 손잡이를 잡아주는 일 들이 과거에는 당연했으나 지금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낯설어 보인다. 칭찬이나 감사를 듣기보다 오히려 낯선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의 외로움은 그나마 사소한 일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 소설 속 의사의 아내가 느꼈을 외로움에 비할까. 소설이 현실의 극단적 비유라고 본다면 우리 삶의 곳곳에 이런 황당함과 외로움이 그렇게 비유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은희경 소설이었던가, 이모와 외할머니 손에 길러진 소설 속 주인공이, 자기와 별로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이모와 외손녀인 자신을 사이에 두고, 외할머니의 사랑이 딸인 이모에게 더 깊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의 쓸쓸함에 젖어 주인공은 만약 극단적인 상황이 생겨 둘 중 하나만 살려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이란 상상을 하면서 외할머니가 자신이 아닌 이모를 선택하리라는, 그래도 당연할 거라는 생각에 우울해 한다. 그리고 내리는 결론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소설에 대한 나의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하는 소설 속 기원에 참으로 격렬하게 공감했었다.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상상들 속에 그저 그런 일이 내게 닥치지 말기를... 주제 사라마구는 아마도 그런, ‘일어나지 말기를 기원해야 하는가장 극단적인 상상을 소설로 옮긴 게 아닐까 싶다.

가령, 노안이 와서 점점 흐려지는 눈은 이러다가 정말로 눈이 멀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상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나도 그런 상상을 해 보았다. 글 읽고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눈을 잃는다는 게 세상 가장 큰 고통일 수도 있다). 나 하나가 아니라 세상 모두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라는 상상으로까지 뻗어나갔을 때, 궁극적으로 인류가 맞이할 것은 멸망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심해어처럼, 어둠(백색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인류가 살아남아 대를 이어가지 않을까).

 

그래서 아마 사라마구는 멸망으로 가는 길이 아닌 단 하나의 희망을 남겨놓기 위해 의사의 아내를 설정했나 보다. 무슨, 예수도 아니고, 그 어깨에 짊어질 무게를 어찌 감당하라는 건지. 그녀는 인간적 고뇌를 품고도 지혜로운 대안들을 충실히 찾아나간다. 때로는 살인과 같은 희생(그녀에게 살인은 자신의 영혼을 희생하는 일이었을 것이다.)도 감수하면서. 그리고 그녀의 힘은 결국 사람들이 인간성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인간에게는 더 좋은 사람이 될 가능성더 나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모두 있다고 할 때, 어떤 지도자, 어떤 멘토, 어떤 동반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어떤 가능성이 발현되는지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그런 변수에 상관없이 흔들리지 않고 올곧게 좋은 사람으로만 살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그야말로 지도자일 것이다. 염세주의자들은 세상에 그런 인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역사나 기록은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준다. 빅터 플랭클이 그랬고 유태인 수용소의 에티 힐레줌도, 1949년 헝가리에서 체포되어 영국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감금되어 독방에 갇혔지만 어떻게든 정신의 붕괴를 스스로 막아낼 수 있었던 이디스 본같은 사람들도... 의사의 아내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구절이 그녀의 눈멂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고 싶다. 열린 해석이 이 소설의 매력이지만 도시는 아직도 거기 있었다는 말을 희망적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인류는 아름다운 지도자의 희생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저속하고 추악한 존재라는 것을 예수 이래, 수많은 혁명가 이래 다시 확인해야 하는 셈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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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 공부 2 - 기적같이 공부 습관이 달라지는 작은 말의 힘 엄마의 말 공부 2
이임숙 지음 / 카시오페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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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이 읽으면 참 좋을 것 같다. 나는 상담실 교사용 책으로 이 책을 구입했는데, 중학생, 특히 남학생 대상으로는 해당되지 않는 내용도 좀 있긴 하다. 그래도 학부모 대상 상담연수 용으로 필요한 정보들을 얻었다.

일단,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엄마나 교사가 아이들에게 공감의 언어를 날려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책에서 마법의 ~구나라고 표현한 말투가 있다. “속상하구나” “힘들구나와 같은 말들. 아이들이 보내는 사인에 대해 공감하는 말이다. 일종의 반영적 경청이다. 물론 그에 앞서 엄마들은 왜 자꾸 아이들 앞에서 짜증부터 내는지,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엄마들이 왜 나만 이렇게 참고 노력해야 하지?’하는 원망 때문에 그런 공감의 언어를 구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래서 학부모 연수에서 자녀들에 대한 올바른 대화법을 논의할 때 일단 학부모(어머니들) 자신의 상태, 남편이나 자기 부모, 시집 식구들에 대한 원망과 양육 스트레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이를 야단치거나 바라는 바를 말할 때도 평가하거나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다음과 같이 말하라고 한다. 일단 아이 마음을 먼저 읽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 힘들었지, 힘들었겠다. 많이 힘들었을 거야.”

