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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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을 쓸 무렵, 정부에서 과학 연구 예산을 3조 원 가까이 삭감한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과학 잘 모르는 내가 들어도 그게 말이 되나 싶은 뉴스가... 과학이 우리 삶의 고마운 기반이 됨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더라도 그런 필요한 영역의 예산 삭감 기사는 우리로 하여금, 도대체 나라가 어디로 가나, 우려하게 만든다. 마침 이 책에서 내가 가장 맨 앞에 메모해 놓은 내용이 김대중 정부에서(IMF시절임에도) 과학과 공학 분야 신진 연구자 지원에 중점을 둔 학문후속세대 양성 사업에 해마다 2천억 원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는 내용이다. 즐겁게 읽은 책인데 씁쓸한 마음으로 서평을 쓴다.

 

우리 가족이 유시민의 <문과남자의 과학공부>를 돌려가며 읽으면서 나눈 대화 중 하나가 그가 경제학을 전공했다면서? 경제학은 문과 중에서도 꽤 이과적인 과목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책의 시작부터 끝날 무렵까지 유시민은(어떤 이들에게 천재라고까지 칭송을 듣는 그 유시민이) 자기는 과학도 모르고 수학에도 천재들을 따라잡을 수 없노라고, 일반적인 인간들, 특히나 문과인들에게는 인간계/신계처럼 넘사벽의 어떤 존재들인 양 추앙의 언어를 늘어놓는다. , 경제학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꽤나 넘사벽인 과목인데.....

 

글을 읽으며 조금 헷갈렸던 부분이 있다. 그는 인문학과 과학의 통섭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인가, 아님 통섭이라 말하면서 인문학자들이 과학을 등한시한다고 문제라고 말하는 건가. 인문학자들이 과학을 공부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과학자들에게서 인문적 소양이 부족할 때 얼마나 세상이 위험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과학 공부하려는 염도 내지 않는 수많은 인문학도들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또 내 머리 위의 물음표 하나.

물론 대부분 해설서이긴 하지만 마침 이 책과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이것저것 읽고 있는 중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눈이 휘둥그레져 있는 상태였다. <장미의 이름> 속 상상 속에서 사라진 책의 주인공, 철학사에서 겉핥기로 늘 등장하는 아리스토아저씨가 온갖 방대한 분야에 오지랖 넓은 연구를 했다는 사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지금 서양 철학사에 끼친 영향이 어마무시하다는 사실에 놀라 그에 관해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 옛날에 살았던 사람이 자연과학을 포함하여 사방팔방에 연구의 촉수를 뻗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의 생각이 앞서나가다 못해 현대 서양인들의 문화와 가치에 뿌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더더욱 놀랐다. 하지만 유시민은 오히려 그의 영향력이 큰 만큼, 당시에 그가 범한 오류가 얼마나 많은 세월 폐해를 끼쳤는지 말한다. ‘케플러와 갈릴레이 등 과학혁명 여명기 과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랜 지적 권위의, 그러나 틀린 자연과학) 이론과 싸워야 했다.’ 면서. 특히 아리스토텔레스가 하루 한 바퀴 도는 별의 움직임과 태양계 다른 행성의 역행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던 천동설에 대해 지상계와 천상계는 서로 다른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설명했다는 것을 예로 든다. 유시민은 인문학 천재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과학적 오류를 잘못된 지적 권위’, ‘잘못된 인문학의 폐해라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지금 살아있다면 그래, 이제 그 이론이 잘못된 것이란 건 인정. 하지만 그땐 거기까지밖에 생각이 못 미치던 시대라구! 그리고 내가 이렇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줄 내가 알았겠니?” 하지 않을까?

 

유시민은 인문()자인 자신의 과학공부의 성과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궁극은 무엇인가’, ‘나를 나로 인식하고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적 자아라는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의 답을 오히려 과학에서 찾았다면서. 나도 조금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그의 짝꿍인 앤 드류안의 <코스모스>를 연달아 읽으며 느꼈던 희열은, 우주가 너무나 방대하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눈물 나게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 이 반어만큼 우주 속 인간, 나란 존재가 너무나 미약하고 허무하며, 허무하기에 이 삶에 집착할 필요도 없이 이 작은 삶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과학의 명징한 세계는 한 인간 존재의 그릇에 대한 오만을 비우게 한다. 그래서 오히려 과학 공부는 알지 못할 미지와 미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보게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인문학도도 읽어야 하는 과학책들 대부분을 나도 읽었거나 읽고 있다.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다윈, 김상욱, 최재천, 정재승, 그리고 여기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은희, 그리고 과학적이라기보다 인문학적 수필에 가까운 심채경의 글 등등. 그러나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인문학도의 과학 읽기는 유시민처럼 과학에서 인생의 의미 찾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각자의 영역이 있고 역할이 있는 것이다. 거기에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나는 교사니까, 국어 수업을 하면서 어떻게 이런 과학적 사실들,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과 인생의 의미를 중학생들 수준에 맞게 이야기해 줄 것인가를 고민하며 책을 읽는다. 물론 나의 사회적 역할과 인생의 의미를 성찰하는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나를 이어 이 책을 읽고 있는 남편이 옆에서 계속 감탄을 한다. “유시민 말빨이란, ~!” 어려운 내용을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흔치 않은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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