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강준만은 ‘여름 휴가 때 읽고 싶은 책’ 같은 기획이 좀 웃기다고 했다.(강준만이 웃기다고 하진 않았을테고 그 비슷한 뉘앙스였겠지만)굳이 평소에도 안 읽는 책을 휴가 때 챙겨가서 읽을 수 있냐는 것이다. 절반 정도 공감한다. 진득한 책을 읽기에 휴가는 너무 짧고 책 바깥의 유혹은 노골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휴 첫날(묵은내가 나는 페이퍼) 옥찌들과 영화를 보고 곧바로 향한 곳은 도서관이었다. 지금 있는 곳에선 비치할 의향이 없어 보이는 책을 읽으러. 그래서 뭔가를 읽기는 했다.  



   

  

 

  

 

 

 
 
 박상미가 옮긴 책은 놀랍게도 대부분 괜찮다(저자가 아니라 번역가의 책이 괜찮은건 우연이다. 번역하고 싶은 책을 기획한건지도.) 그녀가 쓴 <뉴요커>나 <취향>은 좋지만 그렇다고 아주 좋지 않다고 봤을 때 <사토리얼리스트>나 줌파 라히리, 예술에 관한 번역 책은 썩 괜찮았다. 번역을 잘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가 번역하는 책만 골라 봐도 재미있는 것이다. 그 중 <빈방의 빛>은 호퍼의 그림을 시적으로 해석했다는 마크 스트랜드의 글을 번역한 것이다. 
 
 나는 아직 애기라 (요새 a랑 ‘아치 아직 애기라 배 나와있는거지’, 등등의 애기 놀이를 하고 있다. 남 부끄러워라. 연애할 때 여성의 애칭을 아이나 동물에 비유하는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생각이 없는건 아니지만 재미있는걸 어떡해.) 그림을 보는 눈이나 감성이 부족하다.

 예컨대 김혜리 기자의 말처럼 내가 감독은 아니지만 감상하는 입장에서도 기적 같은 일(나만의 감식안을 갖고 뭔가를 발견하거나 내 시각이 살아있는 것)은 더디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나보다 좀 더 잘 보고 잘 읽고 잘 쓰는 사람의 글을 보는 건 즐겁다. 마크 스트랜드가 바로 그 사람인지는 두고봐야겠지만.

 더 나은 화질이 범용한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좋은 영화의 위대한 모멘트 위에 덮인 더께를 걷어낼 수는 있다. 대만에서 디지털 복원한 허우샤오시엔의 <연연풍진>을 보러 갔다. 자, 그래서 기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돌려주었는가. 첫 장면의 기차가 터널로 들어갈 때 객차 안에 수묵처럼 번지는 어둠, 그것이 걷혔을 때 드러난 소녀의 얼굴에 눈물이 만들어놓은 얼룩, 소년 소녀들의 몸무게를 실은 구름다리의 미세한 출렁임. 때로 영화에서는 그런 것들이 전부다. 거장들의 영화를 볼 때 종종 나는 혼란에 빠진다. 저런 이미지는 우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옳은 방향을 알고 있다면 기적조차 그 감독을 돕는 것일까. 아마 기적은 모두에게 공평히 만연돼 있으나 그것을 볼 수 있는 밝은 눈과 찍을 수 있는 유연한 손, 찍힌 것 중 중요한 것과 불요한 것을 가려내는 지성은 선택된 자만의 몫이리라. - 씨네21 중에서

 김혜리 기자가 글을 잘 쓰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녀의 인터뷰집에서 느꼈던 어떤 갈증 같은게 그녀의 일기에선 보이지 않는 점이, 이렇게 어느 순간 마법처럼 그녀에게 반하는 구절을 만나는게 좋다.

  

 

 

 골목의 글을 읽고 싶은데 황인숙의 책은 자리에 없었다. 그러다 연휴 끝나고 서재를 돌아다니다 빔 밴더스의 사진집에서 추천 마법사가 소개한 이 책을 발견했다. 정말 이 골목을! 여기엔 또 어떤 골목들이 있을까. 그리고보니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의 사진을 김기찬씨가 찍었다. 오, (비틀즈 코드에서처럼 오, 춥다)

 
 홍대의 골목 이야기는 지금 읽고 있다. 이태원 주민일기에서 모자랐던 점을 보완한 기획도 아닐텐데 건축가며 음악하는 사람들이 털어놓는 홍대 이야기는 홍대가 아닌 '홍대 앞'의 공간을 차고 넘치는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결국 재미있고 잘 쓴 글이란 애정을 느끼는 대상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데에서 시작하는게 아닐까.

