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갈 때까지 시간이 남았다.

 시장에 가서 떨이로 마구 퍼주는 나물 종류를 사도 됐고, 그저 구경만 해도 배가 찰 것 같은 그곳 분위기를 훑어도 됐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스니커즈 멀티숍에 들어갔다. 당장 살건 아니었지만, 정말 맘에 들면 못살 것도 없었다. '구경만 할게요.'란 말에 위축될 이유도 없었다. 그러니까 처음은 무척 유연했다는 소리다.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와 이것 저것 설명을 해주며 여러 디자인의 신발을 보여줬다. 남자가 보여주는 신발 가운데 대부분이 나이키여서  다른 브랜드의 제품을 보여달라고 했다. 남자는 그런가보다 하더니 세번인가 더, 왜 나이키 신발을 안 신냐고,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왔다. 누군가를 그렇게 궁금하게 하는건 나 역시 안달나서 잘 못하는 짓이다. 남자가 듣고 싶은 맘이 사라지기 전에 말해줬다.
 '나이키는 어린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기업이니까 그 제품을 이용하지 않으려구요.'
 남자는 안 그러는 다국적 기업이 어디있냐며, 다른 신발 회사를 언급하며 다 똑같다고 말했다. 난 난처해하며 잘 빠진 신발들 사이에서 우물거렸다. 상징적인거니까, 아동 노동력 착취에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란 말을 했을 것이다. '팔려는 의지'로 똘똘 뭉친 남자의 몸 안에서 냉소가 피식 새어나왔다. 그따위 냉소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표현하고 싶었지만, 표현하려는 의지는 애시당초에 존재하지 않는 듯 사라져버렸다.

 왜 난 좀 더 자신있게 같이 냉소하거나 당신의 반응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 같이 냉소하지 못한건 내가 뜨겁지 않기 때문에 행여 그 뜨겁지 못함을 비난받을까봐라고 지레 짐작해서였다. 중요하지 않다는 반응을 못보인건 당황해서이기도 하지만 애시당초 남을 신경쓰지 못할 정도의 신념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 말처럼 아이들이 착취 당하는게 어디 나이키 뿐이겠는가. 도처에 널린게 다국적 기업의 횡포인데. 친환경이나 인간 존중은 그들 광고에서나 떠들어대기 좋을 뿐이다.

 늘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너 하나가 바뀐다고 뭐가 되겠냐고. 내가 종이컵 안 쓰고, 불 끄고 다니고, 대기전력 낭비 말자며 콘센트를 뽑고 다녀도, 세제를 안 쓰려 노력하고,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 과식하고(이건 좀 다른 욕망이다.), 색소나 향료가 든 음식은 가급적 먹지 않으려 노력하고, 휴지 대신 손수건을 쓰고, 재활용을 한다고 해서, 기껏 나 하나로 뭐가 바뀌겠냐고. 그런데 난 바뀐다고 생각했다. 거칠게 표현해, 대형 마트 돈은 지역 경제에 보탬이 안 된다는 말로 가족들에게 추석 장은 가까운 마트에서 보게 한 것도, 그 말을 꽤 그렇듯하게 받아들인 것도 조금씩 바뀌는 징후라고 보여지는 것이다. 자기는 뭐 하나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말만 그렇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이 정도라도 하고 있지 않냐고 얘기할만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순간. 예기치 않게 너도 사실은 나이키 신고 싶지란 뉘앙스를 느꼈을 때, 너도 귀찮으니까 그냥 콘센트며 모니터를 놔두고 싶지, 너도, 너도란 물음에서는 개운하지가 않다.

 나이키를 너무 신고 싶은데 참는건 아니다. 나이키 상표를 달아서 더 예뻐보이는건지, 원래 나이키가 디자인이 꽤 괜찮은건지도 헷갈린다. 나로선 휴지 대신 손수건을 쓰는게 좋고, 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이 쉬는 시간에 회사에 있는 모든 컴퓨터의 모니터를 끄고 돌아다닐 수도 있다. 이건 내가 좋아서 하는 짓이다. 절약해서 말뿐인 녹색성장에 일조할 생각도 아니고, 나 하나의 노력으로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도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그저 내가 편하고 좋아서 하는 짓이다. 책을 사버리면 안 읽은다는 이유도 있지만 가까운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되니까, 아주 좋아하는 책 말고는 누군가에게 주고 싶다란 생각도 뭔가를 참거나 억압해서 나온건 아니다.

