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긴 시립 도서관의 디지털실. 옆자리의 남자는 뭐가 재미있는지 노트북을 보면서 3초에 한번꼴로 큭큭대며 웃는다. 옆 눈으로 찌릿 눈치를 주지만 진즉에 눈치 있는 양반이었으면 웃지도 않았을거란 생각에 눈을 거둬들인다. 추수한걸 거둬들이는 것도 아니고. 추수라는 말은 얼마나 풍요로운가. 비 온다고 또 이러고 있다.

 아침부터 노트북을 짊어지고 이곳에 온건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다. 자발적 느림을 실천한다는건 웃긴 소리고 생활비는 과연 얼마나 절약할 수 있을까 궁금했고 습관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소일거리를 하느라 다른 일 할 틈을 내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는지도. 인터넷을 하려면 큰 맘 먹고 해야 할 것을 메모한 수첩을 들고, 인증서가 필요할 때면 노트북까지 챙겨서 집을 나선다. 재미있다. 전원만 누르면 바로 인터넷에 접속할 때보다 조금 더. 불편한 게 그냥 불편하지만은 않다. 뭔가 빠지고, 일이 제대로 안 되고, 나는 왜 하는 것마다 요 모양일까 싶어 우울해지다가 아주 조그만 것에 반짝 기분이 좋아진다. 불편함은 약간의 편리함을 꽤 놀라운 신기술처럼 보일 수 있게 한다. 요즘 인터넷 접속이 그렇다. 궁상맞음은 내 취향과 맞다.

* 몇 달 전에 연극 끝나고 호기롭게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대'선언을 하고 다녔다. 그런데 며칠째 방바닥에서 등을 떼기가 싫은거다. 여행 가야 하는데, 여행을 꼭 가야 하는데, 이러다 일이라도 생기면 여행 못가는데. 간신히 등을 떼내고 여행갈 채비를 하는데 날이 춥다. 날이 풀려야 할텐데, 날이 추우면 여행갈 기분이 안 날 텐데. 날이 추우면 핫팩이라도 붙이고 떠나란 F 말에 힘을 얻어 무작정 길을 나섰다. 계획도 약속도 아무것도 없는 여행. 막연하게나마 김남희씨처럼 시골집 할머니 집에 머물며 남도를 떠돌 생각 정도를 했을까. 익산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중앙 시장을 둘러볼 때까지만 해도 좀 신나 있었다. 내가 여행에서 좋아하는건 허름하고 낡아서 누군가의 눈에는 '재개발해야할 건물들이 들어찬 곳'으로 보이는 곳이란걸, 생활 때가 켜켜이 스민 곳이란걸, 낯선 사람에게도 말을 걸어주는 누군가라는걸 아마 조금쯤 알았을까. 

 파리지앵에서도 그러지 않는가. 여행의 참맛을 아는 사람은 한적한 골목과 값싼 식당, 그리고 활기찬 시장에 발길을 두는 사람이라고. 여수에 도착했다. 날이 추웠다. 점점 더 추워졌다. 터미널에서 오동도까지 걷는데 비까지 내렸다. 귀찮아서 우산을 안 썼더니 물에 빠진 아치꼴이었다. 여행 기분은 커녕 춥고 추레했다. 일찍 들어간 민박집에선 무려 7시간 동안 텔레비전을 봤다. 한달치를 죄다 본 셈이다. 이것도 여행 기념이라면 기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텔레비전을 배경음 삼아 보통의 책을 읽었다. 책과 이별 가요에서 내 심정을 읽는 오바를 허용한다면,

 나 자신의 게으름과 좀 더 정상적인 관객들이 느꼈을 진지함을 비교하며 냉담과 자기 혐오가 뒤섞인 느낌에 시달리기만 했다. 나는 그냥 침대에 누워 있고 싶은 욕구, 가능하다면 얼른 비행기에 올라타 집에 가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다.

