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지루한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모처럼 짧은 치마를 입어 다리는 시렵고, 좀전까지 마구 먹어댄 바람에 배는 무거운 상태여서 뒤뚱뒤뚱 걷고 있었다.  

 걸으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오늘 본 블로그의 주인이 예전 남자친구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짤막하게 써놓은걸 보고선 '왠 주책'인가 싶었다. 그가 여지껏 헤어져서 잘 됐다던가, 안 맞는 사람이었다라고 떠들었던건 둘째치고, 다 끝난 관계에서 하필이면 사과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밤엔, 나도 전에 만났던 분에게 사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쓰거나 누군가에게 말을 할때면 보이지 않는 눈이 나타나 '네 진면목을 알고 있으니 함부로 까불지마라.'라고 말하는 것 같았으니까. 이제는 그런건 잊어주라고 혹은 상관없지 않냐고 말하고 싶어졌다. 상대방이 아무런 얘기도 안 했고, 어떠한 낌새도 없는데 혼자 찔려서, '왠 주책'처럼. 왜 연애할때마다 병증이 되살아나는 것처럼 극성인지 모르겠다. 이건 친구가 말한 것처럼 연애젬병으로 자신을 길들이는 수작일지도 모르겠다. 일테면 '나는 길치'로 자신을 규정해 길을 알려는 노력마저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처럼.

 아무튼 생각들을 차곡차곡 포개가며 걷고 있는데 누군가 옆으로 다가오는게 느껴졌다. 누구? 

- Where are you going?

 보니까 유색, 백인이 아닌, 아니 그저 남자? 이것도 아닌 어쨌든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분이 나와 보폭을 맞춰 걷고 있었다. 대체 백인이 아닌 사람은 어떻게 지칭해야한단 말인가. 황인종, 흑인종, 유색 인종. 정희진의 말처럼 피부색이 없는 인종이 어디 있다고. 

 밤이고, 안전한 인종이 아니란 생각에(이런 몹쓸) 무시할까하다 그의 눈이 머루처럼 새까매서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 집에 가는 길이야.  

- 왜 벌써 집에 가? 

- 왜? why라고 말한거야? 

- yeah. 난 너랑 얘기를 나누고 싶어. 

 지금은 밤이고, 나는 자야해. 브라질에서 온 산디는 여자친구가 없으니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브라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은 어떤지 내게 물었다. 봐서 알겠지만 기초적인 것에서도 아주 핵심만 골라잡은 단어만으로 대화가 진행되는 형편으로 그에게 제대로된 답변을 해줄 수가 없었다. 도리어 계속 잠, 잠을 외치거나 go home만 골라잡아 얘기를 하자니 약간 맥이 빠지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 왜 친구가 된다고, 다시 보자고 하지 않았던거니?  

 안전한 대답은 있다. 밤이고, 남자고, 에 그리고 지어낼 수 있는 이유들은 퍽 많았다. 하지만 그런건 별로 염두해두지 않았다. 그렇게 피곤한 것도 아니었고 지금 당장 집에 들어가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난 그가 see you라고 할 때 bye라고 단정을 지었고, 나 스스로도 다시는 그를 만날 일이 없다란 생각을 했다. 그래, 내가 봐버린건 그가 think를 딩코로 발음한 것과 우리보다 못사는 브라질에서 왔다는 것, 피부색이었다. 아, 졸라(이런 말을 쓰는 것은 졸라 창피하다.) 창피하다.  

 여기서 좀 더 생각을 넓혀보자면 발음 뿐만은 아니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미국 등 영어권 나라 사람들의 발음이 조금씩 차이가 나고, 케이의 경우도 d발음이 강하게 나는걸 알고 있다. 일본식 영어가 있는 것처럼 나라마다 다른 악센트가 있고, 작정하고 영어를 배우는게 아니라 친구를 사귀는거라면 발음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난 산디를 거부했다. 그가 흰색 피부에 유럽에서 온 사람이라면 과연 그랬을까?  

 나보다 더 갖거나 부당한 것에는 항의하고 불만을 얘기할 수 있지만 만약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굴거나 상처를 주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의 성찰을 할 수 있을까. 이건 산디의 경우에서 나온 생각이지만 이 경우와 정확하게 일치하는건 아니다. 외국인에 대해 막연하게 갖고 있던 감상과 실제가 마주치는 것에서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의 단면을 엿보긴 했지만 거부 자체의 속성 때문에 좀 더 문제적이란 생각이 없는건 아니다. 다만 나보다 약자에게 취하는 행동이 가끔씩 문제적이란 생각은 든다.  

