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문제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답이 안 나온다. 여전히 나는 알지 못하고, 알 정도로 노력하지 않으며, 노력하면서 고통스럽게 알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 난 진행중인, 언제 끝날지 모를 이야기를 할 것 같다.
- 이슈.
모든 사건은 이슈로 소비된다. 얼마 전에 아동 성범죄와 관련된 책을 읽었기 때문일까. 사건을 접하면서 참담한 느낌은 들었지만 사람들만큼 분노가 일지 않았다. 얼마 후에 잊혀질 것 아닌가. 자조였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이번은 좀 더 극악했고, 잔인했다. 누군가의 상세한 묘사가 뒤따랐고, 가해자의 파렴치함이 극에 달했다. 모두가 들끓고, 분노했다. 나 역시 화가 나고 무기력했지만, 사람들만큼 화가 나지 않았다.-사건을 대할 때마다 난 왠지 '그들만큼' 슬프거나 '그들만큼' 화가 나지 않아서 난 모자란게 아닐까 싶었다.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 피해자
그 아이가 겪은 고통과 앞으로 살아가면서 짊어져야할 상처를 생각하니 너무 안쓰럽고 속상했다. 이런 일에 있어서 난 늘 무기력했다. 옥찌들에게 안전 교육을 시킨다고 했지만, 그건, 터무니없이 좁은 시야라는걸 모르는 것도 아니다. 보험료를 수입으로 계산해서 지원을 중단하는 것으로 모자라 환급을 하라는 공무원과-그 후 어떻게 된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위해 일체의 모금은 받지 않겠다는 그 부모의 속사정. 평생동안 그 일을 기억할 아이를 위해 어떤 지원도 없는 상황-피해자를 위한 심리나 재활치료가 실질적으로 있는지 모르겠지만(그러니까 난 너무 모른다.) 무기징역도 모자라는데, 자신이 아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여도 시원치 않은데 12년에 그것도 많다며 항소까지 했다니. 그 아이와 그 부모의 분노는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전이됐다. 하지만 부모의 분노에서 서글픔이 감지됐다면 사람들의 분노는 하이에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분노할 수 없었다. 그저, 나도 당신들만큼 그 사람이 너무 밉고, 이런 일이 일어나서 아프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자칫 내가 어떤식으로든 도움을 주려고 한 행위가 행여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쉬쉬하는 당신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일지 모른단 생각은 페이퍼를 올린 후에야 들었다.
- 역선택
그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전례를 만든다면, 더 극악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이 사건도 그렇지만- 범죄의 경우엔 어떻게 해야할까. 그럴 경우에 가해자들은 살인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 바늘로 찌르듯 콕콕, 따가운 생각들
왜 나영이였을까. 아동 성범죄의 우범 지역은 어디일까,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안전교육은 유인의 경우에 해당되지만 그마저도 완벽하지 않다. 게다가 물리력을 동원해 아이를 납치하는 경우에는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다.
만13세 미만 아동의 등하교를 부모와 학교가 책임을 진다면 사회는 그것을 감당할 비용이 있을까. 저소득, 맞벌이 부부는 그마저도 지키기 어렵다. 먹고 살기 바쁘고, 파트너쉽으로 원활하게 움직이기엔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학교는 여전히 집에 있는 '누군가'를 가정해 과제를 내주고, 학부모 청소를 시킨다.
성욕을 자신보다 약한 누군가에게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형태로 해소할 수 있다는 인식을 변화시켜야하지 않을까? 성폭행 피해자에게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저항했는지, 신음소리를 냈는지, 자기방어가 혹시 즐긴건 아닌지를 묻는 사회에서, 재연이랍시고 윤간과 성폭행인지를 따지면서 정말 중요한 '동의하지 않았다'란 사실은 전혀 문제될게 없다며 보여주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여전히 고리타분한 성담론을 진리마냥 떠받들고 사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아동뿐 아니라 여성도 잠재적 피해자는 아닐까.
사람들이 양형에 문제제기를 하는건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불신감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말 잔치는 몇년 전에 혜진.예슬 사건이나 그 앞서의 사건에서 했던걸로 끝내야 한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말들을 늘어놓지만, 그 말 가운데 있는 사람 중에 정작 변화되고 꾸준히 하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앞서 말했듯이 분노조차 너무 간편한 방식으로 소비되는건지도.
성범죄의 정확한 양형을 모르기 때문에 다른 경우보다 얼마나 형량이 적은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왜 성범죄의 경우, 더 형량이 높아야할까. 난 폭력이나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행위들이 더 지독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법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진걸까. 성범죄가 치명적인건 피해자에게 가하는 상처뿐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상처' 운운하는 사회적인 시선과 피해자에게 각인된 '숨겨야할 어떤 것' 때문은 아닐까.
- 그렇다면 난
나는 꾸준히 하고 있는가. 지금은 몰라서 문제라지만,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마 나는 모르지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분들을 믿고 이 일은 잊어야 하는가? 말잔치가 싫은건 그게 단지 말뿐이라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바꾸려들지 않은 사람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잠깐 들끓다가 냄비 근성이라며 자위하는 사람들과 나. 그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지만 잠깐만 슬퍼하거나 분노하는데 지쳤다는게 맞다.
그래서 분노할 수 없었다. 내 고통이 아니라 바닥까지 닿아서 공감할 수 없기도 했지만, 아주 잠깐씩만 하는 분노라, 좀 더 정확하고 제대로 알지도 못한채 내뱉듯이 쏟아놓는 분노라, 그건 지속적으로 낯뜨거운 일이라 차마 분노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