 너무 좋아서 넘침을 표현했다가는 과잉의 맛만 볼 수 있고 의무적으로 짓는 글은 읽는 사람도 재미없다. 이건 글의 맛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진작 알아채고 있었겠지. 역시 뒷북?


http://10.asiae.co.kr/Articles/new_view.htm?sec=news3&a_id=2011071304103072701

 혹시 이 기사를 본 사람이 있을까. 10아시아 김희주 기자의 글맛도 글맛이지만 정재형이란 사람을 새침하고 사랑스럽게 보여주는 행간의 느낌은 여간 간지러운게 아니다. 내처 그 유명하다는 유희열의 라천 정재형편까지 듣는데, 아 나는 라디오를 건성으로 들으며 일을 할 수 없었다. 그 프로그램은 전파를 공공의 목적으로 쓴다기보다는(말로만 그런다는거 다 안다만) 오로지 정재형을 위한 정재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방송이었다. 그것도 무척 이기적인 방식으로. 쿵짝을 맞추는 유희열이며 새침한 재형씨가 어쩜 그렇게 재미있던지. 적극 추천!

 이 기세를 몰아 정재형이 유영석이랑 피아노 배틀을 연-자신들도 쑥쓰러운 듯 자꾸 웃으며 대결한다고 막막 그러는-유투브 영상을 봤다. 거기서 소개된 정재형의 책. 김치 소포 얘기로 설렁설렁 이어지는 책에서 정재형의 어떤 모습을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다시 읽을 기회를 만들어야할 것 같다.





 연휴는 짧았고, 세 자매끼리 부침개를 부치는건 정다...ㅂ기보다 난장판-금지어를 만들고 농땡이 피우는 사람에게 벌금을 매기고 그랬다- 반가움과 시샘과 기깔난 우월감 같은게 뒤죽박죽 섞이는 느낌이었다. 모처럼 보는 친척들 목소리는 너무 컸고 나는 며느리도 아닌데 괜히 좀이 쑤셨다. 그러게, 연휴 때 무슨 책이란 말인가.

 연휴가 끝나고 내 책을 반납해준 옥찌는 이 한마디를 남겼다.

 “이모 내가 그 책 갖다주느라 힘들어 죽는줄 알았어.” 


옥찌들 페이퍼를 일년도 넘게 못썼지만, 나는 옥찌들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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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3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3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1-09-2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애긴가봐요. 배가... ( '')

Arch 2011-09-23 11:48   좋아요 0 | URL
많이 먹거나 살이 쪄서 그런게 아니에요.

애기라서 그런거에요
 

 *  비 콘서트에 다녀왔다. BEST SHOW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놀만하면 쉬어버리고, 노래 좀 들을라치면 중고음이 귀를 찌르듯 들려와서 그만 시큰둥해지고 말았다. 쉬러 온거면 집에 가서 쉬라는 말에 좀 겸연쩍어, 놀러 온거면 신나게 놀아야한다길래 무거운 엉덩이 들썩이며 놀라고 했더만 쳇. 과감하거나 섹시하지 않은, 뭔가 좀 우람한 비는 자꾸 운명이니 군대 얘기를 하며 맥을 톡톡 끊어먹었다. 김어준이 그랬던가. 누군가 기특하다고 봐주는데 그치면 좋은데 자기 자신이 너무 기특해 죽겠어하는 비는 별로라고. 나 역시 그랬다. 김어준의 말이 아니었어도 지루했다. 까진 연예인이 아니라 밤마다 도덕책을 머리맡에 두고 암송하는 것처럼 멘트는 식상했고 쇼는 딱 고만고만했다. 정지훈이란 사람은 귀엽고 자잘한 매력이 있었지만 내가 혹할만한 느낌을 주지 않았다. 관습적이랄까, 안전하달까. 어디 갔다왔네 정도로 그칠거면 비 콘서트가 아니어도 좋았으련만. 멋진 댄서들의 쇼 정도로, 우퍼 소리가 온 몸을 휘감는 사운드를 느끼고 싶어서 한 선택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드럼의 킥과 스네어 소리를 들으니 락페스티벌에 가보고 싶다.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자극적이고 발랑 까진 콘서트.