 최규석의 습지생태보고서에서 나온 구절처럼, 

 이건 그저 헌팅일 뿐이라고. 미니스커트가 만들어낸 아주 드문 상황이었다고.  

 연애를 하고 돌아온 주인공에게 친구가 오늘은 얼마를 썼냐고 물었을 때 주인공이 '그저 연애를 한 것 뿐'이라고 한 것처럼  나도 이번에는 '그저 헌팅일 뿐이라고.'로 끝을 맺어야겠다. 낯선 상황이 가져다준 파동은 좀 더 지켜본 후에 정리를 해야할 것 같다.  

 내가 남미 쪽에 어필하는 얼굴, 아니 뒤태라니! 아치의 재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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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9-04-01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재밌는 체험기이군요.^^

Arch 2009-04-01 15:46   좋아요 0 | URL
^^
 
한 아이 1 - 아동교육 심리학의 영원한 고전 한 아이 1
토리 헤이든 지음, 이희재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미잘님의 우국충정 리스트가 비록 한회에 끝날지라도 그 첫회에 빛나는 책의 리뷰를 보고선 맘이 동해버렸다. 책에 대한 내용은 아주 특이할만한게 없었으나, 굳이 우국충정이란 칭호까지 내리며 골라준 미잘표 리스트라는데 의미가 있었고, 미잘님이 재미있다고 하면 그가 추천한 책을 아직 한번도 읽은적이 없으니 '정말?'이러면서 반신반의하게 됨에도 취향의 쫀쫀함을 맞춰보고 싶은 욕망이 무럭무럭 자라난 것이다. 옆구리 찔러 받아낸 책을 조금씩 아껴가며 다 읽어내려갔다. 처음에 뭐라고 써야할지, 쉴라의 이름을 먼저 불러봐야할지. 남들도 느끼고, 나도 잘 아는 감정 과잉과 내식대로의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틀이 아닌 것으로 써내려갔으면 좋겠다란 바람도 생겨났다. 

 아동교육 심리학의 영원한 고전이란 책 표지의 문구는 약간 낯뜨겁고 지난 30여년 동안 베스트셀러였다란 부분은 지난 30년을 살아온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풍겼다. 책을 읽기 전에 교육이나 논픽션의 이야기들은 어쩜 하나같이 '그래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나는지 도식적인 플롯을 전수받는건 아닐까란 선입견과 아이가 일으키는 문제가 어마어마해야 선뜻 동의가 된다는식의 역시 도식적인 나의 입장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장을 넘겼고, 마법의 주문이 씌어지기라도 한듯이 마지막장까지 아껴가며 책을 다 읽었다. 

  토리는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의 반을 맡아서 가르치고 있다. 이 아이들만으로도 버겨워 쩔쩔매고 있는 토리 앞에 어느 날 신문에서 다른 아이에게 불을 질러 다치게한 6살날 꼬마 쉴라가 배정된다.

 내가 파악한 정보에 비추어볼 때 쉴라의 신체활동은 정상이었다. 그래서 내가 감당해야할 싸움이 더 힘겨워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든게 우리 손에 달려있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쉴라를 바르게 이끌지 못했을 경우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자폐증이나 뇌손상 같은 그럴싸한 방패막이가 없었다.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었다. 적개심으로 가득찬 그 눈 너머에는 인생은 결코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달관한 어린 꼬마 소녀가 있었다. 더 이상 거부당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가급적 반감을 사는 행동을 일삼는 것이다. 그러니 쉴라가 보이는 애정결핍 증상은 본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이치는 그렇게 간단했다. -43p

 고함을 지르고, 금붕어의 눈을 연필로 파내고, 다른 아이들을  위협하는 쉴라, 토리 선생님은 쉴라의 과격한 행동 너머에 있는 따스한 내면을 아직 접하지는 못했지만 쉴라의 놀라운 지능과 이 아이가 겪어왔던 일들을 떠올리며 기다려준다. 마침내 그녀가 토리에게 맘을 열어준 아주 짧은 순간을 목격한다.

