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어보다 스페인어를 배우기로 했다 - 오늘부터 시작하는 스페인어 학습 선동기
남기성 지음 / 원앤원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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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스페인에 가족여행을 가면서 그야말로 기초초초 스페인어를 조금 공부했었다. 남편 말대로 말을 한대도 그들이 대답하는 말은 못 알아들을 건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고 실제로 써먹지도 못했지만.

2016년 쿠바 여행을 떠나면서 그래도 인사말이나마 적어갔더랬다. 택시 값을 흥정할 때 기사가 처음에는 디에스(10)’를 외치다가 결국 쎄이스(6)’를 외치는 순간이 왔을 때 남편이 쎄이스가 얼마냐고 물었다. 나는 거봐, 숫자라도 알고 와서 다행이지, 하고 속으로 고소해 했다.

사실 수십 년 영어를 공부해도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데 스페인어를 배운들 써먹을 일이 있으려나 싶다. 남미 여행은 흥미 없고 쿠바에 직항이 생긴다면 다시 한 번 가보고 싶긴 하지만 그럴 가능성도 별로 없다. 그래도 그냥 재미삼아 영어공부 하다 말고 스페인어도, 또 고등학교 때 배웠던 프랑스어도 가끔 들여다본다. 목적성이 없으니 늘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 말들을 읊조릴 때면 이국의 거리에 서 있는 것 같아 즐겁다. 정신 건강에 좋다. 여행기를 읽는 것만큼 즐겁다.

 

저자는 멕시코에서 이민생활을 했단다. 애니메이션 코코의 나라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스페인어 이야기도 편안하지만 이야기마다 관련된 스페인어를 잘 정리해 놓았다. 이 책 한 권으로 스페인어 회화가 될 리는 없지만 부제처럼 스페인어를 공부해보고 싶게 선동한다. 나도 이 책 읽다가 책장에서 볼펜 끼워놓고 몇 달 방치한 회화책을 꺼내 다시 공부해 본다. 저자가 소개한 유튜브 채널들은 매우 유용해서 오랜만에 유튜브에서 놀기도 했다. <Donde voy> 가사로 한참 공부하던 종이도 다시 꺼내들어 본다. <Extra> 라는 스페인 시트콤도 보았다. 스페인어 공부하라고 만든 시트콤인 양 말도 천천히 하고, 미국인이 스페인어 배우는 설정이라 영어와 스페인어가 섞여 나온다. 우리나라도 이런 설정의 한국어 배우는 드라마가 있으면 한국어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이 즐겨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페인어에 관심이 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아마도 이 정도면 나도 다시 도전해볼 만하다고 동기유발이 될 것 같다. 본격적인 회화책을 사고 어딘가 강좌에 등록을 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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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 -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 진짜 미국이야기 만화로 보는 교양 시리즈
마이크 코노패키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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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요즘 영어공부를 한답시고 미국드라마 <모던 패밀리>를 열심히 보고 있다. 가족 이야기라 다양한 계층과 나이의 미국 중산층 영어를 배울 수 있어 좋다. 게다가 이민자, 게이, 동양에서 온 입양아 등등 다양성을 담은 구성도 미국답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드라마는 아슬아슬하게 인종차별의 금을 밟을락 말락 한다. 콜롬비아는 온통 범죄자의 나라고 베트남과 한국은 비교당하며 특히 한국은 일에 치여죽는 사람들의 나라인 것처럼 언급된다. 그렇지만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선한 문화에 대해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기도 한다.

미국은 어떻게 접근해도 제국주의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내게는 너무도 뿌리 깊다. 하지만 미국에 대한 나의 생각이 편견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성찰을 거듭하며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는다. 미국 시민사회의 문화적 장점을 보려고 애쓴다. 인종차별이 심하다지만 최소한 겉으로는 그건 인종차별이야라는 소리를 가장 모욕적인 말로 여길 만큼의 선은 분명하다는 점, 바람을 피우든 도둑질을 하든 거짓말은 절대 하지 말자는 사회문화적 약속, 견고한 시스템과 그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 등등....