 그때의 심정은 딱 이랬다.

 느즈막히 일어나 돌산 대교를 거쳐 순천에서 남해 대교 가는 버스를 타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워봤다. 하지만 밖에 나오니 또 추웠다. 이대로 포기하는가, 아니면 도전해볼 것인가. 도전은 날 풀리면 하는 게 좋겠단 대단히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고 익산으로 돌아왔다. 익산역에서 우동을 먹으며 생각했다. 여행은 무슨. 내가 사는 동네도 모르는 주제에.


* 그래서 동네 여행을 다닌다.


 낮에 도서관에서 가뭇 잠이 들었다 깨서였을까. 본격적으로 잔다며 엎어졌는데 좀체로 잠이 안 왔다. 해서 빌린 책을 다 반납하고 자전거를 탔다. 내가 가볼 수 있는 곳까지 가볼테야. 모처럼 따뜻한 봄, 바람이었다.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페달을 굴리며 엎어져서 잤으면 정말 억울했을 뻔 했겠다.

 골프 연습장을 벗어나자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시골길을 '나 혼자' 달리는 것도 모자라 처음 보는 새며, 풀벌레 소리, 유채꽃과 풀잎 냄새까지. 기찻길에 흐드러지게 핀 꽃과 어느 마을 초입의 파란 간판 무슨 상회. 낭만적인 인간이 되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감동에 취약한 나로선 사르르 녹고 말았다. 다리 힘이 빠질 즈음에 만난 한증막은 얼마나 반가웠던지. 앞으로 정말 그런게 가능하다면 전국의 한증막을 돌아다니며 기행평을 써보고 싶다.


* 아이들이랑  같이 잠들어서 새벽에 깼다. 더 잘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잠을 더 잤고, 늘 그랬듯이 꿈을 꿨다. 야무지게 두개나.

!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날 못잡아 먹어 안달 난 상사가 전화를 했다. 내가 그럴줄 몰랐다며 고소를 하겠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혹시 내가 뭔가를 훔친걸 아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뇌에 1초간 머물렀다. 묵묵히 상사의 얘기를 듣는데 잘하면 내게 승산이 있어보였다. 나는 가만히 상사를 어떻게 힘들게 할지, 저렴한 것에서부터 지독한 것까지 하나하나 셈해 보았다.

! 누군가와 만나고 있었다. 이 사람과 오늘 밤을 같이 있어도 좋겠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저 누군가일 뿐이라 12시 종이 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갈 채비를 했다. 나는 다급한 맘에 되지도 않은 억지를 부려볼까 하다가 가만히 있었다. 누군가는 아주 조용히 해변가 선술집-이 조합이란- 밖으로 나갔다.

 어디서 잔담. 바닷 바람이 몸에 축축하게 감겨들었다. 그때 옥찌들을 재우고 왔다며 B가 나타나 잘 곳으로 안내했다. 우린 고시원을 여관으로 개조한 못미더운 건물로 들어섰다. B가 건물 속으로 사라지는데 그곳으로 들어가기 싫었다. 밖에 남아 1층의 튀김집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골목에는 튀김을 한 후 남은 시커먼 기름이 세숫대야에 담겨 있었다. 기름에 몸이 빠지면 꽤 뜨겁겠단 생각을 했는데 어느새 오른쪽 다리가 기름에 빠져있었다. 다리는 색이 곱게 튀겨져 있었다. 뒤늦게 발견된 튀겨진 다리를 놓고 분식집의 책임이냐, 내 책임이냐란 설전이 오고 갔다. 상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에 일어나 오른쪽 다리를 확인해봤다. 야들야들하게 잘 익어 있었다.


