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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아니, 타고난 어떤 운명의 방향이라는 것은 분명 있는 것 같다. 역마살을 타고 나기도 하고 재운이 있게 타고 나기도 하고 부모와의 인연 같은 것도 분명 미리 만들어진 어떤 것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 사람이 타고 나는 운명이라는 것은 과연 100% 논리적으로 앞뒤가 딱 맞는가? 라는 질문에는 아니, 라고 답하련다. 가령 관상이나 손금도 운명예언적 기능을 하지만 손금 전문가나 관상가들의 이구동성은 손금도 관상도 세월이 가면서 변한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사주라고 하는데 이 사주라는 것이 곁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의 사주와 만나 많은 변주를 낳는다. 또한 사주는 변하지 않아도 사람이 만나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사주의 해석은 과거가 다르고 현재가 다르다.
가령, 나의 어머니는 아주 좋은 사주를 갖고 태어나셨다. 오행이 고루 갖추어져 있기 어려운데 그 균형도 좋다. 재운도 있다. 손금에도 재운이 있다. 하지만 엄마의 일생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남편으로 인한 고통이 그녀의 전 생애를 지배하였다. 자녀복이 넘치는데도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은 불행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남편, 즉 나의 아버지는 재물이 다 새어나가는 사주를 가졌나 보다.(아버지 사주는 모른다만) 즉, 아버지의 운명의 자장이 훨씬 세기에 어머니가 타고난 좋은 운을 억누르거나 잡아 먹는 형상인 것이다.
또한 나 역시 손금으로 볼 때 결혼을 늦게 한다고 나왔지만 다른 이에 비해 일찍 결혼을 한 편인데 이것은 남편이 일찍 결혼할 운명으로, 우리 둘의 만남에서 남편의 영향력이 더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내 손금에는 관운과 권력운이 높다. 하지만 20세를 넘어서면서 나는 타고난 나의 권력지향성을 학습으로 억눌렀다. 내가 습득한 가치관과 세계관으로는 공생의 세계를 최고로 여기게 되었으며 권력지향에 대한 혐오를 내면화하게 되었다. 나의 남은 생에 내가 권력으로 나아갈 일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주체적 삶을 사는 이의 손금변주곡이다.
애니어그램을 공부할 때도 느낀 것이지만 기질을 알고 운명을 읽고 유형으로 분류하는 일이 어쩌면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 그게 운명을 규정짓게 하는 것은 어리석다. 나도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사주가 어떻다는 것은 대략 읽어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살아갈 방향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이 책의 저자 역시 같은 입장이다. 그녀의 주장은 ‘나쁜 사주는 없다’이다. 각종 살과 충이 사주에 도사리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떤 시대를 만나느냐에 따라 오히려 역동적 삶을 일구어낼 수도 있음이며 사주의 여러 요소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좋은 요소들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주가 펼쳐 보이는 삶의 ‘형태’가 곧 그 사람이 느끼는 ‘행복’과 등치되지는 않음도 말한다.
책 내용 중에 메모
* 물질적 풍요는 반드시 정신의 가치와 함께 가야 한다.- 먹고 살기 힘들 때, 사주에 재물과 의식주 복이 있고 없음은 매우 중요했겠지만 현대에 와서 그것이 행복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재성이 너무 강하면 관계맺기나 공부에 실패할 수 있음을 경계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 사주는 시간적 관찰이고 관상은 공간적 관찰이다. 사건이 길하다고 해서 인생이 잘 풀리는 건 아니다. 명리학(命理學)은 사건 중심이 아니라 인생 전체의 지도를 보는 것이다.
- 즉, 운명을 개척해 나아가는 자료로 삼으라는 말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취할 것을 취하되 노력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나를 구원하지 못하는 혁명이 대체 누구를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열악한 상황에 있더라도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버리지 않을 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저항과 투쟁이 있겠는가. 어떤 권력이나 자본도 그런 존재를 회유하거나 훼손시킬 수 없다.
- 개개인이 존중받아야 진정한 혁명이 가능함을 말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우리들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볼 말이다.
