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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거니즘 만화 - 어느 비건의 채식 & 동물권 이야기
보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월
평점 :
도마 위에 놓인 고기와 생선을 다듬으면서 생명 앞에 한없이 참담한 마음이 되곤 했다. 그렇다고 아직 어린 내 아이들에게 채식을 강요할 수는 없으므로 고기 요리를 해야 했다. 아이들이 다 크고 따로 살면 언젠가는 채식을 하리라, 그런 생각은 했다. 물론 채식을 하더라도 우유나 달걀, 해산물은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진도 상 이 책에는 고기보다 먼저 달걀과 우유 이야기가 나온다.
달걀은 바로 생명을 죽이는 일은 아닐지라도 닭의 새끼를 빼앗아 먹는 일이라 마음이 꺼림칙한 게 사실이다. 게다가 이 책에 의하면 우리가 먹는 달걀은 대부분 닭들을 오로지 알 낳는 기계처럼 혹독하게 괴롭혀서 얻어내는 것이다. 저자는 가급적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달걀을 먹으라고 하는데 사실 동물복지든 아니든 남의 새끼를 먹는 건 마찬가지다.
우유는 어떤가.
어려서부터 우유를 거의 먹지 않고 살아왔던 나이지만 요즘 들어서는 시리얼이나 집에서 만드는 팥빙수로 우유를 제법 먹었다. 우유를 너무 안 먹으면 골다공증 걸린다고 채근하는 주변사람들 말을 생각하며 순진하게도 이렇게라도 우유를 섭취하는 스스로를 기특해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 역시 바보같이 우유가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평생 늘 젖이 나오는 소가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을 왜 못해왔던 걸까. 소젖을 얻기 위해 암소를 억지로 임신시키고, 새끼가 젖을 먹지 못하도록 떼어낸단다. 그렇게 젖소는 임신 출산과 착유를 거듭하다가 착유의 효용을 다하면 고기가 된단다. 특히 만화에서 새끼와 억지로 떼어낼 때 소들이 느끼는 안타까움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가 싶어졌다. 억지로 키우고 목숨을 빼앗고 갈가리 찢어서 고기를 만드는 일도 잔인하지만 그 짧은 생마저 고단하게 살도록 할 뿐 아니라 새끼마저 빼앗는다니. 나도 인생을 살면서 가장 마음 깊은 일이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일이다. 나도 모르게 동물의 모성애에 감정이입이 되어 많이 괴로웠다. 그렇게 절반도 채 안 되게 달걀과 우유 이야기까지 읽고 이 책을 덮었다.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다. 한동안 우유와 달걀을 먹기 힘들었다.
괴로워하는 내게 남편은 이렇게 말해준다. “잘은 모르겠지만 인간이 잡식성 동물이라서 고기를 먹지 않고 살기 어려운 거라면, 그들에게 미안해하지 말고 고맙다고 하고 먹자.” 나는 식구들을 위해 삼겹살을 구우면서, “돼지야, 고마워.”라고 말했다. 치즈와 버터를 좋아하는데 대용품으로 채식치즈나 마가린을 찾아보고 있다. 두유나 두부 대신 콩밥을 지어 열심히 먹어본다.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책을 읽은 여파가 가시면 또 별 고민 없이 슬픔 없이 삼겹살도 우유도 달걀도 먹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이 책처럼 죽비로 내리치는 책이 필요하다. 한없이 작아져 마른 풀꽃같은 할머니가 되어 바스라져서 우주를 떠나는 게 나의 소원이다. 그 길로 나아가는데 지혜를 주고 마음을 다지게 해주고 용기를 내게 해주는 좋은 길잡이 중에 이 책이 있다.
저자는 내내, 완벽해지려 애쓰거나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그저 같이 생각이라도 해보자고, 작고 부드러운 손을 내민다. 강요하지 않고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미더운 마음은 물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