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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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을 쓸 무렵, 정부에서 과학 연구 예산을 3조 원 가까이 삭감한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과학 잘 모르는 내가 들어도 그게 말이 되나 싶은 뉴스가... 과학이 우리 삶의 고마운 기반이 됨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더라도 그런 필요한 영역의 예산 삭감 기사는 우리로 하여금, 도대체 나라가 어디로 가나, 우려하게 만든다. 마침 이 책에서 내가 가장 맨 앞에 메모해 놓은 내용이 김대중 정부에서(IMF시절임에도) 과학과 공학 분야 신진 연구자 지원에 중점을 둔 학문후속세대 양성 사업에 해마다 2천억 원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는 내용이다. 즐겁게 읽은 책인데 씁쓸한 마음으로 서평을 쓴다.

 

우리 가족이 유시민의 <문과남자의 과학공부>를 돌려가며 읽으면서 나눈 대화 중 하나가 그가 경제학을 전공했다면서? 경제학은 문과 중에서도 꽤 이과적인 과목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책의 시작부터 끝날 무렵까지 유시민은(어떤 이들에게 천재라고까지 칭송을 듣는 그 유시민이) 자기는 과학도 모르고 수학에도 천재들을 따라잡을 수 없노라고, 일반적인 인간들, 특히나 문과인들에게는 인간계/신계처럼 넘사벽의 어떤 존재들인 양 추앙의 언어를 늘어놓는다. , 경제학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꽤나 넘사벽인 과목인데.....

 

글을 읽으며 조금 헷갈렸던 부분이 있다. 그는 인문학과 과학의 통섭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인가, 아님 통섭이라 말하면서 인문학자들이 과학을 등한시한다고 문제라고 말하는 건가. 인문학자들이 과학을 공부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과학자들에게서 인문적 소양이 부족할 때 얼마나 세상이 위험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과학 공부하려는 염도 내지 않는 수많은 인문학도들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또 내 머리 위의 물음표 하나.

물론 대부분 해설서이긴 하지만 마침 이 책과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이것저것 읽고 있는 중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눈이 휘둥그레져 있는 상태였다. <장미의 이름> 속 상상 속에서 사라진 책의 주인공, 철학사에서 겉핥기로 늘 등장하는 아리스토아저씨가 온갖 방대한 분야에 오지랖 넓은 연구를 했다는 사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지금 서양 철학사에 끼친 영향이 어마무시하다는 사실에 놀라 그에 관해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 옛날에 살았던 사람이 자연과학을 포함하여 사방팔방에 연구의 촉수를 뻗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의 생각이 앞서나가다 못해 현대 서양인들의 문화와 가치에 뿌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더더욱 놀랐다. 하지만 유시민은 오히려 그의 영향력이 큰 만큼, 당시에 그가 범한 오류가 얼마나 많은 세월 폐해를 끼쳤는지 말한다. ‘케플러와 갈릴레이 등 과학혁명 여명기 과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랜 지적 권위의, 그러나 틀린 자연과학) 이론과 싸워야 했다.’ 면서. 특히 아리스토텔레스가 하루 한 바퀴 도는 별의 움직임과 태양계 다른 행성의 역행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던 천동설에 대해 지상계와 천상계는 서로 다른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설명했다는 것을 예로 든다. 유시민은 인문학 천재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과학적 오류를 잘못된 지적 권위’, ‘잘못된 인문학의 폐해라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지금 살아있다면 그래, 이제 그 이론이 잘못된 것이란 건 인정. 하지만 그땐 거기까지밖에 생각이 못 미치던 시대라구! 그리고 내가 이렇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줄 내가 알았겠니?” 하지 않을까?

 

