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크로스 1
정재승,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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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이면서도 비판의식이 돋보이는 진중권과 간명하게 사회현상을 과학적으로 간명하게 연관 지어 설명할 줄 아는 정재승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논리적이고 명료하면서도 맛깔스러운 글을 쓸 줄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중권도 글 중에 고백했다시피, 알고 있는 지식들을 종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런 걸 김정운은 에디톨로지라고 표현했는데 오늘날 많은 강사들이 강의할 때 잘 써먹는 수법이기도 하다. 이들은 깊이 있는 학문적 성취에 이르지는 못하겠지만 공부가 부족하거나 주워들은 것은 있는데 그것들을 종합하고 구조화하는 능력이 부족한 일반인들이 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생각해 보면 선생의 역할도 비슷하다. 정말 인류의 스승이 될 만큼 자기만의 철학과 방향성을 가지고 많은 이들을 이끄는 스승까지는 아니어도 학교나 학원에서 혹은 자기 동아리에서 어린 학생이나 후배를 가르치는 이들은 조금 먼저, 조금 더 많은 양의 공부를 한 후 그것들을 어떻게 후학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할까 고민하며 재구성한다. 우린 그것을 교수법이라고도 하고 강의안이라고도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진중권과 정재승은 좋은 선생들이다. 이들은 스타벅스, 스티브 잡스, 구글,마이너리티 리포트, 제프리쇼, 셀카, 쌍꺼플 수술, 안젤리나 졸리, 프라다, 생수, 몰카, 개콘, 유재석, 강호동, 세컨드 라이프, 레고, 위키피디아, 파울 클레, 박사... 등을 키워드로 해서 각각의 쟁점들을 인문학자와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조명한다.

사실 정재승은 과학자이지만 인문학적 요소를 풍부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아 보이긴 하다. 우리에게 말빨 글빨 좋은 과학자가 많지 않다 보니 정재승이나 최재천 같은 이들이 참 귀하게 느껴진다. 하여간 두 필자가 조금 어슷비슷하게 느껴져 읽다가 이게 누구 글이더라, 하고 이름을 다시 들춰보곤 했다.

 

스타벅스에서 페미니즘 찾기

진중권의 페미니즘적 시각이 돋보이는 대목이 있다. 스타벅스 이야기를 하다 말고 소위 된장녀를 비난하는 남자들의 허위의식을 찌른다. 나야 스타벅스뿐 아니라 기타 등등의 비싼 커피를 잘 마시지 않지만(앉아서 커피 마실 시간이 많지 않을뿐더러 그 커피의 이 그 가격에 상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릿값이라 생각하면 좀 다르겠지만) 스타벅스의 다양한 문화적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할 때, 그것이 젊은(여성)이들의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역할(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파노플리 효과로써 상품을 통해 특정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것. 구별짓기의 수단으로써의 스타벅스를 이용한다는 것이다.)을 한다는 혐의에 대해 또 다른 면을 생각하게 해주는 미덕이 있다.

 

진중권 : 남성중 일부틑 700원짜리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한 잔에 5000원 하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된장녀를 비난한다. 하지만 5000원짜리 밥 사 먹는 주제에 술집 가서는 수십만 원을 쓰는 된장남의 행태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커피 한 잔을 둘러싸고도 성 권력은 어김없이 끼어드는 모양이다.

 

 

말하기 능력과 공감 능력

국어교사로서 이 책을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면 정재승이 유재석과 강호동을 비교해 놓은 이야기가 되겠다. 유재석과 강호동의 가장 탁월한 능력은 공감능력이라고 한다. 유재석은 아줌마 스타일의 여성적 말하기를 하고 강호동은 남성적 말하기를 한단다. 토론 수업할 때 이 글을 읽게 하고(웃음과 뇌과학적 측면을 근거로 말하면서) 멋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능력이며, 아름다운 말하기는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하는 말하기라는 것을 가르쳐주어야겠다. 유정아 아나운서도 대학생 토론 배틀에서 승리하는 팀은 상대방을 공격하는 팀이 아니라 상대방 발언에 귀기울일 줄 아는 팀이었다고 말한다. 수업 중에는 논리적 말하기/감성적 말하기, 맥락 중심 말하기/핵심 중심 말하기, 남성적 말하기/여성적 말하기, 객관적 말하기/ 주관적 말하기, 원칙적 말하기/ 개방적 말하기로 활동지를 만들어 먼저 자신의 말하기 스타일을 점검하게 한 후 토론 수업을 할 요량이다.

