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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
엘리너 파전 지음, 이도우 옮김 / 수박설탕 / 2023년 12월
평점 :
읽으면서, 참 아름다운데 왜 신선한가, 왜 독특한가 생각해 보았다. 분명 옛날 이야기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등장 인물들은 결코 전형적이지 않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현대적이고 개성은 매우 강하다. 그러니까 설화의 형식에 현대소설의 내용을 담고 있달까. 그러면서 기꺼이 옛이야기의 푸근함과 교훈, 가치도 담아낸다. 해피엔딩이나 권선징악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에서 있을 수 있고 있어야 하는 결말을 제시한다.
‘샌 페리 앤’이라는 인형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남았다. 어떤 마을에 전쟁 피난민들이 몰려온다. 마을 사람들은 기꺼이 그들을 받아들이지만 주인공인 고아 소녀 캐시는 그 성깔 때문에 아무도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실은 가지고 온 인형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도 많은 것을 빼앗긴 사람들이 방어적 공격성을 갖는 경우가 있다.
알고 보면 그 인형은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소녀들의 것이었다. 연못에서 그 인형과 함께 캐시를 구해내려 진흙탕을 마다하지 않았던 레인 부인의 것인 적도 있었다. 그렇게 인형 하나로 만난 둘은 가족이 된다. 역사, 그리고 고난, 전쟁,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마음과 태도, 이런 것들이 담겨 있는 이야기이다.
‘친절한 지주’ 이야기도 약자를 품는 방식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서쪽 숲나라’는 전형적이지 않은 왕과 시녀의 티격태격하는 사랑 이야기다. 세상이 가장 금기시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원초적인 자연일 수 있다. 그런 삶에 대한 편견이 없었기에 조금은 멍청해 보이는, 그러나 왕의 시를 이해하는 유일한 인물인 시녀와 왕은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 있었다. 작가 자신에게 하는 말일 듯 싶은 대사가 나올 땐 웃을 수밖에 없었다. 현대적이고 개성 있는 등장인물은 ‘여성’에만 그치지 않는다. 왕도 수동성을 극복하고 현실적인 찌질함과 짜증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추구하는 가치의 수수하면서도 본질적인 위대함은 고스란히 남는다.
도서관에서 빌려 부지런히 읽었지만 사실은 오래 간직하며 마음이 평안을 요구할 때 천천히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