 * 파티랑 마리랑 운목이
'연예인도 하는데'까지는 아니어도 효진씨가 한대니까 나도 해보고 싶었다. 여러번 실패했지만 이번엔 식물들의 특성대로 잘 길러보고 싶었다. 로즈마리랑 스파티 필름은 물을 듬뿍 주고 각각 창가와 화장대 밑의 자리를 주니 내 배가 부를 정도로 쑥쑥 자란다. 운목이는 '쑥쑥과'는 아니지만 시들지 않고 꾸준해서 좋다. 나와 화초를 같이 기르는 a가 얼마 전에 칼라 아이비를 데리고 왔다. 포스트잇을 붙인 a의 맘이 참 예뻐서 이렇게 화초 주고받으며 오랫동안 같이 살면 좋겠단 생각을 했던가 말았던가.
  몇시간 전까지 그만 보네, 질렸네 대판 싸우고 나서 이런 페이퍼를 쓰는건 낯간지럽지만 한번 칼라 아이비를 보여주고 싶었다. (혹시 칼라 아이비 키우는 분 있나요. 얘는 좀 시름시름해요. 물은 조금만 주고 반그늘에서 키우는데.)

*  며칠 전까지 소셜 커머스에 빠져서 한동안 게스 파우치 타령을 해댔다.-파우치의 적정 가격과 한눈에 숑 갈 정도로 예쁜 그 파우치만의 가치(가치라기보다는 세일과 언젠가 한번쯤 나도 비싼 물건)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사람들이 공주풍이란 얘기를 해서 흥미 반감- 파우치뿐만 아니다. 하루에 두번씩이나 까페를 드나들고, 비싼 커피를 먹으면서 맛이 없다고 남기는 만행을 저질렀다. 뿐인가. 비싼 요리집에 가서 이것저것 먹고 싶다며 시켜놓고 배부르다고 남겨버리고. 어디 놀러가선 이왕 노는거 잘 쓰면서 놀자며 정말 돈을 잘 써버린다. '예전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할 짓들을 하고 있다.

 예전의 나라면 가끔씩 특별한 날에만 돈쓰기 한풀이를 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과감할 수가 있을까 싶다. 매달 통장에 월급이 찍히고, 이 월급을 위해서 이것저것을 감수하고까지는 이해된다지만 그게 막 쓸 수 있는 이유가 될까. 이토록 욕망이 생생해서 가끔씩 깜짝 깜짝 놀란다. 이 많은걸 가져서 뭐하게, 다 쓰지도 못할거잖아. 이걸 만들려면 환경이 파괴되고 어쩌고. 그런데 참, 얼마 전에 허지웅의 방처럼 꾸미고 싶어서 안달나는 심보는 또 뭐람. 돈이 없어서 소박한 사람이었지, 나는 원래 온갖 욕망의 아치 덩어리였을까. 남들 사는대로 한번 해보고 싶은걸까. 남들 사는게 어떤건데. 어떡해. 나 바람 났나봐. 


     

* a랑 디자인 체험하는 곳에 다녀왔다. 전시품이며 구동해보는 체험활동이 조악해 관람하는 대신 우리는 가방이랑 퍼즐을 만들었다. a는 도안을 잡고 한참 고민하더니 곰돌이를 안고 있는 미키 마우스를 그렸고 나는 미리 준비된 도형으로 본을 떠서 코끼리를 그렸다. 코끼리만 있는게 썰렁한 것 같아 글씨를 쓰다보니 팝아트 같아진건 아니고 (히히) 좀 조잡해졌지만 좋아하는 글씨가 잔뜩 써진 천주머니가 생겨서 기분이 좋아졌다.

 체험을 하고 돌아오는 길, 날은 더웠고 해를 가려줄 손바닥만한 그늘 하나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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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18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는 날에 저도 한 번쯤 직접 해보고 싶은 것들이네요. 비 콘서트는 뭔가 화끈하고 혼을 빼놓을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니었나봐요? 물 좀 적셔주고 하지... ( '')~ 저도 화분을 키워볼까 해요. 제비꽃도 화분으로 나오려나요? 흠...

Arch 2011-09-19 09:53   좋아요 0 | URL
옌예인들이 너무 도덕적이에요.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화분 키우는거 추천해요. 제비꽃은 모르겠지만 로즈마리랑 스파티 필름은 정말 잘 자라요.