 

정재승과 진중권을 크로스하여 보여주려는 기획은 재미있었지만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인 <썰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재승은 과학자로 정치적 입장을 잘 드러내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진보적 입장에 배치되지 않는 의견을 제시한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사안이나 쟁점에 접근하지 않는다. 입장 차이가 분명하거나 과학자로서, 인문학자로서의 차이점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책의 아쉬움이다.

<썰전>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세 명은 모두 불호감의 아이콘들이다. 그럼에도 인기가 있다는 점 또한 공통점이다. 자기 진영에서 팬층이 있을 뿐 아니라, 안티팬들조차 그들이 하는 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런 논객들이 바로 유시민, 전원책이다. 사회를 보는 김구라 역시 욕하면서 보게 되는캐릭터다. 캐릭터들 자체가 흡인력이 있는 사람들이고 모두 팩트에 근거한자기 주장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은 쟁점은 쟁점대로 살고 출연자들의 박학다식을 즐길 수도 있으면서 토론의 현장이 갖고 있는 매력적 요소들(논리적일 것, 비판적일 것, 때로는 투쟁적일 것)도 느낄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진영의 논객들이 나오면 티비도 라디오도 꺼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입장이 다른 사람 이야기도 들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쟁점이 부딪칠 때 아슬아슬하게 긴장이 되다가도 패널들이 허당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유머감각을 발휘하거나, 정작 부딪치기 직전에 한 사람이 슬그머니 양보하는 모습들도 보여준다. 우리에게 부족한 똘레랑스 토론의 가능성을 조금은 엿볼 수 있다.

 

10월에 중2 남학생들과 토론 수업을 할 단원에서 정재승의 글과 비정상회담 110회의 군대문제를 주제 삼아 군 징병제와 모병제’, ‘대체복무를 허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할까 아닐까를 주제로 토론수업을 할 것이다. <썰전>의 한 장면도 보여줄 것이다. 우리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정말 많다. 국어 문법도 중요한데, 토론하는 법, 배려하여 말하는 법, 이런 것들을 꼭 가르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공부만 잘하고 싸가지는 없는 아이들, 배려할 줄 모르고 나의 성공만이 최고의 가치라 여기는 청년들,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높은 지위에서 전권을 휘두르며 적반하장의 언사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권위주의자들의 나라가 될 것이다. 지금 벌써 그렇지 않느냐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면 안 되니까,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토론으로 이루는 민주주의’, 100년으로 쉽게 도달하려 했던 어설픈 근대화의 부작용을 걷어내려면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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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이 독깨비 (책콩 어린이) 22
R. J. 팔라시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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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외모의 자신감 때문에 마음이 비뚤어진다거나 상처를 입는다는 말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그 대신, 장애나 기형이 있어도 따뜻한 사랑과 좋은 교육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오거스트처럼 유머와 좋은 머리가 있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한다.

 

장애아에 대한 편견을 버리려는 공적, 교육적 노력들은 지난하지만 쉽게 성과를 거두기도 어려웠다.(한국에서 그런 최선을 다한 노력이 있었는가 돌아보면 부끄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이 편견과 맞서 싸우는 일이리라. 어떠한 사람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며 누군가에게 편견으로 시달릴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다른 이를 배려하려는 태도. 이 책에서도 여기저기서 자주 강조한 친절이라는 단어는 우리 식으로 바꾸면 배려쯤 되겠다. 전혀 같은 단어가 아니지만 단어의 용도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보다는 친절이든 배려든 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은 미국에서도 여전히 장애아들의 삶은 쉽지 않다. 오기도 줄리안 같은 악동들(우리나라 아이들에 비교하면 악동도 아니지만)의 괴롭힘을 받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잭이나 서머처럼 먼저 다가와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고통을 덜 받았지 않았는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비교하고 읽을 수밖에 없었던 청소년 소설이다.