 쉴라가 커다랗고 끈적끈적한 덩어리를 마지막으로 고물에 묻힌 다음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쉴라의 입가에 환한 웃음이 번지면서 아랫니 빠진 자리가 드러났다. - 80p 

 토리는 내가 책에서 봐왔던 다른 선생님과는 다르다. 뛰어나게 전문적이지도 않고, 헌신적이거나 사람의 능력 이상을 지닌 것처럼 위대한 사람도 아니다. 도리어 내가 아이들을 접할 때와 마찬가지로 어쩔줄 몰라하고, 쉽게 상처 받으며, 순간 순간 고민한다. 쉴라를 대할때도 이 아이를 완전히 바꾸겠다거나, 깊은 절망으로 자신을 몰아내며 흥분하지 않는다. 도리어 우리가 다른 관계를 바라보듯이 쉴라를 보며,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자신도 성장해 나간다. 토리 선생님의 면면은

  나는 진정한 사이가 좋거든. 내 눈에 정직해 보이는 사람은 어린아이 아니면 미친 사람뿐이었어. 그러니 여기가 마음에 들 수 밖에. -214p 

라며 휘트니에게 털어놓는 마음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래서 난 쉴라만큼 토리 선생님이 좋아지고 말았다. 헐리우드 영화처럼 극적인 화해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점층적인 갈등이 대단원의 막을 향해 달려가는 것도 아닌, 한 아이만의 논픽션이 함의하는 장점을 의도적으로 직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투박한 구성마저 맘을 두드렸다.  

 아동교육 심리학의 고전이란 말은 잠시 잊어도 좋다. 교육학의 면모를 보는게 아니라 쉴라를 따라 내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치료되고, 성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테니. 누구에게도 맘을 주지 않을 작정으로 반감을 살만한, 다른 누군가를 상처줄 수 있는 가장 지독한 방법을 터득한 쉴라는 조금씩 변해간다. 자신의 상처를 끊임없이 반추하고 말하는 모습, '너도 결국은 나를 떠날게 아니냐.'라며 토리 선생님을 윽박지르는 모습, 성폭행으로 갇혀있던 몸을 내려놓고 엉엉 울던 모습은 층위는 다르지만 마찬가지의 상처와 기억을 갖고 있는 내 몸과 마음에도 해당되는 얘기였다. 쉴라가 자신의 말들을 풀어가며 사람들이랑 친해지면서 이 아이 안에 얼마나 많은 영롱한 빛깔의 에너지가 있는지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 선생님이 옆에 있으면 난 좋아질텐데 왜 못그러겠다는거죠? 

- 널 좋게 만드는건 내가 아니라 너니까 그렇지. 내가 여기 있는건 네가 올바르게 사는지 안 사는지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너한테 알려주기 위해서였어. 네 생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걸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단다. 난 어딜가나 너한테 관심을 둘거야. - 296p

 쉴라와 토리 선생님은 어린 왕자를 읽어가며 자신들의 관계를 책에 비추어 성장해간다. 어린왕자를 많이 읽어온 내 눈에도 이토록 생생하게 삶 속에 깃든 책이란 의미에서 내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래, 심장은 늘 뛰어왔고, 내 가슴은 늘 떨려오고 있었지.   

 그건 우리가 서로를 길들였기 때문이에요. 책에 그렇게 나와있죠? 여우를 길들이느라고 어린 왕자가 고생고생했는데 나중에는 어린 왕자가 떠난다고 여우가 막 울었잖아요....... 언제나 밀밭을 생각하면 되니까 괜찮다고 여우가 나중에 말했구요. 맞죠? - 297p 

 아무도 서로를 길들이지 못할거라고 믿어왔고, 나 역시 누구에게도 길들이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누구보다 더 길들임을 당하거나 길들이고 싶었더란 것을 쉴라를 통해 알게 되었다. 길들임에는 책임이 따르겠지만 고생고생해서 길들였는데 헤어지면 막 울어버리고 무너지겠지만 길들이는 관계란 기억을 먹고 한뼘쯤 자라날 것을 믿는다. 쉴라가 그랬고, 쉴라를 보는 아주 오래된 아이인 나도 그렇고. 어린 왕자를 통해 관계를 조명하는 한 아이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쉴라가  토리 선생님의 생일날 선물을 준 부분이 아닐까 싶다. 토리 선생님은 생일날인데도 다른때보다 더 떠들고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 때문에 다른 날보다 더 울적해있어서 아이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있으라는 벌을 준다. 이제 조용히 할 수 있는 사람만 고개를 들라고 말을 했는데, 

 쉴라는 머리를 숙인채 가만 있었다. 

- 쉴라, 너도 일어서야지. 

 하지만 쉴라는 머리를 감싸안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 옆으로 가서 앉았다. 

- 선생님도 이젠 화가 풀렸어. 일어나서 놀아도 된다니까. 