다락방 2011-09-18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는 a 랑 참 다양한걸 함께 즐기네요. 그런것들을 함께 즐기는게 둘에게 잘 맞는가봐요. 그러기도 힘들것 같은데. 포스트잇을 붙여 아이비를 준 a와 싸우다니. 관계란 참 묘해요, 그쵸? ㅎㅎ

Arch 2011-09-19 09:58   좋아요 0 | URL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잘 맞는줄 알았는데 지내다보면 이 사람이 이걸 좋아해서 같이하는건지, 아니면 그냥 하는건지 잘 모르겠어요. 포스트잇은 섹스 앤 더 시티의 그 포스트잇과 비교되기도 하고 좀 뭉클하고 그랬어요. 어제 다시 화해했어요. 진짜, 묘하죠.

무스탕 2011-09-19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끼리 그림을 보곤 옥찌가 그린건가 했어요. 그 이모에 그 조카 맞아요. ㅎㅎㅎ

Arch 2011-09-19 09:59   좋아요 0 | URL
으히히. 그 조카에 그 이모가 아니구요? ^^
 

 

 

 

 21p, 대한민국 표류기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http://ozzyz.egloos.com/

 

 

 

  고시원 야간 총무 일을 하게 된 건 그야말로 필연이었다. 내게 그보다 좋은 일자리는 없었다. 학비에 집세에 연애질에, 내야 할 돈은 많고 가진 돈은 없었다. 이미 오전에 편의점, 오후에 카페 서빙, 주말에 텔레마케팅을 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나라도 더 해야 했다. 누가 고시원 총무 일을 해보면 어떠냐 말했을 때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총무를 하면 방이 공짜다. 심지어 한 달에 20만 원에서 30만 원 가까운 수입이 생긴다. 이미 나는 고시원 생활만 2년째인 경력자가 아니었던가. 내 주위에 이런 고부가가치 산업이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수소문한 지 이틀 만에 자리를 구했다. 문짝에 붙어 있던 구인 종이를 북 뜯어 손에 들고 원장실을 찾았다. 2층에 있었다. 단숨에 문을 열어젖히고 박력 있게 말했다.

 “진짜 잘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고시원 총무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고액 연봉을 위해서라면 발가락이라도 핥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일을 시작했다. 고시원을 옮겨 이사했다. 일은 쉬웠다. 오후 8시 30분 청소를 시작해 9시부터 자리를 잡는다. 방 보러 오는 학생들을 안내하고 월세를 받고 전화를 지키면서 새벽4시까지만 버티면 그만이었다. 그 시간 동안 대개 책을 보고 리포트를 쓰고 영화를 봤다. 나중에 잔뼈가 굵고 나선 3시가 되기 전에 그냥 잤다. 7시까지만 일어나 청소를 하면, 그걸로 야간 총무 업무의 모든 것이 마무리 되는 것이다. 그것 참 세상 되게 쉽고 편하다, 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조만간 쉽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 원장에게 내 근무 태도를 문제 삼은 모양이었다. 문을 잠그고 나가 보조 열쇠를 받으러 총무실에 내려갔더니 자리를 비우고 있더라, 는 내용이었다. 원장에게 한시간 가까운 정신교육을 받고 군기가 조금 들었다.

 그 뒤로는 원장이 총무실에 전화를 걸어오는 일이 부쩍 늘었다. 아침저녁 청소 상태 검사에도 날이 섰다. 이놈의 인생이란 뭔가 할 만하면 피곤해지는구나. 누군가 밤새 건물 건물 대문 앞에 싸놓은 한 무더기의 똥을 치우며, 아니 이것은 흡사 말이 싼 똥이 아닌가 싶어 갸웃거리며, 나는 신세를 원망했다.

 자정을 한 시간 남긴 때였다. 총무실에 앉아 미노루 후루야의 만화를 보고 있었다. 한참 키득거리며 재미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바람 소리인 줄 알았다. 다음에는 TV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천장이 쿵쿵, 진동까지 느껴지는 바람에 저 위층에서 실시간으로 무언가 거대한 일이 진행 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거 올라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그 와중에도 소리는 점점 커졌다. 남녀의 교성이 뒤섞여 흡사 무슨 동물의 울음소리마냥 벽을 타고 내려왔다. 짐승들. 아주 끝장을 보는구나. 대충 무슨 일인지 짐작이 되니,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가서 뭐라고 해야 되나. 하지마세요, 그래야 하나.

