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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 내 인생의 전환점
강상구 지음 / 흐름출판 / 2011년 7월
평점 :
최근에 플라톤도 읽고 묵자도 읽고 중구난방이지만 고전을 듬성듬성 읽고 있지만 뭔가 옳은 소리를 하는 책을 읽고 싶지 '혐의'가 보이는 책은 뒤로 미루게 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그렇게 미뤄지다가 최근에 내게 읽힌(?) 책이었고 나름 오해를 풀며 다가가게 된 책이었다면 손자병법도 그런 이유로 (아니 게다가 병법서니까) 아마도 이 생 전체에 걸쳐 읽을 책 목록에 아마 제일 뒤쪽 어디 있을 법하게 홀대받았던 책이었을 듯 싶다.
서점에서 이책저책 뒤적이다, 직장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다가가는 생의 전략서인 듯 광고를 하길래 흥미를 가졌다. 머리 아플 때 읽으리라 하고 집어든다. 역시나 나는 학교에서 동료들과 아이들을 대할 때의 여러 상황들에 적용하면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인생을 통틀어 전쟁이라 보고 주변 사람들을 동료 장수, 내가 다스려야 할 병사, 혹은 적병, 적의 장수, 적의 군주로 바라보는 '색안경'을 일단 끼고, 내가 접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이 전쟁 상황이 된다. 이건 결코 마음이 편한 상상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내 인생관에도 맞지 않는다. 그러나 늘 고민하는 일이지만, 인생이 내가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이 '몽상'이 되지 않으려면 현실감각이 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상주의자들은 그들 몫이 있다. 그들이 있어 세상이 더러워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아준다는 것, 인정! 게다가 그들 삶의 안락함을 담보로 하여! 대개는 고결한 삶을 살다'가는' 그들을 존경하면서도 또 한편 이 진흙탕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멋진 전략이 절대 필요함 또한 인정! 그것은 전투일수도 있도 정치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사랑하는 것조차 전략이 필요한 전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순수한 이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이 귀한 만큼 그들의 이상을 뒷받침해줄 현실주의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런 현실적 감각을 지니고 살고 싶은 까닭에 조금 지저분할지 몰라도 현실이라는 전쟁과 전투 속에서의 나를 상상하고 내가 갖춰야 할 지략과 비법이 조금이라도 이 책에 숨어 있나, 찾아보려 한다.
나의 학생들은 나의 병사가 결코 아니며 비록 내가 불편해 하더라도 교장, 교감은 적이 아니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책을 덮기는 했다. 학교가 전쟁터가 되어, 학부모를 구스를 수 있는 전략을 잘 알아야 하고 학생들을 엄히 다스릴 줄 알아야 하며 교장교감의 억지논리와 맞서 싸울 수 있어야 하는 현장이라면 지금 이 땅의 교사, 지금 학교 현장에 몸담은 나는 얼마나 비참한다. 그리고 여기서 소위 '승리'를 얻은들 그 얼마나 알량하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학교가 '사랑의 학교'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대개 사랑의 학교라는 말 안에 무수한 학생들의 희생과 방종, 교사들의 침묵과 굴종, 학부모들의 욕심과 주눅듦, 관리자들의 야망과 체념이 숨어있기 때문에 그 말이 순수하고 아름답지 않을 뿐이지, 말 그대로라면 학교는 사랑이 넘치는 학교여야 맞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도 모르게 이 책을 치열한 전투현장, 학교에 적용해 읽고 있었다. 가령,
형벌은 높은 사람에게, 상은 낮은 사람에게... 라는 구절이 있다. 지혜로운 군주나 장수라면 이렇게 할 터이지만 고래로, 지금 현재 어느 나라에서나 아마도 대개의 지도자들은 거꾸로 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전략이 아니라 공정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를 칭찬하는 게 맞고 상을 주는 게 맞겠지만, 이미 출발부터 다른 아이들을 놓고 상과 칭찬은 결코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다. 성적이 바닥이던 아이가 힘겹게 오르는 자기 성적표의 고성에서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낮은 사람'이란 지위와 책임을 말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교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관리자들은 일반적인 지도자들처럼 부장교사들에게 당근을 주면서 일반교사들을 '다스리고' 싶어 한다. 평교사들은 부장교사와 평교사의 관계에 대해 부장교사를 '상급자'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지로 승급이나 승진의 개념도 아니다. 하지만 위화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던 평교사도 자신이 부장교사가 되면 사람들 위에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그 애매한 지위가 흔들릴까 불안해 하기도 한다. 그것을 관리자들은 이용하기도 하고. 하지만 어떤 젊은 교사의 말대로, 교장이든 교감이든, 앞으로 그런 관리자의 길로 나아갈 부장교사이든, 그들이 관리자가 될 '미래'에 함께 손잡고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후배교사'들이고 동료교사들이다. 윗사람이 아니라. "당신 교감될 때 윗사람들 다 나가고 없어~! 후배들 마음 헤아리고 상처받지 않게 잘 하시라~!"
