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좀 시간이 엉킨 글.
화려했다. 화려함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그 틈새로 김혜수가 보인다. 처음엔 왜 자꾸 그녀를 박기자라고 부르는지, 패션지면 에디터나 편집장이라고 해야하는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이름이 박기자란다. 드라마 '스타일'과 난 처음부터 좀 꼬였다. 게다가 류시원이라니. 이마에 주름 잡고, 소매만 걷는게 다인 이 남자가 김혜수랑 연애 라인을 긋는 것도 어색했는데, 말다툼을 할 때마다 늘 수세적으로 몰리는 그를 보면서 처져도 너무 처진다는 말이 입밖으로 툭툭 새어나왔다. 그런데 지난주 장면은 무척 좋았다.
손발이 찬 박기자를 앉혀놓고 발을 씻어주며, 류시원이 말한다.
- 나랑 살면 참 좋을텐데. 밥도 잘 하고, 아프면 침도 놔주고(그는야 전직 한의사), 이렇게 발도 씻겨주고...... 혼자 지내는게 편했어. 누구 옆에 두는거 어색하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박기자를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 당신 만나면 말야, 내 안에 이렇게 뜨거운게 있나 싶어져. 내 몸에 에너지가 꽉 차는거 같아.
물론, 얄팍한 기억력이라 제대로 말하는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식의 대화였다. 둘이 있고 싶어지는 순간을 예쁘게 그려낸건 좋았지만 앞으로도 이 드라마를 계속 볼지는 의문이다. 드라마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패션잡지를 배경으로 음모와 권력, 사랑 등등이 피어나는데 단발적이고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컨셉도 자꾸 바뀌는 것 같다. 초반에는 어시스트의 에디터 고군분투기쯤으로 그려지다가 패션계의 생태를 훑다가 요새는 김혜수를 중심으로한 삼각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바뀌는 컨셉만큼 이야기의 질도 들쑥날쑥하고, 여분의 캐릭터와 과잉된 디테일이 걸린다. 그렇지만 김혜수다. 이제야 제 날개를 찾은 듯 활보하고 다니는 그녀 덕분에 드라마는 꾸역꾸역 여기까지라도 온 것 같다. 드라마 속 김혜수는 남성적으로 일하고, 섹스 따위는 별거 아니란식의 캐릭터로 나온다. 그녀가 '딜'을 할 때면 예전에 장금이를 볼때처럼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은 없더라도 통쾌하다. 그녀의 여성성과 극 전체에 흐르는 여성주의적인 분위기가 어떻게 닿는지는 모르겠지만, 막판에 평범한 여성의 행복처럼 묘사된 '웨딩드레스 입기'는 참, 거시기했다. (종영 전과 후의 글들이 섞여 개판 되기 일보직전)
드라마는 통속적인 코드를 그대로 답습해서 용두사미로 끝났지만, 마지막에 스틸컷로 대면한 김혜수는 그야말로 환했다. 환하고 아름다웠다. 스타일보다 다시, 김혜수를 본게 남는 장사였다.
김혜수에 대한 짧은 글 -> http://blog.cine21.com/yaroslav/15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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