네가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는 건 이유가 있어서일 거야.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야. 엄마한테 말해줄래?”

그래서 그랬구나. 화가 난 이유가 있었구나. 그래서 그런 말을 했어?”

아이가 실수했을 때에도,

도와주려고 그랬구나.”

잘 되기를 바랐던 거구나.”

잘하고 싶었구나.”

힘들어도 참으려고 했구나.”

기쁘게 해주고 싶었구나.”

잘되길 바랐구나.”

도와주려고 그랬구나.”

오빠랑 재미있게 놀고 싶었는데 져서 속상했구나.” 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이번에 꼭 골을 넣고 싶었던 거구나처럼 아이 스스로 말하지 못한 욕구를 헤아려 알아줄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동생하고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구나.’ ‘방 청소를 잘했으면 좋겠구나와 같은,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늦지 않다.

 

,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와 요즘 대화가 뜸하다는 학부모가 있으면 다음과 같은 대화의 재료들을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집에 가야 하는데 교통비가 없다. 걸어가기엔 너무 먼데.. 어떻게 할까?

로또 10억 당첨된다면 어떻게 쓸까?

엄마아빠가 아파서 수술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요즘 내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이때 드는 생각은?

언젠가 아빠와 둘이서만 꼭 가보고 싶은 곳은?

아빠가 나에게 해준 말 중 가장 좋았던 말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 점수를 매긴다면?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세 가지만 말한다면?

아빠가 도와주기를 바라는 점은?

친구가 함께 학교를 땡땡이치자고 말한다면?

 

요즘 부모들은 자기 자녀의 인성이나 습관보다 학업적 부족함에 예민한 경향이 잇다. 좋은 학업습관을 들여주는 일이 물론 중요하지만 우선순위를 잘 매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야단치고 평가하고 지적하는 일로는 나쁜 습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저자는 숙제가 오래 걸리는 아이에게는 숙제하는 데 어려운 점은 뭐니? 어떻게 하면 숙제를 쉽게 할 수 있을까? 엄마가 뭘 도와주면 좋을까? 숙제 끝난 후에 하고 싶은 일은 뭐니?”라고 물으라고 한다. 공감 다음으로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같이 분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엄마의 다정한 말 한 마디를 뒤집으면, 정신적으로 아이들을 학대하지 말아야 할 의무와도 연결된다. 아동학대를 규명하는 아동복지법 규정을 넣은 저자의 심정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 부모 자신이 살기 팍팍해서 자녀에 대한 돌봄에 게으른 집도 문제지만, 요즘은 살만한 집에서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를 주면서 자녀를 학대하는 집도 많다. 자신들이 저지르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학부모들과 꼭 한 번 같이 읽고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의미에서 책에 언급된 아동복지법을 여기서 살펴보고자 한다. 아동복지법 2조에서는 아동을 ‘18세 미만으로 규정하고 있다. 3조에서는 정서학대언어폭력, 잠 안 재우기 벌거벗겨 내쫓는 행위, 삭발 강제 머리 자르기, 차별 편애 비교, 가족 내 왕따, 가정폭력을 목격하도록 하는 행위, 시설 등에 버리겠다고 반복적으로 위협하거나 짐을 싸 내보내는 행위, 미성년자 출금 업소에 지속적으로 데리고 다니는 행위, 돈 벌어오라고 하거나 나이에 맞지 않는 과도한 일을 시키는 것, 보호자의 종교 강요, 다른 아동을 학대하도록 강요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동 학대에서 방임도 단지 물리적 방임뿐 아니라 교육적 방임(학교에 안 보내거나 준비물 등 안 챙기는 것,) 의료적 방임을 포함하고 있어. 자칫 지나친 무관심은 위법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모들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법을 어기는 것이 무엇 무서운가. 아이 마음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부모인 내가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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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크로스 1
정재승,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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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이면서도 비판의식이 돋보이는 진중권과 간명하게 사회현상을 과학적으로 간명하게 연관 지어 설명할 줄 아는 정재승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논리적이고 명료하면서도 맛깔스러운 글을 쓸 줄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중권도 글 중에 고백했다시피, 알고 있는 지식들을 종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런 걸 김정운은 에디톨로지라고 표현했는데 오늘날 많은 강사들이 강의할 때 잘 써먹는 수법이기도 하다. 이들은 깊이 있는 학문적 성취에 이르지는 못하겠지만 공부가 부족하거나 주워들은 것은 있는데 그것들을 종합하고 구조화하는 능력이 부족한 일반인들이 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생각해 보면 선생의 역할도 비슷하다. 정말 인류의 스승이 될 만큼 자기만의 철학과 방향성을 가지고 많은 이들을 이끄는 스승까지는 아니어도 학교나 학원에서 혹은 자기 동아리에서 어린 학생이나 후배를 가르치는 이들은 조금 먼저, 조금 더 많은 양의 공부를 한 후 그것들을 어떻게 후학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할까 고민하며 재구성한다. 우린 그것을 교수법이라고도 하고 강의안이라고도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진중권과 정재승은 좋은 선생들이다. 이들은 스타벅스, 스티브 잡스, 구글,마이너리티 리포트, 제프리쇼, 셀카, 쌍꺼플 수술, 안젤리나 졸리, 프라다, 생수, 몰카, 개콘, 유재석, 강호동, 세컨드 라이프, 레고, 위키피디아, 파울 클레, 박사... 등을 키워드로 해서 각각의 쟁점들을 인문학자와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조명한다.

