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좀 시간이 엉킨 글.
 
 화려했다. 화려함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그 틈새로 김혜수가 보인다. 처음엔 왜 자꾸 그녀를 박기자라고 부르는지, 패션지면 에디터나 편집장이라고 해야하는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이름이 박기자란다. 드라마 '스타일'과 난 처음부터 좀 꼬였다. 게다가 류시원이라니. 이마에 주름 잡고, 소매만 걷는게 다인 이 남자가 김혜수랑 연애 라인을 긋는 것도 어색했는데, 말다툼을 할 때마다 늘 수세적으로 몰리는 그를 보면서  처져도 너무 처진다는 말이 입밖으로 툭툭 새어나왔다. 그런데 지난주 장면은 무척 좋았다.

 손발이 찬 박기자를 앉혀놓고 발을 씻어주며, 류시원이 말한다.
- 나랑 살면 참 좋을텐데. 밥도 잘 하고, 아프면 침도 놔주고(그는야 전직 한의사), 이렇게 발도 씻겨주고......
혼자 지내는게 편했어. 누구 옆에 두는거 어색하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박기자를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 당신 만나면 말야, 내 안에 이렇게 뜨거운게 있나 싶어져. 내 몸에 에너지가 꽉 차는거 같아.

 물론, 얄팍한 기억력이라 제대로 말하는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식의 대화였다. 둘이 있고 싶어지는 순간을 예쁘게 그려낸건 좋았지만 앞으로도 이 드라마를 계속 볼지는 의문이다. 드라마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패션잡지를 배경으로 음모와 권력, 사랑 등등이 피어나는데 단발적이고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컨셉도 자꾸 바뀌는 것 같다. 초반에는 어시스트의 에디터 고군분투기쯤으로 그려지다가 패션계의 생태를 훑다가 요새는 김혜수를 중심으로한 삼각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바뀌는 컨셉만큼 이야기의 질도 들쑥날쑥하고, 여분의 캐릭터와 과잉된 디테일이 걸린다. 그렇지만 김혜수다. 이제야 제 날개를 찾은 듯 활보하고 다니는 그녀 덕분에 드라마는 꾸역꾸역 여기까지라도 온 것 같다.
드라마 속 김혜수는 남성적으로 일하고, 섹스 따위는 별거 아니란식의 캐릭터로 나온다. 그녀가 '딜'을 할 때면 예전에 장금이를 볼때처럼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은 없더라도 통쾌하다. 그녀의 여성성과 극 전체에 흐르는 여성주의적인 분위기가 어떻게 닿는지는 모르겠지만, 막판에 평범한 여성의 행복처럼 묘사된 '웨딩드레스 입기'는 참, 거시기했다. (종영 전과 후의 글들이 섞여 개판 되기 일보직전)

  드라마는 통속적인 코드를 그대로 답습해서 용두사미로 끝났지만, 마지막에 스틸컷로 대면한 김혜수는 그야말로 환했다. 환하고 아름다웠다. 스타일보다 다시, 김혜수를 본게 남는 장사였다.

김혜수에 대한 짧은 글 -> http://blog.cine21.com/yaroslav/15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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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9-10-06 0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만 보고 드라마는-캐스팅보고 그냥 접었어요. 이건 진짜 아니라구요 ㅠ.ㅠ

Arch 2009-10-06 08:56   좋아요 0 | URL
전 김혜수 보고 좋아서^^

무해한모리군 2009-10-06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그렇게 안어울리는 짝도 없을거예요 ㅎ
류시원과 김혜수라니 ㅋㄷㅋㄷ
그리고 그 드라마는 직장여성에 대한 이해가 없어요 --;;

Arch 2009-10-06 11: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맞아. 유효 지난 글을 굳이 올린건 바로 그 이유였어요. 이해를 포기하면 모르는데 또 이해하는척 하고 그러니까
 

  어찌보면 성당 갈 일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내 죄를 고백하는 곳이 서재가 아닐까 싶다. 오늘 나는 오만가지의 잘못을 했지만, 그중 가장 악랄하고 졸렬한건 민에게 저지른거였다.