 이번 경우처럼 당황하게 되는 순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도 은근한 지지를 해주길 바랐다는 맘을 눈치챌 때가 문제될 뿐이다. 이럴 때는 당신은 그럴 수 있지만 나는 이래요 정도로 약간 넋나간 웃음을 지으며 대응하면 좋을텐데......

 표정을 연습하려고 거울을 봤다. 한증막에서 땀 뺀 것처럼 희뿌연한 얼굴이 동동 떠있다. 웃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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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lei 2009-10-26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껏 나 하나로 뭐가 바뀌겠냐고" --> 혼자가 아니랍니다. 절대 절대 절대 절대

Arch 2009-10-26 09:37   좋아요 0 | URL
알고 있어요^^

다락방 2009-10-26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어떤것들은 혼자 하고 있어요.
나는 종이컵을 안써요.(아니 최소한 사무실에서는 머그컵을 써요.) 그리고 나는 마트에서 비닐을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구요. 공중화장실에서 손 씻고 타올을 뽑아쓸 땐 꼭 한장만 뽑아 써요. 또 손 씻고 비누 칠할때는 반드시 세면대에서 수돗물을 잠가요. 그렇지만 이 모든것들을 누군가에게 같이하자 너도 꼭 해 라고 하지는 않고 있어요. 그냥...혼자 해요.....

우리는 어쩌면 모두들 저마다 무언가는 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나이키를 권한 아저씨도 정작 나이키를 권하기는 했지만, 어쩌면 분리수거를 철저히 할지도 몰라요. 그냥..그렇다구요...

Arch 2009-10-26 13:37   좋아요 0 | URL
그럼요, 어쩌면 당연한걸 하면서도 알아줬음 하는 내 맘을 본 것 같아서 주저리주저리 쓴거에요.
전 종이 타올을 세장씩 연속으로 뽑아쓰는 분들을 볼 때마다 말리고 싶고 그래요. 뭐라고 댓글을 달지? 응? ^^
 
잊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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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10-21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핳하하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아 웃겨.......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치님께 이런 면이 있다니 다소 충격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귀엽다 진짜.. 축구페이퍼에 이어.... 귀여우시군요.정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맙습니다. 굽신, 흐흐흐

Arch 2009-10-21 16:11   좋아요 0 | URL
좀 촌스럽죠~ 저기 테두리를 좀 은은하게 처리해야하는데 원, 돼야 말이죠.
어머, 제가 좀 귀엽답니다. (휘모리님 미안^^) 좋아하니까 나도 좋은데요^^

Forgettable. 2009-10-21 16:23   좋아요 0 | URL
나 일해야되는데.. 왜이렇게 하기 싫을까요?? ㅠㅠ
만명이벤트 할려고 했는데, 어줍잖은거 하느니 그냥 다음에 하자 해서 ㅋㅋㅋ 뭐 괜찮은거 없을까 ㅎㅎ
나랑 어울리는 색이 주황색이구나. ㅋㅋㅋ 제 친구가 귤도 진짜 좋아하고 얼굴도 노랗고 주황옷도 짱좋아해서 주황은 그친구의 색으로만 생각했는데, 다음에 뭐 살 때 고민해봐야겠어요 ^^

Arch 2009-10-21 16:36   좋아요 0 | URL
전에 서재 바탕색을 주황이랑 노랑으로 한적이 있잖아요. 그때 음, 뽀님은 이 색이 잘 어울리겠군 싶었죠.
난 방금 일, 한건 하고 왔어요. 히히...
이벤트 해요. 문제 내거나 글짓기하는 걸로.(제 페이퍼에 있는 내용으로 문제 내려고 했는데 미잘이 루즈하다고 말렸어요.) 10001번째 방문자 이벤트도 원츄! ^^ 사심 가득한 제안

Forgettable. 2009-10-21 17:04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랬구나.
저, 문제 내주시면 기를 쓰고 맞춰볼게요. ㅋㅋㅋㅋ 시키면 참 잘한다는거 요즘 깨닫고 있는중;;
난 아치님이 낸 문제라면 루즈해도 되요. 흐흐흐

아치님이 참여해줄테니, 이벤트는 무플 걱정않고 열심히 생각해보겠습니다.

