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당연히 내 몫인줄 알았다. 내가 요리를 제일 잘하고, 아니 요리를 하는 어떤 동작을 제일 비슷하게 흉내낼줄은 알고 그나마 사먹지 않고 직접 해먹는 축으로는 유일한 사람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가 나타났다. 재빠르게 움직이고, 손을 놀려 뚝딱 음식을 만들어내는가하면 유아용 보리차로 물을 끓여먹고, 들어보지도 못한 요리법으로 새로운 음식을 금세 만들어냈다. 조용한 저녁에, 뭔가에 홀린 듯 그녀를 쳐다보고 있자 환하게 웃으며 맛은 없겠지만 좀 먹어볼테냐며 음식을 권한다. 

 가끔씩 인사를 나누고, 느즈막한 금요일 밤에 맥주를 나눠마시며, 그 와중에 폭탄주를 제조한다며 설레발을 치는 나를 말리며 우린 조금씩 친해졌다. 그런 와중에 그녀가 부모님이 없으며, 나보다 어리고, 뮤지컬 배우가 꿈이라는 얘기를 듣게 됐고, 나는 나대로 답 안 나오는 것들이 참 많다며 한탄스러운 신세 비슷하게 흐르는 얘기들을 나눴던 것도 같다. 저녁 무렵에 조금 싸게 파는 식재료를 잔뜩 사와서 잔치를 하기도 했고, 모양 안 나오는 부침개를 먹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우두커니 앉아있길래 술이 땡기는가보다란 말을 들어본적이 있으며 나보다 이곳에 오래 산 그녀에게 지역 정보를 주워듣기도 했다.  

 그녀를 처음 본 후부터 줄곧 그녀로 인해 내가 어른이 된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녀가 막무가내거나 자꾸 '언니'란 호칭을 남발해선 아니었다. 안간힘을 쓰면서 자기 삶을 혼자 지탱해나가야하는, 비빌 언덕이 없는 앙상한 어깨가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어려서 직접적이었던 사무침은 그 아이가 뭐든 잘 먹을때도,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할때도, 심지어는 음식을 멋들어지게 만들어낼때도 꾸준히 그랬다.  

 어제는 신나게 떠들다 이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펑펑 울었던 얘기를 했다. 친구 결혼식에서 술을 좀 많이 먹었단다. 마침 예전에 짝사랑하던 오빠도 보이고, 오랜만에 마음 맞는 친구들을 보니까 즐거웠단다. 그러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 눈물이 삐질삐질 새어나오더니 급기야는 엉엉거리며 울었다고.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래서 술이 깨고난 후 민망해서 혼났다고 웃으며 말하는데 그 맘,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다른 사람 눈에는 엄살이고, 별거 아닌 일들일 수 있다며 나보다 안 힘든 사람이 어디있냐며 자꾸 자신을 추스리며 견뎠을테지. 그러다 잠시, 아주 잠깐 맘을 내려놓을 때 밤과 남의 시간들이 우르르 몰려와 자기 맘을 채가는 순간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많이 힘들었겠구나, 어린 네가 참 고되었겠구나.  

 벌어진 틈새로 뭐가 보일지 모르겠지만, 줄곧 행복하기만을 바란다는 공수표는 남발하지 않을게. 가끔씩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게 다지만. 

 도마 소리가 들려서 나가봤더니 그녀가 에디오피아의 케이와 같이 얘기를 하고 있다. 둘은 뭐가 신났는지 자꾸 떠들고 웃었다. 그러고보니 먼 곳에서 온 케이와 그녀의 나이가 같다.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인데 그래도 동갑에서 느껴지는 친근함은 다른 관계보다 좀 더 진할거야. 깔깔대는 소리가 듣기 좋은 저녁이다.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며 입술에 부드러운 핑크를 바른 그녀가 오늘따라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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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4-0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알 거 같은데요~~

바람돌이 2009-04-02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울고싶어 울때 옆에서 가만 가만 어깨를 다독여주는 누군가가 있다는건 참 행복한 일이지요. ^^

Arch 2009-04-03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아시는구나^^
바람돌이님, 그렇죠? 나도 그런 누군가가 있다면 참 고마울텐데.

무해한모리군 2009-04-03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순간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