 민을 혼내는 중이었다. 나는 민이 평소때처럼 나보다 더 성을 내며 토라지거나 소리를 지르며 발을 동동 구를줄 알았다. 그런데 엉엉, 계속 울기만 하는거다. 부드러운 뺨으로 눈물이 계속 나오는걸 보다가 그만,
 
 플래시백처럼 아주 환하고 기분 좋은 장면이 떠오르고 말았다.

 전을 다 부치고 저녁 전에 옥찌들이랑 나가서 놀았다. 옥찌들은 씽씽카랑 자전거를, 나는 인라인을 탔다. 옥찌들은 신나게 놀고, 난 인라인을 처음으로 다시 타듯 헤매고 있었다. 나는 간신히 일어나 한발씩 내딛었지만 까딱 잘못하면 전처럼 엉덩이 두쪽 다 멍이 들까 겁이나 쩔쩔맸다. 이래서 다 큰 사람은 인라인을 배우기 어렵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넘어질걸 미리 겁내니까. 그래도 우둘투둘한 아스팔트로 선을 긋듯 인라인을 타면서 앞으로 가긴 했다. 아주 미세하게. 그런데 정지를 하려니 되야 말이지. 넘어진 다음에 다시 중심을 잡고 일어설까, 아니면 이대로 쭉 미끄러지다가 뒷축으로 멈출까. 혼자 끙끙대며 궁리를 하고 있는데, 민이 다가왔다.
 예의 세발 자전거를 아주 씩씩하게 굴리며 다가온 민은,
- 내가 도와줄까.
라며 손을 내밀었다. 그때 그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민에게서 다른 면이 있다는걸 알고 반가운데다 내가 소리를 지르고 혼내도 아직은 나를 조금은 생각한다는 맘을 엿볼 수 있어서였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는걸 수도 있었겠지만, 아, 아이가?-

 그때 왜 그 장면이 생각났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안아줘야하지 않을까. 이 아이가 억울해하고, 속상해하잖아. 그냥 안아주고, 이모가 잘못 알았나보다라고, 미안하다고 말해야하지 않을까. 아니면, 아니면 그런 말하기 쑥쓰러우면 그냥 모른척 놀아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은 일사천리였는데 난 자꾸 못된 말만 내뱉고 있었다. 내 화를 나도 어쩔줄 몰라했다. 나는 점점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보호자가 되는 것 같다.

 자라고 나서도 부모님이 날 좀 더 받아주면 난 지금과는 조금 다른, 좀 더 긍정적이거나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으로 자라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옥찌들에게는 누구보다 잘해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순위뿐 아니라 아이들 맘에서도 멀어진 이모가 됐고, 이런 상황을 누군가는 아이들에게 규칙을 지키도록 해야하며 악역을 맡을 필요가 있다는 말로 합리화해버렸다. 젠장, 없느니만 못한 이모다.
 
 민은 다시 나랑 화해한 후 책을 읽다 잠이 들었다. 뿡뿡이가 좋아하는 놀이 얘기를 하면서 민에게 뭘 좋아하냐고 물었다.
- 동그란데 입으로 호 불면 크게 생겨서 하늘로 가는거.
 비누방울이 좋단다.

 한번 쓰는걸로 페이퍼 죄사함 티켓이라도 끊는걸까. 달라지는게 하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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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4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05 0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언니네 방 -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
언니네 사람들 지음 / 갤리온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표지는 이렇다. 나즈막한 돌담에 두 여자가 앉아 있다. 연보라색 신발을 신은 언니는 아마 화려한 꽃무늬 신발을 신은 동생에게 이런 곳이 있다란 얘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언니가 말한 이런 곳, 나는 언니네 방에 놀러 갔다왔다.

 서점에서 언니네 태그놀이를 읽을 때는 마뜩치 않았다. 건성으로 쓴 책 같았기 때문이다. 언니네 사이트가 있는 것도 알았고, 들어가보기도 했지만 막상 뭘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라 서성이다 왔던 기억 정도. 내가 '언니네'에 대해 갖고 있는건 고작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머큐리님 지역 도서관 얘기에 자극받아 시립 도서관(우리도 예쁜 이름으로 바꿨으면 좋겠다.) 사진을 찍으러 갔다. 그제서야 이 책을 볼 수 있었다. 나를 보면서 '이제 왔냐'고 무심하게 말을 건네는 이 책을.(내가 무슨 신기가 있는건 아닌데 가끔씩 책들이 말을 걸어온다.) 오랫동안 도서관에 다녀놓고 왜 이제서야 발견했을까, 아니 왜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을까. 무릇 필요한건 절절히 갈망하는 순간에 나타나는걸까?

