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 콘서트에 다녀왔다. BEST SHOW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놀만하면 쉬어버리고, 노래 좀 들을라치면 중고음이 귀를 찌르듯 들려와서 그만 시큰둥해지고 말았다. 쉬러 온거면 집에 가서 쉬라는 말에 좀 겸연쩍어, 놀러 온거면 신나게 놀아야한다길래 무거운 엉덩이 들썩이며 놀라고 했더만 쳇. 과감하거나 섹시하지 않은, 뭔가 좀 우람한 비는 자꾸 운명이니 군대 얘기를 하며 맥을 톡톡 끊어먹었다. 김어준이 그랬던가. 누군가 기특하다고 봐주는데 그치면 좋은데 자기 자신이 너무 기특해 죽겠어하는 비는 별로라고. 나 역시 그랬다. 김어준의 말이 아니었어도 지루했다. 까진 연예인이 아니라 밤마다 도덕책을 머리맡에 두고 암송하는 것처럼 멘트는 식상했고 쇼는 딱 고만고만했다. 정지훈이란 사람은 귀엽고 자잘한 매력이 있었지만 내가 혹할만한 느낌을 주지 않았다. 관습적이랄까, 안전하달까. 어디 갔다왔네 정도로 그칠거면 비 콘서트가 아니어도 좋았으련만. 멋진 댄서들의 쇼 정도로, 우퍼 소리가 온 몸을 휘감는 사운드를 느끼고 싶어서 한 선택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드럼의 킥과 스네어 소리를 들으니 락페스티벌에 가보고 싶다.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자극적이고 발랑 까진 콘서트.

* 파티랑 마리랑 운목이
'연예인도 하는데'까지는 아니어도 효진씨가 한대니까 나도 해보고 싶었다. 여러번 실패했지만 이번엔 식물들의 특성대로 잘 길러보고 싶었다. 로즈마리랑 스파티 필름은 물을 듬뿍 주고 각각 창가와 화장대 밑의 자리를 주니 내 배가 부를 정도로 쑥쑥 자란다. 운목이는 '쑥쑥과'는 아니지만 시들지 않고 꾸준해서 좋다. 나와 화초를 같이 기르는 a가 얼마 전에 칼라 아이비를 데리고 왔다. 포스트잇을 붙인 a의 맘이 참 예뻐서 이렇게 화초 주고받으며 오랫동안 같이 살면 좋겠단 생각을 했던가 말았던가.
몇시간 전까지 그만 보네, 질렸네 대판 싸우고 나서 이런 페이퍼를 쓰는건 낯간지럽지만 한번 칼라 아이비를 보여주고 싶었다. (혹시 칼라 아이비 키우는 분 있나요. 얘는 좀 시름시름해요. 물은 조금만 주고 반그늘에서 키우는데.)

* 며칠 전까지 소셜 커머스에 빠져서 한동안 게스 파우치 타령을 해댔다.-파우치의 적정 가격과 한눈에 숑 갈 정도로 예쁜 그 파우치만의 가치(가치라기보다는 세일과 언젠가 한번쯤 나도 비싼 물건)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사람들이 공주풍이란 얘기를 해서 흥미 반감- 파우치뿐만 아니다. 하루에 두번씩이나 까페를 드나들고, 비싼 커피를 먹으면서 맛이 없다고 남기는 만행을 저질렀다. 뿐인가. 비싼 요리집에 가서 이것저것 먹고 싶다며 시켜놓고 배부르다고 남겨버리고. 어디 놀러가선 이왕 노는거 잘 쓰면서 놀자며 정말 돈을 잘 써버린다. '예전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할 짓들을 하고 있다.
예전의 나라면 가끔씩 특별한 날에만 돈쓰기 한풀이를 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과감할 수가 있을까 싶다. 매달 통장에 월급이 찍히고, 이 월급을 위해서 이것저것을 감수하고까지는 이해된다지만 그게 막 쓸 수 있는 이유가 될까. 이토록 욕망이 생생해서 가끔씩 깜짝 깜짝 놀란다. 이 많은걸 가져서 뭐하게, 다 쓰지도 못할거잖아. 이걸 만들려면 환경이 파괴되고 어쩌고. 그런데 참, 얼마 전에 허지웅의 방처럼 꾸미고 싶어서 안달나는 심보는 또 뭐람. 돈이 없어서 소박한 사람이었지, 나는 원래 온갖 욕망의 아치 덩어리였을까. 남들 사는대로 한번 해보고 싶은걸까. 남들 사는게 어떤건데. 어떡해. 나 바람 났나봐.
* a랑 디자인 체험하는 곳에 다녀왔다. 전시품이며 구동해보는 체험활동이 조악해 관람하는 대신 우리는 가방이랑 퍼즐을 만들었다. a는 도안을 잡고 한참 고민하더니 곰돌이를 안고 있는 미키 마우스를 그렸고 나는 미리 준비된 도형으로 본을 떠서 코끼리를 그렸다. 코끼리만 있는게 썰렁한 것 같아 글씨를 쓰다보니 팝아트 같아진건 아니고 (히히) 좀 조잡해졌지만 좋아하는 글씨가 잔뜩 써진 천주머니가 생겨서 기분이 좋아졌다.
체험을 하고 돌아오는 길, 날은 더웠고 해를 가려줄 손바닥만한 그늘 하나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