 

오래 전에 하워드진의 <미국 민중사>를 읽었다. 그 외에도 하워드 진의 저서를 몇 권 더 읽었다. 내가 아는 제국주의 미국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들이 거기 있었다. 이번에는 만화로 정리된 <미국사>를 다시 본다. 그런데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나의 습관대로 이번에는 이 책과 더불어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 산책>을 읽고 있다. 비슷한 시기의 이야기인데 미국의 경제성장의 혜택을 입으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한 유머감각 뛰어난 글쟁이의 행복한 미국이야기와, 하염없이 신랄한 사회주의자가 바라보는 미국 이야기를 동시에 읽는 일, 게다가 시대를 좀 다르지만 아무 생각 없이 오직 내 가족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모던 패밀리>, 그리고 미국과 핀란드를 비교한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까지, 요즘 나는 미국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게 된다. 미국의 진실은 어느 지점에 있을 것일까.

 

이 만화를 보면서 큰 충격이 된 부분은 하워드진이 베트남 전쟁과 관련하여 자신의 친구 대니얼 엘즈버그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국방부 산하 연구소에서 일하던 대니얼이 베트남 전쟁이 미국에 의한 침략전쟁이라는 각종 자료들을 보면서 반전운동에 함께 하는데, 그때 그들이 선언하고 폭로할 때 한 말이 있다. 하워드 진처럼 급진적인 사람들이 아닌, 자신들 같은 사람들(아마도 평범하고 중도적인, 학벌도 좋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반전을 주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히피나 급진주의자들만 전쟁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대니얼 등이 한 일은 대단히 위험하고 미국식 표현으로 위대한일이었지만 나의 편견으로 미국의 보통 중산층들은 자신의 행복 외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찬물을 끼얹는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시민정신은 점점 의식을 잃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란 콘트라 사건으로 수감된 유일한 미국인이 불법자 이름을 딴 거리 표지판을 훔치며 상징적으로 항의했던 빌 브리든이란다. 미국 시민들은 이제 미국이 하는 짓에 눈을 감아버리는 걸까. 아니면 정부가 포장하는 대로 세계질서를 위한 일이라고 정말 믿어버리는 걸까.

 

하워드진의 말은 슬프다.

부패하지 않고 사람을 고문하지 않는 황제가 있나요? 전쟁과 정복을 하지 않는 제국이 있나요? 그것은 군인이 없는 군대와 같습니다. 아니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정부와 같습니다. 제국이 없는 세계와 같은 것이죠. “

 

하지만 그는 수많은 저항운동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훌륭하게 처신해온 경우가 아주 많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행동할 힘을 얻을 것입니다.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입니다.”

 

하노이에서 북미회담이 깨지던 날의 분노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얼마 전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할 때의 분노도 잊히지 않는다. 강대국 손에 놀아나는 우리 역사의 사례는 너무 많아서 기억도 다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뿐이 아니며 온 세계를 주물럭거리는 그들, 그리고 그 뛰어난 시민정신에도 불구하고 자기나라 국가주의에 매몰된 시민의식이 아닌 우월의식으로 무장하고 있는 대다수의 미국인들.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단순한 약자의 피해의식이 아님을 직시하지 않으면, 하워드 진처럼, 거악에 분노하는 깨어있는 시민정신을 드높이지 않으면 코로나 사태보다 더 심각한 미국의 붕괴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전쟁과 정복을 하지 않는 제국이 없었을 뿐 아니라 무너지지 않은 제국도 없었다. 역사는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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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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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학교에서 두려움 없이 차별을 가르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대체로 평등을 지향하고 차별에 반대한다. 관념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 다들 차별이 나쁘다고는 말한다. 차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차별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는 희망 때문에 그런 것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논리적으로 꼬여 있는 아이들도 가장 기본이 되는 생각,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에서부터 출발할 수만 있다면 토론을 통해서 주변의 다른 비논리적인 사고들은 정리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차별 좀 하면 어때?’라고 생각하는 교사 혹은 학생을 만난다면... 나는 회피하지 않고 그들을 설득하려 애쓸 수 있을까? 그리고 대다수의 차별은 나쁘다는 걸 알아. 하지만 여자는..., 외국인은....’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생각을 바로잡거나 외연을 넓히기 위해서 길고도 정교한 교육방법을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2. 내가 누리는 차별의 특권은 없는가?

남성특권 목록

-내가 승진에 자꾸 실패한다면 그 이유가 성별 때문은 아닐 것이다.

-밤에 공공장소에서 혼자 걷는 걸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운전을 부주의하게 한다고 해서 나의 성별을 탓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외모가 전형적 매력이 없더라도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안정적 삶을 살고 있는 중산층 가정 삶이라는 특권(?)에 안주하면서 입으로만 반차별을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본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그로 인해 아이들을 잘 양육할 수 없는 학부모들을 보면서 그것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있지는 않은지. 등등.