유시민은 인문()자인 자신의 과학공부의 성과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궁극은 무엇인가’, ‘나를 나로 인식하고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적 자아라는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의 답을 오히려 과학에서 찾았다면서. 나도 조금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그의 짝꿍인 앤 드류안의 <코스모스>를 연달아 읽으며 느꼈던 희열은, 우주가 너무나 방대하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눈물 나게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 이 반어만큼 우주 속 인간, 나란 존재가 너무나 미약하고 허무하며, 허무하기에 이 삶에 집착할 필요도 없이 이 작은 삶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과학의 명징한 세계는 한 인간 존재의 그릇에 대한 오만을 비우게 한다. 그래서 오히려 과학 공부는 알지 못할 미지와 미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보게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인문학도도 읽어야 하는 과학책들 대부분을 나도 읽었거나 읽고 있다.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다윈, 김상욱, 최재천, 정재승, 그리고 여기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은희, 그리고 과학적이라기보다 인문학적 수필에 가까운 심채경의 글 등등. 그러나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인문학도의 과학 읽기는 유시민처럼 과학에서 인생의 의미 찾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각자의 영역이 있고 역할이 있는 것이다. 거기에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나는 교사니까, 국어 수업을 하면서 어떻게 이런 과학적 사실들,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과 인생의 의미를 중학생들 수준에 맞게 이야기해 줄 것인가를 고민하며 책을 읽는다. 물론 나의 사회적 역할과 인생의 의미를 성찰하는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나를 이어 이 책을 읽고 있는 남편이 옆에서 계속 감탄을 한다. “유시민 말빨이란, ~!” 어려운 내용을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흔치 않은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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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의 스페인어 멘토링 2 (중급편) - 스페인어를 시작하는 가장 쉬운 방법, 개정판 실비아의 스페인어 멘토링 2
실비아 전(Silvia Chun) 지음 / 실비아스페인어 (SILVIASPANISH)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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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의 스페인어 멘토링 실비아 전 지음

 

지난 겨울부터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다. 오래 전, 스페인 때였는지 쿠바 여행 전인지 사둔 문법 책 한 권과 그 내용을 올려놓은 팟캐스트를 가지고. 그러다가 우연히 <실비아의 스페인어 멘토링>을 팟캐스트에서 발견했고 출퇴근길에 듣기 시작했다. 같은 내용을 유튜브에서 찾았을 땐 보물섬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아주 깔끔한 서체로 화면에 스크립트를 온전히 다 띄워놓은 165개의 강의는 한 강의가 대략 20분 전후, 처음부터 잘 따라가면 단계별 발전을 맛볼 수 있게 기가 막히게구성돼 있었다.

나는 이 강의를 공책에 두 번쯤 들었다. 이게 얼마나 잘 정리돼 있는지 앞서 언급한 문법책의 지루함 복잡함과 너무나 비교가 될 정도다. 사실 책이 필요 없이 모든 강의를 받아적는 것으로 문법 공부가 완결될 정도다. 내게는 그런 공책이 두 권 있다. 그런데 별로 필요도 없게 된 책을 왜 샀느냐고? 실비아 선생님에게 너무 고마워서다. 이 강의를 학원에 가서 듣는다면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할까. 책 한 권 사는 가격으로도 부족하다. 만나면 밥이라도 사드리고 싶다.

유튜브에는 많은 어학공부 강의들이 있지만 생각보다 스페인어 강좌가 많은 편은 아니다. 게다가 이것저것 들어보면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예문이 재미없거나 강사의 목소리나 톤이 나와 맞지 않거나 한다. 이런 말씀은 좀 미안하지만, 국어 교사의 눈으로 보면 한국어 발음이나 표현, 어휘력에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분도 많다. 스페인어는 내가 배우는 입장이긴 하지만 한국인의 스페인어 발음이 갖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 부분을 상쇄시켜 줄 수 있는 원어민 발음이라든지 이런 부분이 준비되지 않은 강의들도 많았다. 심지어는... 나의 막귀로 들어도 별로 좋은 스페인어 발음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한국의 사투리 억양이 섞여 들어가는 스페인어를 배운다는 건 좀....

 

다시 한 번 실비아의 스페인어 멘토링 강의의 훌륭한 점을 들어본다.

1. 구성이 완벽하다.

2. 말소리가 또렷하다(한국어 발성과 발음이 깨끗하다)

3. 예문이 꼭 필요하고 적절하게 쓰였다.

4. 스크립트가 정말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다.

5. 스페인어의 가장 큰 함정은 동사 변화를 외우는 건데, 이걸 무수히 반복해 주고, 따라하게

한다. 내가 강사라도 지난번에 동사변화를 정리해 주었는데 또 해야 한다면 귀찮거나 의미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게다가 인강인데.. 학생들이 알아서 반복시청할 수도 있건만..) 하지만 실비아 선생님은 동사변화, 특히 아센또(액센트)를 정확히 몸으로 익히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하지 못했다 해도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서 선생님 목소리가 떠오를 정도니.