- 여기 있는게 선생님한테 드리는 제 선물이에요. 나머지 시간은 여기서 조용히 있을래요. -303p

 우리 맘을 건드리고, 손을 뻗게 만드는건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 작은 몸의 쉴라는 내 안에 들어와 지금 바로 사소한 몸짓을 해보라고 충동질 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네 안에 예전에 나와 같은 마음이 있었구나, 그런데 조금 불편해하는거 같구나.'라고 무심하게 말을 건넬 뿐이다. 내 안에 있는 쉴라가 가끔씩 내게 무심하게 말을 걸어올때면 나도 그녀처럼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리겠지. 사랑을 받지 못한 쉴라가 나중에는 어떻게 사랑을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게 된다. 사소했을 만남을 구원한건 바로 그 '사소함 자체'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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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03-31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름드리미디어에서 상 받아야 할 거 같아요. 주변 사람들에게 반 어거지로 책 읽히고, 리뷰받아내고.
ㅎㅎ 생각해 보니까 속지에 '아치님께 드림'도 못 썼네요.
음.. 좋은 리뷰 잘 읽었어요. ^^

Arch 2009-04-01 00:24   좋아요 0 | URL
아름드리미디어말고 내가 상 줄게요. 밥상? 영상? 진상? 그 중에서 제일은 진상이니 가끔씩 제 진상을 받아주셔요.
쑥스럽게^^
 

 주위에 책을 읽는 사람들의 취향은 대동소이하다. 나랑 비슷하거나 조금 다르거나, 아주 다르거나. 요즘 유행인 자기계발서는 너무 울궈먹어 빛이 바래고, 베스트셀러는 난 책에 대해 요만한 취향을 갖고 있다고 표명하는 것 같아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사라지기 일쑤다. 여자라면 '왜 남자는 여우같은 여자를 좋아할까' 정도는 읽어줘야한다고 생각하거나, 무협지와 할리퀸,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나와 잘 맞지 않는다. 연애 기술은 선천적이라고 믿는데다 열거한 책들에서 내가 재미를 못느끼기 때문이다.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건 무리수지만, 무슨 책을 읽는지를 두고 사람을 대충 짐작해보는건 대개의 경우 맞아떨어졌다. 어제의 경우도 그랬다. 

 건너편에 앉은 그녀가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가슴 부위가 도드라진 옷에 곱게 화장을 한 모습. 난 섣불리 '저렇게 두꺼운 연애북이 있나' 정도로 생각했다. 미간을 찌푸리며 책을 덮는 그녀와 내 눈이 마주쳤다. 무슨 책일까. 슬쩍 곁눈질로 책을 보자, 그 이름도 유명한 노마니즘이다. 이 공간, 이 시간에 노마니즘을 읽다니. 나는 단번에 그녀가 좋아졌다.  

- 천개의 고원은 다 읽었어요? 

- 어? 이 책을 알아요? (그럼요. 모든 것에 두루두루 얕은 사람인걸요.) 친구들은 거의 다 모르던데. 

 그렇게 그녀와 대화를 시작했다. 그녀는 모두가 토익 공부를 하고 있을 때 학과 수업 시간에 배운 푸코가 좋아 들뢰즈 강의까지 들었다고 했다. 수유 공간에서 수업을 듣다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중간에 포기하고 잃어버린 아이처럼 남겨진 노마니즘을 틈틈히 읽는다고도 했다. 문학을 좋아하는 선배가 카뮈를 몰라서 놀랐다고한, 가끔은 답이 안 나오는 경쟁보다 나에게 주어진 길이 있다면 좋겠다는, 작가나 제목을 잘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자기 안에 쌓여가는 책의 면면이 참 좋다는 23살의 그녀. 난 조금 흐뭇해지고 말았다. 

 그건, 뭔지 모르겠다고, 누군가 보면 영락없이 현실도피의 색깔을 지닌채 방황하는, 방황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게 들끓던, 23살의 나를 보는 것 같았으니까.  

 그녀는 그때의 나보다 영리하고, 지금의 내가 느끼는 감정의 층위들에 좀 더 접근한 애어른같은 말을 털어놓기도 했다. 나는 이제서야 뭐가 뭔지 좀 알 것 같은데 그녀는 내가 조금 알 것 같던 것들을 어린 나이에 섬세한 결로 느끼고 있다는게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도 흐뭇했다. 누군가 나를 바라보며 흐뭇해하는게 아니라 내가 다른 누군가를 보면서 흐뭇해질 나이가 됐다는걸 알았기 때문이다. 민에게 자주 하는 말대로 이제 형님이 되었으니까 좀 더 의젓해져야하는거야. must be가 답답하겠지만 때론 견뎌야할 시간을 지나며 성숙에 이를 수 있을테니. 