 별안간 총무실 앞 201호의 문이 열렸다...(중략) 좀체 말이 없는 201호 원생이 총무실 창문 바로 앞까지 다가와 나를 바라보고 섰다. 우리 눈이 마주쳤다. 원생이 오른손 집게 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리켰다. 그리고 표정을 있는 힘껏 잔뜩 찌푸렸다. 이제껏 그가 그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내는 광경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무척이나 놀랐다. 조금만 더 지체했다간 곰팡이 포자를 발사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났다. 얼른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306호였다. 내가 알기로는 어느 무역회사를 다니는 30대 초반의 여성이 기거하는 방이다. 302호에 사는 여대생이 문틈으로 얼굴을 빠끔히 내밀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안으로 쏙 사라져버렸다. 305호 문 앞까지 가 섰다. 아이고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이미 방 전체가 박살이라도 날 듯 진동하고 있었다.

 대개의 고시원이 그렇듯, 이 고시원의 방과 방 사이 벽이란 있으나마나 위장에 가까울 정도로 위태로운 것이었다. 합판보다 아주 조금 두꺼운 수준이라 해야 하나. 숨을 죽이고 일을 치러도 옆방에서 알아챌 텐데 이건 뭐 새해 첫 날 보신각 종 치듯 온 누리에 사랑을 알리고 있으니.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하고야 말았다.

 대단한 일이다. 인간의 교미가 이렇게까지 과감할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은 지금쯤 우주와 만나고 있는 게 아닐까. 자기야 저기 코스모가 보여. 코스모! 코스모! 이 정도라면 과연 숭고하다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나는 인간 욕망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며 내심 숙연해진 채로 그냥 그렇게 가만히 서 있었다. 누가 뭐래도, 내게 코스모를 방해할 권한 따위는 없는 것이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문을 두드리고 말았다. 똑똑. 아차 싶었다. 들었을까. 용케도 알아챘는지 소리와 진동이 순식간에 멈추었다. 층 전체가 정적에 휩싸였다. 코스모는 사라졌다. 경외감도 사라졌다. 아니 이렇게 조용한 세상인데 말이야. 아, 저 총무인데요, 그, 조금만 조용히 해주시면 안 될까요. 다른 분들이 불평을 하셔서요.

 그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많이 좋니? 그렇게 좋아? 훌륭하십니다. 물어볼 수도 없고 칭찬할 수도 없고. 침묵이 이어졌다. 별 소리가 들리지 않아 나는 조금 기다리다 그냥 발길을 돌렸다. 어쨌든 조용해졌으니 곰팡이 형도 만족할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 중략)


 그러다 순식간에 소름이 확 돋았다. 너무 놀라서 앉은 자리에서 혼절할 뻔했다. 내 생전 그렇게 무서운 순간이 얼마나 있었던가 싶다. 계단과 계단 사이 꺾이는 구간에 웬 사람이 머리 하나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눈이 마주쳤지 싶었다. 이쪽을 바라보던 머리가 쏙 들어가 사라졌다. 그제야 상황을 알 만했다. 남자가 집에 가려는데 나랑 마주치기 미안했던지 무서웠던지 무안했던지 그런 모양이다. 아니 나는 당신을 존경한다고. 왜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거야.

 이윽고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되게 참하게 생긴, 군인이었다. 아, 군인이었구나. 왠지 듬직하다는 기분. 우리의 국방력. 우리의 코스모.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군인은 서두르고 있었다. 군화가 간신히 보이지 않을 정도의, 그것 참 대단히 미묘한 빠르기다. 도망가듯 도망가지 않는, 놀랍도록 애매한 속도였다. 곧 건물 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가 보았더니 계단에 검은색 가죽 장갑 하나가 나뒹굴고 있었다. 내게도 익숙한, 군에서 보급되는 가죽 장갑이다. 아이고 선생님 이걸 흘리고 가면 어떻게 합니까. 얼른 집어서 따라 내려갔다. 대문을 나섰다. 저 왼쪽 방향으로 군인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가 무슨 이유였는지 내 쪽을 돌아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장갑을 들어 가져가라는 몸짓을 해보였다. 그런데 웬걸, 군인이 뛰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달리 너무나 빨랐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장갑 한 짝을 들고 거기 그냥 멍하니 섰다. 뭐랄까, 신화가 깨진 느낌이었다. 임춘애가 라면만 먹고 뛴 게 아니라 실은 계란도 풀어 먹었더라,는 고백을 들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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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1-09-15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상의 방 한칸...짠한 청춘들이군요.

Arch 2011-09-17 09:44   좋아요 0 | URL
알케님 반가워요.

저는 그 방 한 칸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더랬어요.