* 대개의 날들은 그저 묵묵히 살아갈 일만, 열심히도 말고 그 자리에서 쭉 살아야만 하는 시간으로 남아 있다. 언젠가는 이런 나이듦을 바란게 아니라고 어딘가에 떼를 쓰기도 했다.-요즘도 그렇다- 그런데 이런 '살이'도 하다 보니 는다고, 별일 없이, 아주 즐겁고 짜릿한 것 없이도 살아진다. 젊음의 유치함과 황당함과 무모함, 안하무인의 절망감까지도 가끔씩은 목마를 정도로 부럽다. 같은 이유로 젊은 게 정말 싫으면서도.

북으로 창이 난 내 방에 눕는다. 약간 춥고 어둡다. 요즘 내 맘이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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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6-01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rch님, 여행 다니면서 글 쓰시면 위의 김 남희님 못지않게 잘 쓰실 것 같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일, 열심히도 말고 그 자리에서 쭉 살아가는 일, 그거 만만치 않던데요.
오늘따라 arch님 글 속으로 몰입이 잘 되네요.

어째 이 정도 길이의 페이퍼를 쓰시면서 맞춤법 틀린 것도 하나도 없으시담~ ^^

Arch 2010-06-04 09:48   좋아요 0 | URL
항상 좋은 말 해주셔서 감사해요. 힘이 나는데요.

맞춤법은 한글 프로그램이 봐줘서 ^^ 히~

다락방 2010-06-06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 춥고 어둡다. 요즘 내 맘이 딱 그렇다.
내 맘도 그래요, Arch님.

1층의 튀김집 옆에 앉아있었던게 꿈이라서 다행이에요. 정말로요.

Arch 2010-06-08 10:16   좋아요 0 | URL
나는 페이퍼를 묵히고, 다락방님은 댓글을 묵히고 ^^
 


커피

하루에 원두커피 두 잔을 기준으로 할 때, 한 달이면 커피나무 한 그루에서 나는 한 해 수확량을 다 마시는 것이 된다. 1년 동안 당신의 커피를 대는 12그루의 커피나무를 키우기 위해, 콜롬비아 농장 노동자들이 5킬로그램의 화학 비료를 사용한다. 커피 재배를 위해서 80년대부터 남미의 원시림들이 베어졌으며 그 바람에 키 큰 나무들에서만 서식하는 새들의 95%가 멸종되었다.


패스트 패션

티셔츠의 원료가 되는 합성섬유 폴리에스테르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폴리에스테르 무게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질소, 유황산화물, 탄화수소, 먼지, 일산화탄소, 중금속이 대기 속에 방출된다. 이산화탄소는 무려 10배. 몇 번 입다 버려지는 '패스트 패션'은 그 자체로 쓰레기를 늘린다.


나무젓가락

나무젓가락은 대개 중국산 백양목, 자작목으로 만들어진다. 메이드인차이나라서 문제가 아니라 중국의 나무들이 베어지는 게 문제다. 중국 대륙에서 숲이 하나 사라지면 그 땅은 모래언덕으로 변해 봄마다 우리나라고 날아드는 황사가 된다. 게다가 버려진 나무젓가락이 다 썩는 데는 20년이 걸린다. 만드는 과정에서는 표백제가 사용된다.


화장지

미용 티슈나 식탁용 냅킨, 주방용 종이타월 등에는 엄청난 화학 첨가제가 들어간다. 물을 잘 흡수하면서도 찢어지는 일이 없도록 습기에 강하게 만드는 습윤지력 증강제를 넣는 것. 화장실용 휴지에는 반대로 물에 잘 녹는 유연제를 첨가한다. 게다가 대체로 한번 인쇄된 종이의 잉크 잔여물을 없애고 재가공해서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중금속이 미세하게 남는다.




2004년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 사회 포럼에서는 '당신의 오줌이 세계 11억 명이 날마다 마시는 물보다 깨끗하다'는 포스터가 내걸렸다. 실제로 물이 부족한 개발도상국 국민 한 사람이 하루 종일 씻고 마시고 청소하고 요리하는 데 드는 물의 양은, 선진국 사람들이 변기를 사용하고 한번 내리는 물의 양과 비슷한 13리터다.