 예쁘고 점잖은, 웃음마저 자연스러운 그녀와 친해지고 싶다. 친해지고 싶다. 뭐뭐 하고 싶다란 생생한 느낌. 나이 든다고 가슴이 시들고, 주름이 늘어난다고 푸념만 해댔는데 좀 더 생생하게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느낌은 덤으로 받아가는 것 같다. 여전히 누군가와 친해지기는 어렵지만, 덤으로 받아가는 나이에 감사하며 문득, 춤이라도 추고 싶어진다. 몸을 비틀고, 팔을 휘젓는 요란한 동작에 불과하겠지만. 앗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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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03-31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나도요! (뭐가?)

Arch 2009-03-31 14:06   좋아요 0 | URL
저 뜬금없는 미잘. 음... 독서모임에 가보는건 어때, 미모로운 사람도 있는데, 그랬더니 호의적이었어요. 하지만 기혼인(나이를 멋대로 생각하듯, 이것도 멋대로!!) 미잘님은 패쓰^^ 이게 아니라면,
우린 전보다 조금 친하잖아요.

Forgettable. 2009-03-31 14:54   좋아요 0 | URL
- 아, 미모로운 사람이 있는 독서모임 어디?
- 말미잘님 기혼이셨구나. 아쉽..(뭐가)
- 이쁘고 나이 어린데다 들뢰즈를 읽는 소녀만나기 힘든데, 뿌듯하시겠다!

Arch 2009-04-01 00:25   좋아요 0 | URL
뽀가떠블님 아흥^^
미잘님 기혼설이 기정사실화 되기 전에 살짝 첨언을 하자면,
아직은 잘 모른다는거에요. 이건 미잘이 킬러다란 선언과 비슷한 과학적인 추론에 의한 것이지만 확실한건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봐야 알겠죠?
예쁘고 나이 어렸던 저도 가끔 들뢰즈를 베고 자는데 절 만나는건 어떠세요?

Forgettable. 2009-03-31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린 꽃피는 사월에 막걸리를 (폭음)하기로 이미 약조를 한 사이니 패쓰^^

Arch 2009-03-31 18:55   좋아요 0 | URL
흐흐...^^

뷰리풀말미잘 2009-03-31 22:31   좋아요 0 | URL
나도 막걸리 잘 먹는데..

Arch 2009-04-01 00:26   좋아요 0 | URL
미잘은 알코올 두드러기 있으니 패쓰이나 미모 상한선을 초과하여 고려 해보겠음.

Forgettable. 2009-04-01 01:08   좋아요 0 | URL
알콜 두드러기라함은 알콜자체에 대한두드러기 일까요 아님 알콜이 초래하는 진상에 대한 두드러기일까요..
난 당췌 무기가 되는 미모가 뭔지 빠른 시일 내에 확인해보고 싶지만 후자의 두드러기라면 후일을 기약합시다 ㅋㅋ
그게 아니라면 저는 적극환영*^^*
아치님!!!! 4 월이에요!!!!!!

Arch 2009-04-01 01:36   좋아요 0 | URL
아직 확실치는 않으나 미잘님의 평소 언행과 제게 가끔씩 뀌어주는 방구성 유머로 보아 전자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전 진짜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뽀가떠블님의 진상에 맞서 동물 진상을 보여줄 자신이 있으나 다른 분들이 심하게 거부 반응을 보일까 싶어 인간용 진상만 보여야하지 않을까란 염려가 듭니다만.
오늘이 사월이잖아요.
오늘 봐요. 이따 6시에 전화할게요.

2009-04-01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추를 다듬으려고 했다. 텔레비전이 간절히 보고 싶었다. 야채를 다듬을 때, 마늘을 까거나 빻을 때, 눈으로 보지 않고서도 손에 익은 동작을 해낼 수 있을때면 TV생각이 간절하다. 맘에 드는 프로를 하나 골라 일을 마칠때까지 보는 것. 단순하게 손만 놀리는 일에 집중해도 되련만 괜히 그 시간에 텔레비전까지 챙겨보려는 욕심은 단순노동을 정말 단순하게 생각하는 관습적인 사고 탓인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심슨을 조금 보다 예고로 나온 현장다큐 '동행'을 봤다. 이런 이야기들. '그들의 환경은 어렵고 가정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지만, 꿈을 잃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어요'의 얘기들이 바라는 푸근한 감성이 언젠가부터 불편해졌었다. 그들이 아무리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다다를 수 있는 희망이란게 퍽이나 간소함에도 불구하고 허들 경기마냥 지치지도 않고 장애물을 마련하는 삶은 퍽퍽하기 마련이니까. 그 삶을 지켜보는 마찬가지의 퍽퍽한 눈에도 고단해보이니까. 그래서 안 볼까 하다가 예고편에 나온 예지가 너무 예뻐서 그만, 보고 말았다. 

