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을 꼭 써야 할까? - 십대를 위한 폭력의 심리학 사계절 지식소설 3
이남석 지음 / 사계절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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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느낌이 나는 건 왜였을까? 아무튼 재미있게 읽었다. 학교에서 접할 수 있는 폭력적인 아이, 그리고 그 아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가진 사람으로서 정말 흥미가 가는 책이었다. 우리 학교에는 이렇게 교사에게 4가지 없이 굴 정도로 막돼 먹은 녀석은 별로 없었다. 아니 없진 않다. 기간제 교사나 강사, 아주 젊거나 나이가 많은 선생님께 무례를 범하는 녀석들이 있긴 하다. 또, 일반적으로 선생님 앞에서는 고분고분한 척해도 교실에 들어가 약한 아이들을 대할 땐 악마 못지 않은 녀석들이 사실 많은 현실이다.

 

사실 이 책을 내년 학급문고에 꽂아둘 요량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읽으면서 학생들보다는 교사들에게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주인공인 종훈이는 요즘 신문에 많이 나오는 학교폭력 가해자이다., 학교 1짱으로 학교 생활 제대로 하지 않고 아이들 괴롭히면서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아이다. 왕따 피해자 입장에서 그들의 고통을 토로하는 책, 어떻게 그들의 상처를 감쌀까를 거론하는 책은 가끔 있었다.(사실,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왕따에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데 비하면 나온 책은 매우 적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가해자 입장에서 그 속을 들여다 보는 책은 거의 없었다. 그런 면이 이 책의 미덕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학교폭력을 일으킨 아이들을 감옥으로 보내 극한 처벌을 하자고 여론몰이를 하는 모습은 심히 우려스럽다. 내가 중학교 선생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가해자들도 사실은 보듬어 안고 가야 하는 우리의 아이들이다. 그들을 두둔하자는 말이 아니고 그렇게 못된 행동을 하게 된 데에는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는 것, 그 아이들의 상처가 폭력으로 왜곡되어 나타났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아이들은 우리가 범죄자로 낙인 찍어 어디론가 버릴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다. 인터넷 댓글에 가해학생들을 죽이라는 둥, 자기가 피해자 부모라면 낫 가지고 다니면서 목을 베어버리겠다는 둥 거친 말들이 난무한다. 그런 댓글을 다는 자들의 자식들이 학교에서 폭력을 행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학교에서도 가해학생의 부모와 상담을 하면 자기 아이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축소하려 들고 반대로 피해를 보았을 때(대개 가해자와 피해자가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다.)는 피해보상을 악착같이 받아내려 들거나 심지어 가해학생을 직접 손찌검하려 드는 경우가 많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세상이 우리 아이들을 학교폭력의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종훈이도 그 중 하나다. 얌전하게 '짜져' 지내야 했던 종훈이 어느 날 갑자기 신체적 성장을 겪으면서 그 동안 억눌렸던 감정이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은 결코 소설적 비약이 아니다. 왕따를 오래 당하는 아이들은 그 분노의 감정이 안에 내재되어 있어 또한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괴성을 지르거나 울부짖거나, 힘이 약한 대신 샤프 같은 것으로 주변 아이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또한 가해 학생들도 또 다른 자신의 조직에서는 더 강한 존재(선배나 더 힘 센 아이들)에게 피해를 당하는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런 고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모두 죽일 놈 취급을 해서야 학교 폭력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책 속의 종훈이는 행운아다. 인생의 멘토를 만났다. 그는 지혜롭고 힘도 센 태껸 사범이다. 몸의 논리도 잘 알고 아이들 심리도 잘 읽는 사람이다. 올바른 가치관까지 지닌 사람이다. 자기 자신이 폭력의 세계를 극복한 경험이 있어 더더욱 완벽한 지도자 노릇을 할 수 있다. 후기에 보니 종훈이의 실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저자의 제자가 있었다니 이 책의 진정성이 더해진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이렇게 정신적인 지도자나 따스한 보호자를 만날 수는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책을 많은 교사들, 어른들이 읽고 어떤 아이인가의 '사범님'이 되어 줄 수 있다면 참 감사할 일이다.

 

책은 참 잘 쓰여졌다. 소설적 구성도 그렇지만 (정말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 - 놀이터에서 무리지어 다툼이 일어난다든지 온라인 상에서 성적인 부당거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다든지, 교실에서 물고 물리는 관계가 된다든지 등등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런 일들을 벌이는 아이들 심리를 제대로 읽고 있다. 그에 대한 대처 방안도 매우 흥미롭다. 자기 위시 감정을 스스로 알아채도록 하기 위해 "청소년이 인터넷에 폭력 동영상을 올리는 이유 알아내기' 과제를 내준다. 또한 아무리 책 읽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밖에 없는 두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우상의 눈물'(실제로 내가 수업 시간에 활용하는 소설들이다. 인물의 심리, 성격 파악, 학교 폭력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실마리 제공, 사회 구조적 문제, 역사적 안목 기르기까지,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아이들 입으로 술술 쏟아내게 만드는 소설들이다.)을 읽게 하고 토론하게 한다. 사범의 태도는 소설 내용을 요약해 주거나 그러므로 너희는 어떠해야 한다는 훈계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진정한 '폭력의 폭력성'을 종훈이 스스로 깨닫게 한다.

 

아이들은 인정받고 싶고 과시하고 싶어서 일진짓을 하곤 하지만 스스로 그것을 깨닫는 순간 참으로 부끄러워한다. 사춘기 아이들이 그 시기를 벗어나면 '후까지' 잡고 다녔던 그 시절이 얼마나 유치했는지를 깨닫게 되는 이치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당시에는 말로 아무리 설명해도 스스로 깨닫지는 못한다. 그걸 깨우쳐 주는 것이 능력 있는 교사, 부모, 지도자의 몫일 것이다. 또한 폭력이 얼마나 사람을 (남도, 자신도) 망가뜨리는지도 역시 말로써는 깨달아지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폭력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 그걸 아이가 스스로 해내도록 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렇게 강력한 폭력의 굴레에 빠졌던 아이를 단번에 구제해 본 경험이 없다. 나의 방식은, 오래 지켜보고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가 겪은 일, 한 일을 숨기지 않고 말하게 하는 방식이다. 외롭고 힘들 때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믿어주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현장에서 교사들이 할 수 있는 더 이상의 방법도 없다. 이 책 속의 사범은 지혜로운 사람이기도 했지만 사실 아이를 제압할 만큼(남자 아이들이 혹하는 가장 큰 매력인 '무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강한 사람이기도 했다. 여자의 몸으로 20년 넘게 남자중학생들만 가르쳐 오면서 때론 무력으로 아이들을 제압할 수 있는 젊은 남자교사가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생명의 원천인 물처럼, 따스한 햇살처럼, 대지처럼, 영원한 모성으로 아이들의 눈물을 받아내는 것이 내 방식이다. 세상엔 아버지도 있고 어머니도 있어야 하니까 이 세상 모든 어른들이 그렇게 아이들을 지켜 보아 준다면 학교폭력도 눅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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