 

3.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는가?

미국사회의 인종차별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개선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백인은 많이’, 흑인은 별로라고 대답했다 한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인권이나 이주민 상황에 대해 질문해도 비슷하지 않을까. 간혹 백인이면서 흑인인권 운동을 하는 이라든지 남성이면서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이, 교사이면서 학생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등 고도의 초자아로 객관성을 유지하는 이들이 있겠으나 그들 외의 대부분의 일반인에게 객관적인 입장이란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약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상황에 대해 말해야 한다. 말하는 것 자체가 투쟁인 것이다. 거꾸로 내가 만약 다수이자 강자의 위치라면 자신의 생각이 아닌 약자의 입장에서 그들은 어찌 생각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교사인 내가 강자이고 학생은 약자라는 것을 잊지 말자.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전보다 좋아졌지 않은가라고 생각하지 말고 학생들이 뭉텅이 취급 받고 무시받고 외면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그들을 그런 취급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돌아볼 일이다.

 

 

4. 나 자신에게 스며있는 구조적 차별은 없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농담들, 에구, 한 대 때려주지 그랬어, 남자가 왜 그래? 애들이 다 그렇지 뭐. 동남아스럽게 생겼네. 어제 짱깨집 갔어. ... 또 뭐가 있을까? 우리 속에 녹아 있는 학생을 차별하는, 혐오하는, 편견에 빠진 그런 표현들... 여럿이 모여서 싫어하는 소수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을 쓰거나 희화화하며 죄책감을 덜고 자기들끼리 연대감을 느끼며 심지어 도덕적 기준의 경계를 무너뜨림(혐오표현을 함부로 쓰면서 집단적 편견과 적대감도 봉인해제 됨. 일베의 세월호 비하 같은 것). 이럴 때는 웃찾사의 흑인 분장 사건처럼 웃지 않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 유머는 도태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유머를 만나면 정색하고 따져야 한다.)

 

5. 이것은 단순한 배려인가, 공정하고 합리적인 조치인가?

공무원 시험에서 장애인 수험생을 위해 대필을 해준 것, 어떤 선진국에서 비영어권에서 온 유학생들에게 입학 후 일정 기간 동안 시험시간을 1.5배 더 주는 정책을 편 것 등...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에게 수행평가의 기준을 달리 주는 일은 어떠한가?

 

6. 나는 정의로운 사람인가?

 

정의의 범위 누구나 정의를 추구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의 영역은 한계선이 있다. 그 범위가 넘어선 사람에 대해서는 잔인하게 대해도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공산주의자가, 난민이, 성소수자가 도저히 선 안으로 들일 수 없는 정의의 범위일 것이다. 나의 정의의 범위는 무엇인가? 범죄자? 나의 경우 청소년 범죄에 대해서 처벌보다 교화와 사회적 원인 교정이 더 필요하다는 허용적 입장이다. 하지만 일반 범죄, 특히 강력 범죄에 대해서는 사형 등 엄벌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입장이다. 나의 생각에 모순은 없는가?

 

7. 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인가?

 

학식과 경험이 많으며 사회 변화를 이끌어가도록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저항세력으로 등장한다.

많이 배운 자가 가진 자 편에 서는 일은 80년대 독재 정권하에서뿐 아니라 현재까지(사실은 고래로 그래왔지만) 일반적인 현상이다. 교사는 누구보다도 학식과 경험으로 사회변화를 이끌어가야 할 사람들이지만 대개는 침묵, 혹은 동조, 혹은 오히려 앞장섬으로써 기득권에 복무했다. 나에게는 그런 요소가 없는가? 나이가 들면 이제는 그만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요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8. 나의 교권은 안녕한가?

 

평등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 여성의 권리가 높아지면 남성은 손해를 보는가? 학생 인권이 높아지면 교권은 떨어지는가? 난민을 지원하면 국민에게는 손해인가?

 

교권은 교사의 권리가 아니며 학생인권과 대척점에 있지 않다. 많은 이들이 학생인권이 높아지면서 교권이 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교권은 학생을 때릴 수 있는 권리, 모욕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므로 학생인권을 존중한다고 해서 교권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지금은 과거에 교사들이 교육할 권리와 권한을 학생을 함부로 대해도 제재 받지 않을 권한과 착각한 데서, 그리고 그런 착각을 바로 잡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는 시기이며, 여태까지 제대로 인정받아 보지 못했던 학생인권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자리 잡게 만드는 과도기이다. 그래서 생기는 오류들이 많다. 아무 질문이나 던지고 교사를 모욕하고 교사의 수업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 학생의 권리인 양 착각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제대로 존중받고 자란 학생들은 교사에게 그러지 않으며 교사로서 자존감을 굳게 지키고 있는 교사는 결코 학생을 모욕하지 않는다.

