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만난 사람과 산에 오른적이 있다. 이 분은 너무나도 가볍게 오르는 산을 나는 내 다리가 아닌 듯이 질질 끌며 오르는데 애시당초 정상은 꿈도 안 꾸고, 오로지 약수터까지만 가는데 목표를 두며 부지런히 라마즈 호흡법을 구사했다. 그때 내가 라마즈를 알리는 없었고, 계속 미친듯이 헥헥댄 것 정도가 되겠지. 그래서 몇걸음도 안 걷고 계속 쉬면서 지나가는 분들에게 계속 물어댔다. 왈왈.(하이 유머랍니다.)
- 저기, 약수터, (헥) 정상말고 약수터까지 가려면 얼마나 더(헥) 가야하나요.
등산객들은 하나같이 날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그냥 내려가라고, 약수터는 택도 없을거라고 못을 박았다. 너무 숨차하니까 그런가보다 싶어 온건한 숨소리로 다시 여쭤도 같은 대답만 들려줬다. 산을 자주 타는 사람들은 한 눈에 약수터 체력, 정상 체력이 나오는걸까? 아니면 어디냐고 묻는폼이 믿음이 안 간 걸까? 아니면 또 약올릴려고 그러시는걸까. 등산객들의 말뿐 아니라 산 근처에서 사시는 분의 말씀도 웃겼는데,
산의 초입 부분에 빈집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길래 꿈만 야무지게 나중에 산 속에 산다는 아치인지라 선뜻 여쭤보았다.
- 빈집인가요.
그랬더니 그분은 빈집인지 아닌지를 알려주지 않고, 혼자 웃으시면서 등산로가 아닌 길을 가리키며 저기로 가보라고 하셨다. 이건 무슨 놀림일까 생각하다, 아차, 우리가 빈집으로 숨어들어 뭔가를 하려는 등산객 남녀로 본거구나란 생각에 미치자 산에 살면 센스도 좋아지는구나 싶어 더더욱 산 깊숙히 들어가보고 싶어졌다.
아무튼, 다시 호명산으로 돌아와서
계단을 오른 후 가파른 산을 다시 올랐다. 무릎이 당기고 턱끝까지 숨이 가파오기 시작했다. 맥박이 귀에서 뛰다가 머릿 속으로 곧장 돌입, 머리까지 쿵쿵 울려댔다. 게다가 날은 오지게 추워 손이며 얼굴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수족냉증이 있는지라 조금만 차가워지면 머릿 속까지 하얘졌는데 그날이 딱 그랬다.
이런 얘기를 그날과 다음날에 쓰려고 해놓고선 미루다가 임시저장된게 날라갈 것 같아 지금에서야 부랴부랴 마무리 중이다. 요약하자면 난 정상은 커녕 두번째 쉼터에서 그래도 호수를 봤다고, 너무 무리하면 건강에 안 좋다고 이것저것 갖다붙인 이유를 대고선 산을 내려왔다.
산의 초입에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했고, 분별없이 짖어대는 유원지의 개들과 누군가 버린 그 아이들을 키우는 아저씨랑 산 얘기를 했고, 오랜만에 문방구에 들려 옥찌에게 쓸 편지지를 사기도 했다. 누구가 청평에 간다면 쁘띠 프랑스나 아침고요수목원을 구경하면 좋을거라고 소개를 해주고 싶기도 하지만 난 조금 힘에 벅차게 호명산을 올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연의 숨결을, 대지의 기운을 받아서란 식의 수사는 낯간지러운데다 내 자신이 미력해 그렇게까지 느껴보진 못했으니 거창한 이유를 대기는 곤란하다. 이제 막 캠핑족들에게 들켜서 여름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산을, 여름이 되기 전 시간을 내서 찾아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란 생각 정도.
유원지를 관리하는 아저씨가 인생의 굴곡을 비켜선 몇십년을 그 산에서 함께 했듯이 묵묵히 산을 오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흔한 편의시설도, 친절한 표지판도, 까딱하면 멧돼지에게 습격당할지도 모르지만(멧돼지가 다니는 길에 들어서지 않으면 문제 없다고 한다.) 예전에 있던 모습 그대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을 내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따로 살갑게 끌어안아주지도 않는 호명산. 산 중턱 즈음에서 숨을 몰아쉬면 바람에 실려 무심하게 하품하는 호랑이 소리를 들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