건조기

티셔츠를 세탁하고 전기로 건조할 때는 처음 생산 과정보다 10배가량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빨래할 때 세탁기에 드는 에너지보다, 전기 건조기에서 2배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가장 좋은 것은 빨랫줄에 널어 자연광에 말리는 것. 40분 동안 내리쬐는 햇볕은 1년 동안 모든 화석 연료에서 얻은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컴퓨터

'스크린 세이버'는 '에너지 세이버'가 아니다. 화면 보호장치도 결국 동영상 같은 걸 모니터에 띄우는거니 절전 효과는 없다. 컴퓨터를 자주 껐다 켰다 하는 것이 기계에 나쁘다고 믿어 사용하지 않을 때도 컴퓨터를 켜진 채로 내버려두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못된 믿음. 사용하지 않을 때는 컴퓨터의 전원을 차단해 열과 기계적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편이 오히려 기계에 좋다.


휴대폰

휴대폰의 원료로 쓰이는 원자재 콜탄이 주로 콩고에서 나는데, 이걸 채굴하기 위해 세계 문화 유산인 카우지-비에가 국립공원을 파헤치고 있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고릴라의 마지막 서식지가 훼손되고 있는 것. 게다가 정부군인 후투족과 반정부군인 투치족의 내전에 전쟁자금을 대주는 것도 이 비싼 콜탄.


마트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다 보면 필요 이상으로 물건을 구입하게 된다. 대량으로 묶어서 팔기 때문에 넉넉하게 사 와 버리게 되는 식재료도 많다. 마트에 오가는 사이 차를 운전하면서 연료를 소모하는 것도 물론.


건물이 아니라 몸을 시원하게, 혹은 따뜻하게 만드는 냉난방을 한다. 한겨울에 반팔을 입는 건 하나도 멋지지 않다.


가급적 차를 몰 일을 줄인다.


노트북은 에너지 소모량이 데스크톱의 1/3이다.


물고기를 잡았다 그냥 놓아줘도 사람의 체온 때문에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설거지, 샤워, 면도, 양치질 할 때는 거품 내고 비누질 할 동안은 수도꼭지를 잠가둔다. 양치질 할 때는 물을 컵에 받아서 입을 헹군다. (이건 Arch 겉절이)


몇 년 전 바자의 지구의 날 특집 기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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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그레이효과 2010-06-08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를 잡았다 그냥 놓아줘도 사람의 체온 때문에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오 이것 몰랐던 정보군요. '생명'이란 이렇게 보면 참 놀라워요.

Arch 2010-06-09 11:34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 알았어요. 손맛이 뭐길래, 낚시하는 사람들 잘 이해 못하겠어요.
 


 여자분은 나이트 죽순이라도 되나보다. DJ는 여자가 앞에서 버티고 있는데도 별로 당황한 기색 없이 안부를 묻는다. 여자는 흐느적거리며 몸을 흔들었다. 우리들도 -누가 우리들이래- 나가서 춤을 췄다. 춤을 추며 여자를 힐끔거렸다. 여자는 하고 싶은 말을 입 속에서 우물거리고 있는 것처럼 몸을 부풀렸다 가라앉히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생각났다는 듯이 음악 소리만큼 크게 고함을 질렀다.

 DJ가 세 번씩이나 바뀌도록 스테이지는 우리 차지였다. 여자도 흐느적거리는 것에서 벗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혼자 추면 외로울 것 같아 여자 곁에 다가가 같이 춤을 추었다. 여자는 나를 보며 엄지 손가락을 바짝 세웠다. 그럼 그렇지, 외롭고 즐겁고 간에 간과할 수 없는 웨이브와 춤 실력은 따로 있구나란건 순전히 내 생각이고, 그녀는 아무데나 엄지 손가락과 발길질을 할 정도로 취해있었던거다.