 

서로가 존중하며 서로의 권리와 인권을 존중하는 학교가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거기까지 가는 데 아직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그리고 하필 지금이야말로 가장 그 혼돈의 정도가 심한 울돌목이다. 여기를 빠져나가면 아마도 나는 퇴직교사가 되어 안정되어 가는 학교를 좋은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겠지..라고 희망사항을 적어본다.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 화해하고 함께하는 열린 공동체로서의 우리들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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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거니즘 만화 - 어느 비건의 채식 & 동물권 이야기
보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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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위에 놓인 고기와 생선을 다듬으면서 생명 앞에 한없이 참담한 마음이 되곤 했다. 그렇다고 아직 어린 내 아이들에게 채식을 강요할 수는 없으므로 고기 요리를 해야 했다. 아이들이 다 크고 따로 살면 언젠가는 채식을 하리라, 그런 생각은 했다. 물론 채식을 하더라도 우유나 달걀, 해산물은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진도 상 이 책에는 고기보다 먼저 달걀과 우유 이야기가 나온다.

달걀은 바로 생명을 죽이는 일은 아닐지라도 닭의 새끼를 빼앗아 먹는 일이라 마음이 꺼림칙한 게 사실이다. 게다가 이 책에 의하면 우리가 먹는 달걀은 대부분 닭들을 오로지 알 낳는 기계처럼 혹독하게 괴롭혀서 얻어내는 것이다. 저자는 가급적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달걀을 먹으라고 하는데 사실 동물복지든 아니든 남의 새끼를 먹는 건 마찬가지다.

 

우유는 어떤가.

어려서부터 우유를 거의 먹지 않고 살아왔던 나이지만 요즘 들어서는 시리얼이나 집에서 만드는 팥빙수로 우유를 제법 먹었다. 우유를 너무 안 먹으면 골다공증 걸린다고 채근하는 주변사람들 말을 생각하며 순진하게도 이렇게라도 우유를 섭취하는 스스로를 기특해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 역시 바보같이 우유가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평생 늘 젖이 나오는 소가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을 왜 못해왔던 걸까. 소젖을 얻기 위해 암소를 억지로 임신시키고, 새끼가 젖을 먹지 못하도록 떼어낸단다. 그렇게 젖소는 임신 출산과 착유를 거듭하다가 착유의 효용을 다하면 고기가 된단다. 특히 만화에서 새끼와 억지로 떼어낼 때 소들이 느끼는 안타까움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가 싶어졌다. 억지로 키우고 목숨을 빼앗고 갈가리 찢어서 고기를 만드는 일도 잔인하지만 그 짧은 생마저 고단하게 살도록 할 뿐 아니라 새끼마저 빼앗는다니. 나도 인생을 살면서 가장 마음 깊은 일이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일이다. 나도 모르게 동물의 모성애에 감정이입이 되어 많이 괴로웠다. 그렇게 절반도 채 안 되게 달걀과 우유 이야기까지 읽고 이 책을 덮었다.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다. 한동안 우유와 달걀을 먹기 힘들었다.

 

괴로워하는 내게 남편은 이렇게 말해준다. “잘은 모르겠지만 인간이 잡식성 동물이라서 고기를 먹지 않고 살기 어려운 거라면, 그들에게 미안해하지 말고 고맙다고 하고 먹자.” 나는 식구들을 위해 삼겹살을 구우면서, “돼지야, 고마워.”라고 말했다. 치즈와 버터를 좋아하는데 대용품으로 채식치즈나 마가린을 찾아보고 있다. 두유나 두부 대신 콩밥을 지어 열심히 먹어본다.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책을 읽은 여파가 가시면 또 별 고민 없이 슬픔 없이 삼겹살도 우유도 달걀도 먹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이 책처럼 죽비로 내리치는 책이 필요하다. 한없이 작아져 마른 풀꽃같은 할머니가 되어 바스라져서 우주를 떠나는 게 나의 소원이다. 그 길로 나아가는데 지혜를 주고 마음을 다지게 해주고 용기를 내게 해주는 좋은 길잡이 중에 이 책이 있다.

