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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말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입 밖으로 내 놓은 말이 생각 혹은 영혼을 그대로 그려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혹은 마음 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담고 있어서 말이라는 작은 그릇으로 옮겨 담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극히 희박한 희망을 가져보다가, 그것이 한 생에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대로 떠날 요량이다. 물론 서로 다른 세계의 말을 할지라도 한 음절만으로도, 쉼표만으로도 전파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가끔 만나지기도 하기에 그런 만남을 위해 시를 쓰기도 한다. 대체로 이승의, 저잣거리의 말들은 너무 날것이거나 혹은 다 거짓인 고로 차라리 말을 않고, 아니 그저 듣고만 살려 드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작가는 자기 자신이 이 생활 속에서 말로는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자로서 또 다른 세계 속에 속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했을지도 모른다. 가장 이해가 잘 되고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모국어 속에서 그런 답답함을 느낄 때, 우리는 때로 외국어로, 외계어로 도망간다. 시도 일종의 외계어다. 영적인 세계에 속하는 말.
소설 속의 그 여자는 상처 때문에 말을 잃어버린 사람이지만 아마도 어떤 달변도 삶의 고통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절망을 여고시절, 그리고 아이를 잃은 지금, 느꼈을 것이다. 말은 아무 소용이 없는 존재이다. 그녀의 크나큰 절망을 표현해 줄 수단도 되지 못한다. 실어는 병이겠으나 왠지 이 작품 속의 그 여자는 일부러 그것을 선택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녀는 희랍어로 도망쳐 들어간다. 지금 이 세상에는 이미 죽은 말. 말로는 쓰이지 않는 언어. 글만 남아 있는 언어. 때로 시인이나 소설가는 말로는 되지 않는 소통을 글로는 이루어 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부러 모국어의 음성을 버리고 사어의 행간으로 자기를 숨기려드는 이 여자는 작가의 페르소나 같다.
희랍어 강사인 그 남자,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사람이지만 그에게는 오래 모국어를 쓰지 못하고 이국에서 생활해야 했던 이력이 있다. 그러고 보면 그도 모국어로 시원하게 소통을 해 본 날들이 삶에서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랑은 늘 벽에 부딪친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소통하고 보통의 사람들처럼 사랑을 하더라도 세상살이는 100%의 이해가 불가능한 어떤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불완전한 사랑마저도 하지 못했다. 이제 그가 모국에 돌아와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새 사람은 말을 잃은 여인이다. 그래, 어쩌면 사랑이란 건 의사소통이 아닐지도 모른다. 달팽이들이 더듬이로 서로를 느끼는 것, 몸으로 부딪쳤을 때 가장 민감해지는 것, 그것이 사랑이 전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