 혼자 놀기의 궁극의 경지, 혼자 고기 구워먹기까지는 들어봤지만 혼자 나이트 와서 놀기는 대체 어느 경지일까. 클럽이 아니라 나이트 말이다. 부킹과 허세와 뽕짝으로 믹싱한 음악이 터져나오는 나이트. 가슴이 답답할 때면 집에서 음악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춘 게 다인 나로선 상상이 안 된다. 뭐, 이것만 상상이 안 될까 싶지만.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바깥에서 나이트 들어갈 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기세로 밀려 들어왔다. 나이트는 신속하고 빈틈없이 '젊은 사람들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어깨만 살랑이며 춤을 추는 여자애들과 연습했을법한 춤을 보여주는 남자애들. 그들은 젊고 젊어서인지 수줍어했다. 한껏 멋을 낸 차림으로 시간 맞춰 나이트에 들어와놓고선 기운차게 놀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간을 봤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설렘과 분위기가 부러웠고, 그래서 내가 나이 먹었다는 게 절실해졌지만(꼭 나이만은 아니란거 잘 안다. 흑! 급나이트행이라 품행이 방정맞았다) 그땐 그저 춤추는 자리가 점점 비좁아지는 것 정도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느린 음악이 나오는 동안 사람들이 자리로 들어왔다. 이곳 저곳에서 담배 연기가 뿜어져나왔다. 나른해지는 스모킹 타임에 부킹을 한답시고 늙은 웨이터들만 분주히 왔다갔다 했다. 물론 우리 자리론 파리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느닷없이 아무 웨이터의 아무 상대라도 좋으니 손목 잡혀 끌려가는건 어떤건지 간절히 알아보고 싶은 바람이 생기고 말았다. 그때의 내 손목은 누군가의 손으로 꽉 움켜졌을 때 약간의 공간이 생길 정도로 가늘어야 한다거나, 늙은 웨이터의 손이겠지만 나를 잡는 손은 푸른 핏줄이 도드라지거나 힘이 느껴지는 손이면 좋겠다든가 등등의 상상을 했던가, 맥없이 내 손목만 만지작거렸던가.

 일전에 나이트를 좋아한다는 누군가에게 부킹해서 남자 만나는거랑 술집에서 일하는거랑 뭐가 다르냐고, 고용됐다는 것만 다를 뿐이라고 열변을 토한적이 있다. 그땐 정말 그랬다. 남자들은 겉치레용 룸에서 웨이터에게 팁을 찔러주며 여자들을 만나고, 여자들은 외모로 평가 된다. 남자들은 자기 돈 내고 술을 먹고, 여자들은 덩달아 공짜술을 먹는다. 지금도 그 차이가 뭔진 잘 모르겠다. 이미지만 갖고 속단했을 수 있다. 말로만 듣던 부킹에 대한 반감-내가 못해봤지만, 뭔가 재미있을지도 모를-이 가져온 극단적인 설정이었을 수도 있고, 그냥 어설프게 주워들은 것으로 만들어낸게 딱 고만한 결론 정도였을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부킹이 하고 싶었다. 내 나이엔 나이트가 아니라 스탠드바에서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눈을 사이키 조명으로 감쪽같이 숨기고선 수작을 부려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에 이르러선 더더욱 말이다. 어쩌면 부킹이 되는 조건에 괜히 시샘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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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이트-3
    from 기우뚱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2010-06-26 00:36 
     다음 무대에 나가길 탐탁치 않아 하는 둘을 떼놓고 나 혼자 나가 '또' 열심히 춤을 췄다. 이번엔 DJ가 직접 무대에서 공연을 보여준단다. 뜨거운 걸 원하냐고 묻더니 옷을 벗는다. 말캉말캉한 살만 보인다. 근육은 조명 속에 감춰둔 걸까. 하나도 안 뜨거웠다. '쳇' 하고 돌아서서 다시 춤을 추는데 사람들은 계속 DJ만 바라보고 있는 거다. DJ는 다시 뜨거워지고 싶냐고 묻더니 한참동안 자족할만한 안무를 선보였다. 그러더니 '나, 긴장 고조
 
 
 


* 사촌 조카 중에 민 또래 여자 아이 J가 있다. 며칠 전에 J가 민에게 나중에 결혼하자고 했다. 민은 흔쾌히 그러마하고 약조를 했다. 집에 돌아와 민에게 물었다.

