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 -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 진짜 미국이야기 만화로 보는 교양 시리즈
마이크 코노패키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요즘 영어공부를 한답시고 미국드라마 <모던 패밀리>를 열심히 보고 있다. 가족 이야기라 다양한 계층과 나이의 미국 중산층 영어를 배울 수 있어 좋다. 게다가 이민자, 게이, 동양에서 온 입양아 등등 다양성을 담은 구성도 미국답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드라마는 아슬아슬하게 인종차별의 금을 밟을락 말락 한다. 콜롬비아는 온통 범죄자의 나라고 베트남과 한국은 비교당하며 특히 한국은 일에 치여죽는 사람들의 나라인 것처럼 언급된다. 그렇지만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선한 문화에 대해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기도 한다.

미국은 어떻게 접근해도 제국주의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내게는 너무도 뿌리 깊다. 하지만 미국에 대한 나의 생각이 편견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성찰을 거듭하며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는다. 미국 시민사회의 문화적 장점을 보려고 애쓴다. 인종차별이 심하다지만 최소한 겉으로는 그건 인종차별이야라는 소리를 가장 모욕적인 말로 여길 만큼의 선은 분명하다는 점, 바람을 피우든 도둑질을 하든 거짓말은 절대 하지 말자는 사회문화적 약속, 견고한 시스템과 그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 등등....

 

오래 전에 하워드진의 <미국 민중사>를 읽었다. 그 외에도 하워드 진의 저서를 몇 권 더 읽었다. 내가 아는 제국주의 미국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들이 거기 있었다. 이번에는 만화로 정리된 <미국사>를 다시 본다. 그런데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나의 습관대로 이번에는 이 책과 더불어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 산책>을 읽고 있다. 비슷한 시기의 이야기인데 미국의 경제성장의 혜택을 입으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한 유머감각 뛰어난 글쟁이의 행복한 미국이야기와, 하염없이 신랄한 사회주의자가 바라보는 미국 이야기를 동시에 읽는 일, 게다가 시대를 좀 다르지만 아무 생각 없이 오직 내 가족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모던 패밀리>, 그리고 미국과 핀란드를 비교한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까지, 요즘 나는 미국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게 된다. 미국의 진실은 어느 지점에 있을 것일까.

 

이 만화를 보면서 큰 충격이 된 부분은 하워드진이 베트남 전쟁과 관련하여 자신의 친구 대니얼 엘즈버그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국방부 산하 연구소에서 일하던 대니얼이 베트남 전쟁이 미국에 의한 침략전쟁이라는 각종 자료들을 보면서 반전운동에 함께 하는데, 그때 그들이 선언하고 폭로할 때 한 말이 있다. 하워드 진처럼 급진적인 사람들이 아닌, 자신들 같은 사람들(아마도 평범하고 중도적인, 학벌도 좋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반전을 주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히피나 급진주의자들만 전쟁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대니얼 등이 한 일은 대단히 위험하고 미국식 표현으로 위대한일이었지만 나의 편견으로 미국의 보통 중산층들은 자신의 행복 외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찬물을 끼얹는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시민정신은 점점 의식을 잃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란 콘트라 사건으로 수감된 유일한 미국인이 불법자 이름을 딴 거리 표지판을 훔치며 상징적으로 항의했던 빌 브리든이란다. 미국 시민들은 이제 미국이 하는 짓에 눈을 감아버리는 걸까. 아니면 정부가 포장하는 대로 세계질서를 위한 일이라고 정말 믿어버리는 걸까.

 

하워드진의 말은 슬프다.

부패하지 않고 사람을 고문하지 않는 황제가 있나요? 전쟁과 정복을 하지 않는 제국이 있나요? 그것은 군인이 없는 군대와 같습니다. 아니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정부와 같습니다. 제국이 없는 세계와 같은 것이죠. “

 

하지만 그는 수많은 저항운동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훌륭하게 처신해온 경우가 아주 많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행동할 힘을 얻을 것입니다.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입니다.”

 

하노이에서 북미회담이 깨지던 날의 분노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얼마 전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할 때의 분노도 잊히지 않는다. 강대국 손에 놀아나는 우리 역사의 사례는 너무 많아서 기억도 다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뿐이 아니며 온 세계를 주물럭거리는 그들, 그리고 그 뛰어난 시민정신에도 불구하고 자기나라 국가주의에 매몰된 시민의식이 아닌 우월의식으로 무장하고 있는 대다수의 미국인들.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단순한 약자의 피해의식이 아님을 직시하지 않으면, 하워드 진처럼, 거악에 분노하는 깨어있는 시민정신을 드높이지 않으면 코로나 사태보다 더 심각한 미국의 붕괴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전쟁과 정복을 하지 않는 제국이 없었을 뿐 아니라 무너지지 않은 제국도 없었다. 역사는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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