 일전에 '꼭 사정을 해야하는 섹스'는 문제란 얘기를 한적이 있다. 그때 답답했던건 왜 하나같이 똑같은 섹스만 하는가였다. 나도 성기결합하는게 나쁘다고 보지 않고 좋을 때도 있는데 왜 '내가 그만두고 싶은 순간'은 상대의 욕구를 배려하지 않는 무례한 행동이 되는건지 마뜩찮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사정이 정말 참지 못하는건 아닐까란 생각에 그야말로 '대주는' 지경까지 갔었다. 하나하나 속터질 지경이었다.

 주위엔 나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도 나에게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난 나와 같은 생각은 무척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성과 하나같이 별일 없이 섹스를 잘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진 것 같았다. 내가 이상한걸까, 꾸준히 의심한대로 난 약간 모자란게 아닐까?

 그때, 노랑 애벌레님을 만났다. 오르가즘을 연기하는 여자들 얘기는 모든 남자가 착각하는 '나랑 섹스하는 여자가 설마'란 생각이 얼마나 우스운지를 보여준다. 때로는 성욕만큼이나 강하게 정서적 교감을 얻고 싶어 섹스를 할 수 있는데 누군가가 도달할 때까지 꾹 참아야하는건 얼마나 지루하고 속절없이 애가 타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물론 노랑 애벌레님은 내가 느꼈던 지점을 훨씬 더 잘 설명했고, 좀 더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열어놓았다.

 이건 또 어떨까. 우리 때는 국민학교였던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쉬는 시간이면 여자 아이들은 모두 악악 소리를 지르며 남자들을 피해 도망을 다녔다. 남자애들은 장난이라고 했지만 명백히 성추행인 브래지어 끈 당기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나워서 다른 애들이 건드리지 않았는데 유독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던 아이가 지나가면서 내 성기를 만진 적이 있다. 나는 좀 뜨악하고 불쾌하고 분하고 더럽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 거기 있는줄 몰랐던 성기가 펄펄 살아 숨쉬며 '지금 자기가 굉장히 화가 났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에게도 그 아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장난처럼 넘길 수도 없고, 화를 내자니 대단한 용기를 필요하게 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작고 까맣던 녀석은 그 나이에 벌써 알았던거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말해야되지 않았을까. 은밀하게 우리들끼리 공유하는 유희 같다는 생각 때문에 알리지 않은건 아니었다. 정확히 어떤건지는 몰랐지만 나로선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비밀'로 느껴졌던거다. 그런 비밀은 살아가면서 잦은 빈도로 생긴다는걸 그때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언니네가 털어놓는 이야기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미치도록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너만 아프고, 너만 고민됐던게 아니구나. 나도 그랬어. 나도 털어놓을데가 없었고, 이상한 기분이었는데 뭐 때문인지 잘 몰랐어. 그랬구나, 그랬어. 그래서 이젠 그런 경험들이 말끔하게 정리가 된게 아닌데도 다음과 같은 글을 체념이나 통달이 아닌, 여유를 갖고 볼 수 있게 됐다.

 그때, (브래지어 끈 당기기) 이러한 광경을 보다 못한 담임선생님은, 남자애들은 나가서 축구를 하게 하고 그동안 여자아이들만 모아 놓고 성교육을 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남자들은 다 늑대고 너희보다 질적으로 낮은 수준의 동물들"이라며 "그러니까 너희들이 잘하라"고, "안전벨트를 꼭 하고 다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남자선생님이라 민망했는지, 브래지어를 브래지어라 부르지도 못하시더라. 아니, 내 숨통을 답답하게 죄는 브래지어가 안전벨트라니, 누구의 안전을 어떻게 지켜준다는 걸까?