 아빠는 부인이 집을 나간 후 1년 가까이 아이들과 생활을 하고 있다. 집세는 밀려서 보증금을 깎아먹는 중이고, 가스는 끊겨 전기장판으로 두 남매를 재울 수 밖에 없다. 신문지에 전단지를 끼우는 일과 신문배달을 하고 있지만 한번 브레이크가 걸린 살림은 좀체로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아빠는 두달치를 가불해 더 이상 말하기도 민망했지만 다시 한번 신문 보급소 사장에게 부탁을 했다가 거절을 당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나 하려고 해도 자신의 형편에 맞는걸 구하기는 턱없이 어렵다.  

 그래서 예지의 아빠 용갑씨는(이름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두 아이를 보육원에 맡길 생각을 한다. 예지와 주영이에게 당분간만 떨어져있자고 하자 예지는 아빠랑 같이 살고 싶다고, 떨어지기 싫다고, 앞으로는 주영이도 잘 돌보고, 아빠 말도 잘 듣는다고 한다. 예지 때문이라면 앞으로 예지가 잘 할거라고 말한다. 예지 잘못이 아니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건데 아직 어리광 부릴 나이의 예지는 자기가 잘 하면 헤어지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일찍 철이 든 아이들은 아빠 앞에서는 함부로 엄마 얘기도 꺼내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건 네 잘못이 아닌데. 

 비염이 있는지 훌쩍일때마다 콧물 소리가 들리는 예지가 아빠 품에 안겨 울자, 부추를 다듬다 말고 나도 엉엉 울고 말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아이들이 자책하는게 안쓰러웠다. 하루에 두시간 밖에 자지 못하면서 아빠가 일하는데도 예지네 형편이 나아지지 못해서 참 속 상했다. 그리고 이건, 매일밤 노동에 지친 몸을 술로 달래며 견뎌야했던, 가끔씩 투정부릴 수 없는 맘을 뭉텅뭉텅 뱉어놓는 아빠를 떠올리게 했다. 지금의 내 동생, 여전히 우리 아빠, 꼬리를 감추며 피하고 있는 나까지,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생계에 대한 얘기였다. 

 며칠 뒤 아빠는 전단지 돌리는 알바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주인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봐달란 얘기를 했고, 아이들과 같이 살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일할거란 말을 한다. 거기서 어떻게 더 열심히 일을 합니까. 사람 몸이 둘도 아닌데. 안쓰러운데도 내 맘이 자꾸 삐딱하게 기울어져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용갑씨야 내 말 따위는 귓등으로 흘리고 소처럼 일할게 뻔하지만. 

 내가 삐딱하게 예지네를 보고 있는 사이, 예지는 용돈을 모아 아빠에게 파스를 사다드린다. 용돈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군것질 하고 싶은거 참고, 사고 싶은거 꾹 참고선 모았을 용돈. 작은 손으로 앙상한 아빠 다리에 파스를 붙이는 예지를 보니 브라운관 밖에서 부추를 다듬고 있는 내 손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 아이가 아직 가지 않은 길의 면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저러다 덜컥 누가 아파버리기도 하면 어쩌나란 최악의 시나리오도 떠올랐지만, 같이 살 수 있어서 아직은, 그래, 견딜 수 있는 예지네. 이런 입장이 정말 지루하고 영양가도 없고, 문제적이란걸 너무나도 잘 안다.  

 끝맺는 말의 여러 버전을 계속 지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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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3-28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가족이 세끼밥 걱정없이 한 지붕아래 살수 있는 것, 지금 이 나라의 경제력으로 불가능한 일 절대 아닐텐데 말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3-30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제력은 10위권 삶의 질은 100위권 대한민국의 현실..

Arch 2009-03-31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전에 서비스직에 대한 얘기를 한적이 있다. 내딴에는 경험을 해봤고, 좀 더 안다고 생각해서 쓴 내용이었는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얼마든지 달리 보일 수 있는 사안이란 것을 잘 안다. 

 오늘 마트에서 장을 봤는데 숙주를 어떻게 담아서 계산을 해야하는지 몰라 옆에 계신 분에게 여쭸더니 건성으로 비닐에 담아 저울로 재라고 하셨다. 뭐, 하루종일 서있고, 방금 안 좋은 일이 있었나보지. 그렇게 생각하는데도 기분은 좀 안 좋았다. 모처럼 밖에 나와 장을 보며 봄날 딸기향이 좋다며 신나 있었는데 불친절한(그분이 나를 위해 친절해야할 필요는 없겠으나) 말 한마디에 무안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나 역시 이동통신 회사에서 일할 때 미칠듯이 쏟아지는 전화를 받다가 꼬치꼬치 묻는 고객에게 불퉁거린적이 있다. 학생이여서 만만하게 본 것도 있었는데(미친 상담원이었지. 아마) 그 분이 그때 그랬다. 