 

나는 한국어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데 만약 여러 개 언어를 섞어가며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다면 영어와 스페인어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남편과 언젠가 직항이 생기면 다시 쿠바에 가자고 약속했는데 그때쯤이면 더듬더듬이라도 여행 스페인어 정도는 하지 않을까. 여행지에서 들른 서점에서 동화나 그림책을 잔뜩 사 와 번역 출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스페인어를 다시 공부하게 된 계기 중 하나도 루이스 세뽈베다의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 덕분이었으니(읽으면서 원문이 궁금했다). 그런 날이 온다면 내 스페인어 공부의 유레카였던 실비아 선생님을 꼭 기억할 것이다. 책을 구입하신 분들도 꼭 유튜브 영상을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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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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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도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올까

전쟁은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

혐오는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

종교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등등의 완전무결한 어떤 세상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을 보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하기에. 물론 우리는 그런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 노력해야 한다. 역사는 그런 노력이 헛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왔으니까. 하지만 그런 세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인간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 이 서평을 쓰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책 속 내용 중에 인간이 기도하지 않는 세상이 될 때, 그때야말로 인간 세상은 평화로워지지 않을까라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한동일 선생은 신앙인이기에 절대선에 대한 신념이 있는 듯 보인다.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인간과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다를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인간이란 존재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기에 종교가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기도는 꼭 필요하리라.

 

사르트르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아직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을 그려 볼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말했다 한다. 그리고 이 중 대표적인 것이 부재하는 실재의 개념이라고 했다나. 신은 존재하는 걸까?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해서 없다고 주장하는 무지에의 오류를 범하고 싶진 않지만 아직까지의 삶에서 나는 현실과 과학을 믿는 자인 것 같다. 다만 여지를 열어둘 뿐. 다른 이의 생각을 존중할 뿐.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 알지 못할 존재에게 기도를 바친다. 내가 이 우주의 한없이 작고 하찮은 존재라는 겸손함으로 어딘가에 납작 엎드리고 싶을 때가 많다. 어떨 땐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 어린 존숭의 마음이 우러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때가 있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나의 친구는 살아생전 절집 나들이를 자주 다녔지만 병이 깊어 사경을 몇 번 헤매는 와중에 천주교로 개종 아닌 개종을 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강인하던 사람도 죽음을 눈앞에 두고 신에게 기대고 싶었으리라 싶다. 나도 그럴지 모른다.

 

저자의 말 중 기도를 통해 마음의 고통을 줄일 수는 있지만 예배에 참여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에 위안을 얻는다. 종교를 갖지 않는 일은 확고한 신념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초월적 존재가 있을 수도 있고, 적어도 이 거대한 자연과 우주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만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신앙의 틀과 규율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 사실은 무엇보다도 그 신심이라는 게 생기지 않는 나같은 사람들의 불편한 마음에 대해 신앙인이 해주는 최고의 말이다. 당신이 믿지 않아서, 기도하지 않아서 불행해질 것이라는 저주는 얼마나 불편하고 불쾌했던가.

 

2. 진정한 진보는

책을 읽으면서 이 사람의 입장은 무엇일까 생각할 때가 많다. 신영복 선생이 말씀한 입장의 동일함은 종교인들의 세계관만큼이나 현실 세계의 인간관계를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수용할 수 있는, 수용해야 하는 고귀한 견해들이 많음을 알지만 말이다. 한동일 선생은 얼핏 보수적인 사람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가치는 기본적으로 약자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란 점에서 진보의 관점이란 생각이 든다. 예수가 그랬듯이. 물론 근본은 신에게로 나아가긴 하지만 인간의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나 사회가 나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고 돌봐주고 보살펴준다는 느낌의 귀중함을 말한다. 코로나 당시의 한국 사회를 예로 들면서. 국가나 조직이나 공동체(종교적인 공동체를 포함하여)의 역할은 그런 것이리라.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이익과 착취의 효율이 아니라 공생과 돌봄의 관계로 공동체를 바라보는 이라면 그는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한동일 선생의 글을 좋아한다. 사고방식이나 삶의 태도는 나와 많이 다르지만 그의 학자다우면서 신앙인다운 모습과 세상의 약자에 대한 시선이 좋다. 지향의 궁극은 다를지라도 가는 길은 넓은 의미에서 같은 길이라 생각한다.