 단순히 설겆이만을 하는게 살림은 아니라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지출과 수입 내역별로 예산을 맞추고, 소모품의 잔존량까지 헤아리는 섬세하고 살리는 일을 하는게 살림이라는건 무척 이채로운 발견이었다. 감정과 잡다함이 소모되는 집합체 정도로 여긴 기존의 가사노동과는 얼마나 대비되는지.
'살림'이라는 단어는 정말 아름답게 만들어진 말이다. 사람을 포함한 많은 것들을 살리는 일, 그것이 살림이다.

 또 뭐가 있더라. 모든 글이 완벽하게 나와 들어맞는 것도 아니고, 이 글은 왜 여기에 있나 싶은 글도 눈에 띄긴 한다. 그래서 별 하나를 뺐다. 하지만 비로서 난, 소란스럽게 말하는 방식을, 좀 덜 우아해도 '툭 까놓고' 말하며 사는게 얼마나 날 행복하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제껏'어떤 여자'란 수사에 갇혀서 소심하게 방어하는 차원으로 나를 드러냈다면 이제는 좀 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런데, 넌 어떠니. 언니네는 내게 작지만 튼튼한 날개를 달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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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0-05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순전히 Arch님의 리뷰만으로 이 책을 보관함에 담아두었어요.

Arch 2009-10-05 13:18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다락방님. 이거 리뷰 부담감이 살풋 생겨나는게 자극도 되고 좋습니다^^ 내가 '세벽 3시' 보고 무척 다락방님께 고마웠던 것처럼 괜찮게 봤음 좋겠는데...
 
추적 60분 당신의 아이는 안전합니까 - 내 아이를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필수 매뉴얼
KBS 추적60분 제작팀 엮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3년 전, 용산에서 열한 살 여자 아이가 동네 아저씨에게 희생된 사건이 있었다. 사람들은 흥분했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며 성토했다. 정치권은 발 빠르게 움직여 무수한 대책을 내놓았다. 아이를 마지막으로 배웅하던 날, 그 아이의 할머니는 가슴 아픈 말을 했다. '내 새끼가 이 일을 하려고 세상에 왔다 가나 봐. 높은 분들이 약속했으니까 이제 내 새끼같이 불쌍한 애들은 없을 거 아니야.' 1년 후 아이의 장례식 날을 기려 '아동 성범죄 추방의 날' 행사가 열렸다. 1년 동안 바뀐건 아무것도 없었고, 행사를 치른지 한 달도 안 돼 제주에서 열 살 아이가 사라졌다. 이런 범죄는 왜 일어나고,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은 그의 범죄 가능성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까, 세상은 어떻게 그리 간단하게 아이들을 잊어버릴까.

 작년 3월에 방송된 추적 60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이런 의문에서 시작된다. 제작팀은 좀 더 자세히 아동 성범죄를 분석하기 위해 최근 10년동안 일어난 아동유인범죄(2802건)의 범죄 지도를 만들었다. 범죄 지도란 특정 범죄와 관련된 데이터를 지도 위에 표시하고 범죄가 일어나는 형태와 범인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것이다.'아동을 유인한 장소', '범행 장소', '범죄인의 집'과 '피해자의 집', '피해자가 다니던 학교' 를 지도 위에 표시해서 어떻게 범죄가 일어났고,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유인 지점과 범행 장소 간의 거리는 500미터 이내가 많고, 그 중에서도 100미터 이내가 가장 많았다. 나이가 많을수록 피해자도 증가하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맘을 놓을 수 없다. 남자 아이의 경우도 총 112건이 있었으며 점점 증가 추세이다. 피해 아동과 아는 사람이 전체의 38%다. 아는 사람은 피해 아동의 친족이 가장 많았다.

 피해 아동을 유인한 방법으로는 호기심유발(35%), 물리적강제(23%), 지인사칭(18%), 채팅이용(18%), 동정심 이용(7%)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유인당한 장소는 길, 놀이터, 공원- 841건, 범죄인의 집- 536건, 피해자의 집- 426건으로 나타났다. 

 물리력과 채팅을 제외한 유인 방법은 애석하게도 아이의 착한 맘을 악용한다.