Arch 2009-10-21 17:07   좋아요 0 | URL
우린 서로에게 속한 사람들이에요, 나만 속했나? ^^ 무플이라뇨.

순오기 2009-10-22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10001번째를 캡처하다니 놀라워요!
내가 서재마실 뜸한 사이에 댓글이 엄청 많군요.^^
어제로 빛고을독서마라톤 끝냈어요. 그거 핑계로 마실을 삼가했는데 이젠 놀러 좀 다녀야죠.ㅋㅋ

Arch 2009-10-22 09:13   좋아요 0 | URL
전, 만번째 캡쳐를 무척 부러워하는데요^^ 네, 서재로 자주 마실 다녀주세요.
 

 회사에 새로 들어온 직원. 싹싹하고 유연하다. 다른 직원들도 새로운 누구씨를 좋아한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직원 중 한명이 누구씨에게 좀 짖궂은 말을 했다. 누구씨의 표정을 보진 않았지만 분명히 곤란할만한 말이었다.-물론 주관적인 판단이다.- 그런데 누구씨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다른 직원은 눈치 없이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려고 했다. 그래서 내가,
-
누구씨, ABC가 건들면 나한테 말해요.
라고 말했다. 누구씨는 아치 덕분에 살았다며 ABC 앞으로 큰일나겠다고 했다.

 집에 가는 길에 누구씨에게 내가 오지랖 아니었냐고, 괜찮았는데 내가 괜한 짓을 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누구씨는 대개의 경우는 괜찮았지만 가끔 좀 심한데 그때마다 아치가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인사치레인지 진심인지는 두고봐야겠지만 내가 나서야 할 때와 가만히 있어야 할 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혹은 누구씨가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내게 와서 다른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난 어떻게 해야할까란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누구씨가 다른 직원의 말에 상처받는 동안 내가 아무런 말을 안 했다고 해서 비난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불편했고 불편한 느낌을 말했다. 다행히 웃으면서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누군가 싫으면 당사자가 직접 상대방에게 말해서 두 사람이 겹치는 횟수를 줄이는게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최선이었다. 하지만 때론 최선보다 험담을 하는게 더 편하고 일반적이다. 분위기를 망친다거나, 직접적으로 껄끄러워지는 일은 상대방에 대한 불편함보다 자신을 더 불편하게 만드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건 나와 관련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제대로 정리된 상태가 아니라면 지난번처럼 횡설수설할게 뻔하고, 한번은 넘어갔지만 두번까지는 정말 아닌 것 같아서였다. 시민의 윤리라는 통상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처를 받았냐, 안 받았냐를 놓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면 먼저 당사자가 나서서 나 네 말에 기분 나빴다고 말하는데서 시작한다고 본다. 누군가의 입을 대신하는건 그의 재량이지만, 그로 인해 그가 쉬 피로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도 아프지만, 떠나려는 누군가의 뒷 모습을 보는건 좀 더 아프다. 아프다에서 짐작했듯이 난 아프님이 보이는 등이 참, 낯설다. 네꼬님도 말했듯이 아프님의 뜨거움은 내가 곧잘 착각하는 나만의 분별력이나 이성과 대조된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차이를 보이는걸까. 말하지 않았지만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 난 줄곧 냉탕과 온탕을 미친듯이 왔다갔다 하는데.

 
그가 말했듯이 이번 일에서 사람들의 공분을 끌어내지 못한건 방법론의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타이밍과 바뀐 분위기 때문인지도. 그로 인해 그가 너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프님 맘은 아무도 모르고, 알 수 없으며, 그가 어떻게 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난 서재에서 같이 놀아요.’란 말을 하고 싶은 내 욕심을 얘기하는게 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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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0-21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역시 아프락사스님과 서재에서 같이 놀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이 페이퍼에 추천했어요. 음, 굉장히 많은 말을 하고 싶은데 안할래요. 여태 잘 견뎌온 아프님인데 이번엔 오죽 괴로웠으면 닫았을까 싶어져서 안타깝고 안쓰러워요.

2009-10-21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1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생리하는 것 같아.