 

우선, 오기의 학교나 이웃 사이에서 겉으로나마 당연히 여겨졌던 일, 장애인이라고 오래 쳐다보거나 놀려서는(보고 놀라는 일조차) 부도덕하게 여겨지는 일,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대놓고 면전에서 혀를 끌끌 차거나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리는 사람이 있어도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지 스스로도 모르고 남들도 지적하지 않는다. 물론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그런 짓을 해도 뭐 어때?’ 할 수 있을 만큼 뻔뻔한 사회가 우리 사회다. 학교는 더하다. 내가 남중에 근무해서 그런지 몰라도 남자중학생들은 상대방의 치부나 약점을 대놓고 공격한다. 약점이 없어도 남다르다는 점만 가지고도 놀리고 물어뜯는다.

 

둘째, 지혜로운 교사들 특히 교장의 도움이 눈에 띈다. 이 학교 교장의 모습은 권위주의도 없고 친절하고 지혜롭다.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줄 아는 눈도 있다. 한국의 교장이 아이들 사이의 관계를 헤아릴 수 있으려나? 만약 오거스트같은 장애아가 학교에 들어오려 하면 온갖 핑계를 대며 입학을 거부할지도 모른다.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그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학생부 교사나 담임교사에게 신경써서 잘 돌보라고 지시는 할지 모르지만 교장 스스로가 아이 손을 잡고 격려하거나 직접 대화를 나누려 할까 싶다. 수련회 야외 영화관에서 교장이 아이들과 같이 앉아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를 보는 장면을 보고 조금 화가 나기까지 했다. 학생들은 수련회에 가서 학교가 텅 빈 23일 동안 단 하루도 학생들 수련회장에서 잠 한 번 자지 않은 교장, 그렇게 8년을 근무하다가 퇴임한 교장은 늘 교사들에게 임장지도를 지시했다. 1,2,3학년이 모두 다른 장소에서 수련활동을 벌이면 하루씩, 또 다음 해에는 또 다른 학년의 수련회장에 교장이 가서 임장지도하는 것이 맞다.

셋째, 다양한 학교 프로그램이다. 프로젝트 식 수업을 통해 직접 뭔가를 해봐야 하는 활동 말이다. 오기와 친구들은 늘 투덜거렸지만 이집트가 주제였을 때에도 과학발표 대회 때에도 할로윈 축제 때도 아이들은 뭔가를 준비하고 발표하고, 또 그 자리에는 부모나 가족도 함께한다. 하지만 발표 준비를 할 때 부모가 대신해주거나 학교에 입김을 불어넣지는 않는다. 오기의 친구인 잭과 감자 전지를 과학발표의 주제로 삼아 끙끙대는 모습이 낯설다. 우리도 수업 중 수행평가도 하고 성과물을 내지만 저렇게 주제를 가지고 일정한 기간 준비해서 페스티벌처럼 발표하는 형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물론 요즘은 자유학기제나 혁신학교 수업에서 그런 활동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리고 무엇이든 제도만 들여와서는 알맹이 없이 부담과 부작용만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넷째, 오기의 지혜로운 부모. 그토록 지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참을성 있는 부모를 쉽게 만날 수 있을까. 진심으로 자기 아이를 사랑하는, 그러면서도 우울하지 않다는 게 더욱 미덕이다. 오기의 누나나 심지어 누나의 남친, 초등학교 때 친구들조차 모두 오기 편이다. 물론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오기의 성정이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워서도이지만 아무리 좋은 성정을 지녔어도 외모가 주는 불편함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은 오기의 가족이나 이웃들이 모두 마음의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적인 것일까, 그 가족의 특수함일까. 그런데 잭이나 서머, 심지어 처음에 오기를 놀렸다가 나중에 친구가 되는 아이들을 보면 다시, 이것은 어떤 사회 문화적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재미있게 읽혔다. 줄리안이나 에디처럼 오기를 괴롭히는 악동들이 악역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치명적이고 극적인 악인도 별로 없고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다. 오기네 개가 죽은 것이나 다른 학교 7학년짜리들과의 격투 장면 정도가 나오지만 내가 30년 가까이 남중에서 보아온 사건들보다 더 드라마틱하지도 않다. 그래도 재미있다. 뻔히 보이는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은 헐리웃 영화처럼 미국스럽기도 하다. 소설과 현실은 다르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런 소설을 읽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좋다. 사람들은 대체로 그악스럽고, 나쁜 문화가 더 영향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예의에, 좋은 사람들의 영향력이 덧붙여지면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걸 확인할 때가 있지 않은가.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철부지에 악동들이 많았지만 돌아보면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었던 아이, 손 하나가 아예 기형이라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아이, 얼굴 한 면에 반점을 달고 살아야 했던 아이를 대놓고 놀리는 아이는 없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 남자아이들은 튀게 행동하는 아이를 어떻게든 면박주고 골려먹고 싶어 하면서도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아이들의 특성을 잘 헤아리고 어른의 지혜를 덧붙이면 대한민국에서도 장애아들이 상처 없이 살아갈 수 있는(적어도 학교 다닐 때만이라도) 대안이 찾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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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야간비행 - 정혜윤 여행산문집
정혜윤 지음 / 북노마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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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혜윤의 여행기(를 빙자한 수필)이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좋은 글을 만나면 이 글 쓴 이가 누구지? 하고 이름을 새겨보게 되는데, 그렇게 만나 좋아하게 된 작가 중 하나가 바로 정혜윤이었다. 그이의 문체는 어딘가 프랑스 풍이고 의식은 왼쪽에서 역동한다. 한 곳에 머무르기를 거부하는 자유영혼에 세련된 감성의 소유자이면서 한 편 발을 땅에 딛고 있고 현실의 아픔을 아파할 줄 안다. 세련된 좌파, 혹은 현실에 발 딛은 리얼리스트...