- 아저씨가 글을 모르는데 글을 좀 가르쳐줄 수 있겠니?
- 너 이 동네 사니? 누구를 찾아가는데, 길을 좀 알려주겠니?
- 차 의자 사이로 볼펜을 떨어뜨렷는데 손이 커서 뺄 수가 없네. 네 손은 작으니까, 네가 좀 꺼내 주겠니?
- 차에 무거운 짐을 실어야 하는데 조금만 도와주겠니?
 
유인은 나날이 진화한다.

- 맛있는 과자 사줄게. 언니랑 같이 갈래?
- 아이들 사교육과 관련된 아주 간단한 설문조사야. 엄마에게 새 휴대전화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드리면 좋지 않을까?
- 너희들 연예인 누구 좋아하지? 그 공연 볼래?

 호기심을 유발하는건 대표적인 유인 방법이다.

- 강아지랑 같이 놀지 않을래
- 달팽이 보여 줄까?
- 게임기 좋아하지?
 
 고전적이지만 여전히 먹히는 수법, 거짓으로 특정인을 사칭하는 경우도 있다.

- 엄마랑 잘 아는 사람인데
- 경찰인데
- 새로 온 담임 선생님인데
 
 우리가 막연하게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고 하는건 대단히 위험한 얘기이다. 아이들에게는 방금 나와 몇마디 나눈 사람도 낯선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된다.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을 그려보라고 하면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흉악하고, 뿔이 달리거나 뚱뚱하고 괴팍하거나 칼자국이 있는 사람을 그린다.(EBS 다큐 프라임 내용 중) 하지만 우리에게 낯선 사람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 평범하지만 언제 돌변할지 모를 사람인 것이다. 아이에게 그 내용을 충분히 설명해줘야 한다. 아이가 혼란스러워할 부분들, 예컨대 모르는 사람이 길을 물어본다거나 부탁을 할 경우, 평소에 예의바르게 어른을 대하라고 교육받은 아이는 당황하게 된다. 이럴때는 원칙과 예외를 들어 설명해주고, 어른은 어른이 도울 수 있으니까 주변 어른들한테 도움을 청하라고 말해준다. 예의보다는 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꼭 각인시켜줘야 한다.

 별책부록의 '내 아이의 수호천사가 되는 법'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면
- 매일 같은 길로 다니는 것보다 여러 길로 다니도록 한다.(누군가 아이를 지켜볼 수 있다.)
- 아이에게 동행해도 좋은 사람을 '구체적으로' 지명하고, '반복적으로' 알려준다. 지명된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꼭 부모에게 전화를 해서 확인받도록 얘기해줘야 한다.
- 아이 소지품 겉면에 이름을 적지 않는다. (이름을 부르며 접근하면 아이들은 친근감을 느낀다.)
- 모르는 사람이 차를 세우고 길을 물을 경우, 어른 보폭으로 두 걸음쯤 떨어져서 대답하라고 가르친다.
-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불편한 느낌이 들 때는 도움을 거절해도 괜찮다고 알려준다.
- 뇌물은 대가를 바라면서 주는 것이고, 세상에는 공짜가 없음을 알려준다.
- 어떤 경우라도 부모는 자신의 편이라는 확신을 아이에게 심어준다.

 리뷰를 쓰면서도 느꼈지만, 이렇게 아이를 교육한다고 해도 물리력을 사용한다거나 그 많은 것 중에 어느 하나, 순간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릴 경우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하리라는 것을 모르는건 아니다. 안전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미국 사례는 미국대로 그 나라 사정에 맞게 제도와 사회적 여건이 마련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식대로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왜 아동 성범죄자 중에 친족들이 많은걸까. 범행 장소와 피해자의 유인 장소가 가깝다면 주변에 있는 사람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많은데 그렇다면 따로 우범 지역이 있는건 아닐까, 신상정보 공개를 어떤식으로 해야할까, 미국의 경우는 성범죄자가 마을에 이사왔다고 그 집에 불을 낸적이 있다는데. 범죄 지역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소득수준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범죄 지도로 아동 성범죄에 대해 분석한점이나 안전 교육 방법에 대해 알 수 있었던건유익했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피해 아동의 보호자들이 '다른 아이들만이라도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한 말은 늘어나는 아동 성범죄 수치에 가려진다.

 나는 아동 성범죄자의 편지를 읽어야만 했다. 그건 다른 측면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될 열쇠가 될 것 같다.