 CH는 이 말을 기분이 나쁘거나 나빠질 것 같을 때 주로 사용한다. 전에 막걸리 대작을 통해 나의 날선 말과 그의 날선 말을 동급으로 놓고선, 네가 형들을 등에 업고 있어서 그렇지 너나 나나 마찬가지라며 우겨댄 후 서로 대하기가 좀 더 편해져서 살짝 물었다.

- 왜 그렇게 생각해요

- 여자들이 생리하면 좀 사나워지고 그래서.

-그럼 누구씨는 내가 언제 생리하는지 알아요?

 그가 꿀먹은 벙어리처럼 나를 보면서 J씨에게 도와달란 눈짓을 보냈다. J씨는 그거 봐란 표정을 지었고, CH는 농치 아치에서 정색 아치라며 별명을 바꿔야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녔다. 아니, 나는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건데, 궁금한거야, 라며 CH를 쫓아다니자 그는 무슨 내기하면 넘어갈거냐고 물어온다. 오, 살짝 구미가 땡기는데.



* Goal

 분위기가 안 좋으니 오늘은 축구를 자제하자던 J씨가 어느새 밖에 나가 있었다. 누군가를 시켜서 머릿수를 맞추려고 나를 부르는걸 보자니 내가 이래서 이 양반을 좋아하는걸까란 생각도 들고. 아무튼,
 어, 어 하다가 골을 넣었다. 골을 넣은 순간은 하늘에 붕 떠서 내가 골 넣는 장면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순식간에-누가 봤으면 슬로우 모션이었겠지만- 다가오는 공을 잽싸게 골대에 넣는 아치가 저기 있구나. 공중에서 나를 바라보는 나는 마치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은 짜릿했지만, 너무 금방이라 모든게 순식간에 스쳐지나갔지만, 어쩜, 낚시하는 사람들의 손맛 어쩌고, 달리기의 오르가즘까지 죄다, 몽땅 이해할 것 같은 무한 포용의 순간이라니!
 집에 가는 길에 B에게 앞으로도 종종 패쓰를 해서 아치가 골 넣고 공중으로 붕 뜨는 것 좀 보자고 했더니 이 녀석 하는 말이,
- 아치한테 공 가면 상대방이 이겨요.
라고 한다.  이 양반을 같은 편이라고... 혹시 결정적인 패쓰(아, 이걸 뭐라고 하더라?)도 실수로 잘못 건네준게 아니었을까.



*  에필
 
 문세 아저씨 방송에서 '오늘 아침' 5주년 기념으로 5년 전 뉴스를 방송했다.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던 내용 중 하나가 콘돔 이름 공모전이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5년 전쯤에 콘돔의 새 이름 짓기 공모가 있었다. 여러 이름 중에 '에필'-에로스의 필수품-이 당선되었지만, 에필 아이디를 갖고 있는 네티즌들의 반대로 상용화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에필, 콘돔. 콘돔 어감이 그렇게 별로일까?
 도리어 이름보다는 콘돔을 은밀하게 불러야할 것 같은 분위기 조성이 콘돔 사용률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콘돔을 챙겨 가지고 다니는건 왠지 '항시 섹스 준비' 상태란 느낌을 준달까. 차라리 콘돔을 성인들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해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섹스를 할 것 같은 순간, 주머니나 핸드백을 뒤지는 씬이나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가 편의점을 보여주는 씬 등을 넣는 것도 효과적일 듯하다.
 내 경우는 전에도 밝혔지만 서랍에 '항시 준비' 되어 있다.



* 말을 잘해보기

- 난 요새 카라의 'Mr' 엉덩이 춤이나 백지영의 쉬운 춤동작을 보면 못견디게 좋은거야. 그런데 이거 너무 여성주의적으로 옳지 않은 욕망은 아닌가란 생각이 드는거야. 내 욕망은 누군가가 제시하는 몸을 보고 싶어하는 것 뿐이지, 정말 내가 저들의 몸을 보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더라고. 뚱뚱한 여자애들이 나와서 막춤을 추면 내가 봤겠냐고. 난 미디어에 놀아나는 것 같아.
- 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여성 그룹을 보면 예쁘고 좋다는 생각을 해. 그건 순전히 네 욕망이지. 그런데 네 욕망이라는게 너로부터 나오는게 아니라 비율과 길이와 무게로 표준화된 '여자 몸'에 따르는 것에 의문이 생기는거야. 넌 너의 미의식은 어디서 온건지 궁금한거잖아.



