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커트니 비룡소의 그림동화 29
존 버닝햄 글.그림, 고승희 옮김 / 비룡소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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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여기 등장하는 커트니는 '그 개가 온다'의 '개'와 많이 닮았다. 여유있고 재주 많고 아이들을 사랑한다.

둘째, 여기 등장하는 커트니는 그러고 보면 늙어가는 우리 부모의 모습 같기도 하다. 그렇구나. 그 세월이 다 인격에 반영되기만 하진 않을지 몰라도 나이듦이 대체로 사람을 지혜롭고 여유있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냄새나고 늙어 쓸모없다고 뒷전 취급받기 일쑤이다. 그 늙은 모습을 경제성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사랑해 줄 수 있는 것은 어린 아이들, 아무리 멸시와 구박을 받아도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희생할 수도, 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길 줄도 아는 것이 지혜로운 우리 어버이들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하고 쉬운 글 속에서 진정 삶을 깊이 바라보는 눈을 발견하듯이 남들은 그저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라고 부르는 책 속에 이러저러한 삶의 통찰을 담은 존 버닝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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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날 한 마리 개는
가브리엘 벵상 지음 / 홍성사 / 199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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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이미지도 안 뜨고 작가 이름도 안 나오는 이유가 뭘까? 이 책은 모니끄 마르땡이라는 벨기에 작가가 그린 크로키 북이다. 엄밀히 말하면 무작위적인 크로키 작품들을 모은 것이 아니라 한 개의 여정을 따라 노출을 길게 하여 한컷 한컷 찍어 모은 듯한 이야기가 있는 스케치북이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하듯 그림을 함께 보며 공감의 감탄을 불러야 할 터인데 글로는 그 재미와 아름다움을 충분히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이 책의 그림의 마구 급히 그은 듯한 선 중 단 하나라도 허투루 쓰인 것이 없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고즈넉한 그 한 장면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기를 좋아하겠으나 이 사람의 작품은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는 영화적 속도감과 선의 예술성과 버려지고 달려가야만 하는 개의 움직임과 표정 속에서 배어나오는 감성까지 다 즐길 수 있다.

단지 연필로만으로도 이렇게 그릴 수 있다니. 색채가 없어도 좋으니 평생 무채색으로만 그려도 좋으니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줄 수 없어도 좋으니 나도 이런 스케치북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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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루스 노부스 진중권 미학 에세이 2
진중권 지음 / 아웃사이더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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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루스 노부스 - 그 근대적인 절망적인 무력한 천사의 모습. 한없이 고매한 영혼을 지녔으며 지적으로 성숙하고 감성적이기까지 하나 어딘가 멜랑꼴리한 그 천사, 머리가 유난히 큰 그 천사의 모습... 그 순하디 순한 모습에 우리의 독설가 진중권의 모습이 겹쳐지는 이유가 뭘까...

그는 팔팔하고 독설적이고 그리 비감해 보이지 않는데도 유순하기 짝이 없고 오히려 아름다움에서 멀어 보이는 이 천사의 모습이 진중권을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혹시 몸이나 날개에 비해 큰 그 머리 때문이 아닌지...

이런 말들이 저자를 비웃는 말처럼 들릴 것 같지만 사실 진중권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이다. 그의 미덕은, 남들이 폼잡고 강단에서나 나불거리려 하는 '미학'을 거품 빼고 사람들한테 낮은 상에 먹음직하게 차려 주었다는 것. 미학 오딧세이를 읽으면서 그 전 숱한 미학 어쩌구 하는 개론서들에게서 느꼈던 배신감, 자괴감 들에게 통쾌하게 엿먹였던 기억이 난다.

그의 쉬운 미학은 열심히 모순들과 맞서려 드는 그의 열성과 맞물려 하나의 모델이 된다. 주류를 형성하진 않지만 그런 모습이 어떤 역할을 하고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뭐랄까, 미학 오딧세이가 대학 시절 입맛과 영양에 딱 맞았던 너무 맛난 기억 때문일까 아니면 그새 또 내 머릿속에 어설픈 미학 어쩌구 들이 들어와 입맛이 나름대로 다양해져서 그런가, 아니면(이것이 진실이 아닐까?) 그가 마감에 쫓기거나 글을 빨리 쓸 욕심에 이전에 생각해 둔 혹은 메모해 둔 이러저러한 생각거리들을 모양이 되는대로 주제별로 엮어 썼기 때문일까(그가 아니라고, 책 읽은 당신이 내가 한 소릴 알아듣고 정리할 기본교양이 안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여 준다면 뭐 그냥 받아들이지 뭐), 그의 글들은 도대체 어떤 줄기를 가지고 모아지고 엮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대 순인가? 그 중 언급할(하고 싶은) 주제들을 모아 보았나?.... 내가 보기엔 신들린 듯 공부하던 시절에 그의 머릿 속에 떠오르던 수많은 의문과 정리된 바들의 집약이 아닌지.... 그림들, 그리고 양장본의 특이한 판형... 들고다니면 폼나는 이 책, 게다가 제목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으면 뭔 뜻인지 알 수 없는 '앙겔루스 노부스'....