머큐리 2011-09-15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 참 인상깊은 대목이긴 했지요...^^

Arch 2011-09-17 09:44   좋아요 0 | URL
읽으셨구나. 작은 나라는 설렁설렁 잘 읽히는데 큰 나라 부분이랑 우석훈의 추천평을 영~

nada 2011-09-15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스모! 코스모! ㅋㅋㅋ
저도 이 부분이 젤 기억나요.

Arch 2011-09-17 09:45   좋아요 0 | URL
히히~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거에요. 그쵸?

마노아 2011-09-16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나 어제 주문했는데 주문하길 잘했어요.^^ㅎㅎㅎ

Arch 2011-09-17 09:45   좋아요 0 | URL
오호, 완전 맞아떨어졌는데요.
저기 페이지랑 써놨는데 제가 쓴줄 아셨나봐요.

poptrash 2011-09-16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책 발췌라고 생각 못하고 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ㅎㅎ
조... 좋은 추억이다

Arch 2011-09-17 12:03   좋아요 0 | URL
저는 DVD방 알바의 추..억이란게 있어요. 쿨럭

달사르 2011-09-16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군침 꼴깍거리며 읽었는데, 댓글들 보면서 발췌인줄 알았네요.
이런 책들은 빨랑 읽어줘야 되는 책들이군요!

Arch 2011-09-17 09:46   좋아요 0 | URL
달샤르님 반가워요.
허지웅씨의 글맛이 좋아서 옮겨놓은거지, 이 얘기가 다는 아니에요. 물론 히메나 선생님 이야기가 있지만 정.말. 이게 다는 아니에요.
 

 

   며칠 전 면접을 봤다. ‘꺽’할만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 틈에서 횡설수설대다 시원섭섭하게 끝낸 면접이었다. 이런 질문에 답변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을까 싶은 생각은 찰나, 열정 있고(보고 있나 면접관들) 성실한데다 능력 있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내가 그런 사람인지 나조차 알 수 없는데 면접관들이라고 알 수 있을까. 게다가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그런’ 노력을 한다고 ‘그렇게’ 볼 수 있을지는 또 별개의 문제.

 


그럼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m과 김경,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방 이론’을 촘촘히 적어내려간 이 책-방을 통해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시도며 몇가지 방법론은 재미있다.-에선 바람둥이 얘기가 나온다. 상대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하려는 바람둥이가 원래의 자기 모습이 아니라 좀 더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꾸며 상대를 대하는데 이 지점이 좀 웃기다. 이럴 경우 우리가 예상하는건 바람둥이가 부리는 수법에 상대방이 홀딱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책에선 상대방이 바람둥이의 어설픔을 알아챈다거나 꾸민 모습에 반감을 갖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다른 사람에게 나를 알릴 수 있는 묘안은 따로 없는걸까.

  스눕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아상과 다른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 얘기도 나온다. 예컨대 ‘나는 이러하다’란 개념이 있을 경우 좀 더 긍정적이거나 나은 평가를 받더라도 쉽게 수긍할 수 없다고 한다. 이유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와 다르기 때문. 아마 면접에서 천지개벽할 일이 생겨 그들이 나를 뽑았다면 나 역시 이럴 수는 없는거라며 나도 모르는 뒷거래가 있다거나 조건이 생각보다 안 좋을 수도 있을거라며 의심 했을 것이다. 

 결국, 그런 것이다.



   새로운 사람이 왔다. 나는 선배가 됐다. 이제야 나의 어떤 점을 사람들이 그렇게 마뜩치 않았는지 짐작이 간다. 물론 짐작 간다고 해서 내가 확 변하거나 큰 깨달음을 얻어 같은 시행착오를 저지르지 않으리란 법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어쩌면 그보다 쉽게 변하기 마련이니까. 대신 짐작으로만 알고 있던 나의 문제점이 뭔지를 힐링캠프에서 이경규가 ‘눈치없는 편이죠’라고 옥주현에게 직접적으로 묻듯 주위 사람에게 물어봤다.


