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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방 -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
언니네 사람들 지음 / 갤리온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표지는 이렇다. 나즈막한 돌담에 두 여자가 앉아 있다. 연보라색 신발을 신은 언니는 아마 화려한 꽃무늬 신발을 신은 동생에게 이런 곳이 있다란 얘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언니가 말한 이런 곳, 나는 언니네 방에 놀러 갔다왔다.
서점에서 언니네 태그놀이를 읽을 때는 마뜩치 않았다. 건성으로 쓴 책 같았기 때문이다. 언니네 사이트가 있는 것도 알았고, 들어가보기도 했지만 막상 뭘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라 서성이다 왔던 기억 정도. 내가 '언니네'에 대해 갖고 있는건 고작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머큐리님 지역 도서관 얘기에 자극받아 시립 도서관(우리도 예쁜 이름으로 바꿨으면 좋겠다.) 사진을 찍으러 갔다. 그제서야 이 책을 볼 수 있었다. 나를 보면서 '이제 왔냐'고 무심하게 말을 건네는 이 책을.(내가 무슨 신기가 있는건 아닌데 가끔씩 책들이 말을 걸어온다.) 오랫동안 도서관에 다녀놓고 왜 이제서야 발견했을까, 아니 왜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을까. 무릇 필요한건 절절히 갈망하는 순간에 나타나는걸까?
일전에 '꼭 사정을 해야하는 섹스'는 문제란 얘기를 한적이 있다. 그때 답답했던건 왜 하나같이 똑같은 섹스만 하는가였다. 나도 성기결합하는게 나쁘다고 보지 않고 좋을 때도 있는데 왜 '내가 그만두고 싶은 순간'은 상대의 욕구를 배려하지 않는 무례한 행동이 되는건지 마뜩찮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사정이 정말 참지 못하는건 아닐까란 생각에 그야말로 '대주는' 지경까지 갔었다. 하나하나 속터질 지경이었다.
주위엔 나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도 나에게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난 나와 같은 생각은 무척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성과 하나같이 별일 없이 섹스를 잘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진 것 같았다. 내가 이상한걸까, 꾸준히 의심한대로 난 약간 모자란게 아닐까?
그때, 노랑 애벌레님을 만났다. 오르가즘을 연기하는 여자들 얘기는 모든 남자가 착각하는 '나랑 섹스하는 여자가 설마'란 생각이 얼마나 우스운지를 보여준다. 때로는 성욕만큼이나 강하게 정서적 교감을 얻고 싶어 섹스를 할 수 있는데 누군가가 도달할 때까지 꾹 참아야하는건 얼마나 지루하고 속절없이 애가 타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물론 노랑 애벌레님은 내가 느꼈던 지점을 훨씬 더 잘 설명했고, 좀 더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열어놓았다.
이건 또 어떨까. 우리 때는 국민학교였던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쉬는 시간이면 여자 아이들은 모두 악악 소리를 지르며 남자들을 피해 도망을 다녔다. 남자애들은 장난이라고 했지만 명백히 성추행인 브래지어 끈 당기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나워서 다른 애들이 건드리지 않았는데 유독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던 아이가 지나가면서 내 성기를 만진 적이 있다. 나는 좀 뜨악하고 불쾌하고 분하고 더럽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 거기 있는줄 몰랐던 성기가 펄펄 살아 숨쉬며 '지금 자기가 굉장히 화가 났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에게도 그 아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장난처럼 넘길 수도 없고, 화를 내자니 대단한 용기를 필요하게 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작고 까맣던 녀석은 그 나이에 벌써 알았던거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말해야되지 않았을까. 은밀하게 우리들끼리 공유하는 유희 같다는 생각 때문에 알리지 않은건 아니었다. 정확히 어떤건지는 몰랐지만 나로선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비밀'로 느껴졌던거다. 그런 비밀은 살아가면서 잦은 빈도로 생긴다는걸 그때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언니네가 털어놓는 이야기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미치도록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너만 아프고, 너만 고민됐던게 아니구나. 나도 그랬어. 나도 털어놓을데가 없었고, 이상한 기분이었는데 뭐 때문인지 잘 몰랐어. 그랬구나, 그랬어. 그래서 이젠 그런 경험들이 말끔하게 정리가 된게 아닌데도 다음과 같은 글을 체념이나 통달이 아닌, 여유를 갖고 볼 수 있게 됐다.
그때, (브래지어 끈 당기기) 이러한 광경을 보다 못한 담임선생님은, 남자애들은 나가서 축구를 하게 하고 그동안 여자아이들만 모아 놓고 성교육을 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남자들은 다 늑대고 너희보다 질적으로 낮은 수준의 동물들"이라며 "그러니까 너희들이 잘하라"고, "안전벨트를 꼭 하고 다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남자선생님이라 민망했는지, 브래지어를 브래지어라 부르지도 못하시더라. 아니, 내 숨통을 답답하게 죄는 브래지어가 안전벨트라니, 누구의 안전을 어떻게 지켜준다는 걸까?
단순히 설겆이만을 하는게 살림은 아니라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지출과 수입 내역별로 예산을 맞추고, 소모품의 잔존량까지 헤아리는 섬세하고 살리는 일을 하는게 살림이라는건 무척 이채로운 발견이었다. 감정과 잡다함이 소모되는 집합체 정도로 여긴 기존의 가사노동과는 얼마나 대비되는지.
'살림'이라는 단어는 정말 아름답게 만들어진 말이다. 사람을 포함한 많은 것들을 살리는 일, 그것이 살림이다.
또 뭐가 있더라. 모든 글이 완벽하게 나와 들어맞는 것도 아니고, 이 글은 왜 여기에 있나 싶은 글도 눈에 띄긴 한다. 그래서 별 하나를 뺐다. 하지만 비로서 난, 소란스럽게 말하는 방식을, 좀 덜 우아해도 '툭 까놓고' 말하며 사는게 얼마나 날 행복하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제껏'어떤 여자'란 수사에 갇혀서 소심하게 방어하는 차원으로 나를 드러냈다면 이제는 좀 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런데, 넌 어떠니. 언니네는 내게 작지만 튼튼한 날개를 달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