저자는 내내, 완벽해지려 애쓰거나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그저 같이 생각이라도 해보자고, 작고 부드러운 손을 내민다. 강요하지 않고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미더운 마음은 물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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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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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떤 분야에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일도 쉽지 않지만 단편적 지식을 넘어서는 통찰력을 갖추기는 더 어렵다. 그리고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알고 있는 것과 통찰하고 성찰한 것을 쉬운 말로 다른 이에게 나누는 것이다. 유시민이 존경받는 이유는 여기 있다. 그는 그 세 가지를 다한다.

유시민은 원래 경제학 전공자이다. 이 분야에 아는 게 많은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지금 사회와 묶어서 볼 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게다가 나처럼 고등학교 사회 시간 이후, 그리고 대학교 신입생 때 사회과학 공부를 한답시고 관련 책을 좀 읽은 이후에는 경제학 이론과 거리가 먼(은행 이율 계산하는 것도 머리 아프고 세금 낼 때마다 연말정산 할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사람이다) 삶을 살아온 사람들도 쉽게 읽히는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원래 진짜 잘 가르치는 선생들은 어려운 내용을 쉽게 가르치는 법이다. 잘난 이는 많지만 함께 가는 이들은 많지 않은 이 이 척박한 대한민국에서 그는 그걸 해낸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세상에 드러날 무렵, 많은 이들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는 그의 행태에 분노했지만 내 동생처럼 경제관념이 빠삭한이들은 내가 저런 이들을 위해 피 같은 세금을 내왔단 말인가!’ 하면서 분노했다. 같은 부모 밑에 태어났지만 경제적 유전자는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나는 문과적 감성으로 <경제학 카페>를 읽었다. 여기에 무수히 등장하는 경제학자들과 그들의 이론, 한없이 객관적으로 쓰려고 애쓴 저자의 이론 소개나 각종 계산식들은 수학 시간에 귓등으로 수업 듣는 학생마냥 건성건성 읽고 대신 듣고 싶은 말에만 귀를 쫑긋했다. 가령,

 

다른 일로도 먹고살 수 있는데도 몸을 팔 사람은 별로 없다. 동유럽 사회주의가 무너진 후 여자들이 매매춘으로 나서지 않은 나라는 옛 동독 하나뿐이었다. 흡수통일과 더불어 서독의 사회복지 제도가 그대로 이식됨으로써 여성들이 몸을 팔아야 할 절박한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리지 않은 덕분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복지에 관하여 부자나라란 국민 개개인의 평균 부가 높은 나라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평균적으로 높은 복지수준을 누리는 나라이다.라고 말하면서 GNP의 절대적인 크기가 아니라 그것을 인구수로 나눈 1인당 GNP가 빈부의 기준이 된단다. 1인당 국민총생산이 비슷하다면 국민 평균 노동신간 적은 나라가 더 부유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GNP 수준은 높지만 실제 복지는 낮다.

그리고 새삼스럽긴 하지만 자연을 경제학의 세계에서 논한 것은 불과 50년도 되지 않는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경제학의 출발은 발전, 그리고 그로 인한 갈등들이 아니었을까? 즉 산업자본주의의 발전과 경제학의 발로는 맞물려 있는 것이다. 자연이나 환경이라는 개념에 대한 관심은 자본주의 발전의 여파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 전에야 자연은 그저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인 줄만 알았으니까. 유시민은 새만금을 언급하면서 깨끗한 자연은 아무 대가 없이 소비할 수 있는 자유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오늘날에야 경제논리로 환경오염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많아졌지만 이제 자연과 환경은 비록 비경제적일지라도 놓쳐서는 안 되는 가치이다.

 

그리고 2002년에 쓰인 책이라 어떤 부분은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가 나오는데도 의료서비스 시장과 의료보험 시장은 원래부터 자본주의 시장원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예외 영역이라 개입과 통제가 불가피하다. 어느 나라도 의료 서비스와 약품 공급을 시장원리에 내맡겨둔 나라는 없다.’라는 구절은 2020년 지금에 더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코로나 사태를 맞으면서 사람들은 새삼 이명박 대통령 시절 추진했다 무산된 민간의료보험을 떠올린다. 미국의 의료실태를 언급하면서 완벽하진 않을지라도 의료를 국가가 거머쥐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를 말한다.

공중보건 서비스는 국방이나 치안과 같은 성격을 가진 공공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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