 

여행기라는 게 자기도 가보고 싶거나 가 보았던 곳의 여행기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나도 6,7년 전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다녀왔는데 감동받은 지점은 다르지만 반가운 느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특히,

 

포르투갈 리스본의 가게들 그 가게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다면 문을 열고 쑥 들어가 봐야만 했어. 가게 입구가 대부분 좁고 길어서... ‘렛 미 인

 

 

그랬다. 3일밖에 머물지 않아서 그런지 유난히 더 아름답고 아쉬웠던 리스본의 모든 길들은 언덕 위 혹은 아래로 펼쳐졌고 가는 곳마다 골목이 있었다. 들여다보고 싶고 들어가 보고 싶은 길목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다시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꼽으라면 과감히 포르투갈을 꼽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또다른 부분이 있다면 반딧불이를 본 여행지 이야기이다. 나 역시 가끔은 그런 대자연의 장관을 보러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다만,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하려면 감수해야 할 것들이 있겠지. 불편한 교통이라든지 숙소라든지... 몽골 사막의 별밤, 히말라야의 설산, 북극의 오로라... 아직은 사람들의 저잣거리가 더 궁금해서 시장통으로 학교로 거리로 도서관으로 다니는 편이지만 말이다.

 

정혜윤은 그의 또 다른 에세이에서 시인 송경동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나는 좋은 독서는 꼬리를 무는 독서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연장하고, 새로운 과제를 마음에 담게 하고 또 다른 책을 소개받는 독서.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송경동의 새 시집을 샀다. 아마도 남편이 이미 샀을 가능성이 높은 시집을 확인도 하지 않고 샀다. 그리고 그 밤, 한참 그의 시로 보냈다. 송경동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아픔의 현장에 늘 함께 했던 그 시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정혜윤의 책을 통해 알게 되었던 것이다. 정혜원은 <스페인 야간비행>에서 말한다.

 

사회가 너는 필요없어!’ 하고 쫓아내버린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전통적으로 문학이 해왔던 일 아니겠니?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문학은 무언가를 할 수있어야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무언가의 대부분은 감성적 위로, 때로는 이성의 놀잇감 역할일 때도 많지만 사회적 변화를 위한 무언가를 해내는 경우도 많다. 문학이라는 것의 존재 이유가 궁극적으로 상처 입은 영혼을 어루만지기 위함이라면 역시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이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초석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송경동은 그런 문학인이며 정혜윤은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또 다른 글쟁이이다. <스페인 야간비행>은 물론 자의식이 짙게 드리워진 자기 자신의 읊조림 같은 에세이지만 정혜윤 글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사랑하는 이라면 이런 에세이의 독특한 분위기도 좋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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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춤추는 악어
김수우 지음 / 신생(전망)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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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여행을 다녀오면서 쿠바에 대한 책을 참 많이 읽었다. 그 나라에 대해 잘 알게 된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럴 리가 있는가? 12일의 여행, 단 열 권의 책으로 한 나라를 다 안다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난 쿠바에 대한 이야기는 얼추 다 들어본 느낌이다, 라고 말해야 정확할 것이다. 말레콘, 올드 카, 헤밍웨이, 체 게바라.. 그게 쿠바의 전부는 아닐 테니 말이다.