* 발견


 최근 들어 내가 그다지 책 읽는걸 좋아하는건 아니며 잘 읽지도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다른 사람은 아마 다 알고 있었을거다.-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젠장. 공부해야겠다, 글을 잘 쓰고 싶다고 했지만 엉터리 글이나 쓰면서 바람은 보따리 가득이었다. 누군가의 잘 쓴 글이나, 좋은 책을 보면서 나는 내가 안 써서 그렇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책을 많이 안 읽어서 그렇지라며 자위해왔다. 알고 보면 앞으로 뭐뭐 해서 이뤄지는 일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텐데도 터무니없었던거다. 언젠가는 나도 잘 할거라고? 긍정의 힘이라면 어깨라도 추켜세워야겠으나 낙관의 속성인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폐단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내가 초반에만 열을 내고선 그 후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도 다 낙관의 힘이라고 쓰려다 핑계도 가지가지란 생각에, 참.

  어쩌면 난 더 이상 이보다는 행복할 수 없다고 시위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안에는 끈질기게 떨어지지 않는 자격지심과 아직 죽지 않았다는 버둥거림, '이래도, 이래도'하면서 떨어대는 위악까지 고루고루 들어있다. 뭔가 근사한 것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욕망은 여전하고, 막연한건 무효라는 맘도 여전하고, 그럼에도 여기까지 와준 나 역시 여전하다.

선반 위의 캐슈넛 쿠키를 몇 개쯤 먹어야 고요하게 잠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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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lei 2009-10-21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텍스는 시간이 지나면 급속히 경화되므로 너무 오래된 것은 교체 해두세요.

Arch 2009-10-21 10:40   좋아요 0 | URL
아직 따뜻해요.^^
레이시즌님, 어디로 갈건데요, 응?

hanalei 2009-10-22 00:33   좋아요 0 | URL
밥때데서 가요.

hanalei 2009-10-22 00:34   좋아요 0 | URL
아직 따뜻하다...흠...

무해한모리군 2009-10-21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불면의 밤이예요. 나는 자존감의 저하와 우울과 불면이 셋트로 왜 늘 오는지.

서랍은 항상준비가 아니잖아요. 지갑어때요?
읽기 좀 쉬다 보면 미친듯이 읽고 싶지 않을까요?
응 아치님이 쓸려고 맘 만 먹으면 사강이를 울려버리지 않으까?

Arch 2009-10-21 10:41   좋아요 0 | URL
두 녀석은 서로 친구 먹었다고 전해져요.

지갑엔 물론, 뒷주머니 앞주머니에 '항시준비' 되어있죠.^^
오늘 아침에 '페니스 파시즘'을 읽다가 요약하기가 싫은거지 그저 읽는건 좋아하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잠깐 들었어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다락방 2009-10-21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반 위의 캐슈넛 쿠키는 나랑 같이 좀 먹지.

Arch 2009-10-21 10:42   좋아요 0 | URL
이리와요~ 다락방.
나 착시였나? 브리핑에 다락방님 글이 있었는데, 삭제한거에요?

다락방 2009-10-21 10:52   좋아요 0 | URL
아 비공개 리스트 만드는 거였는데, 공개로 등록됐길래 잽싸게 비공개로 돌린거에요. 하핫.

Arch 2009-10-21 11:13   좋아요 0 | URL
나한테 걸렸어요, 입을 닫는 조건으로 저랑 아낌없이 캐슈넛 쿠키를 먹는다에 도장을 찍어요.
제겐 피넛과 월넛 등등의 견과류 부스러기가 잔뜩 묻은 쿠키가 잔뜩 있다구요.

다락방 2009-10-21 11:21   좋아요 0 | URL
아 정말 마구 땡겨요 Arch님. ㅠㅠㅠㅠㅠㅠㅠㅠ
저 쿠키 완전 사랑해요. 눈물나게 먹고싶다 정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가을이라 추워서 그런지 키 크고 날씬하고 젊고 잘생긴 남자가 내 부엌으로 들어와서 쿠키를 구워줬으면 좋겠어요. 앞치마 입고... 남자는 쿠키 굽고 나는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서 책을 읽는 거죠. 쿨럭.

