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서비스직에 대한 얘기를 한적이 있다. 내딴에는 경험을 해봤고, 좀 더 안다고 생각해서 쓴 내용이었는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얼마든지 달리 보일 수 있는 사안이란 것을 잘 안다. 

 오늘 마트에서 장을 봤는데 숙주를 어떻게 담아서 계산을 해야하는지 몰라 옆에 계신 분에게 여쭸더니 건성으로 비닐에 담아 저울로 재라고 하셨다. 뭐, 하루종일 서있고, 방금 안 좋은 일이 있었나보지. 그렇게 생각하는데도 기분은 좀 안 좋았다. 모처럼 밖에 나와 장을 보며 봄날 딸기향이 좋다며 신나 있었는데 불친절한(그분이 나를 위해 친절해야할 필요는 없겠으나) 말 한마디에 무안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나 역시 이동통신 회사에서 일할 때 미칠듯이 쏟아지는 전화를 받다가 꼬치꼬치 묻는 고객에게 불퉁거린적이 있다. 학생이여서 만만하게 본 것도 있었는데(미친 상담원이었지. 아마) 그 분이 그때 그랬다. 

- 왜 이렇게 불친절해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려서. 행여 클레임 걸릴까봐 바로 자세를 고쳐앉고 응대를 했는데 고객은 화를 내며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다시 전화를 할까하다 받아야할 전화수와 채워야할 전화 받는 시간 때문에 차마 전화를 할 수는 없었다. 사실 난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잘 몰랐었다. 배째라지, 이런건 아니었고,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는 순간, 바로 아차 싶다기보다는 얘가 괜히 일을 크게 만들지 않기를 바랐으니까. 

 친절? 그건 너무 강요된게 아닐까란 생각이다. 익명의 블라인드로 가려진채 전화로만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서 가식적인 친절은 불편하고 그렇다고 진정을 원하는 것도 어폐가 있지 않을까. 게다가 콜센터 직원들은 유리벽에 갇혀있다. 8시간을 꼬박 전화를 받고, 목표하는 콜수를 채우고, 콜 시간을 맞춰야한다. 그 와중에 상담 내용을 정확하게 숙지해야하며, 오상담이나 시간을 지체할 경우는 성과급에서 하위에 머무르는 것도 감안해야한다. 모든 내용은 고객의 권익 보호라는 이유로 녹취가 되고, 행여 잘못 걸려 '진상'이라도 만난 날이면 도로 한가운데에서 섹스라도 해야할 것 같은 성희롱에 시달려야한다. 차라리 이런 사람이라면 낫지, 콜이란 소리만 들어도 원한이 있거나 기분 나쁜일을 괜히 콜센터 직원들에게 풀거나 고압적으로 지시하는 고객들, 무리한걸 부탁하면서 소비자의 권리라며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들. 친절이란 말은 이미 빛을 바랜지 오래고, 진심으로 대할때 자신이 가져갈 몫은 기본급 뿐이며, 자신의 친절만으로 회사 이미지나 고객의 기분을 좋게 하기에는 콜센터는의 규모는 너무 커져버렸다. 

 이건, 마하연님의 페이퍼를 읽고 쓴 글이지만, 그 분께서 문제가 있다란 얘기를 하는게 아니다. 그분의 일이 충분히 불쾌하고, 알라딘측에서 시정해야할 부분도 있다는 점에 대해 적극 동감한다. 하지만 단순히 한명의 상담원 문제가 아니라 구조 자체가 그렇게 된 것이라는데 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혹시 그 사람은 전화를 받은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사람이 아닌지,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은 나는 어땠는지 생각해봐야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사정을 아는 내가 다른 콜센터에 전화를 걸 때면 제대로 하냐 싶으면 또 그것도 아니다. 나 역시 사정을 잘 안다는 이유로 무리한 부탁을 하기도 하고, 내가 제일 싫어했던 유형인 한번 전화에 모든 용건을 다 보려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건 나한테도 하는 소리다. 

 얼굴이 보이는건 아니지만, 전화선 너머의 그 사람도 분명히 놀랐을거다. 나로 말하자면 그저 나불나불 입이었지만, 아마도 그 분은 좀 더 성의를 갖고 일을 처리하다 문제가 발생했던 것 같고, 앞으로는 더 조심할 수 있을 것 같다. 

 마트의 아주머니는 내가 숙주를 손으로 집어서 담아오니 저울에 잰 후 가격 택을 붙여줬다. 여전히 무뚝뚝했고, 아무말도 없었지만, 그 사람이 누구나에게 그런다는 것, 괜히 나한테만 그런게 아니라는 것, 오늘 좀 피곤했나보다 정도를 생각하니 상한 기분도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물론 좀 더 상냥하거나 재미있게 일하는 모습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것까지 바라기엔 난 그 아주머니에 대해 잘 모르니까. 