- 민아, 너 나중에 이모랑 결혼한다며.

그러자 민은 '아, 맞다' 하고선 딴청을 부리고, 옆에 있던 지희가 냉큼 말을 받았다.

- 이모는 지민이가 자라면 늙잖아. (흑)

라고 하길래,

- 그래도 이모는 계속 젊을건데.

그때 다시 대화에 끼어든 민.

- 점은 이모보다 엄마가 더 많지이~ (얘 뭐야!)


* 요즘 민은 자꾸 나를 안고, 껴안고 뽀뽀한다. 드디어 이모도 사랑을 받는 것인가. 이 사태를 옆에서 지켜보던 옥찌는 나름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더니 민이 꼭 이모가 좋아서 그러는 건 아니라고 했다.


- 왜왜, 이렇게 목을 꽉 껴안는데.

- 그건 목 조르려고.

- 왜왜, 이렇게 뽀뽀도 잘 해주는데.

- 그건 얼굴 울룩(퉁)불룩(불퉁)하게 하려고.

- 왜왜, 요렇게 꼭 껴안는데.

- 그건 숨 막히게 하려고.

힝~


* 옥찌가 자꾸 애교를 부리고, 혀 짧은 소리를 내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 옥찌, 왜 혀가 짧아진거야.

- 그냥, 해봤어. 오랜만에.


* 어린이집을 가는 동안 민은 파워레인저 엔지포스랑 뭐랑뭐랑 얘기를 했다. 물론 하나도 모르는 얘기다. 그러다 피카츄 얘기가 나와서 아는척을 했더니 녀석이 더 신나서 얘기를 하는거다.

- 피카츄에서 마이츄로 진화하는거야.

- 민아, 진화가 뭔데?

- 몸이 커지는거야.

- 음... 그럼 민에서 이모가 되는 것도 진화야?

- ...... 이모, 내가 또 다른 얘기 해줄까?


* 요즘 한창 언어감각이 발달(나 혼자만 그렇게 믿는)하고 있는 민. 앞말 잇기, 아무 단어나 대기를 거쳐 드디어 끝말잇기다운 게임을 해봤다.

- (세모로 생겨서 치면 소리나는거 있잖아.) 트라이앵글? (옳지)

- 음.. 글씨.

- (민, 다시 한참 생각하더니) 씨발놈


* 지희가 자기 무슨 혈액형이냐고 묻길래 말해줬더니 민도 와서 묻는다.

- 음, 민은 고집형, 땡깡형, 유머형, 재치형 그리고...

- 이모, 재치형이 뭐야.

-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재미난 말을 하는 사람?

- 아닌데. 깜짝 놀라면 친구들이 어 놀라고 나도 어어하고 놀라는데.


* 엄마랑 신데렐라 언니를 보고 있었다. 은조와 천정명이 밤에 숲에서 얘기하는 씬.

엄마- 걔(효선)가 보고 있을거야.

나- 밤인데

엄마- 걔는 밤에도 돌아다녀.

(그 장면이 끝나고)

나- 안 보이는데.

엄마- 좀 기다려봐.

나- 안 나오잖아. 노래만 나오네 뭐.

엄마- 자나?