사실 정재승은 과학자이지만 인문학적 요소를 풍부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아 보이긴 하다. 우리에게 말빨 글빨 좋은 과학자가 많지 않다 보니 정재승이나 최재천 같은 이들이 참 귀하게 느껴진다. 하여간 두 필자가 조금 어슷비슷하게 느껴져 읽다가 이게 누구 글이더라, 하고 이름을 다시 들춰보곤 했다.

 

스타벅스에서 페미니즘 찾기

진중권의 페미니즘적 시각이 돋보이는 대목이 있다. 스타벅스 이야기를 하다 말고 소위 된장녀를 비난하는 남자들의 허위의식을 찌른다. 나야 스타벅스뿐 아니라 기타 등등의 비싼 커피를 잘 마시지 않지만(앉아서 커피 마실 시간이 많지 않을뿐더러 그 커피의 이 그 가격에 상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릿값이라 생각하면 좀 다르겠지만) 스타벅스의 다양한 문화적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할 때, 그것이 젊은(여성)이들의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역할(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파노플리 효과로써 상품을 통해 특정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것. 구별짓기의 수단으로써의 스타벅스를 이용한다는 것이다.)을 한다는 혐의에 대해 또 다른 면을 생각하게 해주는 미덕이 있다.

 

진중권 : 남성중 일부틑 700원짜리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한 잔에 5000원 하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된장녀를 비난한다. 하지만 5000원짜리 밥 사 먹는 주제에 술집 가서는 수십만 원을 쓰는 된장남의 행태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커피 한 잔을 둘러싸고도 성 권력은 어김없이 끼어드는 모양이다.

 

 

말하기 능력과 공감 능력

국어교사로서 이 책을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면 정재승이 유재석과 강호동을 비교해 놓은 이야기가 되겠다. 유재석과 강호동의 가장 탁월한 능력은 공감능력이라고 한다. 유재석은 아줌마 스타일의 여성적 말하기를 하고 강호동은 남성적 말하기를 한단다. 토론 수업할 때 이 글을 읽게 하고(웃음과 뇌과학적 측면을 근거로 말하면서) 멋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능력이며, 아름다운 말하기는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하는 말하기라는 것을 가르쳐주어야겠다. 유정아 아나운서도 대학생 토론 배틀에서 승리하는 팀은 상대방을 공격하는 팀이 아니라 상대방 발언에 귀기울일 줄 아는 팀이었다고 말한다. 수업 중에는 논리적 말하기/감성적 말하기, 맥락 중심 말하기/핵심 중심 말하기, 남성적 말하기/여성적 말하기, 객관적 말하기/ 주관적 말하기, 원칙적 말하기/ 개방적 말하기로 활동지를 만들어 먼저 자신의 말하기 스타일을 점검하게 한 후 토론 수업을 할 요량이다.

