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보면 성당 갈 일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내 죄를 고백하는 곳이 서재가 아닐까 싶다. 오늘 나는 오만가지의 잘못을 했지만, 그중 가장 악랄하고 졸렬한건 민에게 저지른거였다.
민을 혼내는 중이었다. 나는 민이 평소때처럼 나보다 더 성을 내며 토라지거나 소리를 지르며 발을 동동 구를줄 알았다. 그런데 엉엉, 계속 울기만 하는거다. 부드러운 뺨으로 눈물이 계속 나오는걸 보다가 그만,
플래시백처럼 아주 환하고 기분 좋은 장면이 떠오르고 말았다.
전을 다 부치고 저녁 전에 옥찌들이랑 나가서 놀았다. 옥찌들은 씽씽카랑 자전거를, 나는 인라인을 탔다. 옥찌들은 신나게 놀고, 난 인라인을 처음으로 다시 타듯 헤매고 있었다. 나는 간신히 일어나 한발씩 내딛었지만 까딱 잘못하면 전처럼 엉덩이 두쪽 다 멍이 들까 겁이나 쩔쩔맸다. 이래서 다 큰 사람은 인라인을 배우기 어렵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넘어질걸 미리 겁내니까. 그래도 우둘투둘한 아스팔트로 선을 긋듯 인라인을 타면서 앞으로 가긴 했다. 아주 미세하게. 그런데 정지를 하려니 되야 말이지. 넘어진 다음에 다시 중심을 잡고 일어설까, 아니면 이대로 쭉 미끄러지다가 뒷축으로 멈출까. 혼자 끙끙대며 궁리를 하고 있는데, 민이 다가왔다.
예의 세발 자전거를 아주 씩씩하게 굴리며 다가온 민은,
- 내가 도와줄까.
라며 손을 내밀었다. 그때 그 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민에게서 다른 면이 있다는걸 알고 반가운데다 내가 소리를 지르고 혼내도 아직은 나를 조금은 생각한다는 맘을 엿볼 수 있어서였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는걸 수도 있었겠지만, 아, 아이가?-
그때 왜 그 장면이 생각났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안아줘야하지 않을까. 이 아이가 억울해하고, 속상해하잖아. 그냥 안아주고, 이모가 잘못 알았나보다라고, 미안하다고 말해야하지 않을까. 아니면, 아니면 그런 말하기 쑥쓰러우면 그냥 모른척 놀아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은 일사천리였는데 난 자꾸 못된 말만 내뱉고 있었다. 내 화를 나도 어쩔줄 몰라했다. 나는 점점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보호자가 되는 것 같다.
자라고 나서도 부모님이 날 좀 더 받아주면 난 지금과는 조금 다른, 좀 더 긍정적이거나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으로 자라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옥찌들에게는 누구보다 잘해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순위뿐 아니라 아이들 맘에서도 멀어진 이모가 됐고, 이런 상황을 누군가는 아이들에게 규칙을 지키도록 해야하며 악역을 맡을 필요가 있다는 말로 합리화해버렸다. 젠장, 없느니만 못한 이모다.
민은 다시 나랑 화해한 후 책을 읽다 잠이 들었다. 뿡뿡이가 좋아하는 놀이 얘기를 하면서 민에게 뭘 좋아하냐고 물었다.
- 동그란데 입으로 호 불면 크게 생겨서 하늘로 가는거.
비누방울이 좋단다.
한번 쓰는걸로 페이퍼 죄사함 티켓이라도 끊는걸까. 달라지는게 하나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