사정이 급하면 상벌을 남발한다. 라는 구절이 있다. 이 대목을 읽고 많이 웃었다. 물론 그 상벌은 역시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상벌에 연연하지 않는 분위기(받는 사람들이)야말로 태평성대인지도 모른다. 상은, 받는 사람은 기쁠지 모르나 사실 그 안에 상을 받지 않은 사람(특히 받고 싶어 했고 자신이 그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받는 상은 벌이 될 수도 있다)을 아프게 하는 전략도 내재되어 있다는 면에서 벌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지도자들은 이것을 무기로 쓰기도 한다. 교사들도 칭찬과 훈육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기술적으로 잘 쓰라고 배우고 있지만 상도 벌도, 누군가에게 다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깊이 헤아리지 않는다면 몇몇에게는 좋은 선생님일지 몰라도 많은 아이들에게 아픈 교사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때론 칭찬이 받는 이에게도 못 받는 이에게도 모두 독만 될 수도 있다.
잘 싸우는 장수는 불친절하다.라는 구절이 있다. 내가 이 구절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다만 내 경우에 이렇게 적용해서 반성을 해보긴 했다. 나는 대체로 친절한 교사라는 평을 듣는다.(엄격한 동료교사들이 그런 부분을 불편해 한 적도 있었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서 엄격하고 때로는 폭력을 통해 아이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동료교사들을 '비교육적'이라고 못마땅해 한 적이 많다. 하지만 요즘은 과연 친철함과 깊은 이해가 반드시 아이들을 발전시키기만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한다. 엄마같은 마음으로 안쓰럽게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미처 아이들의 진면목(사실은 매우 성숙할 수도 있고 사실은 매우 사악할 수도 있는)을 못보고 어리고 여리고 착한(지금은 잘못을 저질러도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가르치면 잘할 것이다,) 아이들이라고 순진하게 잘못 판단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한다. 아이들은 악마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다. 교육으로 그들이 좋아지고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 선에서 아이들을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냉철하게(100% 그런 건 있을 수 없겠지만) 판단하고 잘 키울 수 있어야 하는데 때로는 지나친 엄격함만큼이나 지나친 배려와 이해가 그것을 가로막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특히 예체능 교사들 중에 아주 엄격한 교사들을 많이 보면서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때로는 깊은 사랑이 깔린 엄격함은 아이들을 강하게 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이해는,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와 다른 교사들에 대해 폭넓게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지 결코 나의 교육방식이나 내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겠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내가 배려와 칭찬 속에서 더 잘할 수 있는 학생이었던 것처럼, 푸근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즐거워서 더 많이 배우고 싶게 만드는 따뜻하고 친절한 교사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위엄이 있되 사납지 않고, 분노하되 화내지 않으며, 근심하되 두려워 않고 즐겁되 기뻐하지 않는다. 라는 구절이 있다. 와, 이건 정말 멋진 표현이다. 교사나 부모의 미덕 중에 '엄격함'도 있다. 아무리 자애로운 부모라도 엄격할 땐 엄격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의 권위도 그렇다. 늘 다정한 선생님이지만 원칙에 어긋나거나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한결같은 기준으로 엄격해야 한다. 엄격하다는 것이 무섭고 사납다는 뜻은 아니다. 아이들이 큰 소리를 지르고 매를 들고 욕을 하는 사나운 교사나 부모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아니다.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흔들리지 않고 훈계를 하거나 약속을 지키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교사나 부모가 저 경지가 되려면 보통 인간은 아니다. 일반적인 사람 중에 평생을 갈고 닦아도 저런 경지에 완벽하게 이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변의 훌륭한 사람도 그렇고. 하지만 적어도 스승이고 부모이려면 제자나 자녀들에게 저 비슷하게는 보이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교무실에서 아이를 야단칠 때 야단을 쳐야 할 때인데 짜증을 내고 있는 교사가 있다. 그 짜증이 듣기 싫어서 그런 행동을 덜 할지는 모르겠지만 '교육'은 되지 않는다. 물론 무섭게 화를 내면서 야단을 치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무서워서 조심을 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행동이 달라진다면 그건 교육이 아니라 '사육'이다. 효과라는 면에서는 그런 것도 필요할지도 모른다.(요즘 학교폭력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류의 엄격함도 때론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실 병사를 지휘하거나 짐승을 사육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학생과 자녀를 가르치는 사람들이니까.