 

정재승과 진중권을 크로스하여 보여주려는 기획은 재미있었지만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인 <썰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재승은 과학자로 정치적 입장을 잘 드러내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진보적 입장에 배치되지 않는 의견을 제시한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사안이나 쟁점에 접근하지 않는다. 입장 차이가 분명하거나 과학자로서, 인문학자로서의 차이점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책의 아쉬움이다.

<썰전>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세 명은 모두 불호감의 아이콘들이다. 그럼에도 인기가 있다는 점 또한 공통점이다. 자기 진영에서 팬층이 있을 뿐 아니라, 안티팬들조차 그들이 하는 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런 논객들이 바로 유시민, 전원책이다. 사회를 보는 김구라 역시 욕하면서 보게 되는캐릭터다. 캐릭터들 자체가 흡인력이 있는 사람들이고 모두 팩트에 근거한자기 주장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은 쟁점은 쟁점대로 살고 출연자들의 박학다식을 즐길 수도 있으면서 토론의 현장이 갖고 있는 매력적 요소들(논리적일 것, 비판적일 것, 때로는 투쟁적일 것)도 느낄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진영의 논객들이 나오면 티비도 라디오도 꺼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입장이 다른 사람 이야기도 들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쟁점이 부딪칠 때 아슬아슬하게 긴장이 되다가도 패널들이 허당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유머감각을 발휘하거나, 정작 부딪치기 직전에 한 사람이 슬그머니 양보하는 모습들도 보여준다. 우리에게 부족한 똘레랑스 토론의 가능성을 조금은 엿볼 수 있다.

 

10월에 중2 남학생들과 토론 수업을 할 단원에서 정재승의 글과 비정상회담 110회의 군대문제를 주제 삼아 군 징병제와 모병제’, ‘대체복무를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할까 아닐까를 주제로 토론수업을 할 것이다. <썰전>의 한 장면도 보여줄 것이다. 우리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정말 많다. 국어 문법도 중요한데, 토론하는 법, 배려하여 말하는 법, 이런 것들을 꼭 가르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공부만 잘하고 싸가지는 없는 아이들, 배려할 줄 모르고 나의 성공만이 최고의 가치라 여기는 청년들,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높은 지위에서 전권을 휘두르며 적반하장의 언사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권위주의자들의 나라가 될 것이다. 지금 벌써 그렇지 않느냐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면 안 되니까,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토론으로 이루는 민주주의’, 100년으로 쉽게 도달하려 했던 어설픈 근대화의 부작용을 걷어내려면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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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이 독깨비 (책콩 어린이) 22
R. J. 팔라시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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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으면 외모의 자신감 때문에 마음이 비뚤어진다거나 상처를 입는다는 말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그 대신, 장애나 기형이 있어도 따뜻한 사랑과 좋은 교육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오거스트처럼 유머와 좋은 머리가 있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한다.

 

장애아에 대한 편견을 버리려는 공적, 교육적 노력들은 지난하지만 쉽게 성과를 거두기도 어려웠다.(한국에서 그런 최선을 다한 노력이 있었는가 돌아보면 부끄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이 편견과 맞서 싸우는 일이리라. 어떠한 사람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며 누군가에게 편견으로 시달릴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다른 이를 배려하려는 태도. 이 책에서도 여기저기서 자주 강조한 친절이라는 단어는 우리 식으로 바꾸면 배려쯤 되겠다. 전혀 같은 단어가 아니지만 단어의 용도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보다는 친절이든 배려든 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은 미국에서도 여전히 장애아들의 삶은 쉽지 않다. 오기도 줄리안 같은 악동들(우리나라 아이들에 비교하면 악동도 아니지만)의 괴롭힘을 받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잭이나 서머처럼 먼저 다가와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고통을 덜 받았지 않았는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비교하고 읽을 수밖에 없었던 청소년 소설이다.

 

우선, 오기의 학교나 이웃 사이에서 겉으로나마 당연히 여겨졌던 일, 장애인이라고 오래 쳐다보거나 놀려서는(보고 놀라는 일조차) 부도덕하게 여겨지는 일,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대놓고 면전에서 혀를 끌끌 차거나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리는 사람이 있어도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지 스스로도 모르고 남들도 지적하지 않는다. 물론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그런 짓을 해도 뭐 어때?’ 할 수 있을 만큼 뻔뻔한 사회가 우리 사회다. 학교는 더하다. 내가 남중에 근무해서 그런지 몰라도 남자중학생들은 상대방의 치부나 약점을 대놓고 공격한다. 약점이 없어도 남다르다는 점만 가지고도 놀리고 물어뜯는다.

