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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 반反성장 복지국가는 어떻게 가능한가?
요시다 타로 지음, 송제훈 옮김 / 서해문집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신문에서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들이 오바마에게 쿠바에 대한 미국의 봉쇄를 풀고 미주기구회의에 나올 수 있게 하라고 압박을 넣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쿠바, 그리고 오바마, 라틴아메리카....
쿠바는 오래 전부터 여행하고 싶었던 나라다. 이유가 뭐냐 물으면... 체 게바라의 나라이고, 천천히 가는 나라, 그리고 그 어둑한 골목 어딘가에 뭔가를 두고 왔나 싶게 정서적 공감대가 느껴지는 나라라서 그렇다. 유럽의 돌바닥도 좋아하지만 그들의 세련된 부유함은 제국의 피냄새를 안고 있기에 대체로 핍박받아온 민족으로서, 또한 사람이 함께 존중하고 살아야 좋은 세상이라고 소박하게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것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어쩐지 쿠바에 가면 그 중간 지점이 있을 것만 같다.
이렇게 막연한 쿠바, 자본주의적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삶의 구조를 가진 특이한 나라임에도 소외되고 도태된 나라, 오바마라면 조금은 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놀라운 건, 주변의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이 힘을 합쳐 쿠바 편을 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아마도 그들이 여러 국가로 분화되어 있으면서도 민족적 유대감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리라. 그것은 우리 동북아 지역 여러 국가들이 한자문화권에 속하고 비슷한 유교문화를 지니고 있으나 공조와 공생이 전혀 되지 않는 것과 비교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불만이 있다면 마치 쿠바가 유토피아인 것처럼(필자 자신은 누누이 쿠바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강조했음에도) 느껴진다는 것이다. 낮고 느린 삶의 아름다움을 알고 불편을 감수할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쿠바의 그런 가난하고 질박한 삶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쿠바가 가난하다고는 하지만 비참하지는 않다고 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 수준일지는 모르겠다. 자본의 달콤함에 흠뻑 젖어 사는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가난일지는... 아니, 가난이라는 것이 불편을 넘어서 상대적이고 심리적인 어떤 상태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쿠바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라는 말이 허황되게 들릴 수 있다. 그럼에도 쿠바에 자꾸 관심이 가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이끌어온 지난 세기가 결코 행복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원의 고갈이나 인간성 말살 등 미래를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쿠바의 건축, 농업, 교육, 의료 재난구조 시스템 들을 취재하여 보여주고 있다. 르포라고도 할 수 있지만 쿠바 정부에서 나온 공문 같은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는 모든 문제를 정부가 사람들과 함께 의논하고 해결하려는 문화가 기본에 깔려 있다. 그런데 독재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은 무슨 모순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늘 의문을 가졌던 점이 쿠바는 그토록 오래 카스트로가 집권했는데 (오래 집권해서 독재라고 하나?) 부패했다는 말이나 국민이 저항했다는 말이 들려오지 않는 점과 많은 독재국가들이 그러하듯 불안한 치안이나 내전의 흔적이 없는 것도 이상했다.
수도 아바나의 낡은 집들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공무원인 건축 설계사가 각 가정에 방문하여 어린이까지 어떤 공간을 원하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건축에 반영한단다. 다만 건축자재가 부족하여 좋은 건축물에서 살기 어렵고 이주 등에도 제한이 있는 듯 보인다. 우리에게도 거주 이전할 때마다 신고에 신고를 거듭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사람이 할 짓인가 싶다. 또 한 편,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는 이 시대에는 가지고 있는 돈의 액수가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이 모순이 슬프기도 하다.
2008년 8,9월 구스타프, 이케라는 태풍이 왔지만 전자는 사망자 전무, 후자는 7명 뿐이었다고 한다. 허리케인 미셀로 국토 52%가 피해를 입었을 때도 사망자는 5명 뿐. 재해 방재 시스템으로 평상시 대피 훈련을 강화하고 막상 재해가 발생했을 때에도 대피소 시설을 제대로 해놓아 신뢰가 있다고 한다. 시스템과 신뢰의 문제인 것 같다. 미국 뉴올리언즈에 허리케인이 왔을 때 약탈로 아수라장이 되었던 뉴스와 비교가 된다.
아바나 광장의 초저녁 풍경을 묘사하면서 도시가 밝은 것은 아니지만 치안은 좋은 편이라 한다. 광장을 둘러싼 좁은 골목길에도 가로등이 환하고, 열려 있는 문 안에서는 할머니가 의자를 흔들면서 tv를 보고 있다. 하지만 가로등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최신식 에너지절약형 전구이다. 필자는 ‘여기는 ‘그리운 미래'다’, 라고 표현했다. 검소한 선진성, 지속가능한 성장, 느리지만 인간다운 세상, 지구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도 의료 교육 등 인간개발지표를 충족시키는 지구상 유일한 나라, 그런 유일한 나라로 쿠바를 꼽으며 일본인인 저자는 에도막부 도쿠가와 시대를 그리워한다. 가난한 권력자, 작은 정부, “힘 있는 자는 녹을 적게, 녹이 있는 자는 힘을 적게” 가졌던 시대, 지역 공동체, 인간적인 법 집행과 공평과 청렴이 공존했던 시대라고. 일본 역사를 잘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리워할 만한 역사 속의 시대를 가진 그가 부럽다. 우리에게도 그런 ‘태평성대’가 있긴 했는지....
쿠바의 거리에 게바라의 얼굴은 넘칠 정도로 많지만 카스트로의 초상화는 거의 없다고 한다. 살아있는 지도자는 추앙하지 못하는 법률이 있단다. 법률이 있다고 그게 다 지켜진다는 말인가? 또, 장기집권했던 카스트로가 그것이 법이라서 지켰다면 그것을 독재국가라 할 수 있나? 더 확인해 보고 싶은 내용이다.
쿠바는 가난하지만 더 많은 안전보장이 있어 생활에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예술가 로베르토 페레스 비스카이노가 말했다는데 이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는 쿠바 사회 전반의 장점인 동시에 문제일 것 같다. 최소한을 제공하는 국가, 그 이상이 불가능한 국가. 그 중간의 국민의 욕망을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수용할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은 과연(게다가 국제 공조 없이) 가능할까 싶다. 만약 우리가 통일한국을 건설하고 나서 지금의 쿠바를 넘어선 대안적인 훌륭한 시스템을 갖춘다고 기쁜 상상을 해 보더라도 그 이후, 마치 쿠바처럼 국제적으로 미움을 받고 고립당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참, 때 이른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