  나는 2002년 11월에 알라딘에서 처음으로 물건을 구매했다. 내가 운이 좋아서인지, 다른분들처럼 구매액이 크지 않아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알라딘에서 책을 사거나 책을 파는데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신기하다며 지하철 택배로 받은적이 있는데 이때 연락처를 잘못 적어 헤맸던 일과 가끔 배송이 늦어지는 일(그런데 요샌 배송 얘기가 많이 나와서 그런지 거의 일주일 정도로 텀을 둔다.)정도가 있을텐데 이것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내가 둔해서 그런건지, 알라딘이라고 할 때 맘으로 먼저 점수를 주고 들어가서인지는 모르겠다.  

 도리어 난 알라딘이란 공간에 서재가 있어서, 서재에 글을 쓸 수 있고, 알라디너들과 얘기할 수 있어서 고마운 맘이 더 크다. 서재로 연결되다보니 알라딘이 가끔 보이는 별로인 것들에도 너그러워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계속 지적받고 있는 부분들은 알라딘측에서 시정해나갔으면 좋겠다. 다른 블로그나 누군가의 글에서 알라딘 이용하니까 정말 좋다란 소리가 나오면 나도 괜히 뿌듯하고, 누가 인터넷 서점이란 말만 꺼내도 알라딘, 알라딘이란 소리가 버릇처럼 나오니까.  

 알라딘이 아주 뛰어나고 멋진 기업인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주 좋고 멋진 서재가 있다란 것은 분명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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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2009-03-27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서비스업 아르바이트를 해본적이 있어서,(뭐..P빵집 아르바이트 정도라지만;) 공감가는 글이네요. 저도 제가 그 아르바이트를 하기전까지는 '손님은 왕이다' 라는 시각만 가졌지, 나를 응대하는 사람도 '감정있는 사람', 이라는 생각을 못했던거 같아요. 근데 제가 손님을 상대하다보니까, 손님의 태도에 울컥할때도 많고.. '사람들이 어쩜 이렇게 막대하나' 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십번씩 들면서 울컥하더라고요. 그 때 역지사지,를 정말 제대로 깨닫고 그 이후부터는 '왜 이렇게 불친절합니까!' 를 말하기보다는 '혹시 내 말투가 명령조라서 저 분 기분을 상하게했나? 하는 자기검열(?)까지 해보게 되는 습관을 가지게됐어요. 흠.. 좋은 서비스를 받을 권리는 당연히 지켜져야 하겠지만, 조금만 서로 배려하는 마음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생각할거리를 주는 글이네요~ 이런글을 읽을 수 있어서.. 저 역시 서재를 사랑합니다^^;

Arch 2009-03-27 18:04   좋아요 0 | URL
고꼬스님 반가워요. P라고 하셨지만, 프랑스의 수도 이름, 빵의 종류 가게란거 알아요. 미안, 썰렁했네요.
실은, 글 지우려고 온건데,그 사이에 댓글을 다셔서.
제가 아무리 온건한 어조로 얘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가르치려 든다거나, 당사자의 입장을 모르는 단지 오지랖일지 모른단, 나대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글 쓰기 전에도 그런 생각은 있었는데 그저 제가 글을 쓰게 만든 페이퍼를 쓰신 분을 공격하거나 문제 삼고자한게 아니란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행여 그분이 이 글을 보고 맘이 불편하면 어떡하나 노심초사.
늘 저질러놓고, 깨달아서 참 미안해요.

아, 고꼬스님! 저도 자기검열과인데 이게 내가 지불한 돈에 들어있는 서비스마저 비굴하게 바라고 있는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때도 있어요. 사람 관계인지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서비스를 해주는 입장의 간극은 참 멀기만 해요. 서재사랑人 한분 추가요^^

2009-03-27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turnleft 2009-03-28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박노자씨가 서비스 업종 종사자들이 "감정노동"을 강요받는다는 표현을 썼던게 기억나네요.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지켜보면, 전반적으로 한국사람들 무례하고 기분 나쁘게 행동해요. 일상 생활에서 이미 상대방에 대한 배려 따위는 몸에 배어 있지 않죠. 시각에 따라서는 미국인들 태도를 가식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저한테는 무례한 것보다는 가식적이라도 친절한게 차라리 낫더군요. 아무튼, 그래서 미국인들은 서비스업이라고 사람 대하는게 특별히 다르지는 않아요. 일상적인 삶에서 타인을 대하듯, 그 정도의 관심과 친절로 대하면 서로 감정 상할 일은 없더군요.

그래서, 만약 우리가 일상적으로 타인에게 불친절하게 대한다면, 과연 서비스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만으로 친절해야 한다고 요구하는건 과연 정당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요. 물론, 그들이 사람들을 대할 때 불친절해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건 아니에요. 친절해야죠. 하지만 그건 그들이 서비스업에 종사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 저는 참 천박하다고 봐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인데, 내가 손에 돈을 쥔 입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우월한 인간이 되는건 절대 아닐텐데 말이죠.

Arch 2009-03-28 13:45   좋아요 0 | URL
TurnLeft님 반갑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 인권 책자에서 '감정 노동'이란 표현을 봤어요. 감정 노동의 핵심은 주로 여자들이란 얘기도.

저는 일상적인 불친절함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네요. 그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 좋겠다란 생각이었는데 말이죠. 턴레프트님 댓글로 좀 더 다른 시각에서 친절함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됐어요. 댓글 감사합니다.