나는 그림 보는 재미로 끝까지 읽었다. 물론 디오게네스 이야기는 참 재미있었다. 역시 진중권 말빨은 참 '쥑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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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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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헌 회장이 자살한 다음날, 연세 많은 분들이 어두운 얼굴로, 그이가 왜 죽었을까, 하고 물음 아닌 물음을 던졌다. 평소엔 남 말들에 참견하지 않던 내가 그날따라, 왜, 살다보면 딱히 어떤 이유가 없어도 죽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요, 했다. 정말 다시 생각할 때마다 대꾸할 필요도 없었고 하나마나한 대답을 했구나 싶다.

사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세 가지가 있는데 서로 아무 연관도 없는 것들이다. 첫째, 베로니카는 내 친구가 내게 붙여준 이름이다. 비참하게 순교하지도 않았고, 그림을 좋아했다기에 내게 준다는 성녀의 이름.그 이름은 저쪽 동네에서 아주 흔한 이름인가보다. 둘째, 푸른 빛의 표지가 좋았다. 셋째...

그런데 내용에 대한 아무런 이해도 없이 읽기 시작한 첫 대목에서 나온 베로니카의 자살 시도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특별히 자살할 만한 이유를 갖고 있지 않았다. - 물론 답은 나중에 제드카라는 여자가 말해 주지만,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아서, 가 답이란다. 그렇게 너무나 뻔해 보이는 삶의 공허감이 자살의 이유일 수 있다면 너무 사치스러운 걸까. 난, 특별한 부족함이 없이도 그저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 내가 열렬히 사랑하는 것들이 그것들에 대한 나의 지나친 근심과 애틋함이 날 죽고 싶어 하게 만드는 경험을 하곤 하는데...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는 두 미친, 아름다운 남자와 여자, 에뒤아르와 베르니카... 잃을 게 없는 사람은 오히려 하루하루를 기적으로 여기며 열심히 살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 잃을까 두려워 죽고 싶은 마음과는 또 다른, 그 극과 극...

언젠가 신문에서 에이즈에 걸려서 그야말로 해골 위에 가죽만 살짝 씌운 것 같은 환자가 휠체어에 앉아 병원 문 밖으로 나가는 사진을 보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저런, 저렇게 살아가느니 죽고 싶겠네, 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 그 땐 살아있어서 얼마나 좋을까, 저 사람, 그렇게 생각했다. 살아있다는 것은, 죽음이 살아남은 자들에게 무게가 되듯이, 힘들어도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나, 당신들을 사랑하기에 죽고 싶어도 참고 산다,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나 잃은 아픔을 주고 싶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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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네 또 내리네 엄청 내리네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동무 5
호세 쎄르메뇨 지음, 아비 그림, 남진희 옮김 / 우리교육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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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제목을 보고는 엄청 내린 눈 속에 터널이라도 뚫고 노는 신나는 아이들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내 상상력의 빈곤함인가, 아님 제목달기에 문제가 있는 걸까) 그런데 눈이 문제가 아니고 색깔이 문제였다. 눈으로 무채색이 되어버린 세상에 아이들이 새 세상을 칠한다는 내용이다. 하얀 오로지 하얀 그 세상을 못 견디겠었는가? 그러고 보니 북극 곰 티모 이야기가 떠오르는구나. 하지만 티모는 사시사철 흰 빛만, 그것도 따스한 눈의 빛이 아닌 얼음의 빛을 보고 살아야 했던 까닭에 상상으로 오색찬한한 꽃세계를 꿈꾸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지은이가 스페인 사람이라는데 어쩐지 빨간 잔디밭이며 보라색 소나무 따위가 가우디의 건축물을 연상하게 하는 건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그들의 기질과 상관있는 문제일까...

눈은 눈대로 아름답지만 한번쯤 아이들만의 새 세상을 만들고 싶은 뜨거운 열망을 상상으로라도 실현해 보는 즐거움이 이 책 속에는 있다. 아아, 나도 이 황막한 서울이란 도시를 새 종이 속에 어여쁘게 다시 그려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을 때가 있다. 다만 내 솜씨와 감각과 기능적 수준이 과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서울을 살 만한 곳으로 다시 만들 수 있는 정도가 되는지 그 답은 자신있게 '예'가 되진 않을 것 같다만. 그래도 상상은 여전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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