아동 성범죄자의 편지

부모님들께
나는 소아애호증을 가진 소아성애자입니다.
사람들은 아동 성추행범이라고도 합니다.
난 내가 당신의 아이를 곧 추행할 것을 알리기 위해 이 편지를 씁니다.
그렇지 않을 거라고요? 얼마나 쉬운지 말해 드리죠.

아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듣지 않고
그것을 중요하지 않은 유치한 대화로 치부할 때,
당신은 당신의 아이를 나에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아이가 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는 귀가 있습니다.
당신이 아이의 친구 앞에서
아이를 혼내거나 비웃을 때,
당신은 당신의 아이를 나에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아이를 무릎 위에 놓고 귀여워하거나 안아 주지 않을 때,
당신은 당신의 아이를 나에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내 무릎은 어떤 아이든 안을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나는 아이를 무척 잘 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아이에게 칭찬을 충분히 해주지 않을 때,
당신은 당신의 아이를 나에게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관심과 애정이 무척 많습니다.

내가 누구냐고요?
난 당신의 이웃일 수도, 직장 동료일 수도, 아이의 선생님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 수도 모를 수도 있지만
당신의 아이는 나를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아이에게 주지 않았던 관심과 애정을
주고 있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 보답으로 당신의 아이가 해야 하는 것은
내 성적 욕구에 따르는 것입니다.
난 멈출 수 없습니다.

당신의 아이가 추행당할 리 없다는 당신의 자신감이나
당신 이웃의 아이가 추행당하는 것에 대한 당신의 무관심,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당신의 무지,
그리고 알고 싶어하는 의지가 없는 당신의 행동들이
나 같은 사람들이 당신의 아이를 추행하기 쉽게 만듭니다.

- 미국 아동 안전 전문가 케네스 우든이 한 어머니로부터 받은 '아동 성범죄자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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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10-05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편지는 하루종일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드네여-
사람들에게 고통을 줘 놓고, 그 고통은 니가 한 행동의 결과로 인한 것이다. 라니,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피해자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는 생각도 않고, 지 잘못만은 아니라며 합리화, 혹은 사회적 책임으로 돌리고자 하는 것 처럼 보이는데,
뭐 아이들의 부모가 이 편지를 이용해서 얼마나 범죄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범죄를 막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런 악이 점차 만연해가고, 가해자들(무관심한 타자도 포함이 되겠지요)은 피해자의 고통에 무심하니 약한 사람들은 그저 벌벌 떨며 웅크리고 살아야 하는걸까요? 아동성범죄자뿐만의 문제는 아니죠 또 이게.
범죄자들이 저런 합리화를 하고 자빠져있다는건 범죄자의 책임은 곧 사회적 책임이네, 따라서 범죄자의 인권도 있네, 어쩌네 쇼하는 멍청이들때문이겠죠. 이래저래 평화로운 사회를 위해서 폭력은 불가피하고 대화와 이성은 헛소리인걸까요? 아.. 흥분했어요 -_-

Arch 2009-10-05 00:48   좋아요 0 | URL
흥분하지마요, 뽀님~

제가 본건 좀 다른데, 아이를 키워보면 느끼는거지만, 생각만큼 아이에게 잘 하지를 못해요. 아이 인권이 양육자의 기분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를 많이 느끼고 보거든요. (그래서 전 맨날 고민이에요.) 아이가 어른만한 판단이나 사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보호한다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아이도 어엿한 인격체이거든요. 그런데 아이랑 있다보면 이걸 자꾸 까먹어요. 제가 굳이 이 시를 리뷰에 껴 넣은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어요. 내 책임, 우리 책임이란 얘기가 아니라, 무언가를 바라는 누군가의 시선이 아니라 양육자는 어떤 고민을 갖고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그런 얘기가 전혀 없고 단지 우리 아이가 달라졌다거나, 말 잘듣는다거나 정도의 얘기만 있어서, 그것까지면,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면 답답하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도 범죄자의 형량이 낮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그 범죄자 한명 족친다고 그 아이 상처가 아문다거나 다시 이런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도리어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건 무엇일까,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걸 해줄 수 있고, 해줘야할까, 치안이 문제라면 어떻게 정비해야하나, 이런 얘기를 해보고 싶었던거에요.
범죄자의 맘 따위는 저도, 헤아릴 생각은 없어요. 그렇다고 '미친놈'으로 규정짓는 것도 편하지 않아요.