 

<쿠바, 춤추는 악어>는 내가 읽은 쿠바 관련 책 중 가장 두껍다. 책의 두께가 일단 그러하지만(솔직히 읽기에 매우 불편했다. 한편으로는 팔리기 좋고 읽히기 좋게 적절히 분량을 조절하거나 두 권으로 분책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리 하지 않은 출판사의 뚝심이 좋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용도 두껍다(?). 쿠바에 대한 글을 쓰는 이들은 누구나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그래서 다른 관점의 책들을 만나기 어렵기도 하고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 블로그나 책들에서 반복되는지도 모른다) 김수우만큼 감성적으로 쿠바에 다가간 사람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여행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생활이야기라고 해도 될 만큼 쿠바에 머문 시간도 길고, 남들이 다 체 게바라만 이야기할 때 일관되게 호세 마르티로 쿠바를 바라보는 시각을 유지하는 점도 남다르다.

 

김수우는 쿠바에게서 공존에 관한 대안을 발견한다. 자본주의는 그 속성 때문에, 사회주의는 현실적 실패 때문에 이제는 이 지상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진 공존의 대안을 쿠바는 제시한다. 공산주의 국가라 할지라도 지도자에 대한 우상화나 부패가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대안, 나라가 가난해도 비참해지지 않을 수 있는 대안들을 제시한다. 그럴 수 있는 가장 큰 힘을 체 게바라나 혁명의 성공, 혹은 카스트로의 정치적 성공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김수우는 호세 마르티를 그 근원적 힘으로 여긴다. 현실의 권력자가 아니기 때문에 훼손되지 않을 수 있는 오래갈 수 있는 쿠바의 힘이 된 호세 마르티. 그래서 그런 역사적 영웅을 갖는 것은 민족이나 국가의 자산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국민적 영웅이 있었던가 돌아본다. 없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의도적으로 평가 절하된, 혹은 부풀려지는 바람에 훼손된 영웅들이 얼마나 많던가.

 

작가는 공존이란 함께 자유로운 것. 그 자유가 배려가 시작되는 자리라고 말한다. 자유가 배려가 멋지게 만날 수 있음을 우리 사회는 겪어보지 못했다. 배려는 곧 손해라고 배워온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은 얼마나 황막한가.

 

 

쿠바의 품격, 호세 마르티

호세 마르티의 문학은 단순한 문학이 아니다. 그의 문학은 사상을 담고 있고 사람들을 고무시켰을 뿐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근원적 해결책을 탐구했다. 그것도 아주 쉬운 민중의 언어로.

호세 마르티는 게으르지도 않고 성격이 고약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이 있다면, 그곳은 불의가 있는 곳이다.”라고 말했단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나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러분의 아버지가 만약 열심히 살고 계시는데도 집이 가난하다면 아빠, 왜 우리 집은 이렇게 가난해?”라고 아버지를 원망하지 말라. 그건 사회구조의 문제이다. 열심히 일하는 아빠가 무능해서 불성실해서 집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면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겨라. 그리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자.” 그럴 때면 꼭 숙연해지던 아이들이 몇 있었다. 호세 마르티의 저 말은 이상하게 힘이 된다.

 

호세 마르티는 흑인을 볼 때마다 나는 늘 그들에게 빚진 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은 실상 가장 힘든 일을 한다. 세상은 대개 그런 그들의 희생 덕에 숨을 이어가기도 한다. 뭔가를 가진 자들이 누구 덕에 자신이 편안히 먹고 숨 쉴 수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저런 겸허를 얻기 힘들 것이다. 쿠바 거리를 걷다 보면 위축되지도 않고 거칠게 행동하지도 않은 흑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것을 가장 경멸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품격을 유지하는지 볼 수 있다. 물론, 우리가 묵었던 까사의 잘생긴 뮬라토 청년은 쿠바 여자들 참 멋지다(가무잡잡하고 멋진 몸매를 가진 여자들을 많이 보았기에).”고 칭찬하는 우리의 말을 듣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자기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긴 했다. 못생긴 사람도 많다고.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고 있다. 우리 눈에 그들이 멋져 보인 건 아마 얼굴이 검어도, 초라한 옷을 입었어도 위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상대적으로 위화감을 느끼게 비싼 옷을 입은 사람을 발견하기 어려웠고 자기가 피부가 희다는 이유로 우월감을 자랑하는 문화도 없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내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았던 장면은 다음 이야기이다.

