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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사연들 - 내가 모르는 단어는 내가 모르는 세계다
백우진 지음 / 웨일북 / 2018년 12월
평점 :
만일 여러 개의 삶을 살 수 있다면, 하나의 생은 아름다운 말을 엮는 시인이나 소설가로 살고 싶다. 문학은 쉽게 밥이 되진 않지만 영혼의 근원을 탐구하는 사람에게는 종교나 예술을 대신할 게 있을까 싶다. 이 생은 현실에 허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교사가 되어 행복하게 살아보았으니 불만은 없다만 그래도 저 깊은 심연에, 내 안에, 근원을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듯하고, 그것을 끝끝내 만나거나 드러내지 못하고 이 생을 마칠 것이라는 아쉬움 또한 버릴 수 없다고 고백하는 바이다.
만일 여러 개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아니 적어도 좀 더 건강하거나 시간이 많거나 열심히 살 수 있다면 우리 말 공부, 말의 근원에 대한 공부, 아름다운 글을 필사하며 필력을 키우는 공부, 어려서부터 일찌감치 시작한 이방의 언어로 그 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문학작품 읽기, 이런 공부를 해보고 싶다. 그런 공부를 하는 목적이 아름다운 글을 쓰기 위해서라면 최고로 좋고, 아니면 말의 아름다움을 연구하는 연구자로 살아도 좋을 것이다.
그나마 나는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소년들에게 가르치는 교사로 살면서 ‘언어’로 삶을 유지한다. 이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목숨을 부지하고 삶의 품위를 유지한다는 것. 삶과 정신이 따로 놀지 않는 것은 축복이다. 다만 열너댓 살 먹은, 글보다는 축구공을 더 사랑하는 소년들에게 아름다운 말과 그 말들의 힘을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다. 쉽지 않고 단순해서, 반복적이어서 좋은 점도 물론 있다. 쉬운 시를 통해서도 시의 아름다움을 가르치고, 심오하지 않은 글들로도 좋은 말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건,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 무릎을 꿇고 꼬마들이랑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노는 한낮의 놀이터 풍경처럼 단순한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을 30년 간 충분히 누리고 살아왔다. 다만,
이 책처럼, 세상에 재미난, 아름다운 많은 말들이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하는 책이나 시나 글을 만나면 그런 아쉬움을 느낀다. 이제 나의 소년들은 이런 말들을 만날 일이 없을 텐데... 이들은 이런 말들을 모르고도 잘 살 것이며, 그리하여 결국 이런 말들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인데... 하는 아쉬움. 왜 그런 말들을 가르치지 않느냐고? <유리알 유희>도 아니고, 쓰임이 없이 아름답기만 한 말들은 가르칠 이유가 없다. 나의 개인적 철학으로도 삶에 기여하지 않고 단지 아름답기만 한 ‘무용한 아름다움’의 허무함을 사랑하지 않는다.
허무하기도 하지만 아쉽기도 한 이런저런 생각으로 한 권을 관통하고 난 후, 현실주의자인 나는 이 재미난 책 <단어의 사연들>에서 잘 살려 중학생들에게 가르쳐 보고 싶은 것들만 한 번 추려보았다. 그래, 나는 저 말들을 공부해 아름다운 시를 쓰는 삶보다 어린 소년들과 재미나게 우리말을 살려 쓰는 공부를 해 보련다. 우주 너머 5차원을 통과하며 다른 삶은 그 때 살아보기로 하고.
어미나 접미사 공부하기 좋은 말
* 깨비(주변적 존재들)로 끝나는 말 – 도깨비 허깨비 진눈깨비 방아깨비
* 라기 – 지푸라기 보푸라기 실오라기
* ~미다 – 여미다 스미다 저미다 꾸미다
* 슬 – 서슬 사슬 벼슬 이슬 구슬 윤슬(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물비늘)
* ‘울’로 끝나는 단어 – 거울 겨울 망울 멍울 방울 시울 저울 개울 여울 너울 허울 기울 터울
* 스름(조금이라는 뜻) -거무스름 가느스름 구부스름 기우스름 꼬부스름 납작스름 발그스름 파르스름
어스름 – 조금 어둑한 상태나 때
으스름 - 침침하고 흐릿한 상태
다스름 – 국악기 연주하기 전에 짧게 연주하는 것
* 가리 = 대가리 쪼가리 노가리 멋대가리 낟가리 볏가리 왜가리 쏘가리
우리말의 풍부함(형용사적 표현의 다양성) 공부하기 좋은 말
* 배고픈 정도 – (입이) 궁금하다 - 구준하다 – 출출하다 – 시장하다 – 배고프다 – 허기지다
* 의태어 - 꺼덕 덥석, 갸우뚱 기웃기웃 방긋 촐랑촐랑 들썩 헐레벌떡 엎치락뒤치락 붉으락푸르락 알록달록 울긋불긋 반짝반짝
* 준첩어(첩어에서 한 글자가 바뀐 단어)-가시버시 갈팡징팡 곰비입비 그나저나 그럭저럭
눈치코치 뒤죽박죽 들락날락 들쭉날쭉 아기자기 아등바등 아롱다롱 알쏭달쏭 아옹다옹 안달복달 알콩달콩 애면글면 어리바리 얼기설기 이나저나 이도저도 이런저런 흥청망청 곤드레만드레 미주알고주알 어중이떠중이 흥이야항이야 휘뚜루마뚜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