 

둘째, 지혜로운 교사들 특히 교장의 도움이 눈에 띈다. 이 학교 교장의 모습은 권위주의도 없고 친절하고 지혜롭다.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줄 아는 눈도 있다. 한국의 교장이 아이들 사이의 관계를 헤아릴 수 있으려나? 만약 오거스트같은 장애아가 학교에 들어오려 하면 온갖 핑계를 대며 입학을 거부할지도 모른다.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그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학생부 교사나 담임교사에게 신경써서 잘 돌보라고 지시는 할지 모르지만 교장 스스로가 아이 손을 잡고 격려하거나 직접 대화를 나누려 할까 싶다. 수련회 야외 영화관에서 교장이 아이들과 같이 앉아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를 보는 장면을 보고 조금 화가 나기까지 했다. 학생들은 수련회에 가서 학교가 텅 빈 23일 동안 단 하루도 학생들 수련회장에서 잠 한 번 자지 않은 교장, 그렇게 8년을 근무하다가 퇴임한 교장은 늘 교사들에게 임장지도를 지시했다. 1,2,3학년이 모두 다른 장소에서 수련활동을 벌이면 하루씩, 또 다음 해에는 또 다른 학년의 수련회장에 교장이 가서 임장지도하는 것이 맞다.

셋째, 다양한 학교 프로그램이다. 프로젝트 식 수업을 통해 직접 뭔가를 해봐야 하는 활동 말이다. 오기와 친구들은 늘 투덜거렸지만 이집트가 주제였을 때에도 과학발표 대회 때에도 할로윈 축제 때도 아이들은 뭔가를 준비하고 발표하고, 또 그 자리에는 부모나 가족도 함께한다. 하지만 발표 준비를 할 때 부모가 대신해주거나 학교에 입김을 불어넣지는 않는다. 오기의 친구인 잭과 감자 전지를 과학발표의 주제로 삼아 끙끙대는 모습이 낯설다. 우리도 수업 중 수행평가도 하고 성과물을 내지만 저렇게 주제를 가지고 일정한 기간 준비해서 페스티벌처럼 발표하는 형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물론 요즘은 자유학기제나 혁신학교 수업에서 그런 활동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리고 무엇이든 제도만 들여와서는 알맹이 없이 부담과 부작용만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넷째, 오기의 지혜로운 부모. 그토록 지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참을성 있는 부모를 쉽게 만날 수 있을까. 진심으로 자기 아이를 사랑하는, 그러면서도 우울하지 않다는 게 더욱 미덕이다. 오기의 누나나 심지어 누나의 남친, 초등학교 때 친구들조차 모두 오기 편이다. 물론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오기의 성정이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워서도이지만 아무리 좋은 성정을 지녔어도 외모가 주는 불편함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은 오기의 가족이나 이웃들이 모두 마음의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적인 것일까, 그 가족의 특수함일까. 그런데 잭이나 서머, 심지어 처음에 오기를 놀렸다가 나중에 친구가 되는 아이들을 보면 다시, 이것은 어떤 사회 문화적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재미있게 읽혔다. 줄리안이나 에디처럼 오기를 괴롭히는 악동들이 악역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치명적이고 극적인 악인도 별로 없고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다. 오기네 개가 죽은 것이나 다른 학교 7학년짜리들과의 격투 장면 정도가 나오지만 내가 30년 가까이 남중에서 보아온 사건들보다 더 드라마틱하지도 않다. 그래도 재미있다. 뻔히 보이는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은 헐리웃 영화처럼 미국스럽기도 하다. 소설과 현실은 다르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런 소설을 읽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좋다. 사람들은 대체로 그악스럽고, 나쁜 문화가 더 영향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예의에, 좋은 사람들의 영향력이 덧붙여지면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걸 확인할 때가 있지 않은가.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철부지에 악동들이 많았지만 돌아보면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었던 아이, 손 하나가 아예 기형이라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아이, 얼굴 한 면에 반점을 달고 살아야 했던 아이를 대놓고 놀리는 아이는 없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 남자아이들은 튀게 행동하는 아이를 어떻게든 면박주고 골려먹고 싶어 하면서도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아이들의 특성을 잘 헤아리고 어른의 지혜를 덧붙이면 대한민국에서도 장애아들이 상처 없이 살아갈 수 있는(적어도 학교 다닐 때만이라도) 대안이 찾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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