 

몹시 붐비는 쿠바버스에 장애인이 탔을 때 놀랍게도 사람들이 길을 비켜 그가 자리를 잡게 도와주었단다. ‘몸도 불편한데 복잡한 버스를 꼭 타야 했나라고 생각한 건 한국 사람들이 하는 생각인 것이다. 그가 버스에서 내리려하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틈 없이 엉겨있던 사람들이 또 한 번 통로를 만들어 그를 내려주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버스에서 내려 장애인을 몇 걸음 안전한 데까지 인도해 주고 다시 버스를 탔다.(이야기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버스는 안 가고 기다렸다는 거다. 배차간격이 버스운전 노동자를 스트레스 만땅으로 만드는 한국에서는 인성의 문제뿐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쿠바인들의 일상화된 배려 문화를 김수우는 목격한 것이다.

 

물론 내가 여행 갔을 때 저런 장면을 보지는 못했지만 곳곳에서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들은 많이 만났다. 친절은 매너가 아니라 삶의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다. 사람에 대한 존중은 혁명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계급과 차별이 버젓이 살아있던 식민시대와 친미 독재정권 시대를 거쳐 왔고 그것을 이겨냈기 때문에 모든 차별에 반대하며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곧 혁명정신이기도 했던 것이다.

 

 

집 앞에 서서 한참 다정하게 수다를 떠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는데 이상하게도 그게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에게서는 사라져버린 광경 아닌가? 그런데 언제, 왜 사라졌던가? 더듬어 보니, 우리 삶에는 휴대폰이 개입했던 것이다. 쿠바에도 휴대폰이 있지만 흔한 물건은 아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아직 수다와 대화가 남아있는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 요르크 프리드리히는 사람들은 부드럽게 몰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다.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생활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란다. 왜 성장만이 삶의 모델이 되어야 하는가? 쿠바는 지속가능한 삶의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절대 빈곤이나 인간의 품위가 유지되지 않는 가난을 감수하자는 뜻이 아니다. 미국처럼 펑펑 소비하고 뒤처리를 남에게 넘기는 지구 위의 불평등에 눈 감은 채 가난해도 마음만 행복하면 돼.’라고 마음을 다스리자는 말도 아니다. 적정한 부, 적정한 경제 속에서 행복하기가 왜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긍정적 대안으로 쿠바를 눈여겨 보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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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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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류의 <피에트라 강가에서 울었다><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의미 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연금술사를 읽을 생각은 없었다. 한때의 열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이 책을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은 계기가 생겼다. 대통령이 이 책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높은 실업률과 학업스트레스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이 책 속의 담론을 인용하여 격려라는 것을 했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힘든 원인이 무엇인지 성찰하지 않았다는 점과 사회문화적 문제 해결의 노력이 없다는 점도 나쁘지만 작품의 오독도 심각하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은 하면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대통령의 언사를 접한 것은 책을 읽기 전이니 이와 같은 짐작은 내가 아는 코엘류가 그렇게 말했으리가 없으리라는 '짐작'이었을 뿐이라서 진실을 알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다 읽은 소감을 말하자면, 내게 재미난 책은 아니었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읽힐 만한 책이다. 이제는 너무 뻔한 환상적인 구조의 이야기가 재미있지만은 않았지만 말이다. 잠언 같은 좋은 말들은 많다. 젊은이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지혜로운 멘토의 입장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나 보다. 어른들보다 더 각박한 현실에 일찍 노출된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과연 그런 막연하고 환상적인 말들에 힘을 얻을 것인지는 자신이 없지만 말이다.