 

3. 낯선 언어를 공부하는 일

요즘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스페인어도 이 책에서 언급되는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비슷한 단어가 나와서 재미있었다. 새로운 언어를 아는 것은 또 하나의 세계를 아는 것이라고 누가 그랬다. 라틴어라는 세계는 현존하는 세계가 아닐 수 있지만 어차피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것만으로 삶을 채울 수는 없기에 의 영역으로서 저자가 언급하는 라틴어를 만난다. 다시 가볼 일이 있을지 없을지도 잘 모를 스페인이나 쿠바, 혹은 남미, 그래서 써먹을 일이 있을지 어떨지 알 수도 없는 스페인어지만 열심히 공부한다. 공부하는 동안은 세사의 근심을 잊고 낯선 언어로 꿈을 꾸어 본다. 스페인어로 책을 읽는 상상, 좋아하는 책을 원서로 읽으면 달라질 그 느낌에 대한 상상. 삶의 절반은 현실이나 핍진한 현실을 버티게 하는 절반은 꿈, 상상, 문학과 예술, 다른 세계에 대한 열망이 아닐까.

라틴어는 현실의 언어가 아니지만 단순한 몽상의 언어가 아니라 현실 언어의 뿌리이기에 의미가 있다. 세상을 지배하는 서유럽 문화와 언어의 뿌리니까. 그래서 비현실적인 한동일의 라틴어가 매력적인가 보다.

 

4. 대략 알고 있었으나 자세히 알게 된 내용이 있다.

10세기 초반 영주 간의 다툼 등 정치적 대혼란의 시기에 민중들은 지배자가 아닌 교회를 중심으로 주거 집단을 형성. 교회 영토에서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를 하기보다 느슨하게 통치하면서 사법, 조세, 행정, 군사 분야까지 범위를 넓혀감. (마키아벨리는 비판했지만) 이런 교회 국가와 교황령에서 오히려 근대국가의 주권과 입법권 개념이 나옴.

 

유럽의 특성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그 지역의 건축, 문화, 정치적 토대들은 다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중세 유럽의 종교 권력은 재앙이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 시점으로 보면 고스란히 그 명과 암을 자신의 문화적 자산으로 다 품어 안고 있다. 나쁜 역사도 역사인 것이다.

 

중세 유럽은 전염병 탓에 노동력이 부족했고 (이것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의료) 기술 발전의 계기가 됨.

 

전염병의 역설, 전쟁의 역설 따위를 생각하며, 위기는 늘 기회가 되었구나 싶다. 환경이나 기후 문제도 그렇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5. 수업에 활용할 부분

칸트웰 대 코네티컷 판결 행인이 지나가는 길에 카톨릭을 부정하는 녹음테이프를 틀어 치안 방해죄로 기소된 여호와의증인 신도 칸트웰 사건 믿는 자유는 절대적이지만 행동의 자유는 그렇지 않다. 행동은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규제의 대상으로 남는다.

 

이 내용으로 토론 수업을 해볼까 한다. 남학생들과 혐오표현을 표현의 자유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두 시간 정도의 토론, 주장글 쓰기 수업을 해마다 한다. 이때 헌법 정신(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때 위 내용도 함께 토론해볼 만할 것 같다. 한국 사회는 진영논리가 삶 전반과 가치관, 세계관 전반을 지배한다. 이 현상은 10대 남학생들에게까지 강렬히 영향을 미친다. 열네 살짜리 중1 남학생들이 어른들의 배금주의 가치관, 인터넷의 젊은 남자들의 혐오주의 가치관을 내면화한 모습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그러나 부정적이라 해서 포기할 수는 없기에 가장 예민한 주제들로 토론 수업을 한다. 토론을 교육하는 것 말고는 가치관의 상충을 극복하고 의견을 통합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수업을 하게 된다면 헌법이 보장한 양심, 신앙, 신념의 자유는 인정,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네오나치든 극우, 공산주의, 살인을 정당하다 생각하든 생각은 자유지만 행동으로 옮길 자유를 뜻하는 것은 아니란 것. 다만, 신념은 대개 행동으로 표출되기에 아무리 양심이 자유라 해도 좋은 가치관, 좋은 양심, 좋은 신념을 가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생각은 어떻든 그게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생각이 쌓이고 신념이 되면 실천하고 싶은 게 사람이기에 올바른 사고를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강조해 가르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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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윤정은 지음 / 북로망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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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에 신선함도 없고 예상 외의 사건도 없다. 주인공 지은은 읽는 내내 드라마 <도깨비>의 저승사자의 연인이자 도깨비의 누이였던 배우 유인나가 떠오르는 캐릭터였다. 특히 맨 앞, 지은이 이생에서 마음세탁소를 열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요약해놓은 장면은 차라리 없었으면 싶다. 중학생 독서용 도서로 이 책을 검토하려 읽어본 바로는, 1이 읽는다면 나쁘지 않으리라, 싶은 정도지만 이야기 자체는 어린 학생들보다 30대 젊은이들(아마도 작가 또래일 듯한)과 그 부모 세대 이야기에 가깝다. 내용물에 비해 큰 명성을 걸치면 부담스러울 수 있으리라는 걱정이 앞선다. 책 속 에피소드 중 하나인 인플루언서 이야기처럼...