 J는 자기만 느꼈을 게 분명하지만 딱 한 가지 있다면서 말을 꺼냈다. 타부서의 업무를 도와주고 있는데 이렇게 하면 좀 효율적일 것 같아 내가 건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담당자 표정이 소위 말하는대로 ‘썩었다’고 한다. 이 말을 하고선 J는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아치, 아까 내 얘기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 마요. 난 아치가 그런 말한 게 나쁘단 게 아니라 상대가 그걸 받아 주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보고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한 말이었어요. ‘아치 잘못했어요.’ 라고 한 게 아닌걸 알아줬음 해요. 난 아치가 자기 의견 말하는거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나한텐 언제든지 말해요. 난 아치가 상대방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고 자기 일처럼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와, 정말 예쁘지 않나요? (막 자랑하고 싶음.) 그 말에 그렇게 신경 쓴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있겠다(나도 단련됐다) 싶었는데 J 말을 들으니까 괜히 힘이 솟는다. 얼마 전에 오랜 친구는 언젠가에 대한 얘기를 해준 적이 있다. 그때 아치도 힘들었을텐데 자기를 위로해줘서 고마웠다고. 분위기도 못 읽고 눈치도 없지만 어느 순간에 발휘되는 아치력 같은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a의 모임에 갔더니 다들 나보고 형수님이라고 한다. 괜찮은 호칭이 아니다. 남자들의 모임에서 그들이 서로를 호명하는 명칭의 여자형이라서, 독자적인 개인은 지우고 누구의 여자친구로 있는건 별로라, 형수라는 호칭 안에 박혀서 남자들의 다른 여자친구와 맺는 관계도 여러모로 불편하단 얘기는 안 하고 ‘그냥 좀 그래요’ 했다. 나는 아치씨란 말이 좋다고. 그래서 비로소 나는 아치가 됐다.



 

    나보다 내 취향을 잘 아는 친구는 내게 이 책을 선물해줬다. 그리곤 부탄에 가고, 부탄 남자랑 결혼하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평소에 이 친구의 똑똑하고(헤헤) 사려 깊은 면을 좋아했는데 가끔씩 이렇게 엉뚱한 면도 있다니 ‘아주 놀랍다’까지는 아니고 누군가를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지어선 <절대> 안 되겠구나 싶다. 요즘 들어 사무실 사람들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실실 웃고 환하게 인사하는 나를 보면서 더더욱 그렇단 생각이 든다.




 의례적인 관계에서 보여줄건 진심이나 서툰 표현이 아니라 형식에 맞는 표정과 호응이다. (이분법으로 흐르는 것 같지만 좀 더 얘기하자면) 그렇게 힘을 빼가며 형식을 따지지 않아도 되는 관계라면 상대가 어떤 사람일거란 예상 대신 모호한 어떤 느낌이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나와 관계를 맺는 상대방을 나름대로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에 관계가 갖는 특별한 힘 같은게 (아치력 이런거 말고) 발휘되지 않을까. 물론 오랜만에 책 선물을 받았다고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는 혐의를 지울 수는 없지만.

 고마워요, 똑똑한 여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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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9-07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원래 제목이 더 좋다. 요래지내요 ㅋㅋㅋㅋㅋ 아치력에서 빵 터졌어요. 아치력이래. ㅋㅋㅋㅋㅋ

부탄 남자랑, 그래서, 결혼할 겁니까?

J의 장문메세지, 좋은데요. 사는데 매시간 매분 매초 의미를 부여할 순 없겠지만, 또 의미를 찾을수도 없겠지만, 가끔 어떤 사람들 때문에 살맛나는 것도 사실인 것 같아요. 나를 나로 봐주거나 혹은 내가 모르는 나를 일깨워주는 그런 사람들이요.

직장에서 후배로 지내는 것 만큼이나 선배로 지내는 것도 어려워요, 아치. 어떻게 해야 현명한 선배가 되는지는 시간이 흘러도 잘 모르겠어요. 잘해봐요, 우리.

Arch 2011-09-08 11:49   좋아요 0 | URL
진짜? 역시 유머란 의도하지 않을 때 더 재미있나봐요.

우선, 부탄을 가야겠죠? 책을 읽다보니 자꾸 <오래된 미래>가 떠올라요.

맞아요. 나도 그런 사람 되고 싶어요. 음... 그리고 정말 혼나고 배우는게 낫지 선배가 되어서 뭔가를 알려주고 충고하는건 체질상 안 맞는 것 같아요. 혹은 한번도 해본적 없어서 낯선건지도 모르겠고.^^ 암튼 우리 잘해봐요

nada 2011-09-07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치력, 빵 터졌어요.ㅋㅋ

부탄 남자 말고, a님이랑 결혼해요!
(결혼이 뭐 좋다고, 남들한텐 이리 떠밀고 싶은지.ㅋㅋ 그래도 결혼이란 단어, 예쁘고 설레요.)