 

 

친구를 사귀는 일에 대하여, ‘그들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해 버린다. 그렇게 되고 나면, 그들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려 든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이 바라는 대로 바뀌지 않으면 불만스러워한다.’ 라고 하면서 친구 사귐보다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하도록 격려한다. ‘우리들 각자는 젊음의 초입에서 자신의 자아의 신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지,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여.’ 자아의 신화라는 말은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아마도 자기 자신을 찾으려 노력하라는 뜻인 것 같다. 이런 대목이 아마도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의 개인화의 문학적 구현이라는 평을 받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이 들어 봐라, 내가 생각한 자존만큼 다른 사람도 자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겸손해지고 자기를 객관화하게 되지.’ 사춘기 시절 자기 자신을 깊이 생각하는 단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단계를 잘 딛고 일어나야 한다. 그 시기에 그 과제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나이 들어서도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나이든 사람들이 오만한 것은 자기방어적인 것이다. 좋은 의미에서 자아를 중심을 놓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기라는 물화된 사람에 대한 욕심을 부리는 것뿐이다. 학교에서 사춘기 아이들에게 너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에메랄드 채굴꾼 이야기는 우주가 도와준다와 더불어 오독되기 쉬운 에피소드이다. 한 에메랄드 채굴꾼이 전부 999999개의 돌을 깨뜨렸다. 너무나 힘들어서 마침내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마지막 돌 하나를 깨려는 순간(자아의 신화를 찾는 중대한 기로) 너무 화가 나서 그 돌을 집어 멀리 던져버렸다. 그 돌은 날아가 다른 돌과 세게 부딪쳤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를 내보이며 깨어졌다.... 아마도 코엘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숱한 노력들이 모이고 쌓여야만 성과라는 것이 다다름을, 그 전까지의 기다림이 결코 무용한 것이 아님을, 그리고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함을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하지만 내게 깊은 성찰을 준 이야기도 있다. 주인공인 산티아고가 이집트에 도착해서 한 크리스털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게 되었을 때다.

성지 순례가 일생의 목표라는 크리스털 가게 주인에게 산티아고가 왜 지금이라도 메카에 가지 않는 거냐고 묻자,

왜냐하면 내 삶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바로 메카이기 때문이지. 이 모든 똑같은 나날들... 초라한 식당에서 먹는 점심과 저녁을 견딜 수 잇는 힘이 바로 메카에서 나온다네. 난 내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 마음속으로는 벌써 수천 번 사막을 가로질러 성스러운 반석이 있는 광장에 도착하고... 그런 나 자신을 눈앞에 그려보았지. 나는 이미 내게 일어날 일이며 내 앞을 기다리고 있는 일, 그리고 함께 나눌 대화와 기도까지 상상해 보았어. 다만 내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커다란 절망이 두려워 그냥 꿈으로 간직하고 있기로 한 거지.”

그래, 사람들은 결코 이루지 못할지라도 을 갖는 게 중요한 것이다. 나에게 그런 꿈은 무엇일까? 메카만큼은 물론 아니겠지만 나에게도 언젠가 이루고 싶은 작은 꿈들이 있다. 차라리 죽을 때까지 해내지 못해도 그 꿈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점에서 나는 그 크리스털 가게 주인에게 공감한다. 하지만 또한 이 이야기는 나에게는 무엇이 그런 꿈이었을까를 생각하게 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책을 읽던 무렵, ‘언젠가는이라고 미루어왔던 쿠바여행을 결행했다. 더 늙기 전에 가자. 그리고 새로운 꿈을 또 만들면 되지 뭐. 쿠바가 나의 메카는 아니니까. 인생 곳곳에 메카를 남겨놓으리라.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과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다. ‘누군가 꿈을 이루기 앞서, 만물의 정기는 언제나 그 사람이 그 동안의 여정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시험해보고 싶어 하지. 만물의 정기가 그런 시험을 하는 것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네, 그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 말고도, 만물의 정기를 향해 가면서 배운 가르침 또한 정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고 마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지.’

 

최선과 더불어 진심을 다하는 영성을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코엘류는 그의 문학작품만을 보면 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다. 어떠한 노력과 지혜를 다해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것이 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우주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우주가 잘못된 것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자칫 운명론자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이 할 일은 멋진 우주를 만들려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기운을 내지 않는 젊은이가 있을 때, 그에게 다가가 우주가 도와줄 거야라고 격려를 해야 그게 진짜 어른이고 지도자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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