 

다만, 개인적으로 한없이 마음이 약하고 우울한 시기에 이 책을 읽다 보니 본의 아니게 마음의 위로를 받은 점은 고맙게 여긴다. 나는 그놈의 마음이란 게 객관적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걸 머리로 잘 아는 사람이다. 그걸 안다고 해서 내 상황이나 마음이 잘 다스려지느냐, 그렇지는 않다.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들을 여럿 알고는 있지만 힘이 드는 건 힘이 드는 것이다. 그 와중에 이 뻔한 이야기는 울고 있는 엄마나 할머니를 토닥이는 어린 아기의 손길처럼 어설프고 귀여웠다. 그래, 누군가에게는 치밀한 구성과 뛰어난 대사로서가 아니라도 이렇게 위안이 되는 이야기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적어도 작가는, 이 이야기를 쓰면서 행복했을 것 같다. 그리고, 드라마로 다시 태어난다면 멋진 장면들과 사랑스러운 캐릭터들로 12회만큼 정도의 행복을 시청자들에게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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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살아도 안 이상해지던데? - 인간 네온사인 이명석의 개성 촉구 에세이
이명석 지음 / 궁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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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의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지친 와중에 만나는 온갖 끔찍한 뉴스들, 정치적인 불안, 개인적으로 아픈 몸, 그리고 퇴직을 고민하게 하는 학교의 금쪽이, 교권 추락 뉴스... 이런 것들을 안고 신경안정제 처방이라도 받아야 하나, 힘들어하면서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동시에 읽는 7, 8권의 책들 중에는 1년 가까운 시간에 걸쳐 천천히 읽는 철학책도, 과학책도 있지만 이렇게 마음이 힘든 날에는 문학작품들도 잠들기 직전의 독서를 마무리했다. 조금 슬플지라도 아름다운 마음으로 잠들려고. 그리고 그마저도 힘든 날에 그나마 날 행복하게 했던 책 두 권 중 하나가 바로 이 <이상하게 살아도 안 이상해지던데?>였다. 한겨레 신문에서 빠트리지 않고 읽던 이명석의 글, 일단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재미있다. 그냥 허접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것 같지만 그 안에 고갱이가 있다. 그렇다고 엄청 어깨에 힘을 준 거대 담론도 아니다. 삶의 지혜랄지 성찰이랄지, 그런 게 있다. 나는 이런 글쓰기를 좋아한다. 적절한 유머감각, 힘빼고 말하기, 잘난 척하지 않기.

 

특히 이명석의 글은, 흔히 글 좀 쓴다는 이들이 다 하는 남의 말 인용하기가 없다. 이 사람은 남에게 보여주려고 이상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다. 머리를 기르고 재미있는 일을 좇고, 장난감을 들고 다니지만 그는 이상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재미나게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렇게 겁내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라고 누가 그랬다. 카잔차키스였던가, 무서운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는 사람, 중세에도 없었고 에리히 프롬이 고민했던 근대인의 소명이었으나 갖기 어려웠던 그 자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진짜. 욕심도 없고 두려움도 없고 부러움도 없고 그렇다고 거침없이 용감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삶은, 불가능하겠지. 그런 꿈조차 애써 꾸지 않는 이명석의 글은 한없이 울적한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준다. 마지막 한 챕터를 남기고 아쉬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렇게 좋은 글인데 이 사람 책은 왜 이리 잘 안 팔리는 걸까. 하긴 책이 좋은 것과 잘 팔리는 것은 아무 상관관계가 없는 일이긴 하더라. .

그의 생각과 마음을 알 수 있는 몇 구절을 소개해 본다.

 

명심하자, 내 안의 어떤 자아가 저지른 일은, 나의 다른 자아들이 함께 책임져야 한다. 그러니 더러운 자아를 역겨워하고 부끄러운 자아를 교정할 수 있는 자아를 키워야 한다.

 

우리는 가끔 집을 뛰쳐나가고 길을 잃어야 한다. 상상 속의 연습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이런 남자들이 있다고 한다. 여자 가수가 걸스 캔 두 애니싱문구를 들엇다고, 여성의 삶을 돌아보는 소설을 읽었다고 시비를 건단다. 혹시 스스로 뭔가를 하는 것보다 여자들이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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