* 지희 사랑 포에버 아빠가 비오는 날 학교 간 옥찌를 데리러 나가셨다. 한참 후에 옥찌는 왔는데 아빠가 안 오시는거다. 옥찌에게 할아버지 봤냐니까 못봤다고 한다. 아빠에게 전화를 했더니 안 받으신다. 둘이 길이 엇갈렸나보다. 한참 후에 돌아온 아빠. 반바지 차림으로 호기롭게 집을 나선 모습은 사라지고 인상이 안 좋으시다. 그리곤 내뱉은 한마디.


- 내가 30분 동안 개 떨 듯이 떨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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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0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재밌게 읽다 갑니다 ~

Arch 2010-06-04 09:48   좋아요 0 | URL
^^
 



 어제 옥찌가 무슨 말 끝에 또 누구 얘기를 하며 편지를 쓰겠다고 했다. 순간 울컥해서 서운하단 얘기를 오뉴월 엿가락처럼 늘어놨다. 옆에서 밥 같이 먹고, 얼굴 트지 말라고 로션 발라주고, 옷 입을 때 예쁜지 아닌지 의견 보태는 나는 뭐냐고도 물었던가, 꿀꺽 삼켰던가. 창피했다. 나이를 먹었어도 사발 몇천개는 더 먹었는데 꼬마에게 서운하다고 투정부리는 꼴이라니. 게다가 곁에 있고 챙겨주면 맘도 기운다는 착각은 어쩌란 말인가.

 옥찌는 울면서 (에휴, 몹쓸 이모 같으니) 내 말을 들었다. 민은 자꾸 내게 안기며 자긴 큰 이모가 참 좋다고 입에 침 바르며 연신 말했다. 나는 아이들의 불안을 이용하고 있었다.

 옥찌들과 같이 있기 전에 만약 내가 엄마였다면 절대 안 했을거라고 믿었던 일들이 있었다. 매를 든다던지, 아이의 말을 끊고 지금 해야할걸 말한다는지, 아이가 원하는 것보다 아이에게 필요한걸 양육자가 알아서 제시한다든지 하는 것들. 그런데 내가 그러고 있다. 차분하게 대할 수 있는 것도 화가 날 때면, 행여 누군가의 습벽을 아이들이 물려받을까 지레 겁먹을 때면 적정한 수준을 넘어서 아이들을 혼낸다. 가끔은 너무 피곤해 이유 없이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옥찌는 자기 일은 알아서 잘 하고, 민 역시 조금만 도와주면 되는데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하고 지치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의 일과 뿐 아니라 그들의 감정과 행동까지 받아주기만해서 이렇게 지치는걸까. 한달 넘게 감기다. 이게 무슨 감기인가, 감기가 체질이 된 것 같다.

 양육에 대한 책에선 항상 같은 말을 한다. 경청하라, 아이의 창의력을 복돋아줘라, 좋은 습관은 양육자로부터 나오니 모범을 보여야 한다,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칭찬하라, 그리고 기타 등등 여러 가지 말들, 명령처럼 들리는 말들이 토씨 하나 안 빼놓고 써있다.

 책을 볼 때면 내게 98%쯤 모자란 양육자로서의 자질에 대해 생각한다. 양육자를 사람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에 통달한 성인쯤으로 보는 것에 분통이 터진다. 아이의 감성과 활동은 양육자로 인해 지지를 받는다 치자. 그렇다면 양육자는 어디서 지지를 받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을까. 아이가 좋은 대학쯤 가줘야 양육자의 입장이란게 비로서 빛을 발하는걸까. 그건 너무 치졸하다.

 내가 아이를 안 보고, 집안일을 안 하면 된다. 그럼 이런 씨잘데기없는 고민은 처박아두고, 좀 더 신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아이는 누가 보고 집안일은 누가 하지? 서로 미루다 결국 엄마가 하게 될 것이다. 엄마는 나보다 몇 배는 피곤한데.