- 왜 이렇게 불친절해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려서. 행여 클레임 걸릴까봐 바로 자세를 고쳐앉고 응대를 했는데 고객은 화를 내며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다시 전화를 할까하다 받아야할 전화수와 채워야할 전화 받는 시간 때문에 차마 전화를 할 수는 없었다. 사실 난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잘 몰랐었다. 배째라지, 이런건 아니었고,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는 순간, 바로 아차 싶다기보다는 얘가 괜히 일을 크게 만들지 않기를 바랐으니까. 

 친절? 그건 너무 강요된게 아닐까란 생각이다. 익명의 블라인드로 가려진채 전화로만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서 가식적인 친절은 불편하고 그렇다고 진정을 원하는 것도 어폐가 있지 않을까. 게다가 콜센터 직원들은 유리벽에 갇혀있다. 8시간을 꼬박 전화를 받고, 목표하는 콜수를 채우고, 콜 시간을 맞춰야한다. 그 와중에 상담 내용을 정확하게 숙지해야하며, 오상담이나 시간을 지체할 경우는 성과급에서 하위에 머무르는 것도 감안해야한다. 모든 내용은 고객의 권익 보호라는 이유로 녹취가 되고, 행여 잘못 걸려 '진상'이라도 만난 날이면 도로 한가운데에서 섹스라도 해야할 것 같은 성희롱에 시달려야한다. 차라리 이런 사람이라면 낫지, 콜이란 소리만 들어도 원한이 있거나 기분 나쁜일을 괜히 콜센터 직원들에게 풀거나 고압적으로 지시하는 고객들, 무리한걸 부탁하면서 소비자의 권리라며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들. 친절이란 말은 이미 빛을 바랜지 오래고, 진심으로 대할때 자신이 가져갈 몫은 기본급 뿐이며, 자신의 친절만으로 회사 이미지나 고객의 기분을 좋게 하기에는 콜센터는의 규모는 너무 커져버렸다. 

 이건, 마하연님의 페이퍼를 읽고 쓴 글이지만, 그 분께서 문제가 있다란 얘기를 하는게 아니다. 그분의 일이 충분히 불쾌하고, 알라딘측에서 시정해야할 부분도 있다는 점에 대해 적극 동감한다. 하지만 단순히 한명의 상담원 문제가 아니라 구조 자체가 그렇게 된 것이라는데 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혹시 그 사람은 전화를 받은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사람이 아닌지,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은 나는 어땠는지 생각해봐야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사정을 아는 내가 다른 콜센터에 전화를 걸 때면 제대로 하냐 싶으면 또 그것도 아니다. 나 역시 사정을 잘 안다는 이유로 무리한 부탁을 하기도 하고, 내가 제일 싫어했던 유형인 한번 전화에 모든 용건을 다 보려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건 나한테도 하는 소리다. 

 얼굴이 보이는건 아니지만, 전화선 너머의 그 사람도 분명히 놀랐을거다. 나로 말하자면 그저 나불나불 입이었지만, 아마도 그 분은 좀 더 성의를 갖고 일을 처리하다 문제가 발생했던 것 같고, 앞으로는 더 조심할 수 있을 것 같다. 

 마트의 아주머니는 내가 숙주를 손으로 집어서 담아오니 저울에 잰 후 가격 택을 붙여줬다. 여전히 무뚝뚝했고, 아무말도 없었지만, 그 사람이 누구나에게 그런다는 것, 괜히 나한테만 그런게 아니라는 것, 오늘 좀 피곤했나보다 정도를 생각하니 상한 기분도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물론 좀 더 상냥하거나 재미있게 일하는 모습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것까지 바라기엔 난 그 아주머니에 대해 잘 모르니까. 

  나는 2002년 11월에 알라딘에서 처음으로 물건을 구매했다. 내가 운이 좋아서인지, 다른분들처럼 구매액이 크지 않아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알라딘에서 책을 사거나 책을 파는데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신기하다며 지하철 택배로 받은적이 있는데 이때 연락처를 잘못 적어 헤맸던 일과 가끔 배송이 늦어지는 일(그런데 요샌 배송 얘기가 많이 나와서 그런지 거의 일주일 정도로 텀을 둔다.)정도가 있을텐데 이것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내가 둔해서 그런건지, 알라딘이라고 할 때 맘으로 먼저 점수를 주고 들어가서인지는 모르겠다.  

