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9월
평점 :
1. 기도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올까
전쟁은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
혐오는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
종교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등등의 ‘완전무결한 어떤 세상’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을 보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하기에. 물론 우리는 그런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 노력해야 한다. 역사는 그런 노력이 헛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왔으니까. 하지만 그런 세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인간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 이 서평을 쓰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책 속 내용 중에 ‘인간이 기도하지 않는 세상이 될 때, 그때야말로 인간 세상은 평화로워지지 않을까’라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한동일 선생은 신앙인이기에 절대선에 대한 신념이 있는 듯 보인다.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인간과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다를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인간이란 존재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기에 종교가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기도는 꼭 필요하리라.
사르트르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아직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을 그려 볼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말했다 한다. 그리고 이 중 대표적인 것이 ‘부재하는 실재’인 神의 개념이라고 했다나. 신은 존재하는 걸까?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해서 없다고 주장하는 무지에의 오류를 범하고 싶진 않지만 아직까지의 삶에서 나는 현실과 과학을 믿는 자인 것 같다. 다만 여지를 열어둘 뿐. 다른 이의 생각을 존중할 뿐.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 알지 못할 존재에게 기도를 바친다. 내가 이 우주의 한없이 작고 하찮은 존재라는 겸손함으로 어딘가에 납작 엎드리고 싶을 때가 많다. 어떨 땐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 어린 존숭의 마음이 우러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때가 있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나의 친구는 살아생전 절집 나들이를 자주 다녔지만 병이 깊어 사경을 몇 번 헤매는 와중에 천주교로 개종 아닌 개종을 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강인하던 사람도 죽음을 눈앞에 두고 신에게 기대고 싶었으리라 싶다. 나도 그럴지 모른다.
저자의 말 중 ‘기도를 통해 마음의 고통을 줄일 수는 있지만 예배에 참여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에 위안을 얻는다. 종교를 갖지 않는 일은 확고한 신념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초월적 존재가 있을 수도 있고, 적어도 이 거대한 자연과 우주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만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신앙의 틀과 규율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 사실은 무엇보다도 그 ‘신심’이라는 게 생기지 않는 나같은 사람들의 불편한 마음에 대해 신앙인이 해주는 최고의 말이다. 당신이 믿지 않아서, 기도하지 않아서 불행해질 것이라는 저주는 얼마나 불편하고 불쾌했던가.
2. 진정한 진보는
책을 읽으면서 이 사람의 ‘입장’은 무엇일까 생각할 때가 많다. 신영복 선생이 말씀한 ‘입장의 동일함’은 종교인들의 세계관만큼이나 현실 세계의 인간관계를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수용할 수 있는, 수용해야 하는 고귀한 견해들이 많음을 알지만 말이다. 한동일 선생은 얼핏 보수적인 사람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가치는 기본적으로 약자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란 점에서 ‘진보의 관점’이란 생각이 든다. 예수가 그랬듯이. 물론 근본은 신에게로 나아가긴 하지만 인간의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나 사회가 나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고 돌봐주고 보살펴준다는 느낌’의 귀중함을 말한다. 코로나 당시의 한국 사회를 예로 들면서. 국가나 조직이나 공동체(종교적인 공동체를 포함하여)의 역할은 그런 것이리라.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이익과 착취의 효율이 아니라 공생과 돌봄의 관계로 공동체를 바라보는 이라면 그는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한동일 선생의 글을 좋아한다. 사고방식이나 삶의 태도는 나와 많이 다르지만 그의 학자다우면서 신앙인다운 모습과 세상의 약자에 대한 시선이 좋다. 지향의 궁극은 다를지라도 가는 길은 넓은 의미에서 같은 길이라 생각한다.
