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새로 들어온 직원. 싹싹하고 유연하다. 다른 직원들도 새로운 누구씨를 좋아한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직원 중 한명이 누구씨에게 좀 짖궂은 말을 했다. 누구씨의 표정을 보진 않았지만 분명히 곤란할만한 말이었다.-물론 주관적인 판단이다.- 그런데 누구씨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다른 직원은 눈치 없이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려고 했다. 그래서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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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씨, ABC가 건들면 나한테 말해요.
라고 말했다. 누구씨는 아치 덕분에 살았다며 ABC 앞으로 큰일나겠다고 했다.

 집에 가는 길에 누구씨에게 내가 오지랖 아니었냐고, 괜찮았는데 내가 괜한 짓을 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누구씨는 대개의 경우는 괜찮았지만 가끔 좀 심한데 그때마다 아치가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인사치레인지 진심인지는 두고봐야겠지만 내가 나서야 할 때와 가만히 있어야 할 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혹은 누구씨가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내게 와서 다른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난 어떻게 해야할까란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누구씨가 다른 직원의 말에 상처받는 동안 내가 아무런 말을 안 했다고 해서 비난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불편했고 불편한 느낌을 말했다. 다행히 웃으면서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누군가 싫으면 당사자가 직접 상대방에게 말해서 두 사람이 겹치는 횟수를 줄이는게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최선이었다. 하지만 때론 최선보다 험담을 하는게 더 편하고 일반적이다. 분위기를 망친다거나, 직접적으로 껄끄러워지는 일은 상대방에 대한 불편함보다 자신을 더 불편하게 만드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건 나와 관련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제대로 정리된 상태가 아니라면 지난번처럼 횡설수설할게 뻔하고, 한번은 넘어갔지만 두번까지는 정말 아닌 것 같아서였다. 시민의 윤리라는 통상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처를 받았냐, 안 받았냐를 놓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면 먼저 당사자가 나서서 나 네 말에 기분 나빴다고 말하는데서 시작한다고 본다. 누군가의 입을 대신하는건 그의 재량이지만, 그로 인해 그가 쉬 피로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도 아프지만, 떠나려는 누군가의 뒷 모습을 보는건 좀 더 아프다. 아프다에서 짐작했듯이 난 아프님이 보이는 등이 참, 낯설다. 네꼬님도 말했듯이 아프님의 뜨거움은 내가 곧잘 착각하는 나만의 분별력이나 이성과 대조된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차이를 보이는걸까. 말하지 않았지만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 난 줄곧 냉탕과 온탕을 미친듯이 왔다갔다 하는데.

 
그가 말했듯이 이번 일에서 사람들의 공분을 끌어내지 못한건 방법론의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타이밍과 바뀐 분위기 때문인지도. 그로 인해 그가 너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프님 맘은 아무도 모르고, 알 수 없으며, 그가 어떻게 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난 서재에서 같이 놀아요.’란 말을 하고 싶은 내 욕심을 얘기하는게 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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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0-21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역시 아프락사스님과 서재에서 같이 놀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이 페이퍼에 추천했어요. 음, 굉장히 많은 말을 하고 싶은데 안할래요. 여태 잘 견뎌온 아프님인데 이번엔 오죽 괴로웠으면 닫았을까 싶어져서 안타깝고 안쓰러워요.

2009-10-21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1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