무해한모리군 2009-10-21 13:05   좋아요 0 | URL
키크고 날씬하고 젊고 잘생긴 남자는 아니지만, 쿠키쯤은 출장가서도 구울 수 있는데 말이죠 ㅎ

Arch 2009-10-21 11:52   좋아요 0 | URL
그림이 싹싹 그려지는데요. 누워서 책을 보며 남자의 앞치마 뒤태를 감상한단 말이죠. 아, 아^^

쿠키 굽는 남자는 어렵겠지만 쿠키는 줄 수 있어요. 요게 시중에서 판매되는건 아니고, 어둠의 경로를 통해-집 앞 웰빙 비스무레한 가게에서 산건데 무척 맛있지만, 추천해도 될런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정도로만 좋은- 전해줄 수 있거든요.

관심있음 연락해! ^^ -이거 한민관처럼 해줘야 말맛이 나요.-

2009-10-21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10-21 12:16   좋아요 0 | URL
악. 내 부엌에서 휘모리님이 쿠키 굽고 있으면 난 어쩐지 휘모리님의 궁둥이를 두어번 두들겨 줄 것만 같잖아요. 으흐흐흐흐흐흐흐 휘모리님이 쿠키 구워주면 쿠키 한가득 산처럼 쌓아놓고 와인을 머그컵에 따라서 벌컥벌컥 마시면 되겠다. 으흐흐흐흐흐흐흐(혼자 상상하며 기분 업되있음)


Arch님. 지금 주소 알려달라는 말을 빙빙 돌려서 하는거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10-21 13:31   좋아요 0 | URL
허름한 자취방이 빠지지를 않아서, 냄새로라도 사람을 홀려볼려고 결혼한 선배가 버린 오븐을 주워와 과자를 굽곤 했던 것이 저의 눈물젖은 베이킹 스토리죠 --;; 원하신다면 계속 두드리셔도 아프지만 않다면 괜찮습니다 ㅎㅎㅎ 혹여 뵈올날 구워가지요~

다락방 2009-10-21 13:33   좋아요 0 | URL
윽- 쿠키가 먹고 싶어 누군가가 만나고 싶어지다니!!! 내 생에 이런일이!!!!!

Arch 2009-10-21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와인엔 치즈가 맛있지만, 쿠키래도 좋아.

늘 그랬듯이 이야기는 산으로.
마치 잘생기고 상냥한 남자들이 사는 마을이라도 상상하는 것 같달까.^^

다락방 2009-10-21 13:32   좋아요 0 | URL
나는 산으로 가는 이야기들이 좋아요 ㅎㅎ
그 산에 잘생기고 상냥한 남자들이 살면 더 좋고. 얼쑤~

무해한모리군 2009-10-21 13:39   좋아요 0 | URL
전 와인에는 연어에 카트레제 샐러드(토마토랑 모짜렐라치즈, 바질만 넣은 제일 간단한 스타일로)를 곁드려 먹는 게 제일 좋아요.

다락방 2009-10-21 13:49   좋아요 0 | URL
전 달지 않고 시지 않은 와인이면 뭐랑 먹든 별 상관 없어요. 지난번에는 메론하고 먹었더니 그것도 맛나고. 삼겹살에 먹어도 좋고. ㅎㅎ 아 막 와인하고 소주랑 삼겹살 쿠키 빵 실컷 먹고 기절하고 싶다. ㅠㅠ

Arch 2009-10-21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1, 32, 33 두분이서 번갈아 댓글을 달았어요! 오호 서재라^^
그런데 등산은 싫어하잖아요^^ 아아, 그 얘기가 아니었구나. 어, 그 얘기가 맞나? ^^ 아치는 살짝 바람 든 쿠키가 되려나봐요.

다락방 2009-10-21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중의 최고는 소주라. 저는 소주가 젤로 좋아요. ㅎㅎ (갑자기 왜 소주를? ㅋ)

Arch 2009-10-21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댓글이 너무 중구난방이니 댓댓글보다 여기에 쭉 쓰는게 좋을 것 같아요. 저야, 브리핑을 보고, 아아 거기 있구나 하지만. 두분은 불편할 듯.

