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분은 나이트 죽순이라도 되나보다. DJ는 여자가 앞에서 버티고 있는데도 별로 당황한 기색 없이 안부를 묻는다. 여자는 흐느적거리며 몸을 흔들었다. 우리들도 -누가 우리들이래- 나가서 춤을 췄다. 춤을 추며 여자를 힐끔거렸다. 여자는 하고 싶은 말을 입 속에서 우물거리고 있는 것처럼 몸을 부풀렸다 가라앉히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생각났다는 듯이 음악 소리만큼 크게 고함을 질렀다.

 DJ가 세 번씩이나 바뀌도록 스테이지는 우리 차지였다. 여자도 흐느적거리는 것에서 벗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혼자 추면 외로울 것 같아 여자 곁에 다가가 같이 춤을 추었다. 여자는 나를 보며 엄지 손가락을 바짝 세웠다. 그럼 그렇지, 외롭고 즐겁고 간에 간과할 수 없는 웨이브와 춤 실력은 따로 있구나란건 순전히 내 생각이고, 그녀는 아무데나 엄지 손가락과 발길질을 할 정도로 취해있었던거다.

 혼자 놀기의 궁극의 경지, 혼자 고기 구워먹기까지는 들어봤지만 혼자 나이트 와서 놀기는 대체 어느 경지일까. 클럽이 아니라 나이트 말이다. 부킹과 허세와 뽕짝으로 믹싱한 음악이 터져나오는 나이트. 가슴이 답답할 때면 집에서 음악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춘 게 다인 나로선 상상이 안 된다. 뭐, 이것만 상상이 안 될까 싶지만.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바깥에서 나이트 들어갈 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기세로 밀려 들어왔다. 나이트는 신속하고 빈틈없이 '젊은 사람들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어깨만 살랑이며 춤을 추는 여자애들과 연습했을법한 춤을 보여주는 남자애들. 그들은 젊고 젊어서인지 수줍어했다. 한껏 멋을 낸 차림으로 시간 맞춰 나이트에 들어와놓고선 기운차게 놀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간을 봤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설렘과 분위기가 부러웠고, 그래서 내가 나이 먹었다는 게 절실해졌지만(꼭 나이만은 아니란거 잘 안다. 흑! 급나이트행이라 품행이 방정맞았다) 그땐 그저 춤추는 자리가 점점 비좁아지는 것 정도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느린 음악이 나오는 동안 사람들이 자리로 들어왔다. 이곳 저곳에서 담배 연기가 뿜어져나왔다. 나른해지는 스모킹 타임에 부킹을 한답시고 늙은 웨이터들만 분주히 왔다갔다 했다. 물론 우리 자리론 파리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느닷없이 아무 웨이터의 아무 상대라도 좋으니 손목 잡혀 끌려가는건 어떤건지 간절히 알아보고 싶은 바람이 생기고 말았다. 그때의 내 손목은 누군가의 손으로 꽉 움켜졌을 때 약간의 공간이 생길 정도로 가늘어야 한다거나, 늙은 웨이터의 손이겠지만 나를 잡는 손은 푸른 핏줄이 도드라지거나 힘이 느껴지는 손이면 좋겠다든가 등등의 상상을 했던가, 맥없이 내 손목만 만지작거렸던가.

 일전에 나이트를 좋아한다는 누군가에게 부킹해서 남자 만나는거랑 술집에서 일하는거랑 뭐가 다르냐고, 고용됐다는 것만 다를 뿐이라고 열변을 토한적이 있다. 그땐 정말 그랬다. 남자들은 겉치레용 룸에서 웨이터에게 팁을 찔러주며 여자들을 만나고, 여자들은 외모로 평가 된다. 남자들은 자기 돈 내고 술을 먹고, 여자들은 덩달아 공짜술을 먹는다. 지금도 그 차이가 뭔진 잘 모르겠다. 이미지만 갖고 속단했을 수 있다. 말로만 듣던 부킹에 대한 반감-내가 못해봤지만, 뭔가 재미있을지도 모를-이 가져온 극단적인 설정이었을 수도 있고, 그냥 어설프게 주워들은 것으로 만들어낸게 딱 고만한 결론 정도였을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부킹이 하고 싶었다. 내 나이엔 나이트가 아니라 스탠드바에서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눈을 사이키 조명으로 감쪽같이 숨기고선 수작을 부려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에 이르러선 더더욱 말이다. 어쩌면 부킹이 되는 조건에 괜히 시샘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나이트-3
    from 기우뚱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2010-06-26 00:36 
     다음 무대에 나가길 탐탁치 않아 하는 둘을 떼놓고 나 혼자 나가 '또' 열심히 춤을 췄다. 이번엔 DJ가 직접 무대에서 공연을 보여준단다. 뜨거운 걸 원하냐고 묻더니 옷을 벗는다. 말캉말캉한 살만 보인다. 근육은 조명 속에 감춰둔 걸까. 하나도 안 뜨거웠다. '쳇' 하고 돌아서서 다시 춤을 추는데 사람들은 계속 DJ만 바라보고 있는 거다. DJ는 다시 뜨거워지고 싶냐고 묻더니 한참동안 자족할만한 안무를 선보였다. 그러더니 '나, 긴장 고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