 도리어 난 알라딘이란 공간에 서재가 있어서, 서재에 글을 쓸 수 있고, 알라디너들과 얘기할 수 있어서 고마운 맘이 더 크다. 서재로 연결되다보니 알라딘이 가끔 보이는 별로인 것들에도 너그러워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계속 지적받고 있는 부분들은 알라딘측에서 시정해나갔으면 좋겠다. 다른 블로그나 누군가의 글에서 알라딘 이용하니까 정말 좋다란 소리가 나오면 나도 괜히 뿌듯하고, 누가 인터넷 서점이란 말만 꺼내도 알라딘, 알라딘이란 소리가 버릇처럼 나오니까.  

 알라딘이 아주 뛰어나고 멋진 기업인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주 좋고 멋진 서재가 있다란 것은 분명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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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2009-03-27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서비스업 아르바이트를 해본적이 있어서,(뭐..P빵집 아르바이트 정도라지만;) 공감가는 글이네요. 저도 제가 그 아르바이트를 하기전까지는 '손님은 왕이다' 라는 시각만 가졌지, 나를 응대하는 사람도 '감정있는 사람', 이라는 생각을 못했던거 같아요. 근데 제가 손님을 상대하다보니까, 손님의 태도에 울컥할때도 많고.. '사람들이 어쩜 이렇게 막대하나' 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십번씩 들면서 울컥하더라고요. 그 때 역지사지,를 정말 제대로 깨닫고 그 이후부터는 '왜 이렇게 불친절합니까!' 를 말하기보다는 '혹시 내 말투가 명령조라서 저 분 기분을 상하게했나? 하는 자기검열(?)까지 해보게 되는 습관을 가지게됐어요. 흠.. 좋은 서비스를 받을 권리는 당연히 지켜져야 하겠지만, 조금만 서로 배려하는 마음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생각할거리를 주는 글이네요~ 이런글을 읽을 수 있어서.. 저 역시 서재를 사랑합니다^^;

Arch 2009-03-27 18:04   좋아요 0 | URL
고꼬스님 반가워요. P라고 하셨지만, 프랑스의 수도 이름, 빵의 종류 가게란거 알아요. 미안, 썰렁했네요.
실은, 글 지우려고 온건데,그 사이에 댓글을 다셔서.
제가 아무리 온건한 어조로 얘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가르치려 든다거나, 당사자의 입장을 모르는 단지 오지랖일지 모른단, 나대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글 쓰기 전에도 그런 생각은 있었는데 그저 제가 글을 쓰게 만든 페이퍼를 쓰신 분을 공격하거나 문제 삼고자한게 아니란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행여 그분이 이 글을 보고 맘이 불편하면 어떡하나 노심초사.
늘 저질러놓고, 깨달아서 참 미안해요.

아, 고꼬스님! 저도 자기검열과인데 이게 내가 지불한 돈에 들어있는 서비스마저 비굴하게 바라고 있는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때도 있어요. 사람 관계인지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서비스를 해주는 입장의 간극은 참 멀기만 해요. 서재사랑人 한분 추가요^^

2009-03-27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turnleft 2009-03-28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박노자씨가 서비스 업종 종사자들이 "감정노동"을 강요받는다는 표현을 썼던게 기억나네요.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지켜보면, 전반적으로 한국사람들 무례하고 기분 나쁘게 행동해요. 일상 생활에서 이미 상대방에 대한 배려 따위는 몸에 배어 있지 않죠. 시각에 따라서는 미국인들 태도를 가식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저한테는 무례한 것보다는 가식적이라도 친절한게 차라리 낫더군요. 아무튼, 그래서 미국인들은 서비스업이라고 사람 대하는게 특별히 다르지는 않아요. 일상적인 삶에서 타인을 대하듯, 그 정도의 관심과 친절로 대하면 서로 감정 상할 일은 없더군요.

그래서, 만약 우리가 일상적으로 타인에게 불친절하게 대한다면, 과연 서비스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만으로 친절해야 한다고 요구하는건 과연 정당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요. 물론, 그들이 사람들을 대할 때 불친절해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건 아니에요. 친절해야죠. 하지만 그건 그들이 서비스업에 종사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 저는 참 천박하다고 봐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인데, 내가 손에 돈을 쥔 입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우월한 인간이 되는건 절대 아닐텐데 말이죠.

Arch 2009-03-28 13:45   좋아요 0 | URL
TurnLeft님 반갑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 인권 책자에서 '감정 노동'이란 표현을 봤어요. 감정 노동의 핵심은 주로 여자들이란 얘기도.

저는 일상적인 불친절함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네요. 그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 좋겠다란 생각이었는데 말이죠. 턴레프트님 댓글로 좀 더 다른 시각에서 친절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됐어요.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