 아이들은 변덕을 잘 부린다. 소란스럽고,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가끔 아이 속에 점프 능력이 뛰어난 뭔가가 있어 아이를 충동질 하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자는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 다행히 옥찌들은 내가 지어낸 엉터리 얘기를 들으며 깔깔대고 웃다가 '일찍' 잠이 든다. 아이들 잠들 때까지 야근하다(웃겨!) 오늘도 곧 퇴근이다.

 내가 아이들을 돌보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거다, 같이 살면서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는거다. 수천번 맘을 먹어도 맘처럼 되지 않는 하루를 지켜보면 내게 모자란건 양육자로서의 태도라기보단 괜찮은 인간성과 사람을 대하는 따스한 시선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인성이 모자란 이모를 둔 덕분에 옥찌들은 가끔 나로선 생각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보여준다. 그럴 때면 옥찌들 덕분에 내가 자라는건데, 나는 못난 이모답게 자라기 싫다고 떼쓰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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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0-05-1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아치님은 잘하는 편이신거 같은데요..ㅎㅎ 저는 애들 기르는 이야기를 페이퍼로 쓰면 공적으로 몰릴 것 같아 쓰기도 무서워요...

Arch 2010-05-13 10:39   좋아요 0 | URL
머큐리님이 잘 몰라서 그래요. 머큐리님 귀여워요. 앗흥 ^^

비로그인 2010-05-11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벌써부터 이 작은 생명체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액션과 리액션, 피드백을 제가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구요. 이전엔 정말 나름 생각하고 행동하는 줄로 착각했다는 뜻이죠.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같이 산다'는 이 멘트가 너무나도 참신해요. 이렇게도 동등한 관계로 아동을 바라보는 단어는 참으로 오랜만인 듯 합니다.

Arch 2010-05-13 10:41   좋아요 0 | URL
전 쥬드님이 잘 하실거라고 믿어요. 쥬드님 안에는 바다를 포용하고도 남을만한 것들이 가득 채워져 있을 것 같아요. 글 보면 안다니까요.
같이 산다는게 맞는데 맨날 내가 키우는줄 알아요. 옥찌들 입장에선 '같이 못살겠네, 이모' 정도가 될런지.

비로그인 2010-05-13 12:32   좋아요 0 | URL
for Arch님
아치님 아치님 아치님 바다가 아직 만으로 두 살 밖에 안되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마시옵길.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효도는 세 살 까지가 전부라지요. 세 살이 넘어 본격적으로 자기 의견을 말로 소통할 때가 되면 효도는 끝입니다.(물론 지나가는 말이옵지요)
옥찌들은 절대 그런 생각 안할 겁니다. 아치님이 `같이 사는' 것이라는 말을 쓴 이상, 얼마나 그들을 존중하려 노력하는지가 보이니까요.(이런 자각은 아무나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보통은 자신의 `소유'로 은연중에 많이들 생각하지 않던가요!)

穀雨(곡우) 2010-05-12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변덕은 손에 쥔 아이스크림같아요. 녹을까 못내 아쉬워 살살 돌려 녹혀 먹다 어느새
흘러 내리는 것처럼 말이죠.
요즘 전 딸래미랑 대립이 하늘을 찌릅답니다. 이게 아닌줄 알면서도 분해하는 나를 보면 사는 게
뭘까하는 자괴감까지 든다면 너무 심할까요..^^ 그런 일상을 매일 반복하는 옆지기가 때론 우러러
보인다는...ㅋㅋ

Arch 2010-05-13 10:45   좋아요 0 | URL
변덕에 대해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는거로군요!
그런데 정말 아이들과 사는건 자기 인성을 점검하게 만들고 나아가 과연 삶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심오하고, 별난 경험이랍니다.(유먼데 이래요.)

요새 집안일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모든 엄마들은 위대하다란 수사 안에 갇힌 희생과 저평가된 노동력, 전문적이지 않은 일 등등. 그런데도 필요해서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란 것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