2009-10-05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05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Forgettable. 2009-10-05 01:16   좋아요 0 | URL
술을 먹었다면 아마 뻗어서 자고 있었을텐데..
술을 먹지않아 아쉬운 마음에 잠도 못자고 안절부절 ^^

2009-10-05 0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05 0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 그 문제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답이 안 나온다. 여전히 나는 알지 못하고, 알 정도로 노력하지 않으며, 노력하면서 고통스럽게 알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 난 진행중인, 언제 끝날지 모를 이야기를 할 것 같다.

- 이슈.
 
 모든 사건은 이슈로 소비된다. 얼마 전에 아동 성범죄와 관련된 책을 읽었기 때문일까. 사건을 접하면서 참담한 느낌은 들었지만 사람들만큼 분노가 일지 않았다. 얼마 후에 잊혀질 것 아닌가. 자조였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이번은 좀 더 극악했고, 잔인했다. 누군가의 상세한 묘사가 뒤따랐고, 가해자의 파렴치함이 극에 달했다. 모두가 들끓고, 분노했다. 나 역시 화가 나고 무기력했지만, 사람들만큼 화가 나지 않았다.-사건을 대할 때마다 난 왠지 '그들만큼' 슬프거나 '그들만큼' 화가 나지 않아서 난 모자란게 아닐까 싶었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 피해자
 
 그 아이가 겪은 고통과 앞으로 살아가면서 짊어져야할 상처를 생각하니 너무 안쓰럽고 속상했다. 이런 일에 있어서 난 늘 무기력했다. 옥찌들에게 안전 교육을 시킨다고 했지만, 그건, 터무니없이 좁은 시야라는걸 모르는 것도 아니다. 보험료를 수입으로 계산해서 지원을 중단하는 것으로 모자라 환급을 하라는 공무원과-그 후 어떻게 된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위해 일체의 모금은 받지 않겠다는 그 부모의 속사정. 평생동안 그 일을 기억할 아이를 위해 어떤 지원도 없는 상황-피해자를 위한 심리나 재활치료가 실질적으로 있는지 모르겠지만(그러니까 난 너무 모른다.) 무기징역도 모자라는데, 자신이 아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여도 시원치 않은데 12년에 그것도 많다며 항소까지 했다니. 그 아이와 그 부모의 분노는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전이됐다. 하지만 부모의 분노에서 서글픔이 감지됐다면 사람들의 분노는 하이에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분노할 수 없었다. 그저, 나도 당신들만큼 그 사람이 너무 밉고, 이런 일이 일어나서 아프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자칫 내가 어떤식으로든 도움을 주려고 한 행위가 행여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쉬쉬하는 당신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일지 모른단 생각은 페이퍼를 올린 후에야 들었다. 

- 역선택
 
 그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전례를 만든다면, 더 극악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이 사건도 그렇지만- 범죄의 경우엔 어떻게 해야할까. 그럴 경우에 가해자들은 살인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 바늘로 찌르듯 콕콕, 따가운 생각들
 
 왜 나영이였을까. 아동 성범죄의 우범 지역은 어디일까,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안전교육은 유인의 경우에 해당되지만 그마저도 완벽하지 않다. 게다가 물리력을 동원해 아이를 납치하는 경우에는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다.
 
  만13세 미만 아동의 등하교를 부모와 학교가 책임을 진다면 사회는 그것을 감당할 비용이 있을까. 저소득, 맞벌이 부부는 그마저도 지키기 어렵다. 먹고 살기 바쁘고, 파트너쉽으로 원활하게 움직이기엔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학교는 여전히 집에 있는 '누군가'를 가정해 과제를 내주고, 학부모 청소를 시킨다.
 
 성욕을 자신보다 약한 누군가에게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형태로 해소할 수 있다는 인식을 변화시켜야하지 않을까? 성폭행 피해자에게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저항했는지, 신음소리를 냈는지, 자기방어가 혹시 즐긴건 아닌지를 묻는 사회에서, 재연이랍시고 윤간과 성폭행인지를 따지면서 정말 중요한 '동의하지 않았다'란 사실은 전혀 문제될게 없다며 보여주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여전히 고리타분한 성담론을 진리마냥 떠받들고 사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아동뿐 아니라 여성도 잠재적 피해자는 아닐까.
 