맞아요. 와인엔 치즈와 과일, 혹은 샐러드가 제격이죠.
다락방님, 갑자기는 무슨! '다락방님=소주'란 공식이 떠도는거 몰라서 하는 말씀? ^^ 아치요? 전, 막걸리, 아, 먹고 싶다. 요새 생막걸리가 출시됐는데 그 맛이 아,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모르겠사와요.

다락방 2009-10-21 13:48   좋아요 0 | URL
막걸리는 맛있지만 먹고 난 후가 너무 괴로워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무해한모리군 2009-10-21 13:50   좋아요 0 | URL
다락방=삼겹살 인거 같은데요?
요즘 새로 나온 막걸리는 머리가 안아프다고 지난주 시사인에 나와있던데요?

Arch 2009-10-21 13:56   좋아요 0 | URL
댓댓글이 아니라 그냥 댓글 쓰자는거였는데......

고량주는 정말 깔끔해요.
'술 먹은 다음날은 잊어라'가 술을 먹는 우리의 자세 1장 16절에 나온 말 아니던가요.^^

휘모리님은 시사인쟁이~
맞다 삼겹살도! 다락방님은 뭐다에 등치할만한게 많아요. 캐릭터쟁이^^

다락방 2009-10-21 13:58   좋아요 0 | URL
머리아픈것 때문에 막걸리가 괴로운게 아니라요, 몇주전에 막걸리 맛있게 먹고 집에 가는데, 집에 가는 내내 막 트름 나오고 냄새 작렬. 아, 이건 남자랑 먹으면 절대 섹스하지 못할 술이구나 생각했어요. 냄새에 스스로 기절할뻔 했어요 지하철에서. ㅠㅠ

Arch 2009-10-21 13:5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댓글 하나 달아요. 비밀글 남기게^^

무해한모리군 2009-10-21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일하러 이만 회계사가 찾아서 ㅎㅎㅎ

다락방 2009-10-2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에 댓글이 아니라 그냥 댓글 쓰자는걸 나 지금 이해했어요. 하여간 머리가 완전 나쁘다니깐 -_-

Arch 2009-10-21 14:09   좋아요 0 | URL
아니, 안 달리길래 급하게 방명록 쓰고 왔지요!

2009-10-21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1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1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1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1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포토샵 동화 툴에 옥찌들 사진을 넣어서 프린트 했다. 옥찌는 자긴 백설공주랑 신데렐라, 인어공주가 좋다며 소녀시대도 어떻단 말을 했다. 그래서 노래는 소녀시대 것을 좋아하냐니까, 쏘리쏘리(슈퍼 주니어 노래던가)가 좋댄다.

 옥찌랑 누워서 좋아하는 것을 말해보기로 했다.


 가족, (그 중에서 누가 제일 좋냐고 물어보려다 말았다.) 숨박꼭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모가 화내지 않고 웃는 것, 종이, 사인펜, 색연필이라고 하더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옥찌가 그림을 그리겠다며 연필이랑 종이를 가져왔다.


 옥찌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2-3년 동안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머리 모양이며 속눈썹 개수, 옷의 디테일한 무늬는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을 그리며 열심이긴 했지만 쉬이 지치고 금세 질려했다. 누구 말처럼 얼마나 재미있는게 없으면 색칠하기를 놀이로 하냔 정도. 헌데 요새 미술 학원에 다니더니 혼자 그림 그리는걸 더 좋아하는 눈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고 싶어하고, 꽤 열심인 우리 옥찌.





 자기 방이 제일 크고 예뻐서 좋았다. 엄마 방에 저 문어는 뭐냐니까, 탁자 위에 쿠키가 있는거란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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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0-20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희방이 가장 크고 고와서 좋으네요. 그런데 모든 방에 오른쪽 밑에 있는 장구처럼 생긴건 뭔가요?

Arch 2009-10-21 00:10   좋아요 0 | URL
그림은 점차 사람들이 방을 뚫고 나오는 것으로 변모하고 있어요. 그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큰이모 방에 있는 그림으로 미루어보아 리봉-옥찌 발음으로 보자면-이 아닐까 싶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10-21 08:11   좋아요 0 | URL
앙 전 베개나 침대가 아닐까 했는데, 장식이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