아치님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네요.
J씨도 있고, 책 보내주는 똑똑한 여자 사람도 있고.
괜찮은 여자예요, 당신!

Arch 2011-09-08 13:10   좋아요 0 | URL
아치력이 웃겨서 기분 좋아요^^

저도 그런 생각해봤어요. a를 닮은 아이를 낳아서 키우면 어떨까. 아냐, 코는 내가 더 오똑하니까 나를 닮고 어쩌고. 이런 생각을 하다가 혼자 깜짝 놀라요. 맙소사, 저는 결혼할 준비가 하나도 안 돼 있는데 결혼이란 말은, 어쩌면 약간 낭만적인 분위기는 사람을 이렇게 훅가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동안은 결혼 일찍 안 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요샌 내가 누군가와 오랫동안 같이 산다면 정말 이것저것 다 봐서 서로 타협하고 양보할 수 있는지, 나는 어디까지 포기가 되는지 잘 봐야겠다란, 그러니까 결혼에 대해 좀 호의적이 됐달까. 그런 상태예요.

꽃양배추님, 고마워요. 오늘 누군가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서 기분이 별로였는데 꽃양배추님 덕분에 좀 나아졌어요.

pjy 2011-09-07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력! 괜찮은데요^^ 요래 선물받고 지내시는군요~

Arch 2011-09-08 13:11   좋아요 0 | URL
요래 지내고 있어, 에 방점이 찍혀야했는데 결국 제 자랑만 했나요~^^

비로그인 2011-09-08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력, 유행 예감인데요? ㅎㅎ

저도 놀러와봤어요 Arch님! 여기저기서 [부탄과 결혼하다]가 눈에 띄니까 막 읽어버리고 싶네요. 지금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만 7권이고, 문학동네에서 온 책도 있는데 말이에요. 어제는 새벽 3시까지 날밤 새다가 곯아 떨어지고... 독서도 체력으로 하는 건가... 요새 그런 생각이 드네요 ( '')~

Arch 2011-09-08 13:14   좋아요 0 | URL
히~

저도 10권 넘게 빌렸어요. 반납만 하고 올거라고 아무리 다짐을 해도 이것저것 빌리고 싶은게 너무 많아요. 다 읽으면 문제없겠지만 또 그렇지도 않고. 히잉~ 맞아요, 독서는 체력이죠. 요새 눈이 자꾸 침침해져서 저도 이 말 절감하고 있어요. 누워있으면 책이 휘리릭 넘어가는 독서대가 있으면 좋겠어요. 정말(:-)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5799§ion=sc8 

 일다의 기사를 옮겨와본다. 이매진피스의 강정마을에서 하루 보내기 계획도 좋고, 멘토링 인터뷰도 참 좋다. 이런 멘토가 있다면 어떨까.  

 그녀가 잘 쓰는 어투가 있는데 “그렇제? 우짜겠노.”이다.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는 방식 자체를 무디게 만든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야기 하다보면 “그렇지. 그래서였지”라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 나온다.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공식보다는 “나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어. 상대에게도 그런 이유가 있었겠지”가 된다.
 
 최근 나의 골칫거리에 대해서 그녀에게 물었다. "확 엎어버려?" 랬더니, "힘들제. 우짜겠노"랬다. 여기서 우짜겠노는 '같이 생각해보자 + 어떤 방법이 있겠나 + 상대방은 염두에 두어봤나'의 줄임 말이다. 세 문장 중에 1문장이라도 마음이 와 닿으면 감정이 풀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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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8-29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들제, 우짜겠노. 그렇제? 우짜겠노.
아, 새삼 너무 정감가고 마음 풀리게 하는 말이란 생각이 확 들어요.
마음의 여유도 느껴지고요.
여유공간이 있어야 상대도 받아들이죠.
세문장 중에 한 문장이라도,에서 특히 '상대방은 염두에 두어봤나' 이말도 이렇게 하면 비난이나 질책으로
안 들리고 마음을 누그러뜨려주는 말이 되겠네요.
당장 이 말을 써먹을거에요.^^

Arch 2011-08-30 10:17   좋아요 0 | URL
저는 위로에 젬병인데 그렇게 좀 무심해져도 될 것 같단 생각이 되니까 다행이다 싶어요. 그게 또 나랑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답을 주는 게 아니라 답을 찾는 방식 자체를 무디게 한다니. 이 부분도 참 좋았어요.
결혼생활은 열심히 안 하는게 비결이란 말도 참 좋았드랬구요.

프레이야님 오랜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