 사람들이 양형에 문제제기를 하는건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불신감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말 잔치는 몇년 전에 혜진.예슬 사건이나 그 앞서의 사건에서 했던걸로 끝내야 한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말들을 늘어놓지만, 그 말 가운데 있는 사람 중에 정작 변화되고 꾸준히 하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앞서 말했듯이 분노조차 너무 간편한 방식으로 소비되는건지도.

 성범죄의 정확한 양형을 모르기 때문에 다른 경우보다 얼마나 형량이 적은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왜 성범죄의 경우, 더 형량이 높아야할까. 난 폭력이나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행위들이 더 지독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법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진걸까. 성범죄가 치명적인건 피해자에게 가하는 상처뿐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상처' 운운하는 사회적인 시선과 피해자에게 각인된 '숨겨야할 어떤 것' 때문은 아닐까.
 
 - 그렇다면 난

  나는 꾸준히 하고 있는가. 지금은 몰라서 문제라지만,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마 나는 모르지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분들을 믿고 이 일은 잊어야 하는가? 말잔치가 싫은건 그게 단지 말뿐이라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바꾸려들지 않은 사람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잠깐 들끓다가 냄비 근성이라며 자위하는 사람들과 나. 그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지만 잠깐만 슬퍼하거나 분노하는데 지쳤다는게 맞다.
 그래서 분노할 수 없었다. 내 고통이 아니라 바닥까지 닿아서 공감할 수 없기도 했지만, 아주 잠깐씩만 하는 분노라, 좀 더 정확하고 제대로 알지도 못한채 내뱉듯이 쏟아놓는 분노라, 그건 지속적으로 낯뜨거운 일이라 차마 분노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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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10-02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건을 피해자의 이름을 따 부르더군요. 누구사건이라고. 아무 생각들이 없는 것 같아요.

언론은 사건을 장르화 시키더군요. 처음에 저는 인터넷 댓글로 사건을 접했는데 네티즌이 돌려보는 누군가의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보가 너무 디테일 했으니까요. 그 정도 퀄리티의 정보는 사실 수사기관의 사건 기록파일에나 적혀있을 법한 얘깁니다. 사건에서 정보가 확대 재생산 된 이유는 당연히 언론의 힘이겠죠. 비슷한 다른 사건들에 비해서 팔릴만한 뉴스거리니까요. 저는 사건 자체의 잔혹함 보다 그 쪽이 더 잔혹해 보이더군요.

오히려 그 사건 자체는 본질을 호도합니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건 단지 사건이 잔혹하기 때문이에요. 바꿔 말하면 대중들은 잔혹하지 않다면 분노하지도 않는다는 거죠. 그건 사건을 소비하는 대중들의 심리를 미디어가 꿰뚫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본질은 빈도수로 정리된 비슷한 사건들의 통계자료 속에 들어있을겁니다. 하지만 그런건 대중의 관심사가 아니죠.

뷰리풀말미잘 2009-10-02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는 대중들의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남는 것은 성폭행에 대한 불안과 공포 뿐입니다. 대부분의 여성은 평생에 걸쳐 필요 이상으로 성폭행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고 하더군요. 불안과 공포가 잠식하는 건 여성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Arch 2009-10-02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대중 중에 나도 껴있었기 때문에 난 내 분노가 값싸다고 느꼈던거에요. 단지 좀 더 알려지고, 이슈화됐단 이유로 얄팍하게 접근했던게 문제였어요. 언론보다는 언론의 형태를 따르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더 큰 것 같아요.

성폭행에 대해선 동감해요. 나는 요즘,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아니니까, 그 시기를 벗어나고 있으니까란 안심 비슷한 기분이 들었어요. 나이와 별개로 그저 염색체와 외형이 여성이란 이유로 누구에게나 가능한 사건인데도. 이런 생각 역시 세뇌당했나-나이든 여자는 성적인 매력이 없다란식- 싶은 생각도 들고.

2009-10-02 0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02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