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 - 문학의 비밀을 푸는 20개의 놀라운 열쇠, 개정증보판
정여울 지음 / 메멘토 / 2013년 5월
평점 :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
이 책은 짐작컨대 정여울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문학을 가르칠 때 사용한 강의록을 풀어쓴 것 같다. 문학을 접근하는 키워드를 이렇게 다양하게 볼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한편으로는 중고등학교의 문학(국어) 수업도 이렇게 주제별로 접근하면 좋겠다는 부러움도 있다. 중고등학교는 공통교육과정으로 설정된 교육과정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텍스트를 제시해야 하다 보니 주제 선정에 교사가 개입할 여지가 적다. 텍스트에 대해서는 제7차 교육과정이 비교적 자유롭게, 다양한 자료들을 활용하라고 권장하지만 공교육 현장에서 그럴 배포를 지닌 교사는 많지 않다고 봐야 한다. 대개는 ‘교과서’를 벗어나지 못한다.
정여울이 예로 든 문학작품들은 사실 매우 보편적으로 읽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국문과 학생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만약 교양과목으로 문학을 듣는 학생들이라면)이 이 작품들을 다들 읽고 수업에 들어올까 싶다. 하긴 이와 같은 현상은 중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온전히 읽을 시간은 없고 작품에 대한 해설만을 배우는 현실이다. 그래서 어떤 국어교사는 일부러 설명 없이 2,3시간 동안 작품만 읽히는 경우도 있다. 나 역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우상의 눈물>, <마지막 거인>, <행복한 청소부>같은 작품, 혹은 일부이기는 하지만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읽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도 한다. 1시간 동안 여러 작품의 해석을 듣는 것보다 2시간 동안 한 작품을 오롯이, 스스로 읽는 것이 더 소중할 때가 많다.
정여울이 제시한 키워드들은 나의 학생들과 문학 공부할 때도 염두에 둘 만하다. 금기, 슬픔, 정체성, 죽음, 사물과의 교감, 패러디, 시점, 의인화, 은유와 환유, 상징, 아이러니, 알레고리, 트릭스터, 악인, 기억상실증, 공간, 날씨, 음식, 환상, 트라우마, 통과의례, 자기 정체성, 재앙, 러브스토리 등등이 그것이다. 이 중 중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시점, 비유와 상징, 시공간적 배경 정도를 가르친다. 최근에는 패러디 시 혹은 소설 쓰기 수업도 가끔 등장하기도 한다. 나는 해마다 ‘자기 정체성을 주제로 시 쓰기’, ‘내 상처 수필 쓰기‘를 하고 있는데 이는 문학수업으로써보다는 문학을 자기성찰의 도구로 쓴다는 의미에 방점을 찍은 수업이다. 앞으로 ’슬픔, 정체성, 죽음, 사물과의 교감, 트릭스터, 악인, 기억상실‘과 같은 소재들을 문학수업에 활용할 만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여울의 관점에서 신선하게 받아들인 점들을 모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A.I.> 는 피노키오의 강도 높은 패러디’라고 했는데 영화를 본 입장에서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고등학교 때 읽어서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위대한 개츠비>는 주인공이 아닌 이웃 닉의 시점으로 신비롭고 난해하게 묘사했다고 하는데, 보통 교과서에서 소설의 시점을 1인칭 주인공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 3인칭 관찰자 시점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이렇게 네 가지로 가르칠 때 학생들이 많이 하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예시자료가 될 것 같다. 학생들은 ‘왜 2인칭 시점은 없느냐’ 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럴 때 나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예로 들곤 했다. 사실상 다자 시점이고 ‘나’를 ‘너’로 바꿨을 뿐이긴 하지만 어쨌든 서술자를 ‘너’로 부름으로써 ‘2인칭 주인공 시점’을 취하고 있는 드문 소설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일종의 관찰자 시점으로써 흔치 않은 사례가 될 것 같다.
다음은 정여울이 제시한 은유법 문장들인데 이것 역시 수업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적 표현에서 은유를 찾아보면 시험에 많이 나오는 표현법으로써의 비유나 별로 즐겨 읽지 않는 시에서 나오는 비유로써의 따분함을 벗을 수 있을 것 같다. 가령 모둠 친구들과 ‘다음 문장에서 은유적인 부분을 찾고 원관념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이런 활동을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배가 시야로 들어오고 있다(공간으로 비유)
그는 어떻게 그 일에서 벗어났을까?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어제 너 때문에 정말 열 받았어.
너에게 짐을 떠넘겨서 미안해.
그녀는 뚜껑이 열렸다.
그는 그릇이 큰 사람이야.
꼭대기(높은 지위) 밑바닥(삶의 저점) 반쪽(배우자)
교육과정에서 ‘대유법’ 혹은 ‘상징’으로 가르치는 ‘환유 metonymy(속성이 비슷한 다른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활동도 재미있을 것 같다. 아이들이 많이 쓰는 환유를 만들어 보라고 하면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 용어같은 것들이 등장하지 않을까? 가령 ‘경희중학교(내가 근무하는 학교 이름)는 롤(L.O.L 중학생들이 좋아하는 게임 이름)의 성지이다’, 이런 식으로?
그 빨강머니는 정말 정열적이야.
근사한 포드를 샀어.
지하철은 파업 중이다.
부시가 이라크를 공격했다.
광주는 역사의 대격변을 예고했다.
요즘 학교교육에서 부족한 측면 중 하나가 ‘슬픔, 죽음, 부끄러움, 두려움’에 대한 교육이다. 나는 문학수업의 목표를 설파할 때 ‘공감능력’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가장 인간적인 요소 중 하나가 ‘슬픔, 염치, 부끄러움, 두려움’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사춘기 남자 중학생들이 갖고 싶은 일반적인 정신적 가치는 ‘대담함, 강함’이다. ‘슬픔, 염치, 부끄러움, 두려움’ 들은 그들이 갖고 싶은 가치가 아니다. 성장과 경쟁, 성공과 성취를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부끄러워하는 일을 ‘약한 일’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염치나 부끄러움, 슬픔이나 연민같은 것들이 얼마나 인간적인 가치인지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