*생명은 ‘타자들의 향연’. 같은 기운들끼리 놀면 불통이 된다.
만약 올해가 아주 흉한 시기라면 잠수를 타라. 욕심을 내려놓고 공부하라. 활인업하라.
요절할 팔자, 험난한 팔자인 사람은 사람을 살리는 공부나 직업을 택해 보시하면 막힌 운을 뚫을 수 있다. 사주팔자는 네비게이션일 뿐이다. 숙명론이 아니다.
지금 겪어야 할 것을 건너뛰어 버리면 언젠가 몇 배가 되어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 ‘나쁜 사주’에 대한 고민과 저항을 저자는 이렇게 풀어준다. 사주가 나쁘다고 해서 인생을 안 살 수는 없는 거다. 또한 주어진 사주가 있다해 도 활용은 다를 것이 분명하다. 쌍둥이 사주는 같지만 인생이 똑같이 흘러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주어진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중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운명에 무릎 꿇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에게 진보적인 사고방식, 적극적인 삶의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 민주주의의 형식적 확대와 자본의 무한한 증식으로 학교는 이제 서비스 센터가 되어버렸다. 관성은커녕 온통 재성만을 연마하도록 주입한다. 그릇, 혹은 내공을 기르는 힘이 관성이다. 이걸 연마하는 것이 청춘이고 학교인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 시대 학교에선 사람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는 장이 없다. 교사와 학부모는 학생들을 모래알처럼 흩어놓기 바쁘다. 경쟁을 부추기고 불안과 의심을 증폭시키고 여차하면 갈라놓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학생들은 인생에서 인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 학교 당국자들과 엄마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웠어야 할 사회성, 인성을 도외시한 결과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지만 앞으로도 더욱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다. 학교에서 교사 개개인이 인성교육과 공동체 의식을 끊임없이 가르치기도 해야 하고 제도적으로 그것이 보장받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다.
* 젊어 고생을 사서도 하는 이유 - 산다는 건 절대 공짜가 아니다. 젊어서 살아야 할 것들을 대충 피해 간 존재가 있다면 중년이나 노년에 반드시 그 마디를 넘게 되어 있다.
* 지혜는 평화롭다. 무지와 평화가 손잡은 적이 없다. 지혜는 평화의 원천.
* 분노는 대체로 몸에 해롭지만 청정한 분노는 기운을 활발하게 소통시킨다.
* 식상이 없고 관성이 많은 사람은 - 사람들에게 많이 사주면 된다. 재성이 없는 사람은 재성이 많은 사람과 결합하고 관성이 태과한 사람은 관성이 부족한 사람과 연대하면 된다.
* 몸 안에 잉여가 쌓이면 담음이 되고 어혈이 되고 종양이 된다.
* 약속과 청소가 중요하다. 어떠한 과정을 거쳤건 일단 말로 내뱉은 일에 대해서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 청소를 일상화하라.(학생들에게 약속과 청소를 가르쳐야 할 필요를 느낀다.)
* 공부하는 방법 - 낭송과 암송, 필사 .. 몸에 착 달라붙게 하라.
공부가 독이 되지 않으려면 세상으로부터 받은 지식을 세상 속으로 다시 순환시켜야 한다.
* 우리는 모두 별로부터 왔고 다시 별의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우주적 충동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결코 가족적이지 않다. 가족이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은 것은 근대적 국가와 자본이다. 대가족은 번잡하고 기동력이 떨어진다 ‘효’라는 가치가 생산력보다 높기 때문에 경제활동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의 통제력도 약하다, 근대국가는 이 우발성 지수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 사람들의 욕망을 균질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 왔다. (근대국가 - 대부분 자본주의 국가에서 -에서 ‘가족’이 강조되는 이유를 국가주의적으로 해석한 듯 보인다. 사회구조를 경제구조에 기반해 보는 시각이 때로는 분석적으로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너무 순진하게 살게 되기도 한다. 애국가를 부르며 가슴 뭉클해지는 1인으로서, 구조를 보기보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의식화된 존재로서의 자신을 문득 발견하고 몸서리치기도 한다.)
* 진정한 소통은 관계의 순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