맹목적으로 따르게 만들어라.라는 구절이 있다. 매력 혹은 신뢰? 삿된 방법으로가 아니라면 마음으로 알아서 따르게 만드는 것은 사실 가장 큰 능력일 수 있다. 본문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 이익, 위엄, 명분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만약 장수나 교사나 부모가 마음으로 철저히 따르게 만든 뒤에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춰 다가간다면 최고의 만남이 될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익이 없어도, 명분이 없어도 함께 움직여야 할 때도 많다. 하기 싫은데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능력일 터이다.
<육도> 장수의 결함 10가지가 나온다.
1. 용맹하지만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자
2. 매사에 급히 서두르는 자
3. 돈을 좋아하는 자
4. 마음이 약해서 다른 사람을 혼내지 못하는 자
5, 지혜롭지만 겁 많은 자
6. 스스로 신의가 있다고 여겨 남의 말을 잘 믿는 자.
7. 스스로 깨끗하다고 여겨 다른 사람을 챙기지 않는자 (이런 자는 누명을 씌워도 누구 하나 변호하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8. 똑똑하지만 결단력이 부족한 자.
9. 자기 고집만 내세우는 자(이런 자는 띄워주면 좋아한다.)
10. 나약해서 남에게 모든 일을 맡기는 자.(속이기 쉽다)
나에게 해당되는 내용도 몇 있는 것 같다. 아니, 나 자신은 부인하고 싶겠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그렇게 볼 수 있는 면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체크리스트로 삼아 읽어 보았다.
손자병법 안에 비겁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한다. 영화나 소설 속 장수처럼 자기가 죽을 것을 뻔히 알고 돌진하거나 적의 왕에게 기개 좋게 호통을 치는 모습 대신, 때로는 후퇴하고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전략을 구사한다. 내 옆에도 자기 입으로 스스로 '비겁'이 교육철학이라고 말하는 동료교사가 있다. 물론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농담만은 아니다. 교장이 부당한 지시를 내릴 때 그는 교무실에 와서 몹시 괴로워했지만, 그에게 저항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자신은 떳떳하다고 말했다. 왜냐면, 생존이 걸린 문제니까.(뭐, 좀 대든다고 학교에서 쫓겨나진 않지만 앞으로 당분간 혹은 오래도록 학교에서 괴로운 일을 많이 당하겠지.) 가장으로서 자신의 행동은 떳떳하다는 항변이다. 칼자루 쥐고 있다고 우리를 함부로 대하는 저들이 잘못이지 목숨을 지키기 위해 침묵하는 내가 비겁한 건 아니라는 논리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다. 나라면 불이익을 감수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겠다. 하지만 정말 목숨이 걸린 문제라면 다를 수도 있다. 또, 굳이 싸울 필요가 없는 문제에 대해 핏대를 올릴 필요도 없다. 또, (아까 말한대로) 교장은 반드시 '적'은 아니므로 그와 오래 공존하기 위해 적어도 서로의 자존심에 상처가 날 사태는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이 정도를 전략이라고 말한다면 전략도 필요하다. 또 정말 큰 싸움을 위해 작은 싸움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 여기까지 써놓고 사실 좀 반성이 된다. 사실은 내 마음 속에 위의 사항들을 되새기려고 스스로 많이 애쓰지만 난 교장이 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고 언성 높이고 싸울 때가 많다. 싸울 수밖에 없다면 지혜로운 싸움을 하고 싶고, 성과를 얻어 내는 싸움을 하고 싶고, 싸워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적을 죽이지 않고 상처 입히지 않고 무릎 꿇게 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턱없이 부족한 나의 그릇이 알량한 정의감 혹은 자존심 때문이라면 손자병법의 '비겁의 철학'은 배울 필요가 있는 꽤 유용한 전략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