3. 낯선 언어를 공부하는 일
요즘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스페인어도 이 책에서 언급되는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비슷한 단어가 나와서 재미있었다. 새로운 언어를 아는 것은 또 하나의 세계를 아는 것이라고 누가 그랬다. 라틴어라는 세계는 현존하는 세계가 아닐 수 있지만 어차피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것만으로 삶을 채울 수는 없기에 ‘꿈’의 영역으로서 저자가 언급하는 라틴어를 만난다. 다시 가볼 일이 있을지 없을지도 잘 모를 스페인이나 쿠바, 혹은 남미, 그래서 써먹을 일이 있을지 어떨지 알 수도 없는 스페인어지만 열심히 공부한다. 공부하는 동안은 세사의 근심을 잊고 낯선 언어로 꿈을 꾸어 본다. 스페인어로 책을 읽는 상상, 좋아하는 책을 원서로 읽으면 달라질 그 느낌에 대한 상상. 삶의 절반은 현실이나 핍진한 현실을 버티게 하는 절반은 꿈, 상상, 문학과 예술, 다른 세계에 대한 열망이 아닐까.
라틴어는 현실의 언어가 아니지만 단순한 몽상의 언어가 아니라 현실 언어의 뿌리이기에 의미가 있다. 세상을 지배하는 서유럽 문화와 언어의 뿌리니까. 그래서 비현실적인 한동일의 라틴어가 매력적인가 보다.
4. 대략 알고 있었으나 자세히 알게 된 내용이 있다.
10세기 초반 영주 간의 다툼 등 정치적 대혼란의 시기에 민중들은 지배자가 아닌 교회를 중심으로 주거 집단을 형성. 교회 영토에서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를 하기보다 느슨하게 통치하면서 사법, 조세, 행정, 군사 분야까지 범위를 넓혀감. (마키아벨리는 비판했지만) 이런 교회 국가와 교황령에서 오히려 근대국가의 주권과 입법권 개념이 나옴.
유럽의 특성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그 지역의 건축, 문화, 정치적 토대들은 다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중세 유럽의 종교 권력은 재앙이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 시점으로 보면 고스란히 그 명과 암을 자신의 문화적 자산으로 다 품어 안고 있다. 나쁜 역사도 역사인 것이다.
중세 유럽은 전염병 탓에 노동력이 부족했고 (이것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의료) 기술 발전의 계기가 됨.
전염병의 역설, 전쟁의 역설 따위를 생각하며, 위기는 늘 기회가 되었구나 싶다. 환경이나 기후 문제도 그렇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5. 수업에 활용할 부분
칸트웰 대 코네티컷 판결 – 행인이 지나가는 길에 카톨릭을 부정하는 녹음테이프를 틀어 치안 방해죄로 기소된 여호와의증인 신도 칸트웰 사건 – 믿는 자유는 절대적이지만 행동의 자유는 그렇지 않다. 행동은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규제의 대상으로 남는다.
이 내용으로 토론 수업을 해볼까 한다. 남학생들과 ‘혐오표현을 표현의 자유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두 시간 정도의 토론, 주장글 쓰기 수업을 해마다 한다. 이때 헌법 정신(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때 위 내용도 함께 토론해볼 만할 것 같다. 한국 사회는 진영논리가 삶 전반과 가치관, 세계관 전반을 지배한다. 이 현상은 10대 남학생들에게까지 강렬히 영향을 미친다. 열네 살짜리 중1 남학생들이 어른들의 배금주의 가치관, 인터넷의 젊은 남자들의 혐오주의 가치관을 내면화한 모습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그러나 부정적이라 해서 포기할 수는 없기에 가장 예민한 주제들로 토론 수업을 한다. 토론을 교육하는 것 말고는 가치관의 상충을 극복하고 의견을 통합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수업을 하게 된다면 헌법이 보장한 양심, 신앙, 신념의 자유는 인정,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네오나치든 극우, 공산주의, 살인을 정당하다 생각하든 생각은 자유지만 행동으로 옮길 자유를 뜻하는 것은 아니란 것. 다만, 신념은 대개 행동으로 표출되기에 아무리 양심이 자유라 해도 좋은 가치관, 좋은 양심, 좋은 신념을 가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생각은 어떻든 그게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생각이 쌓이고 신념이 되면 실천하고 싶은 게 사람이기에 올바른 사고를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강조해 가르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